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龟虽寿(구수수)
/ (东汉) 曹操(조조)
朴今玉讲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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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게 됩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까도 생각해 봅니다. 평생을 효웅으로 살아온 조조가
만년에 어떻게 생각하고 노래하는 지 보시면서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명
1) 이 시는 조조가 쓴 연시(组诗) 《步出夏门行》중의 네번째 편이며 시의 제목은 후세사람들이 시가의 시작에서 세 글자를 취해 만든 것이다.
2) “神龟” 두 구절:신령한 거부기는 비록 장수하지만 그래도 죽을 때가 있다.
신귀(神龟):전설중의 신비스러운 힘을 지닌 거부기. 몇천년을 산다 한다.
수(寿):장수. 경(竟):종결, 여기서는 사망을 의미한다.
3) 등사(螣téng蛇):구름과 안개를 탈 수 있는 뱀으로 신령한 짐승(仙兽)이다. 또는 별자리(星宿)중의 하나. 출처: 《山海经·中山经》
4) 기(骥, jì):좋은 말(良马),천리마(千里马)
5) 력(枥, lì):말구유
6) 열사(烈士):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
7) 모년(暮年):。늘그막, 만년(晚年)
8) 이(已):멈추다. 그만두다. 그치다.
9) 영축(盈缩):사람의 수명의 길고 짧음을 의미.
영(盈): 만(满),즉 차다. 가득하다. 확장적 의미는 길다.
축(缩): 휴(亏),이지러지다. 확장적 의미는 짧다.
10) 단(但):겨우, 단지.
11) 양이(养怡):몸과 마음을 보살피다.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다.
이(怡): 유쾌하다. 화목하고 즐겁다
12) 행심(幸甚) 두 구절:이 두 구절은 추가적인 문장으로 본문(正文)과 관계가 없고
단지 시인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악부시의 일종 형식적인 결말이다.
번역문
신령한 거부기가 비록 대단히 장수하기는 하지만
그 생명은 언젠가 끝나는 하루가 있다.
등사(腾蛇)는 비록 구름이나 안개를 타고 날 수 있지만
결국은 사망해 흙먼지로 변한다.
연로한 천리마는 비록 말구유옆에 엎드려 있지만
웅장한 이상과 포부는 여전히 천리를 질주한다.
원대한 포부를 품은 사람은 만년이 되었다 할지라도
분발하고 진취하는 마음은 영원히 멈출 줄 모른다.
사람의 수명이 길고 짧음은 하늘만이 결정하는 바가 아니다.
몸과 마음을 잘 보살피면 꼭 장수할 수 있다.
너무 행운이 따라서 노래로 스스로의 사상감정을 나타낸다.
창작배경
205년에 조조는 원소(袁绍(가 허베이(河北)에 있는 통치기반을 파괴했으며 원소는 피를 토하다가 죽었다. 그의 아들 袁谭과 袁尚은 乌桓에 도망가서 그 곳의 귀족들과 결탁해 여러번 변경지대를 침입해 해를 끼쳤다. 조조는 피동적인 국면을 타파하기 위해 책사(谋士) 郭嘉의 의견을 받아들여 207년 여름에 북방정벌에 나섰다. 5월부터 7월까지는 결과가 없어 후에 다시 田畴의 건의를 받아들여 길을 갑자기 바꿔 徐无山을 거쳐 庐龙塞를 나갔고 바로 柳城에 가서 전쟁을 치러 승리를 했다. 9월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면서 碣石등 지역을 지났고 조조는 《步出夏门行》이라는 시(组诗)를 썼다. 이 시는 이 연시(组诗)의 네번째 편이며 쓴 시기는 《观沧海》보다 조금 늦을 듯 하다. 대략 207년말 혹은 208년초이며 그가 乌桓반란을 평정하고 원소의 잔여세력을 소멸하고 나서 남하해 荆, 吴를 정벌하기 전이다. 이때에 조조는 이미 53세가 되었고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무한한 감개에 빠져 이 시를 쓰게 되었다.
