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伽倻) 기행.
김해 봉황동 유적.
이사준비 때문에 무척 바쁘다. 새로 이사할 곳에 집을 알아보느라 잠시 부모님께서는 창원으로 가셨고 며칠 간 동생과 나는 김해 장유에 머무르기로 했다. 16년 동안 지내온 경주를 떠난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장유 사촌 집에서 지내다가 평소 멀어서 가보지 못한 김해답사를 기획한다. 장유에서 버스를 타고 봉황역에 내려 다시 경전철로 갈아탄다. 김해는 부산권이라 그런지 도시 전체를 가르는 작은 경전철이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엔 경관을 해칠까 걱정됐는데 오히려 경전철에서 보는 김해 경치가 또 다르게 다가온다. 경주는 대구에서 이렇게 경전철 안 오나? 올라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로왕릉역에 도착한다. 조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오른쪽에 봉황동 유적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수로왕릉 가기 전 먼저 들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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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강을 따라 이어지는 김해 경전철. 김해 답사 때 무척 편리하다.)
유적 앞엔 기마인물형 토기를 본따 만든 듯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은 잔디밭이 나온다. 거기서 어떤 할머니께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다시 길을 따라 걷자 늪지대 같은 물가 뒤로 고상가옥같은 집들이 몇 채 보이기 시작한다. 봉황동 유적은 1920년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상 최초로 발굴된 회현패총이 있는 유적지로 고대 삼한사와 가야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적지다. 바로 여기서 흔히 '가야토기'라 불리는 가야식 토기가 처음으로 발굴되었고 비슷한 모습이 신라 유역에서도 발견되면서 가야의 토기기술이 신라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알렸다. 전체적인 모습은 봉황대라 불리는 낮은 구릉을 중심으로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생각보다 꽤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다리를 건너 봉황동 유적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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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 뒤로 보이는 봉황동 유적. 앞에 그 시대 배가 보인다.)
구릉 앞 유적에는 당시 만들어진 배를 복원한 것과 가야 고상가옥 세 채가 복원되어 있다. 작은 창고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옆 벤치에는 아까 뵌 할머니께서 앉아 계신다. 수로왕릉을 보려면 저쪽으로 가라 하신다. 말씀을 듣고 수로왕릉으로 가려 하다가 구릉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위로 올라간다. 구릉으로 조금 올라가자 높은 망루가 나타난다. 올라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막혀있어 그러진 못했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던 곳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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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 유적에 자리 잡은 복원한 고상가옥. 창고 같기도 하고 동남아 수상가옥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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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가옥 뒤로 보이는 김해. 경전철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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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 구릉에 있는 망루.)
그냥 구릉인 줄 알았더니 등산로까지 마련되어 있어 이왕 온 거 끝까지 가 보기로 한다. 봉황대라 불리는 이 구릉은 산이라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경주에서도 야트막한 산인 낭산보다 더 낮은 것 같다. 덕분에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정상과 황새바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일단 황세바위로 향한다. 작은 구릉 끝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한 황세바위는 가야 때 전설이 전해온다. 가야 9대 왕인 겸지왕(숙왕)시절, 여기에 살던 친구사이인 황정승과 출정승이 있었고 만약 자식을 낳게 되면 둘을 결혼시키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황정승 가문이 몰락하게 되고 출정승은 딸, 여의를 낳았는데도 불구하고 황정승에게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황정승의 아들인 황세와 여의는 의형제를 맺고 지내왔는데 하루는 황세가 오줌 멀리 누기 시합을 하자고 제의했고 여의는 삼대 줄기를 이용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때 오줌 멀리 누기 시합을 한 곳이 바로 여기, 황세바위라고 한다. 시간이 흘러 점점 여성스러워지는 여의를 의심한 황세가 거북 내에 멱을 감자고 했고 결국, 거기서 자신이 여자임을 밝힌다. 그리고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이후 황세는 장군이 되어 신라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게 되고 왕의 명에 따라 유민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홀로 남은 여의낭자는 황세장군을 그리워하다 결국, 죽었고 황세장군역시 여의낭자를 그리워하며 병을 얻어 그 해 죽었다고 한다. 유민공주는 유민산(임호산)으로 들어가 여승이 되었다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지만, 어찌 보면 가문 중시나 신분 같은 것에 밀려난 비극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지금은 그저 바위만 남아 김해 일대를 한눈에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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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황세바위. 중간에 텅 빈 공간은 무언가 새겼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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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바위에서 본 김해 일대. 중간 산을 보면 어렴풋이 복원된 분산성이 보인다.)
