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은 약 7년전에 두어 번 갔던 고장이지만 작정하고 답사를 했던 것은 아니어서 제게는 아쉬움이 많은 고장이었습니다.
거의 십 여년 동안 천방지축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샅샅이 훑고 만 다닌 답사걸음에 멀미를 느껴 삼년이 넘도록 답사 걸음 쉬고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다시 틈 나는 대로 나서보려 작정하고 가정 먼저 떠 올렸던 고장이 익산이었습니다.
익산에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이 있습니다. 익산답사를 계획하고 있던 차 우연히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고 이러저러하게 한 이틀 답사를 가려고 한다는 이야길 듣더니 "그냥 오세요" 하더군요.
정말 간곡하게 그냥 기차만 타고 오시라는 말 그대로 그냥 기차만 타고 익산으로 향했습니다. 불교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지인의 수고로 저는 답사길 내내 탱자탱자 자료만 챙겨 보면서... 정말 편하게 익산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돌아보고 찾아 본 익산의 옛님에 대해서는 여기에 계신 고수님들의 여러가지 답사기나 자료가 넘치도록 많으니 생략하고 이번 익산답사에서 느꼈던 소소한 이야기들이나 해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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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양평에서 전철로 두어시간,용산역에서 8시 55분발 호남선 KTX를 타고 익산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11시. 점심시간으론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는거 아니냐면서 지인이 안내한 곳은 익산에서 갈비탕이 유명하다는 집이었습니다. 앙징맞은 나무뚜껑의 돌솥밥과 투박한 질그릇에 바글바글 끓는 소리내며 담겨온 갈비탕은 꽤 먹을만 했습니다. 익산 답사 첫머리에서 이렇게 먹거리 이야기부터 하는것은 오랫동안 답사를 다녀 본 경험으로는 낯선 고장으로의 답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먹거리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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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후 삼기면의 석불사와 태봉사.낭산면의 심곡사.망성면의 화산리마애불을 돌아본 후 찾은 곳은 성당면 갈산리의 남궁찬 묘석상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된 묘석상보다 저는 사진 왼쪽에 보이는 아주 자그마한 비각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반질반질한 배롱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고 오래된 블록담으로 둘러싸인 이 정려각에는 조선시대의 효자 남궁관의 효자비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익산답사를 마치고 돌아 온 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쁜 정려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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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면 갈산리를 떠나 다음으로 찾은 곳은 익산에서 그래도 규모가 큰 절집 숭림사 입니다. 7년 전 숭림사를 찾았을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절집으로 드는 입구의 고즈넉했던 흙길도 이젠 모두 시멘트로 포장 되어 있었고 꽤 넓었다고 기억했던 시내도 그 폭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무엇보다 옹기종기 한켠에 모여 있었던 부도들은 높직한 석축 위에 잘 모셔져 있었습니다. 숭림사는 아직도 공사중이며 보광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사진촬영 절대 할 수 없다는 절집사람의 냉랭하고 매서운 눈초리에 나한전의 이쁜 동자상에 눈맞춤 한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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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림사에서 돌아나와 향했던 곳은 여산면 제산리의 남원사입니다. 익산을 다녀오신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처럼 남원사 스님은 활달하고 쾌활하셨으며 무엇보다 미륵전에 모셔진 불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미륵전은 옛맛이라고는 전혀 느껴볼 수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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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사 다음으로 여산향교와 여산동헌.익산쌍릉을 돌아보고 답사첫날의 마지막 동선인 덕기동에 계시다는 석불을 만나뵈러 갔습니다. 준비해 간 자료에는 왕궁면 덕기동 신덕마을 대밭 정도라 익산에서 삼십여 년을 살고 있다는 지인도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였습니다.
어찌어찌하여 덕기동을 찾기는했지만 지정된 문화재도 아니고 이렇게 대밭에 뒹굴듯 하고 있는 불상에 대해서는 마을사람들도 모른다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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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단서. 익산답사를 계획하고 자료를 준비하면서 먼저 답사를 다녀오신 선과님의 답사기에서 만났던 사진 한 장.
