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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至(팔지)
/ (盛唐) 李冶(이야)
朴今玉 讲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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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여시인의 시 한 수 배우면서 제반 이야기들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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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⑴至:제일, 八至:이는 시중의 여덟개 “至”자를 제목으로 했다.
⑵东西:동과 서 두개 방향을 가리킨다.
⑶疏:생소하다. 소원하다. 관계가 멀고 가깝지 않다.
번역문
제일 가깝고도 제일 먼 것이 동과 서이요.
제일 깊고 또한 제일 얕은 것이 맑은 시냇물이다
제일 높고 제일 밝은 것은 해와 달이요
제일 가깝고 제일 먼 것이 부부이다.
창작배경
이 시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충만한데 시인이 성인이 된 후의 작품이다. 성인이 된 후 시인은 여도사가 되었고 남자들과 교제가 좀 있었다. 후에 한 승려를 연모하게 되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작품감상
이 시는 철학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첫번째 글자인 “至”가 반복해서 여덟번 나타나서 제목이 “八至”인데 이는 문인들의 시 중에서도 아주 특이하다.
이 시는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까지 그리고 깊도 얕은 시내, 높고 밝은 해와 달, 제일 가깝고도 먼 부부를 통해 인생의 퇴폐적 상태를 하소연한다. 전 시는 24자로 생명이 흥성하다가 쇠잔하기까지의 꽃피고 꽃이 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인생의 숨겨진 사실을 밝힌다. 첫 구절 “至近至远东西”은 간명한 이치를 말한다. 동과 서는 상대적인 위치로 지구상에는 남북극을 제외하고 어느 곳에서도 다 이 두 방향이 존재한다. 두 물체는 남북방향이 아니면 필연코 동서의 구별이 존재한다. 그래서 ‘동서’는 가깝다면 간격이 ‘0’이 될 수도 있어 ‘至近’이 된다. 만약 동서 방향의 두 물체가 방향이 서로 반대라면 무궁하게 멀어 멀다면 ‘至远’이 된다. 그리하여 ‘至近至远’한 것이 동서에 통일되는데 이는 상식이나 깊은 변증법을 내포하고 있다.
“至深至浅清溪”에서 맑은 시냇물은 강이나 호수나 바다와 비교할 수 없지만 일목요연하게 물 밑을 볼수 있어 “浅”은 실정이고 시내가 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深”의 가상이 있어 시내가 천천히 흘러 맑은 연못에 가까운 시냇물이라면 하늘의 구름과 새 그림자를 비칠 수 있으며 별과 달도 담을 수 있어 사람으로 그 깊이를 추측하지 못하게 해 역시 엄청 깊다고도 할 수 있다. 앞의 내용이 사물의 원근상대적 이치를 말했다면 이 구절은 현상과 본질의 모순적 통일을 말하고 있어 변증법의 다른 범주에 속한다. 동시에 이 구절은 이치상 사람으로 더 쉽게 세태와 인정을 연상케 한다. 하여간 이 두 구절은 전 시의 귀납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구절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호응을 한다.
“至高至明日月”에서는 방관자로서 사물을 투철하게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서 있으면 자연스럽게 멀리 보는 것이다. 해와 달은 높아서 추측이 불가하고 멀어서 닿을 수 없는데 이 이치는 아주 분명하다. 어쩌면 이 구절은 제일 천박할 수 있다. “高”은 천체와 지구의 상대적 거리에 결정되는데 태양과 달은 다르다. “明”은 천체가 발광하는 강도를 의미하는데 달은 태양의 빛을 빌기에 양자는 다르다/. 하지만 해와 달이 같은 빛을 발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느낌이다. 해와 달을 함께 두는 것은 늘 있었던 관례이고 이것을 시에 담은 것은 흠 잡을 데가 없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이 구절은 전 시의 구조상에서도 기묘한 부분이 있다. 경구(警句)가 너무 많으면 독자들이 다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구사이에 평범한 구절을 끼워 넣으면 긴장과 느슨함이 적절하게 작용해 다시 조절기능에 집중할 수 있어 전 시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 시인의 이 구절은 다음 구절을 끌어내기 위함일 것이다.
앞의 세 구절은 세개 범주로 물리적 변증법에 치우쳐 있다. 단지 마지막 구절만이 인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전 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至亲至疏夫妻”의 부부는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이라 함께 있으면 한 사람 같고 헤어지면 낯선 사람 같다. 심지어 죽어서까지 왕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부부관계는 밀접한 공간이며 특히 연애를 할 때는 더 그러하다. 육체와 이익관계로 보면 부부는 세상에서 거리가 제일 가깝고 그래서 제일 친한 (至亲)가 부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복잡해서 아무리 정이 깊어 보이는 부부라도 겉으로만 친하고 사실상은 멀거나 동상이몽일 수도 있다. 부부사이도 프라이버시가 있고 충돌이 있고 결국은 반목해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정이 얼마나 깊으면 한도 얼마나 깊다’(爱有多深,恨有多深)고 하는 것이며 사랑하지 않는 부부의 내면적 거리는 제일 봉합하기 어려워 제일 소원(至疏)한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남편은 아내의 강령(纲领, guiding principle)이며 남녀불평등의 지위는 부부 불화의 관계를 조성하게 된다. 부모의 명으로 중매인의 말(父母之命,媒妁之言)에 의탁한 혼인은 사랑이 없는 결혼을 조장하며 여인의 운명은 대개가 비통하고 괴롭다. 이러한 것은 모두 엄청 소원한(至疏)한 사회적 근원이 된다. 만약 시의 앞 두 구절이 철학적 의미를 가진다면 마지막 구절은 냉철하게 인간세상의 세태를 파헤치어 보여준다.