작품감상
이 시는 시인의 인생에 대한 진실한 체험이 충만한 철리시(哲理诗)이다. 그래서 매우 흥미롭게 썼고 진지하고 열렬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철리(哲理)와 시정(诗情)은 형상화된 기법으로 표현해 냈고 일리를 서술하고 지향을 명확히 하고 서정을 할 때에도 구체적인 예술적 형상과 완벽한 한몸을 이루었다.
시에서 “神龟虽寿,犹有竟时。腾蛇乘雾,终为土灰。” 시인은 소박한 유물론과 변증법의 관점에서 신령한 거부기, 등사(腾蛇) 등 신물(神物)의 장생불로를 부인했고 생사존망은 위반할 수 없는 자연규율임을 설명했다. “ 犹有 ”와 “ 终为 ” 두 단어는 침착하게 사용했고 “ 老骥 ” 아래의 네 구절은 말투가 격앙되게 변하고 필치에 바람과 우뢰를 동반해 그 시대에 패기를 드러낸(时露霸气) ” 세상에 으뜸가는 영웅호걸의 형상이 지면에 역력하게(跃然纸上) 그려진다.
“老骥伏枥,志在千里,烈士暮年,壮心不已。” 에서는 필치가 힘이 넘치고 운율이 깊고웅장하며 스스로 노력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 호매로운 기개가 내포되어 있고 조조가 나이는 들었어도 여전히 기력이 왕성하며(老当益壮) 단호하게 밀고 나가는(锐意进取)의 정신적 면모(面貌)를 표현한다. “壮心不已”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 이상적 추구와 적극적인 진취정신이 있어야 하며 영원히 낙관적이고 분발하며 스스로 노력하여 게을리 하지 않으며 사상상의 청춘을 유지하며 조조는 본인이 스스로 터득한 경험으로 인간의 정신적 요소가 건강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파헤쳤다.
“盈缩之期,不但在天;养怡之福,可得永年。”여기서는 깊이있고 완곡한 풍치를 나타내며 사람에게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전 편의 시는 자유분방하며 일리는 세밀하며 철학적인 지혜의 빛을 발한다. 또한 분발하고 낙관적인 톤이 울려퍼지게 한다. 예술적 풍미는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으며 격조가 높고 원대하며 격앙되었으며 시인이 스스로 노력하고 게을리 하지 않는 진취적 정신과 삶을 열애하는 낙관적 정신을 나타냈다.
인간의 수명의 길고 짧음은 하늘에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해야만 장수할 수 있다. 조조가 말한 양이지복(养怡之福)은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으며 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적 상태가 제일 중요하며 노년이라 해서 소침해서는 안됨을 강조한다. 여기서 시인이 천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볼 수 있으며 성공 여부는 사람 하기 나름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낙관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시인의 노쇠해짐에 달가워하지 않고 천명을 믿지 않으며 분투를 끊임없이 하며 위대한 이상에 대한 추구를 영원히 멈추지 않는 호매로운 정서를 토로한다.
《龟虽寿》 의 더 귀한 가치는 이는 진정한 시가로 새로운 시가의 시대를 개척했다는 것에 있다. 한무제가 백가를 파출하고 유술만 독존(罢黜百家,独尊儒术)하면서 한나라 시대의 사람들의 사상을 삼사백년동안 속박함으로 한나라 문인들은 시를 쓸 줄 모르고 제왕의 공덕이나 칭송하는 대부(大赋)나 끝도 없이 유가경서에 주석을 다는 일에만 집중해 진정으로 감정이 있고 개성이 넘치는 문학은 발전을 하지 못했다.