덕기동 마을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문득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바로 선과님의 사진에서 만났던 딱 그 장면이 보이는겁니다. 덕기동 석불은 위의 사진에서 시야를 왼쪽으로 돌려보면 바로 직선거리 야트막한 대밭에 비스듬히 누워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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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동 석불을 친견하는 것으로 첫날의 답사를 마치고 난 시각이 오후 여섯시. 저녁식사를 하려고 찾았던 음식점입니다. 무슨무슨 방송국과 신문에서 소개되었다고 자랑이 뜨르르한데 막상 음식은 별로 였습니다. 마가 유명한 익산에서 마를 재료로 요리를 한다고는 하는데 모든 음식이 달콤하다는 것 외에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퓨전 한정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밥값은 만만찮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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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서의 두 번째 날. 미륵사지 근처의 두부집에서 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미륵사지로 향했습니다. 그리웠던 당간지주부터 살피고 그 다음엔 서석탑 복원공사 중인 곳에 들렀습니다. 복원이 완료될 날이 머잖아서 그런지 예전엔 관람로 가장 윗부분에서 살펴보았었는데 이젠 그 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어진것 같습니다. 서석탑재는 모두 야외로 옮겨져 이름표를 붙이고 보관되어 있더군요. 지금은 석탑자리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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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다음으로 향한곳은 익산향교입니다. 답사첫날 여산향교와 여산동헌은 운이 좋아서 그랬던지 어렵잖게 잘 돌아볼 수 있었기에 익산향교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갔었는데... 정말 개소리 요란하더군요. 그악스레 짖어대는 개소리에 향교관리사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빼꼼히 내다보다가 문을 닫고 들어가길래 계속 불러보았지만 더 이상의 인기척도 대답도 없었고 향교입구에 붙여놓은 개조심이라는 글자만 노려보듯 했습니다.
익산향교를 뒤로하고 다음으로 찾아가보겠다고 다짐했던 곳이 금마면 신룡리에 있다는 사자암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날의 답사가 제겐 좀 힘들었던지 사자암까지 걸어서 올라간다는게 버거울 것 같았습니다. 지인의 말로는 스님께 전화하면 스님이 타고 다니시는 무슨 도르래같은 걸 내려주신다고는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답사처에서 문이 잠겨있거나 사진촬영 절대 안된다는 절집에선 나름대로 위안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은 나와 인연이 아닌가보다..."
문이 잠겨있지도 않고 절집사람 불친절하지 않다는데도 다만 찾아가기 버겁다는 느낌하나로 사자암은 아직은 저와 인연이 아니라고 애써 합리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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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면 동고도리 400-2 분명히 네비에 그렇게 번짓수를 입력했는데 좀 헤맸습니다. 번짓수로 안되길래 보물로 지정된 것이라 명칭을 입력했지만 네비는 모른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동고도리석불입상을 입력하면 안되고 고도리석불로 입력해야 네비가 알아듣는다네요.
고도리석불은 7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더군요.
고도리석불입상 주변에는 비닐하우스가 빽빽한데 거개가 딸기농장입니다. 사진 오른편의 딸기농장과 사진왼편의 딸기농장의 딸기 품질은 천양지차입니다.
사진 오른편의 딸기농장앞에는 유기농과 무농약재배라는 팻말이 얌전히 붙어 있더군요. 목도 마르고 워낙이 딸기를 좋아하는지라 무농약.유기농 재배라는 팻말이 붙은 하우스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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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딸기밭은 땅에서 딸기를 키우는것인데 이곳은 좀 특이했습니다. 젊은 부부가 관리하는 이 딸기는 익산시와 익산농협에서 인증한 무농약.유기농 딸기라 씻을 필요없이 바로 먹어도 된다기에 딸기 한상자를 18000원에 구입하여 답사길 내내 먹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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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도 그 딸기맛을 잊을 수가 없어 어제 그 농장으로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네요. 딸기는 꼭지부분까지 빨갛게 익어야 제대로 키운것이며 딸기가 끝부분만 빨갛고 꼭지부분은 퍼렇거나 흰빛이면 그건 촉진제로 재배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태껏 제가 수퍼나 시장에서 사 먹은건 꼭지 끝부분까지 빨갛게 익은 딸기는 없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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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에는 잘 생긴,제가 예전에 애인 삼았던 오층탑이 예전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층탑 주변으로는 정리가 거의 다 된것 같았지만 탑의 뒤쪽으로는 아직도 정비가 끝나지 않은것 같습니다.