이 시는 일반적인 이어지다가 합쳐지는(起承转合) 시들과 다르다. 이 시는 언어가 담백하고 당나라 시승(诗僧王梵志)의 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이기로 일반 대화와 같다. 하지만 평범한 중에 기묘함이 깃들어 있다. 앞의 세 구절은 막간극(过场)으로 그 존재의 가치는 마지막 구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제일 친하면서도 제일 소원한 부부(至亲至疏夫妻)라는 이 말은 인간세상의 많은 고초를 겪은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감회로서 일반적인 사랑시보다도 더 깊이가 있다. 사랑시의 명언(情爱中的至理名言)이라 할 수 있다. 부부사이는 생사를 맹세할 수 있고 같은 하늘을 지고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의 사랑과 증오는 미묘하고 감회가 깊으며 일반적인 젊은 여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도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함께 많은 일을 겪어보아야 돌아오는 돛을 논할 수 있다. 어쩌면 시인이 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았기에 이렇게 방종할 수 있다. 그래서 천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사람들의 공명을 일으킨다.
* 육언절구(六言绝句)
전 편이 네 구절이고 매 구절마다 여섯 자이다. 근체시 범주에 속한다. 리듬감이 강하며 매 구절마다 두번의 장단에 맞춘다. 오언절구나 칠언절구와 비교하면 육언절구는 비교적 보기 드물며 당시로 보면 사언절구, 육언절구가 있으며 당송 내지 이후의 여러 시대에 육언절구는 명작이 적지 않다.
* 이야(李冶)
(730~784, 54세) 당나라 시단(诗坛)에서 유명한 여성시인이다. 동년에 이미 시에 재능을 보였고 후에 도사(女道士)가 되었다. 만년에 궁에 부름을 받았는데 784년에 반란군의 장군인 朱泚에게 시를 써서 올린 죄로 당덕종(唐德宗)이 몽둥이로 때려 사살하도록 지시했다. 薛涛, 鱼玄机, 刘采春과 함께 ‘당나라 4대 여성시인’(唐代四大女诗)으로 불린다. 오언에 능했고 증정이나 마음을 토로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여인중 시에서는 호걸(女中诗豪)이라 불린다. 18편의 시가 남아 있다.
당나라에 시에서 ‘3대천왕’(李白, 杜甫, 白居易)이 있다면 또한 ‘3대천후’(李冶, 薛涛, 鱼玄机)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당나라는 전례 없는 혼란의 조대였다고 할 수 있다. 수도 장안성이 대여섯번 함락이 되었는데 매번 다시 수복할 수 있었다. 단지 황제가 수도에 돌아온 후 대수습을 했다. 783년에 泾原镇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장안을 함락했고 朱泚를 황제로 추대했다. 이듬해 7월 장안성에 돌아온 당덕종은 그때 장안성에서 제일 유명했던 여성시인 이야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황제가 장안성을 떠날 때 그녀는 함께 떠나지 못했다. 어쩌면 이미 황제의 총애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朱泚가 황제로 있을 동안 그녀의 재능을 보고 새 조정을 칭송하는 시를 쓰게 했다. 황제가 피난 갈 때 장안성에 잊어버리고 두고 간 반백이 넘는 여성시인으로서 그녀는 당연히 저항할 능력이 없었다.
일상적인 관습에 따라 천하의 민심이 새 황제에게 있으며 상서로운 조짐이 빈번히 나타났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당덕종의 귀에 흘러 들어갔고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된다. 황제가 严巨川이 쓴 시에서는 ‘예기를 들고 눈물만 떨구고 마음은 명군을 그리워하나 말하지 못한다’(手持礼器空垂泪,心忆明君不敢言)는 내용으로 같은 처지에서 누구는 옛 임금을 그리워하는데 그대는 어찌했는가 하며 따져 물었다. 변론의 기회도 주지 않고 명을 내려 죽게 한다. 정치적 변화중에서 유약한 여성시인은 결국 제왕이 무능함을 증명하는 희생품이 되었다.
대여섯살 때 지은 시 한편(经时未架却,心绪乱纵横)때문에 불길한 예언처럼 느껴 젊었을 때 출가해 도사가 되었다. 어떤 이는 그녀가 성인이 된 후 아버지가 여인의 덕행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도관(道观)에 보냈다 하며 어떤 이는 도관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덕행에 문제가 생겨 남편의 버림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도관에 들어갔다 한다.
