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세월의 수레바퀴처럼 흐르고 사이사이에 수많은 노래가 숨어 있습니다.
이연실 님의 노래 중에 한 곡만 꼽아보라는 건 무척 어려운 얘기입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한 가지만 골라 먹으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래야 한다면 이연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에서도 ‘소낙비’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소낙비는 소나기의 전라도 방언입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는 기분이 됩니다.
이연실 님을 이어받은 희진 님의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끈적끈적한 우울을 날려버립니다.
'청아'라는 말은 희진 님 외에 다른 가수에게는 절대로 쓰지 않는 말인데, 제가 희진 님 이전부터 유일하게
'청아'라는 표현을 쓰는 가수가 이연실 님입니다.
박인희 님과 같은 시대에 등장해 알 수 없는 신비감으로 귀를 사로잡았던 가수가 이연실 님입니다.
대중가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누가 묻는다면 저는 이연실 님의 '소낙비'를 얘기할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장면들에서 느끼는 시적인 설렘, 혹은 요즘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등의 판타지 영화와 같은 매력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암울한 현실에서 최루탄과 억압적 세상을 피해, 꿈으로 달아난 사람들이
바라본 희망의 세상을 아프고도 감미롭게 부르는 듯합니다.
이연실 님의 '소낙비'를 얘기하면 먼저 밥 딜런(Bob Dyla )과 양병집 님 두 사람이 생각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의 곡 ‘거센 비가 오려하네(A hard rain’s A-gonna fall)’를 가수 양병집 님이 번안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밥 딜런은 1963년 자신의 두 번째 앨범에 이 노래를 수록했습니다.
평론가들은 ‘거센 비’가 당시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한 쿠바 미사일 사태를 의미한다고 해석했고, 실제로 전쟁과
핵개발을 반대하고 불평등과 지구오염 등을 우려하는 현장에서 많이 불려졌습니다
포크계의 송라이터로 혜성처럼 등장한 양병집 님은 이 노래의 원곡이 가진 맛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감쪽같은
솜씨로 우리나라 고유의 포크음악의 맛을 살려 재탄생시켰습니다.
1973년 발표된 이연실 님의 2집에는 '소낙비’ ‘역(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타박네’ 등 양병집 님이 번안했거나
만든 노래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양병집 님도 이듬해 자신의 독집앨범 '넋두리'를 내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양병집 님은 한대수 님과 함께 밥 딜런(Bob Dylan) 음악의 전도사로 불립니다.
한대수 님이 밥 딜런의 자유롭고 저항적인 음악 세계를 모티프로 자신만의 음악을 내놨다면, 양병집 님은
밥 딜런의 노래를 번안하거나 가사를 바꿔 그의 음악을 국내에 직접적으로 알렸습니다.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번안한 ‘소낙비’와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를 개사해 만든
‘역’(逆)등이 대표적입니다.
‘소낙비’는 이연실 님이 1973년 불러 인기를 누렸고, ‘역’은 김광석(1964~1996) 님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을 바꿔 불러 더 유명해졌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양병집 님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김민기,한대수와 함께 3대 저항가수로 불립니다.
1970년대 당시 우리의 사회상을 역설적으로 풍자한 그의 노랫말을 보면 왜 저항가수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톳길을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숲 가운데 서 있었다오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번안곡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노랫말은 흔하지 않습니다.
소나기의 여정을 이토록 아름다운 감성으로 그려낸 노래가 있었던가 싶습니다.
이연실 님은 전북 군산 출생으로 포크 1세대 가수입니다.
홍익대 미대 시절 라이브클럽에서 노래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1971년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위해서 대구로 내려가 ‘다방 종업원’ 체험을 하고, 노래하다가 시비 거는
취객과 맞붙어 싸우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 팝 시장을 강타한 포크의 여왕 '존 바에즈'의 등장이 그러했듯,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지성을 갖춘
여성 싱어송라이터 이연실 남의 출현은 남자 가수들이 주도하고 있던 국내 포크계에도 신선한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한대수,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등 젊은 남자가수들의 아성을 위협하기엔 충분했습니다.
70년대 활동했던 여러 싱어송라이터 중에서도 이연실 님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통기타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포크 가수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어쩐지 그녀는 또래 여가수들처럼 다소곳한
막내 여동생이 아니라, 매사 똑 부러지게 당찬 둘째 딸 같은 분위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71년 통기타를 들고 '새색시 시집가네'와 '조용한 여자'로 데뷔했으며, 짙은 호소력과 청아한 음색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녀가 직접 작사·작곡한 데뷔곡 ‘조용한 여자’나 훗날 발표한 ‘목로주점’에서 볼 수 있듯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도 탁월합니다.
“봄이 되어서 꽃이 피니 갈 곳이 있어야지요/ 여름이 와도 바캉스 한 번 가자는 사람 없네요/ 나는 괴롭힐
사람 없는 조용한 여자”라고 노래하고,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라고
노래하는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갓 스무 살 넘은 소녀의 외로움을 역설적으로 담아내거나, 허름한 주점에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사막으로 여행하는
꿈을 꾸는 얘기를 노래에 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연실 님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대중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세간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연실 님은 그 뒤로 방송국의 섭외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음악활동도 하지 않고 언론의
인터뷰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동료 가수들조차 이연실 님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강원도 어디선가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는 풍문도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잠행 중입니다.
서울 상계동에 살고 있는 걸 목격했다고 하기도 하며, 제부도에서 도예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언론 기사로 소식을 전한 게 전부입니다.