후한말년에 천하가 붕괴될 때까지 정치사상문화는 중대한 변화를 거쳐 한 시대의 영웅으로 시를 좋아했던 조조는 경전의 중심에서 벗어나 상도(常道)를 어기며(离经叛道) 문단에 자유로운 공기를 가져왔다. 그는 밖으로는 무공을 정하고 내부로는 문학을 흥하게(外定武功,内兴文学) 하여 주변에 건안칠자(建安七子)등 엄청난 문인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모두 천하의 재능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로 오랜 전란을 겪은 시대에 살면서 사상감정상 자주 격앙되어 했다. 특히 조조는 말위에서도 문장을 썼고 그의 시는 비장하고 강개하였으며 고금을 눈부시게 하고 전에도 후에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이러한 격정이 충만한 시가가 나타낸 것은 시원하고 통쾌하며 굳세고 힘이 넘치는 격조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를 건안풍골(建安风骨)이라 불렀고 조조는 제일 돌출한 대표자였다. 천백년이래 조조의 시는 이러한 스타일과 내재된 적극성과 진취정신으로 천하의 영웅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귀한 특징때문에 건안문학이 중국문학사에서 눈부신 광채를 띠게 하였다.
조조와 같은 호매로운 영웅호걸은 문장을 조각하고 구절마다 퇴고하기를 하찮게 여겼다. 그 어떤 문학이든-시가를 포함해서-문장의 필치는 내용보다 결국은 2위를 차지한다. 조조의 문학적 지위는 과거에 자주 그 정치적 업적에 덮어졌으며 사람들이 중요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는 중국문학발전사에서 아주 탁원한 기여를 한 인물로 특히 건안문학을 개척한 공로가 있으며 대서특필해야 응당한 것이다.
* 오환乌桓 [wū huán]
乌丸이라고도 함. 중국 고대 북방의 유목민족중의 한 갈래이다. 한대(漢代), 동호(東胡)족의 하나. 원래 선비족과 함께 동호 부락중의 하나임. 기원전 3세기 말 흉노(匈奴)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나, 잔족(殘族)이 오환산(烏桓山)에 모여 살아서 이 이름이 붙음. 207년에 오환의 제일 마지막 대선우 蹋顿은 백랑산전투(白狼山之战)에서 张辽에게 참살을 당했다. 오환은 이때부터 흩어지기 시작해 한, 선비, 철륵(铁勒, 중국의 옛 종족 이름. 한대(漢代)에는 ‘丁灵’이라 칭했으며 후세에는 ‘狄历’ ‘敕勒(1)’라고도 칭함. ‘维吾尔族’(위구르족) 따위가 이에 속함) 등에 동화되었다.
* 철리시(哲理诗)
이 단어는 그리스에서 기원했다. 그 전에는 说理诗라 불렀다. 시와 철학의 공통점은 만물을 투시해 핵심을 찌르는 것을 천직으로 한다. 그래서 철리시는 스스로의 특점을 서로 다른 의논을 통해 사물의 본질적 변화규칙을 보여준다. 인생의 지혜를 귀납하고 이치나 재미를 전달한다. 내용은 깊이있고 오묘하다.
대표작: 白居易의 《长恨歌》; 苏轼의 《琴诗》;陈毅의 《冬夜杂咏。青松》
* 건안칠자(建安七子)
건안 시기(196—220년, 24년)사이 일곱 명의 문학가의 합칭. 그들은 孔融, 陈琳, 王粲, 徐干, 阮瑀, 应玚, 刘桢이다. 이 일곱 명은 건안시기 조씨부자(조조, 조비, 조식) 을 제외한 문학성과를 대표하였고 일곱 명인 이유에 대해서는 후세의 보편적인 승인을 얻었다.
孔融을 제외한 여섯 명은 비록 각 자의 경력이 다르나 모두 한나라 말기 난세의 고초를 겪었고 후에 조조에게 몸을 의탁해 지위상 큰 변화가 일어났고 안정적이며 부귀한 삶을 누리게 되어 조조를 지기로 여기고 그를 의지해 큰 일을 이루려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씨부자와 아주 많은 공동점을 가진다. 그들은 시, 부, 산문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 건안칠자와 삼조(조씨 삼부자)는 한나라 말기 삼국시기 문학성과의 대표로 여겨진다.