당나라 때 많은 여성들이 도관에 들어갔는데 이는 신앙때문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 곤경에 빠졌을 때 인생의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경제적인 고려도 있었는데 당나라에서는 도사에게는 논 30마지기를 준다 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세금을 면제받고 도관에 몸을 의탁하면 기본적 생존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신분이 높지 않고 재능이 있으나 운명이 불행한 이야가 도관에 들어간 원인중의 하나이다.
《唐才子传》 에서 이야는 용모가 아름답고 악기를 잘 다루었다 한다. 재능과 용모 모두 훌륭한 여도사로서 주변에 문인명인들이 많이 모였다. 그녀는 한때 陆羽, 朱放, 崔涣, 刘长卿 및 시승(诗僧) 皎然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들사이의 대작으로 그들 중 최소한 한사람과 친구이상의 관계를 가졌다고 추측하나 사실적 증거는 없다.
본 편의 시는 부부관계를 논하는데 제일 가깝고도 먼 인간세상의 결발 부부(초혼으로 결혼해 머리를 얹은 사이, 结发夫妻)의 감정과 변화에 대해 솔찍하게 털어놓았다.
* 妇女节 International Women's Day
별칭: “国际劳动妇女节”, “三八节”, “三八妇女节”. 여인의 날은 미국에서 기원했다. 1857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방직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가 저렴한 보수와 열악한 작업환경때문에 시위를 벌였다. 물론 경찰을 동원해 제압했지만 매년마다 그들은 거리에 나서 항의를 지속했다. 그들은 ‘우리도 빵과 장미를 원한다’는 플랭카드를 내걸어 물질조건의 개선뿐만 아니라 권리가 있고 존엄이 있는 삶을 원함을 밝혔다.
1957년 유엔은 매년 3월 8일을 국제 여성의 날로 정했다.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쿠바 등 20여개 나라는 법정휴일로 정했다. 현재 미국은 여인의 날은 없지만 ‘어버이날’’발렌타인데이’등 기념일이 있어 부족함이 전혀 없다.
* 교훈
여시인의 삶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는 바는 역시 ‘千里马常有,而伯乐不常有’ 입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있지만 그 재능을 보아내고 잘 가이드해 주는 사람은 드물지요. 만약 아버지가 가이드를 잘 해주었다면 이런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섯 살 되는 아이가 쓴 작품을 통해 그 일생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려 심원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단연코 아버지의 鼠目寸光 일 것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발견했다 할 지라도 타일러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게 맞겠지요. 어쩌면 그녀는 모진 인생에 맞서 오히려 도관에서 수많은 문인학사들을 만나면서 자유분방한 문학인의 삶을 살고 그러다 보니 세속에서 허락되지 않은 승려와의 사랑도 나누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도관과 절을 함께 지어 도교와 불교의 융합을 시켰다고도 합니다. 그녀의 인생은 모질게 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말없는 보복은 아니였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 한가지 있다면 ‘藏拙’의 문제입니다. 사전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자기의 견해나 기능을 감추어 남에게 보이지 않다.'라고 설명합니다. 재능이 있으나 바보인 척 재능을 감추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며 세상의 악행을 피해가는 겁니다. 너무 뛰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시기질투해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며 모두들 함께 힘을 모아 한사람을 공격하기에 많은 경우 大智若愚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분이나 민감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정녕 이런 방식을 경멸해서 이렇듯 분방한 삶을 살았을까요? 왜 이런 방식을 택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재능이 만방에 알려진 상태에서 힘없는 여자가 세상이 돌아가는 시국중에서 반항할 수 없다면 권력가에 이용당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면 결국 권력쟁탈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재능이 있어도 성공하기 쉽지 않고 성공했다 해도 권력의 희생양이 안 되려면 은둔생활밖에 없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어떤 교훈을 얻어 가나요?
생각해 보기
1. 여도사와 승려의 금지된 사랑이 당나라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 졌을까?
2. 어려서부터 도관에 보내지지 않고 집에서 무탈하게 자랐다면 그녀의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3.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났다 해도 훌륭한 부모를 못 만나고 불량한 가정배경이나 사회적 배경을 지녔다면 결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걸까?
* 나가기
여인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재능을 가졌으나 그것을 나쁘게 보고 판단해 조치한 아버지때문에 도관에 다서 외로운 등과 목탁소리에 평생을 기탁해야 하는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가엷은 운명의 여자가 오히려 도관을 오가는 문인학사들과 자유롭게 만나면서 어쩌면 일반 여성들이 그 시대에서 살지 못하는 자유를 만끽했고 그 빛을 발했으나 결국은 또 역시 그 재능때문에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참으로 씁쓸함을 남기는, 오랜 여운이 감도는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엄청난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이백도 시와 친구에 대한 깊은 정과 술에 대한 깊은 애정 말고는 과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나 다시 돼새겨보게 됩니다. 재능이 인생의 성공이나 행복과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시를 보면서 나름대로 감개무량할 수도 있고 엄청난 재능을 지니지 않아도 나름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되어 위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봄이라 봄에 어울리는 꽃과 눈물과 그리움에 대한 작품을 소개하고저 합니다. 다음 주는 청나라 시인 贺双卿이 지은 《望江南·春不见》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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