김형식
UN 장애인권리협약 전문위원 (한국대표 2011-2018)
한반도 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협력학과 명예교수
호주 커튼대학교 인권교육학과 겸임교수
2014년 10월, 저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의회 제12차 회의 인 제네바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장애인의 인권 과 권리에 관한 여러 조항을 다루게 됩니다. 이번 회기에는 한국 국가 보고서가 심의를 받게 되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교육부, 정부의 여러 부서, 시민단체 등 100여명의 한국 대 표단이 제네바 회의장을 꽉 메웠습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24조 교육 조항에는 완전 통합교육 (Inclusive Education)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 국가 보고서, 시민단체 보고서, 그리고 최종 심의안에서도 계속 실질적으로 완전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강한 권고를 하 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회기 중에는 유엔아동권리 협약위원 회와 공동으로 일정을 잡아 완전 통합교육에 대한 진지한 논 의가 있었고, 2015년 4월에 있을 13차 회의에서도 하루 일 정으로 이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도 토론 준비위원회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완전 통합교육의 현주소를 한번 생각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회적으로 국제적인 동향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한국의 특수교육 전문가들 중에는 이미 오래 전에, '특수 교육'과 '완전 통합교육'에 관한 연구물을 낸 이들도 있습니 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는 special education과 inclusive education을 둘러싼 개념 상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특수교육과 완전 통합교육으로 이 원화하는 경향이 있으나, 더 엄밀하게는 그 중간에 integrated education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개념 상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inclusion을 '통합'으로 표 기하는데 integration도 '통합'으로 표현해야 하는 모순이 있습니다. 완전 통합, 포괄적 통합도 있지만 아직 개념상의 합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배제 (exclusion)의 개념에서 70년대 프랑스 사회 정책과 유럽의 복지국가 붕괴 과정을 거치면서 평등사상을 대체하며 나타난 것이 inclusion이기 때문에 이 개념은 다분 히 유럽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UN 장애인권리협약』의 채택 을 위한 협상이 유엔에서 진행될 당시 포괄적 통합의 개념을 가장 강하게 요구하고 주장했던 것은 유럽의 장애인 당사자 들이었고, 그들은 이미 이 개념에 친숙해 있었습니다. 유럽 이외 지역의 참가자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으며, 그 러한 여파가 국가 보고서를 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에 이에 상응하는 개념 및 어휘가 없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중국어에 서는 Inclusion을 融合으로, Integration을 整合으로 활용 합니다. 실제로 inclusive education은 특수학교가 아닌 일 반학교에 취학하여 정규학급 또는 일주일에 한번 일반학교 부설의 '특수학급'에 출석하는 것까지도 포함해서 통합교육 이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정상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수교육에 해당하는 장애학생 대 상 자원을 점진적으로 일반학교로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기 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형태를 모두 종래의 특 수학교와 구별되는 통합교육(inclusive education)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UN 장애인권리협약」 의 전문위원으로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12차 회의에 참 석하였고, 한국의 국가보고서도 심의를 받았습니다. 위 협 약의 24조는 장애인의 교육권에 관한 것인데, 한국 정부의 보고서가 심의될 때 민간단체에서도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민간단체가 제출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 연대보고서」 는 특수교육법 등 관련 법령을 인용하면서, ".....통합교육 (inclusive education-필자)을 이념으로 하는 「UN 장애인 권리협약」과 달리 현 우리나라의 장애인 교육 정책은 완전 통합교육이 아닌 특수교육을 강조하고 확대하는 추세로, 권 리협약의 기본 이념과 상충되는 일반교육내의 또 다른 분리 교육으로 정착화가 이루어지고....."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다음과 같은 문제 를 제기하였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통합교육(inclusive education) 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보고서나 NGO의 의견 을 들어보면 한국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통합교육(일반학 급과 특수학급을 병행해서 운영하는 것)은 장애인권리협약 에서 제시하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 르다는 느낌이 드는데,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제시하는 통합 교육의 이념과 방향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구 체적인 계획을 밝혀 달라. 또한 장애특성 및 개별특성에 따 른 교육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노 력은 무엇인가?"
