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부모의 날
1977. 4. 18
미국 세계선교본부
그러면 미국에서 지금까지 3년간 무엇을 했느냐? 예수님의 3년 노정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중심삼고 싸움을 전개했습니다. 그래서 이 뉴요커호텔도 산 것이요, 맨하탄 하우스나 티파니 빌딩도 산 것입니다.
우리는 전 국가를 걸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인력이나 금력을 모아 가지고 있는 정성을 다해 워싱턴 모뉴먼트 대회를 한 것입니다. 워싱턴 대회는 미국을 위한 세계사적인 봉헌식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색인종이 다 모여 ‘하나님이여 받아 주시옵소서!’ 하고 봉헌식을 올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위주한 세계 만민은 그날을 찬양하고 모두 속죄하는 의미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섭리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은 반대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논란이 비등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레버런 문이 그냥 조용히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미국교회 간부들도 대부분 지금은 안 되겠으니 조금 보류했다가 개최하자고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을 기필코 성취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투입했습니다. 내 있는 정성, 능력, 자금과 식구들을 전부 동원해 가지고 투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추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레버런 문이 실패하는 날에는 하나님이 계획하는 뜻은 좌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협조할 것을 내가 틀림없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해방을위해감옥살이까지각오
1976년 9월 18일은 사형수가 형장에 나가는 것보다 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나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즈음에는 저녁을 아침으로 생각한 때도 많았고 밤을 낮으로 생각한 적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릅니다. 그 대회는 레버런 문에게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었고, 만민을 위한 봉헌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때를 맞기를 학수고대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나가는 나는 수많은 종교를 대신한 제사장의 입장에서 하나님 심중을 걸어 가지고 이 땅에 끌어내릴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세계가 망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 사고없이 그 날을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다 레버런 문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회는 서양 역사나 미국 문화사에서 지워질 수 없고 부정될 수 없는 전통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시아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와서 3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책임을 완수하여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6년 10월 4일을 기해서 선생님이 천승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미국에 와서 세번째 맞는 생일, 3단계를 거쳐 가지고 해방권에 참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권이 맺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모의 날은 의의 있는 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歴史的父母の日
1977年4月18日
ニューヨーク マンハッタンセンター
1972年に先生が、アメリカに来てからこれまでの期間に、先生は世界的な規模で、万物、子女、父母を神に捧げる条件を立てることに成功しました。なぜなら、ニューヨークは全世界を象徴する所だからです。このニューヨークにおいて、土地や建物等の経済基盤と人材を復帰し、神に捧げたことは、世界的に、万物と子女を捧げた条件となるからです。また、全世界を象徴する供え物を捧げる条件とするために、ニューヨークにおいて投入されたお金と人材は、全世界の兄弟姉妹たちの血と汗と涙の努力によってまかなわれました。
そして、この供え物の最大なるものが、ワシントン大会の勝利だったのです。1976年9月18日は、復帰摂理において、正に全世界的な規模における「供え物の日」だったのです。ワシントン大会には、全世界の人類を象徴する、すべての人種が集まりました。そして、神がこの供え物を受け入れてくださるように心を合わせたのです。
このような意味でこの日は、復帰歴史上において、輝かしい勝利の日でした。全霊界が、勝利を宣言したのです。地上においても、神を愛するすべての人々が勝利を宣言し、祝うべきでありましたし、アメリカ自体が私たちと共に勝利を宣言し、祝うべきであったのです。しかし、アメリカはそれをなすことをしなかったのです。
どれほど真剣だったか