최근에 남궁옥분 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이 전해져 무척 반가웠습니다.
아래 내용은 남궁옥분 님의 페이스북 글 내용입니다.
너무도 그리운 이름 이연실!
너무도 그리운 얼굴 이연실!
몇 십 년만에 전화번호를 입수(?)해서 떨리는 맘으로...
전화기를 뚫고 나오는 선배님의 목소리는 여전했고 명동 '오라오라'
시절을 기억해주시며 반갑게 맞아 주심이 감동~~
제 어린 시절의 우상 중 한분이신 선배님을
정말 오랜만에 뵐 수 있었습니다.
몇 십 년 째 살고 계시다는 상계동으로 달려가 이른 저녁을 마치고
긴 시간 수다~~
70을 넘기셨는데도 아직까지 10대 처럼 순수함으로 중무장 한 채
결혼 한 번 하지 않으시고 홀로 행복하게 살아오신 모습을 뵐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난 아무한테도 전화번호 안 주는데 만약 다른사람 연락 오면 너니까 알아서 해라!!! "
예전 녹화 기다리던 중 약속시간에 안 끝내주니까 수퍼 甲인 방송국을 상대로 그 시절
그냥 기타 챙겨 떠나셨던 걸 엄청 큰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그리 멋진 선배님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므로.... 충~~성!
군산에서 서울로 유학!
홍대 미대 시절 부터
하루 한 끼로 살아오심에 체중이....ㅠ 건강이...
그래도 강단있으시고 어떤곳도 아픈곳이 없으시고 약하나 드시지 않으시니 다행이지요.
처음엔 엄두도 못내다가
동네 주민들과도 사진도 찍어주시며
소탈하게 지내시기에 저도 얼른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따끈한 모습입니다.
늦은 시간 밤 외출도 처음이라며 소녀처럼 들떠 있으시던 모습~
자주 찾아 뵈야할듯요.
아파트앞 주차장의 노란 애마를 자랑하시는 순수함은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짙 노란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노래로 가끔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목로주점'은 우리 모두의 노래 입니다.
제가 음원준비하고 있는 '찔레꽃'은
무려 40년 전에 공기반 소리반의 완벽함을 표현한 절대 감성이고 누구도 넘어 설 수 없는 그분의 秀作입니다.
천상의 목소리 이연실 선배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연실 님의 데뷔초와 활동 당시 모습
2022년 7월 21일 남궁옥분 님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연실 님의 최근 모습
소낙비 (이연실)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토길을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속 가운데 서 있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늑대의 귀여운 새끼들을 보았소
하얀 사다리가 물에 뜬 걸 보았소
보석으로 뒤덮인 행길을 보았소
빗물 내려 잡고 있는 요술쟁이 보았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 밤에 천둥 소릴 들었소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소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 소릴 들었소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누구를 만났니 내 아들아
누구를 만났니 내 딸들아
나는 검은 개와 걷고 있는
흰 사람을 만났소
파란 문으로 나오는 한 여자를 만났소
사랑에 상처 입은 한 남자를 만났소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도 만났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 갈래요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빈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내게 무지개를 따다 준 소년 따라 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토길을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속 가운데 서 있었다오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끝없이 비가 내리네
Bob Dylan - A hard rain’s A-gonna fall (소낙비 원곡)
Oh, where have you been, my blue-eyed son?
Oh, where have you been, my darling young one?
I’ve stumbled on the side of twelve misty mountains
I’ve walked and I’ve crawled on six crooked highways
I’ve stepped in the middle of seven sad forests
I’ve been out in front of a dozen dead oceans
I’ve been ten thousand miles in the mouth of a graveyard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it’s a hard,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at did you see, my blue-eyed son?
Oh, what did you see, my darling young one?
I saw a newborn baby with wild wolves all around it
I saw a highway of diamonds with nobody on it
I saw a black branch with blood that kept drippin’
I saw a room full of men with their hammers a-bleedin’
I saw a white ladder all covered with water
I saw ten thousand talkers whose tongues were all broken
I saw guns and sharp swords in the hands of young children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An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And what did you hear, my blue-eyed son?
And what did you hear, my darling young one?
I heard the sound of a thunder, it roared out a warnin’
Heard the roar of a wave that could drown the whole world
Heard one hundred drummers whose hands were a-blazin’
Heard ten thousand whisperin’ and nobody listenin’
Heard one person starve, I heard many people laughin’
Heard the song of a poet who died in the gutter
Heard the sound of a clown who cried in the alley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An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o did you meet, my blue-eyed son?
Who did you meet, my darling young one?
I met a young child beside a dead pony
I met a white man who walked a black dog
I met a young woman whose body was burning
I met a young girl, she gave me a rainbow
I met one man who was wounded in love
I met another man who was wounded with hatred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at’ll you do now, my blue-eyed son?
Oh, what’ll you do now, my darling young one?
I’m a-goin’ back out ’fore the rain starts a-fallin’
I’ll walk to the depths of the deepest black forest
Where the people are many and their hands are all empty
Where the pellets of poison are flooding their waters
Where the home in the valley meets the damp dirty prison
Where the executioner’s face is always well hidden
Where hunger is ugly, where souls are forgotten
Where black is the color, where none is the number
And I’ll tell it and think it and speak it and breathe it
And reflect it from the mountain so all souls can see it
Then I’ll stand on the ocean until I start sinkin’
But I’ll know my song well before I start singin’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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