장애인 교육에 관한 국제동향은 분명히 '완전 통합교육'입 니다. 그 근거는 「UN 장애인권리협약」에 나타난 장애인에 대한 기본 이해입니다. 즉, 과거와 같은 의료기반의 개념이 아니라, 인권기반의 장애 개념인데, 이것은 '동일하지 않아 도 될 권리'(the right to be different)와 '동일해야 될 권 리'(the right to be the same)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장애로 인한 특성을 부각시키지 않더라도 근본적인 시민적 권리와 법, 정치, 경제 및 사회권의 차원에서, 상호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맥락에서 포괄적, 완전 통합의 이념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Inclusive Education의 시작도 여기서부터 입니다. 그러나 막상 심의에 임하는 저를 포함한 UN 전문위원이나, 심의에 임하는 국가 대표단의 교육전문가라고 해서 모두 inclusive education의 기본 철학, 개념 및 구체적 방법에 관한 충분한 이해나 합의를 이룬 것이 아닙니다. 뉴질랜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독일 같은 소위 ?장애선진국'들도 특수교육에서 완전 통합교육으로 이전한 것도 아니고, 정책은 통합교육이지만 부모들의 강한 목소리를 전혀 무시하지도 못합니다. 이번 12차 회기 중 아주 이례적으로 「아동권리협약 위원회 CRC」와 「UN 장애인권리협약」 위원회가 공동으로 교육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참석 위원들의 상당한 공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발제한 내용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완전 통합교육을 뿌리내리게 한다는 것은 '가능성과 긴장(possibilities and tension)'의 가능성에서 접근해야 하며 아무리 완전 통합교육이 「UN 장애인권리협약」에 명기되어 있다고 해도 아무런 저항이 없이 수용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 통합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뉴질랜드 대표는 학부형들의 목소리 때문에 정책 시행에 고충이 있다는 고충을 토로한 바 있고, 완전 통합교육의 철학과 실제 방법에 대한 이론화 작업도 안 되어 있는 것이 현 상황 아닙니까? 완전 통합교육 실천의 성공적인 모범 사례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수용하도록 강요만 하는 것은 자칫하면 교조적이라는 지탄을 받을 여지도 있습니다. 완전 통합교육을 실천에 옮기기 전 우리는 특수교사와 일반교사와의 관계, 협력, 또는 갈등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하며 고민해보았습니까? 완전 통합교육에 필요한 ICT, 수화통역, 동시자막, 정당한 편의제공 지원을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하여 법 체제는 갖추어져 있습니까? 팀 티칭의 장점은 고려해 볼 수 없습니까? 일반교사 양성의 교육과정에 '장애' 단원을 포함시킬 수 없는 것입니까? 교사 훈련 과정에 「아동권리협약 위원회 CRC」와 「UN 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완전 통합교육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다고 해서 행여 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는 금물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말의 통합, 사회통합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Integration은 대체로 장애인을 치료를 받아야 할 '문제'의 대상, 의존적이며 수동적인 '시혜나 복지'의 대상으로서 특수교육, 의료 및 사회재활, 직업훈련을 거쳐 가능한 한 자립능력을 갖춘 '비장애인'과 유사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통합(integration)보다 완전통합(inclusion)을 지지합니다. 소수인 장애인이 주류인 비장애인의 지역사회에 동화(assimilation) 또는 적응(adjustment)하도록 지원하고 돕는 것이 특수교육의 주목적이 아니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장애로 인한 특성을 부각시켜 주류인 지역사회 속의 비장애인과의 다름의 관계, 소외, 부정의 주변화 등을 유지함으로써 장애와 관련된 부정적인 가치를 고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수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완전 통합교육의 대상을 장애아동만으로 하지 말고, 교육제도, 빈곤, 인종적 편견과 차별 등 우리 사회 속의 여러 교육장벽(barrier)을 제거하는 힘 있는 교육 전략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는 걸까요?
현장특수교육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