ワシントン大会を決行しようとする過程において、様々な障害がありました。多くの人々が、「ワシントンでそのような騒ぎをするのは、ためにならないから取りやめてはどうか」と進言してきました。統一教会の幹部の中にさえ、「財政的にも技術的にも、困難が多いから、今ワシントン大会を行うことは不可能だ」と言う者がいました。
しかし先生は、断固として言いました。「これは先生の一生一代の勝負である。いかなる犠牲を払っても、成し遂げなければならない。私たちのもてるすべての力をこの勝利のために捧げ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は神のために捧げる供え物なのだ」と。
先生は、ワシントン大会は、レバレンド・ムーンのためのものではなく、神自体にとって、のるかそるかの大勝負であり、それだけに、先生以上に、神御自身が必死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した。だから必ず神が働き、私たちはきっと成功するだろう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ました。それが、その時の先生の確信となっていたのです。
1976年9月18日、大会が始まる前の先生の気持ちは、正に死刑囚が死刑を執行される日のように真剣なものでした。その数日前から朝食と夕食とを取り違えるほどに時間の経過すらも分からないほど、必死だったのです。9月18日の大会は、正に復帰摂理歴史上における最大の善悪闘争の時であり、統一教会の浮沈をかけた一大決戦でありました。これに勝利するためには、何としても神と霊界の協力が必要です。しかし神と霊界が働くためには、何よりも人間が命懸けで頑張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誰よりもよく知っていましたから、先生はそれこそ真剣だったのです。
ワシントン大会に、多くの人々が集まり、雨も降らず、事故もなく、始めから終わりまで大会が見事に成功裏に行われたのは、正に神の力が働いたことによる以外の、何ものでもありません。人間の力だけでは不可能なことを、奇跡的に成し遂げたのですから、正に、神が働いた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のです。
ワシントン大会の時、一人の男の子が迷子になって行方が分から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ラジオやテレビでもそのことが報じられました。しかしその子は、三日目に無事に発見されたのです。それを聞いて先生は、このことは、神から離れてしまった人類が、必ず神のもとに復帰されることを見事に象徴している、と思いました。人類の復帰は必ず成る、と先生は確信したのです。
このワシントン大会の成功は、実に大きな成果です。アメリカの歴史においても、1976年9月18日は、レバレンド・ムーンが築いた最も意義ある日として記録されることでしょう。先生が太平洋を渡ってアメリカへやって来た時は、全く孤独でした。しかし先生は、神に対して深く祈り、必ず勝利すると誓いました。それから3年半後に、見事に、なすべき責任を果たしたのです。
ワシントン大会の勝利によって、その後1976年10月4日を「天の勝利の日」と宣言し、さらに1977年2月23日には「天地の勝利」を宣言することにより、霊界と地上界のすべてが許され、解放されることが宣言されました。こうして新しい時代が出発しました。新しい天の歴史が出発したのです。そういう理由により、きょうの第18回目の「父母の日」は、極めて意義深い日となりました。
Historic Parents Day
God’s Will and the World
Parents' Day from the Historical Point of View
April 18, 1977
Since I came to America in 1972 and during my 3 1/2 year campaign here, I was able to successfully complete all the necessary conditions—offering All Things, Children and Parents to God—on the worldwide scale. New York symbolizes the world. Thus, what we had accomplished for God in New York—restoring our financial foundation such as obtaining the lands and buildings—firmly established conditions of offering for all things and children to God in the world-wide level. In addition, in order to create such conditional offerings that symbolize the world, every bit of money and manpower used for this purpose in New York came from the blood, sweat and tears of all our members around the world.
The final and greatest offering was the victory of the Washington Monument rally. I want you to know that September 18, 1976 was “the day of offering” at the world-wide scale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Symbolizing the entire humanity, all the five races of the world gathered together at the Washington Monument. All of them gathered united in their hearts; thus making the conditional offering to which God could accept.
Because of these reasons, that day was glorious day of victory in the history of restoration. Because a pure offering was made that day, the salvation of the world is destined to be consummated. On that day the entire spirit world declared victory. All the people of God united to declare victory. America should have declared victory together with us, but America failed to do that.
