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를 다는 마음
신은현
어머니를 선친이 계신 호국원에 모시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맞이하는 현충일에 조기를 달고
나는 경남 사천 박재삼 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간다
선친은 육이오가 나던 1950년 4월에 징집되어
휴전되고 그 다음 해인 1954년 2월에 전역하셨단다
19세에 군에 가서 23세에 제대하기까지 전쟁터에 있었다
면내의 이웃 마을 또래이던 열한 분이
인사도 못한 채로 같은 날 소집되어 간 뒤
두 분만 살아오셨단다
숙부는 내가 초등 4학년 때 월남전에 참전하셨다
연필로 써 보낸 편지에 야자수 그늘 사진의 군사우편이었다
모내기 때는 5, 6학년 선배들이 모내기 지원도 왔었다
맹호부대로 귀국하셔서 지금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다
나는 선친과 숙부의 전쟁사를 들으면서 컸다
지금도 전쟁터의 장면이 생생하다
기관단총, 혜산진, 설악산, 박격포, 국군통합병원
그리고 퀴논, 1번 국도, 야자수 그늘, 다낭, 귀국선, 마을 잔치
나는 입대 후 동해안을 지키며 전역할 때까지
가끔은 선친과 숙부의 전쟁사를 바다 멀리 그려보았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도 하나 있다
큰 강변에 피란 갔다가 마을로 돌아왔는데
마을 앞길로 행군하는 군인들이 있어서 물어봤단다
우리 아들 어디 있는지 혹시 아느냐고
그 군인이 낮은 소리로 말했단다
"아주마니, 이런 옷 입은 사람에게 다시는 묻지 마오
앞으로는 주의하시라요"
문학기행을 하는 내내 떠오른 단상이지만,
예전과는 달리 현충일 국기를 단 집이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