왕궁리에서 함벽정과 송영구신도비를 돌아보고 온수동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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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동 이곳을 찾는데 참 많이 헤맸습니다. 생각보다 온수동은 참 크더군요. 이리저리 한참을 헤맸는데 모두 온수동이라는 겁니다. 석등과 탑이 있는 이곳의 건너편 마을만 몇십분간 헤매고 다녔는데 그 곳은 축사가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축사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배설물들과 악취로 인하여 코를 감싸쥐어도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 동네는 한센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온수마을 경로당의 위치를 물어보려 만났던 분도 한센인이 분명해보였습니다.
막상 찾고보니 이렇게 쉬운것을. 온수동 석등과 탑은 대문없어 훤한 마당 양쪽에 얌전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집 주인은 어디갔는지 낯선객을 보고 잡아 먹을 듯 짖어대는 두 마리의 견공들 때문에 그윽하게 살펴보지 못한게 좀 아쉽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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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둘쨋날 마지막으로 찾은 춘포면 쌍정리. 사실 답사걸음 다시 시작하면서 익산을 택했던 이유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의 많고 많은 옛님 중에서 제가 유독 애착을 가지고 있는게 당간지주인지라 가능하면 당간지주를 만나볼 수 있는 고장으로 답사처를 선택하게 됩니다.
쌍정리 버스정류장 근처에 잘 모셔져 있다는 자료만 믿고 '까짓 시골마을에서 버스정류장 못 찾으랴'했던 자만심이 그 댓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쌍정리에는 버스정류장이 두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입석이라 불린다는 자료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마을에서 큰 돌기둥만 물어보고 다녔으니...
제가 가진 당간지주에 관한 자료에는 분명히 쌍정리 당간지주라고 했는데 옆에는 쌍정리입석이라고 표기된 안내판이 있더군요. 이 당간지주(?)가 자리한 마을도 입석마을이구요. 모양은 온전치 못하지만 두 개의 간공도 뚜렷한데...
쌍정리 당간지주를 마지막으로 익산에서의 둘쨋날 답사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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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답사의 마지막 날.
익산시 금강동에 있는 금강 관음사를 찾았습니다. 친절하시다던 스님은 출타중이시고 수더분한 보살님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법당문을 열고 불까지 켜주시며 차라도 대접하시겠다했지만 그런 번거로움 끼치고 싶지않아 정중히 사양하고 미륵불님만 만나뵙고 나왔습니다.
금강관음사는 길지 않은 입구의 소나무숲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주변이 무슨 테마파크로 조성된다고해서 여기저기 파헤치고 헤집어져서 금강관음사를 안고 있는 이 솔숲은 도로변에서 바라보면 마치 섬처럼 동그랗게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무슨무슨 테마파크도 좋고 생태공원도 좋지만 저는 그저 이 솔숲길 만이라도 온전하게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리여고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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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동 오층탑을 만나뵙고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익산 택시기사님의 추천을 받아 찾아갔던 집입니다.
보쌈과 청국장이 아주 맛있다는 말을 듣고 오전부터 무슨 고기냐고 했던 제 말이 무색할 만큼 괜찮았습니다. 보쌈과 청국장을 시켰는데 곁들여 나오는 반찬도 맛깔스러웠고 보쌈도 깔끔했고 청국장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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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답사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혜봉원...