발걸음을 돌려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세히 보니 길가에 작은 비석들이 여러 개 보인다. 비석은 불에 그슬린 건지 아니면 먹물이 묻은 건지 검게 변해있는데 각각 이름이 있으며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그 이름에 관한 내력이 쓰여있다. 신기하게 느껴진다. 정사은 그냥 정상일 뿐, 딱히 이렇다 할 건 없다. 경치는 황세바위가 더 뛰어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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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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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만난 작은 비석. '섬섬대(纖纖(?)臺)'라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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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비석. 보시는 바와 같이 '사색대(思索臺)'라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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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 정상.)
마침 반대쪽에도 길이 있기에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도 검은 비석이 보인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오자 작은 사당이 나온다. 사당 주변에도 큰 비석부터 작은 비석까지 여러 개가 보인다. 사당은 다름 아닌 황세장군과의 사랑을 나눈 여의낭자를 기리기 위하 사당이다. 그럼 아마 계속 보아온 비석도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와 관련된 것인 듯하다. 전에 간 밀양의 아랑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부디 하늘에서는 두 분이 원하는 사랑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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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대(讀書臺)'. 줄랑자가 적혀 있는 걸 보아 줄랑자란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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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낭자 의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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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현(狐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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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각. 여의낭자를 기리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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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각을 건립한 사람들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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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이목'. 남쪽은 황세나무란 말이 있어서 사진상 바위가 아닌 뒤 나무를 말하는 것 같다.)
봉황대를 내려오면 다시 아까 봤던 고상가옥이 이어진다. 고상가옥을 뒤로하고 내려가면 회현리 패총이 나온다. 우리나라 고고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유적이다. 작은 토성같이 느껴지는 것이 이어지고 끝에는 패총의 단면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나온다. 전시관에는 조개껍데기가 수 m 정도 빽빽이 채우고 있는 패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료가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다. 구릉 안 올라가고 바로 수로왕릉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런 귀중한 유적을 놓쳤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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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 뒤쪽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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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같은 고상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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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고상가옥. 안에 한 번 들어가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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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리 패총. 패총보다는 어째 성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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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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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내부. 조개껍데기가 빽빽하게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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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조개껍데기 더미.)
이제 수로왕릉으로 향하려 하는데 길 왼쪽에 옛 가야 왕궁터라고 표시된 비석이 보인다. 패총과 봉황동 유적도 그렇고 여기가 궁터인 걸 보아 여기가 경주로 치면 월성이 있는 중심지였던 것 같다. 궁터 맞은편에는 작은 화단이 이어지는데 여기는 가야 때 토성이 발굴된 곳이라고 한다. 규모는 풍납토성과 월성에 버금간다고 한다. 답사하면 할수록 가야는 신라, 백제에 꿀리지 않는 강성한 나라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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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시조왕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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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토성 발굴지점. 지금은 작은 화단이 되었다.)
수로왕릉 가기 전 맞은편에 있는 김해 한옥 체험관에 잠시 들어간다. 오래된 가옥은 아닌 것 같다. 안을 자세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누가 고택스테이 같은 걸 하고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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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한옥체험관, 가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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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원 내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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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원 내부2. 안에 누가 고택스테이 같은 걸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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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원 내부3.)
사실 수로왕릉을 가려 했지 봉황동 유적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가면 가고 안 가면 안 가지 뭐,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만약 놓쳤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조용히 산책하며 즐기기 좋은 아름다운 곳이다.
봉황동 유적으로 한껏 들뜬 기분을 가지고 수로왕릉으로 향한다.
-여정- (2014. 2. 20. 木)
봉황역→ (경전철)→ 수로왕릉역→ 봉황동 유적 고상가옥, 배→ 망루→ 황세바위→ 섬섬대→ 사색대→ 정상→ 독서대→ 여의낭자 의령단→ 호현→ 여의각→ 여이목→ 봉황동 유적 고상가옥→ 회현동 패총, 패총 전시관→ 가락국 시조왕궁터→ 가락국 토성 터→ 김해 한옥체험관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고상가옥이 있네요? 확실한 고증이 있나요?
고구려 경당이던가?
그리고 일본 정창원 고상 건물도.....
근처에 물가가 있는 걸로 보아 틀리진 않는 것 같습니다. 고증 면에선 저도 뭐라 말씀 드리긴 어렵네요. 그리고 저도 계속 보면서 정창원같은 삼국시대 창고건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참 부지런한 민욱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