Many well meaning people even advised me that for the sake of the church we should be a little quieter, "Why do you want to make all the commotion of a Washington rally?" Even some of our leaders came to me saying, "Father, this will be a blunder. We just did Yankee Stadium and we need more money, more men; it is really impossible to do it this year." But I remained determined. "This is the showdown of my lifetime. I will give my sweat, my heart, and my life to do it." I decided to give everything -- myself, my family, our members, whatever economic strength our movement could mobilize -- everything that I could possibly give to successfully make that offering to God in Washington.
This was not actually my showdown; it was God's showdown. I knew that God could not afford to fail in Washington, and I knew that God was the most anxious. Therefore, I was confident that God would come to our aid and I had only one conviction, "We shall succeed. We shall win."
I want you to know that Sept. 18, 1976, was like my day of execution. I deeply felt like a criminal who had been sentenced to death and was going out to be executed. That is how serious I felt that day, utterly dead serious. Until Sept. 18, I completely lost track of time. I mistook my breakfast for dinner and my dinner for breakfast. Time swam in my mind. Even on my way to the bathroom I would suddenly find myself in a completely different place because my mind had gone blank. You cannot imagine how serious I was during that campaign; only God knows. How can I express to you the seriousness of Sept. 18? The showdown of God was at hand. The showdown of the entire struggle of good and evil was at hand. The entire destiny of the Unification Church was before me that day. Unless all the conditions could be established for God's power and the entire spirit world to be connected to the earth on that day, I knew that I would not succeed. I was utterly serious, and I did it.
The victory of that day was a miracle. It was the work of God, not of Reverend Moon or the Unification Church that we succeeded in Washington. Extraordinary numbers of people came. The whole event was totally beautiful! Without rain or accident, all was beautiful from beginning to end. Do you think that could be the work of men? No, it was God's work. That victory established a new tradition. No matter what may happen to America in the future, nobody can remove that footprint which I so strongly imprinted in Washington on Sept. 18, 1976.
One child got lost that day, and announcements were made all over Washington. There was deep suspense as people wondered what happened to the child who had come to Reverend Moon's rally. But he was found within three days, happy and well. I felt that he symbolized the lost, wandering world which shall be restored. It was a beautiful symbol of resurrection.
When I came to America I was a lonely man. As I crossed the Pacific Ocean I prayed to God, pledging that the mission would be fulfilled. Three and a half years later, through the victory at Washington Monument, my prayer was answered; I was able to fulfill my pledge and covenant with God. Thereafter I could declare liberation. On Oct. 4, 1976, I declared the Day of the Victory of Heaven as one step of liberation. On True Parents' Birthday, Feb. 23, 1977, I declared that all heaven and earth, spirit world and physical world together, shall be forgiven. Forgiveness and liberation have now been declared. The new age has dawned; the new calendar has started. The Year One has been pronounced. This particular 18th Parents' Day is a very meaningful and extraordinary day for these reasons.