역시 법당문은 굳게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냥 발길을 돌리려는데 안내하던 지인이 스님을 큰 소리로 찾으니 백발 성성한 비구니 스님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디서 왔느냐 뭐하러 왔느냐 물으시더니 불쾌한 안색 역력하게 느릿느릿 법당 문을 열어주시더군요. 법당문을 열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황감하여 부처님께 간단히 예를 올린 후 주머니에서 지폐한장을 꺼내 불전함에 넣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천주교신자면 천주교에나 가서 잘하지 뭐하러 절까지 찾아와 자기 아니라도 불교는 찾아오고 연구하는 사람 많은데..." 법당 밖에서 제 지인에게 하는 소리지만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줄 알만큼 세월을 살았습니다.
더운 날씨에 팔을 걷고 다니다보니 팔에 차고있던 묵주팔찌를 보신 모양입니다.
돌아와서 사진정리를 하다보니 이렇게 사진이 흔들렸네요. 저는 아직 마음공부가 부족해도 한참 더 부족한 모양입니다. 불전함에 넣었던 지폐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 답사걸음 멈춘 줄 몰랐던 선과님께서 왜 블로그만 신경쓰고 까페엔 글 안 쓰느냐는 말이 항상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제부터 마음의 빚을 조금씩이라도 갚으려 합니다. <알아서 남주자>는 말씀 가슴에 다시 한번 더 새기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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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억쑤록 반갑습니데이.갈비탕집이 가람 이병기 선생님 호이군요. 덕기동도 쉽지는 않은데. 당간지주는 처음 입니다. 예전에 자료수집하면서 입석이라고해서 동선에 누락시켰던 것 같습니다.그런데 자료를 뒤져보니 입석리에 1기, 쌍정리에 1기, 2기가 검색되는군요. 당간지주를 각각 1개씩 모셨는지 아니면 동일한 것인지 알 수 없군요. 옛날처럼 답사기 자주 올려주세요.
답사기라고 하기는 부끄럽지요.
덕기동석불은 단연 선과님 덕분입니다.
쌍정리 당간지주는 원래 입석마을에서 왕궁사지로 가는 논 가운데 2 기가 서있었는데,
1970년대 초 쯤 새마을 사업 할 때 지금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마을에서 궂은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사람들이 당간지주 때문에 그렇다하여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나머지 1 기는 언제인가 모르게 사라졌다고 하더군요~ㅎ
저도 혜봉원에서 겨우 허락을 받긴 했는데 옆에 서 계시니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지요. 아쉬운 마음이 되살아납니다.
온수동 헤매셨으면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쌍정리 당간지주, 금강관음사 미륵불은 처음 알게 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쌍정리는 당간지주니까 예전부터 자료를 챙겨놓고 있었고
금강관음사는 이곳에서 도두님의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답니다.
시나브로님께서 반갑다시니 흐뭇합니다~ㅎ
@새벽* 선생님 금강 관음사 자료 제가 청구 하겠습니다....
저도 선생님 자료 보고 당간지주 찾으러 한번 갈까 합니다....
도두님께서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냥 새벽이라고 불러주셨으면...ㅎ
익산....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이는 곳.
68년도에 처음 답사 갔을 때는 절터에도 민가가 몇 채가 있었어요 ^^
네...저도 사진으로 본 것 같습니다~ㅎ
@새벽* 그때 물길 속에 나뒹글던 석등 화사석(이건 한참 후에 화사석이라는 걸 알았지만요)을
친구랑 낑낑거리고 옆으로 옮기던 중 그만 두 동강이 나더군요....
물에 너무 오래 있어서 삭은 모양이예요...
곁에서 보고 계시던 김철준 교수님......안타까워하셨는데.......
와~그런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 직접 참여를 한 대단한 분이시네요^^
역시 익산. 정말로 가고 싶습니다!
서울에서는 기차를 이용해서는 두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가볍게 한번 다녀오셔도 좋을 듯 합니다만...
나신님께서 거주하시는 곳을 몰라서 하는소리이기도 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