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환신학의 “교회밖에 구원 있다”
[원불교 신문2020년 1월17일자]
[원불교신문=박도광 교무(원불교학과 교수)글]
일아 변선환(1927-1995)은 감리교단의 목사로서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신학자이다. 그는 평안남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6.25 전쟁을 계기로 다니던 평양 성화신학교를 떠나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했다. 미국 드류대학에서 신학석사,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해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변선환은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개신교의 ‘토착화 신학’을 추구했다. 그는 불교뿐만 아니라 원불교와 종교 간 대화에 적극 참여했다.
그의 제자 정희수 목사가 스승 변선환 교수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의 토착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불교를 공부하라!”라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를 받아들인 그는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미국 버클리대학과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에서 불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로서 현재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중북부 지역총회에서 감독으로 선출되어 봉직하고 있다.
변선환의 “교회 밖에 구원이 있다”라는 매우 놀라운 신학적 선언과 공론화는 한국신학의 뜨거운 논쟁을 야기했다. 이러한 변선환신학에 반대하는 김홍도 목사(당시 감독)를 비롯한 원리주의자들은 교리수호대책위원회에서 변선환 교수를 1992년 종교재판에 회부해 1993년 감리교단으로부터 출교(出敎)시켰다.
변선환은 아시아 신학자들 가운데 힌두교 배경의 신학자 파니카(Raimondo Panikkar)를 비롯하여 아시아 신학자인 송천성, 한국 불교학자(동국대) 이기영 교수, 그리고 원불교의 류병덕 교수 등과 만남을 통해 다양한 종교 간 대화를 위한 신학적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교회 밖의 구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말씀의 공동체”로서 “서구 기독교 선교의 최대 장애물은 크리스찬 스스로 세상과 구별하고 교회 안과 밖을 갈라놓는 ‘추잡한 장벽들’”을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경재 교수는 변선환 신학의 중요성을 ‘종교 다원주의론과 한국적 신학형성 과제’에서 찾고 있다. 그는 변선환 목사의 첫째 메시지는 “하나님의 세계경륜의 코드가 바뀌었다는 사실, 지중해 중심과 대서양 중심의 구미 제1세계 기독교 지배시대가 끝났으며, 새로운 선교신학적 패러다임으로서 응답”한 것이라 평가했다.
변선환 목사의 원불교에 대한 신학적 제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원불교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 ‘일원상(一圓相)’진리와 기독교의 절대무(絶對無)의 신성(神聖)이 일치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원불교의 학문적 과제로 ‘원기독교(圓基督敎)’의 가능성에 대해 제기하면서 “태초에 ○(圓)이 계셨습니다. ○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기독교의 신학과 원불교의 교학이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담론이다.
변선환 목사는 아쉽게도 원광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 기조강연을 맡아 글을 완성하면서 세상을 떠나게 됐다. 그의 제자 이정배 교수가 대독을 마치자 대중들은 일어서서 오랫동안 박수로서 답례했다. 그때의 감동은 내 가슴속에 진한 감동으로 자리하고 있다. ‘열린 신학자’였던 변선환 목사의 신학이 후학들에 의해 한국사회에 밀알처럼 씨앗 뿌려지기를 염원한다.
※성직자나 신앙인 가운데 자신의 울과 집단을 넘어 광활한 생각으로 깨어있어 있는 사람이 더러 있다.
<불지품 21장>에 항상 저의 하는 일에만 고집하며 저의 집 풍속에만 성습되어 다른 일은 비방하고 다른 집 풍속은 배척하므로 각각 그 규모와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드디어 한 편에 떨어져서 그 간격이 은산 철벽(銀山鐵壁)같이 되나니, 나라와 나라사이, 교회와 교회사이, 개인과 개인사이에 서로 반목하고 투쟁하는 것이 이에 원인함이라. 어찌 본래의 원만한 큰 살림을 편벽되이 가르며, 무량한 큰 법을 조각조각으로 나누리요. 우리는 하루 속히 이 간격을 타파하고 모든 살림을 융통하여 원만하고 활발한 새 생활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니 그러한다면 이 세상에는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