歷史父母節
從攝理歷史觀看真父母日
1977年4月18日
曼哈頓中心
我在1972年來到美國,我在美國三年半的爭戰期間都是在世界基準上,我對神的奉獻。我在世界基準上的奉獻在1976年完成了。
紐約象徵著世界心臟,在這個城市,我們正努力地紮實地建立起我們的經濟力量。我們在紐約所擁有的一切大樓都是這項經濟攝理的一部份:貝爾維迪、總部大樓、東太陽和世界宣教中心、蒂芙妮大樓及曼哈頓中心,以及我們在泰瑞城擁有的土地。在與世界的財富相比,我們所擁有的仍然很小,但是我們必須把這一切當成我們對神的世界性奉獻。我們的努力是世界性的努力,世性的能量必須被動員起來;為了這個理由,讓這一切成真的每一分錢,都是來自於全世界會員的血汗。
這項獻祭的最高點就是華盛頓紀念碑大會。那是我們把我們領受的一切都獻給神的祭壇。我要你們知道,1976年9月18日,是為了全世界獻祭的日子;以為了美國的世界性攝理為中心,那祭物是在美國的首都華盛頓特區獻上的。世界上的五大族聚集在一起,象徵性地宣佈:「神啊,我們以自己為祭壇;接您悅納我們。」那天的獻祭是世界歷史上最為慎重的、最神聖的一次。因為在那一天獻上了純潔的祭物,世界的拯救命定是會成功的。在那一天,全靈界也宣告了勝利。所有的神人也聚集在一起宣告勝利。
美國必須跟我們一起宣告勝利,但是美國卻沒有那麼做。許多有心人甚至建議我,為了教會,我們最好安靜一點,「你們為什麼要我把華盛頓大會變成一場動亂?」甚至我們有些指導者跑過來跟我說;「父親啊,這會出漏子的。我們才結束洋基體育館大會,我們需要更多的錢,更多的人;我們今天真的沒法再做了。」但是我的意志仍然堅定。「這是我一生的攤牌時劇。我會付出我的汗、我的心情、我的生命去做。」我決定要投入我的一切,我自己、我的家庭、我們會員、以及我們教會能夠動用的一切經濟力量-任何我能夠成功地在華盛頓把那個獻祭獻給神。
事實上,華盛頓大會不是我的攤牌時刻,那是神的攤牌時刻。我知道神是輸不起這場華盛頓大會的,我知道神比我更為緊張。因此,我有信心會協助我們,我只有一個信念,「我們會成功。我們會贏得勝利。」
我要你們知道,1976年9月18日,就是我要被執行死刑的那天。我深深地感覺到我是一個罪犯,我被判了死刑,就要被推出去執行死刑了。這正是我那天嚴肅的感覺,說白點,就像生死交關地慎重。直到9月18日那天,我都本都不記得時間。我錯把早餐當晚餐吃,把晚餐當成早餐吃。時間在我心中螢繞。甚至我去上廁所時,我都會突然發現自己置身在一個完全陌生的地方,因為我的腦子完全一片空白。你們是無法想像那場爭戰中我是多麼地慎重;只有神知道。
我要怎麼樣來形容9月18日的慎重呢?神的攤牌日就在眼前。善與惡的所有爭戰的攤牌日就在眼前。統一教的命運在那一天也在我眼前。除非所有的條件能夠為神樹立起來,除非靈界和地上界在那天能夠連結起來,否則我知道我不會成功。我真的是非常地慎重,我真的很慎重。
那天的勝利真的是個奇蹟。那是神動的工,不是文牧師或統一教,我們在華盛頓成功了。前來參加的人數空前。整個活動美妙極了!沒有下雨或意外,從頭到尾都美妙極了。你們認為人能夠做到嗎?做不到,那是神的工。那項勝利樹立了一新傳統。不論美國的未來發生什麼事,沒有人能夠把我在1976年9月18日紮紮實實留下的足跡給擦掉。
那天,有一個孩童走失了,並且在華盛頓地區做了宣佈。大家都為這孩子擔心,但也在想這位來參加文牧師大會的孩童會發生什麼事。所幸,三天之後找到了,快快樂樂平安無恙。我感覺他是象徵所失去且在遊蕩的世界必須要被復歸。那是一個美好的復歸象徵。
當我來美國時,我是個孤獨的男人。在我橫渡太平洋時,我向神禱告,矢志要完成我的使命。三年半之後,通過華盛頓紀念碑大會的勝利,我的禱告應驗了;我能夠完全地實現我的誓言和與神訂的約。因此,我庇夠宣告解放。在1976年10月4日,我宣佈了「天勝日」做為解放的一步。在「真父母聖誔日」,1977年2月23日,我宣佈了全天全地、靈界和地上界,都會一起獲得原諒。如今己經宣佈了原諒和解放。新時代已經揭幕;新曆已經開始。元件已經宣佈。
第18屆「真父母之日」因為以下的理由,因此是一個非常有意義和特別的日子。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