孔融(153-208, 55세)은 노나라 사람이며 공자의 20세손이다. 196년에 원담(袁谭)이 베이하이(北海)를 침공해 孔融과 수개월 격전을 벌렸고 결국은 승리했다. 언어구사가 격렬했으며 조조를 격노케 해 살해당했다. 그는 시를 쓰고 문장을 잘 썼으며 산문은 날카롭고 간결했다.
* 孔融让梨 Kong-Rong gives up the biggest pear
중국의 천백년이래 흘러내려온 도덕교육의 이야기. 중국 고대 후한말기 문학가 공융의 진실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범사에 공공질서와 양호한 풍속을 지켜야 함을 알려준다. 이러한 것은 어렸을 때 응당 알아야 하는 도덕상식이다. 삼자경( 《三字经》) 중에서 공융이 네살 때에 배를 양보했다(融四岁,能让梨)는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구체적 이야기는 큰 배와 작은 배 두개가 있는데 두 아들에게 어느 것을 선택해 먹겠냐 고 물었을 때 공융이 본인은 더 어리니까 작은 걸 먹는 게 맞다고 말하고 형은 크니까 더 큰 것을 먹는 게 이치상 맞다고 했다. 형에게 더 큰 배를 양보하는 형제의 우애를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 覆巢之下无完卵
조조와 공융의 관계로 말미암아 또 아주 의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조조가 공융의 온 가족을 잡아 들였을 때 공융은 책임자에게 두 어린 아이를 살려줄 것을 호소했으나 그 중의 한 사람이 한 말이 엄청난 명언이 되었다. 그 내용은 ‘새둥지가 뒤집혀 졌는데 어찌 온전한 알이 남아 있겠느냐(覆巢之下,焉有完卵)’이다. 허망한, 의미 없는 희망을 품지도 말라는 의미이다.
* 草船借箭[cǎo chuán jiè jiàn] To borrow arrows with thatched boats
중국 고전명작 《三国演义》중 적벽전쟁의 이야기. 주유(周瑜)가 고의적으로 화살을 빌리겠다고 제의했고(10일내에 10만개 화살) 지혜로운 제갈량(诸葛亮)은 계략인것을 간파하고 3일이면 된다 하고나서 노숙(鲁肃)의 도움이 있었고 재차 조조의 의심이 많은 성격을 이용해 볏짚으로 뒤덮혀진 배 몇 척으로 적을 유인해 결국 화살을 빌리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조조는 제갈량에게 이용당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제갈량을 높혀주기 위해 밟히는 인물이다.
* 조조(曹操)
(155—220, 65세),지금의 안휘성(今安徽亳县) 사람이며 건안시대(建安时代) 걸출한정치가, 군사가, 문학가이다. 건안 원년(建安元年)(196년)에 헌제(献帝)를 도성 허(都许)(지금의 허난 쉬창 동쪽, 今河南许昌东)에 영접해 천자를 위협해 제후를 명령(挟天子以令诸侯)하였으며 여포(吕布) 등 할거세력을 선후해 제거하였다. 관도대전(官渡之战)에서 군벌 원소(袁绍)를 대파한 후 점차적으로 중국 북부를 통일하였다. 208년에 승상으로 되어 군대를 이끌고 남하해 손권(孙权)과 유비(刘备)의 연합군에 적벽(赤壁)에서 패했다. 후에 위왕(魏王)이라 칭했고 아들 조비(曹丕)가 황제가 되어서 무제(武帝)로 추촌하였다.
* 효웅(枭雄) [xiāo xióng]
강하고 야심찬 인물. 지혜와 용기가 뛰어난 인물. 전통적인 영웅호걸과는 차이를 둔다. 그 이유는 영웅호걸은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대의명분을 지키며 개인의 이익을 희생한다. 하지만 효웅은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조조는 전통적 의미의 영웅호걸이 아니라 중국에서는 효웅이라 평가한다. 도덕적으로는 손색이 있다는 의미이다.
* 화타(华佗)[huà tuó]
(141-203, 62세), 안후이성 사람이며 후한말 유명한 의학가이다. 동봉(董奉), 장중경(张仲景)과 함께 ‘건안삼신의’(建安三神医)로 불린다. 어렸을 때 밖에서 돌아다니며 안후이, 허난, 산둥, 장수 등 지역을 돌아다녔고 의술만 연구하고 벼슬길을 구하지 않았다. 그의 의술은 전면적이고 특히 외과에 능하고 수술을 잘했다. 내과, 부인과, 소아과, 침구과에도 정통했다. 그는 ‘외과의 시조’라 불린다. 수술시 사용하는 전신마취제 麻沸散을 만들어 후세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노년에 조조의 의심을 받아 하옥되었고 고문으로 인해 죽었다.
* 소감
조조의 인생은 전반적으로 다 알기 어렵지만 위의 몇 인물과의 관계에서 어느정도 알아볼 수 있다. 화타를 통해 의심이 많고 화타가 머리수술을 해야 한다는 건의때문에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부분에서 잔혹한 일면을 볼 수가 있다. 草船借箭의 이야기에서 역시 의심이 많은 성격을 이용해 제갈량이 이득을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융의 이야기에서는 본인의 주장과 다른 인물을 대할 때 결국 집안을 말살시키는 부분을 보면 역시 잔혹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효융이라는 평가가 헛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시를 쓰기 전에 오환의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오면서 이 시를 썼다는 것은 원소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신령한 거부나 등사처럼 신비로운 영물도 죽어가는 것에 대한 한탄을 하고 다시 이제 남하해서 치르게 될 전쟁을 생각하면서 천리마가 늙었어도 지향은 천리밖에 있고 나이 들어도 품은 포부를 다 이룰 것이라는 말로 본인을 스스로 독려하고 마음을 다잡고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하늘과 다투어 천명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모든 것에 다행임을 느끼며 노래를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08년에 이 시를 썼다고 가정하면 조조는 이미 53세의 나이이다. 전쟁을 치렀으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었을까 싶다. 하지만 체력의 한계를 이겨내고 천명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힘내는 모습을 본다. 과연 <삼국연의>의 조조의 모습과 같은 것인가 생각해 본다. 소설속의 인물과 현실속의 실제 인물은 아무래도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속에 부각된 이미지만 머리속에 깊이 남아 있어 오해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단한 조조도 열등감이 있었다고 한다. 가문에서 오는 열등감이다. 조조의 할아버지는 환관이다. 즉 조조의 아버지는 환관이 양아들로 들인 사람이고 이 신분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았다. 이러한 부분이 그의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사료된다.
유명한 전문직 의사인 화타의 인생을 본다면 그렇게 의술에 미쳐 노력하고 발전했지만 결국 당시의 권력자 조조를 만나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목숨도 부지 못하는 전문직 인사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고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조조처럼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조와 주변의 인물들의 인생살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어떤 인생이 과연 나와 제일 잘 맞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 생각해보기
1) 옛날도 지금도 전문직은 다 예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는데 화타의 인생을 보면서 선택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여전히 능력은 있으되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는 인생 살기를 달가워 하겠는가?
2) 누구나 조조가 될 수는 없지만 지극히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당신은 雄心壮志를 가지고 있는가? 스스로를 잘 독려하는가?
3) 권력자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펼치다가 반대하다가 온 가족이 멸살된 공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 나가기
조조의 인생은 엄청난 서사시 같은 대단한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조조로 인해 죽임을 당한 공융과 화타의 이야기를 조금 준비해서 알려 드렸습니다. 문학가와 대단한 의학가를 죽게 만든 것은 그 시대의 엄청난 손실이 아니라 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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