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좌익ㆍ용공이 아니라 공산주의였다. 盧武鉉은 이제와서 그들을 따르는 「정신적 386」이 되었다. 개혁ㆍ진보 장사꾼이 된 그들의 자기고백ㆍ자기청산을 기대한다.
홍 진 표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386」의 거짓말
최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인 朴世逸(박세일) 의원은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기본적으로 左派(좌파)의 反체제 운동이었다』고 했다. 열린당의 386 출신의원들은 『抗日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독재정권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은 386세대들이 現 정부와 의회에 대거 진출하여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주체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더 이상 在野가 아니라 在朝가 된 386세대의 정체성에 대한 당연한 관심이다.
권력을 움직이고 있는 386들은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左派운동이었다」는 주장을 「색깔론」이라고 반박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거짓말이다. 19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左派운동이었다.
左派운동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한국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의회주의를 표방하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해서 소비에트 혁명을 추구하거나,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했다.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은 고립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강령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과서적인 전략에 따라, 우선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그 다음 단계에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단계적인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군사정권의 민주화운동 탄압은 「左傾(좌경)¡容共(용공)」시비를 불러일으켰고, 아직도 당시 정권의 左傾 규정을 의도된 조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은 「左傾·容共」, 즉 左派에 경도되고 공산주의를 용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左派 공산주의 그 자체였다.
필자는 1982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그해 4월 지하 이념서클에 가입하였다. 처음에는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같은 책을 읽고 세미나를 했다.
主思派의 탄생
대학 1학년 여름방학 합숙 때부터 「자본주의 구조와 발전」이라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일본서적을 보기 시작했다. 그 후 필자는 2학년 때인 1983년에 「강제징집」으로 학교를 떠났다. 내가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 운동권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비롯하여 레닌, 毛澤東(모택동)의 저작들을 교과서로 채택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이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현장에 진출한 것은 마르크스의 가르침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의 영도세력」으로 규정한다. 노동자의 의식화·조직화는 혁명을 지향하는 세력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80년대에 적어도 수천 명에 이르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서서, 혁명운동의 지도적인 이념, 실천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강제징집으로 군대에 갔다 와서 1985년경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서 기거했다.
큰아버지가 어느 날 부르더니 『이 집이 사회주의 혁명의 거점이 되도록 놓아둘 수 없다』며 바로 짐을 싸라고 하셨다.
제대 후 당시 학생운동권에서 널리 읽히던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당의 두 가지 전술」,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 같은 책과 유인물을 읽다가 큰아버지에게 들킨 것이다.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左派」 바람은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광범위한 열풍이었다. 사회과학이라고 통칭되는 左派서적이 널리 팔리게 됨에 따라 전문출판사들이 수십 개 생겼고, 대학가에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이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서울大 주변의 하숙집에 가면 학생들의 서가에 左派서적 몇 권은 꼭 꽂혀 있었다. 서울大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에서는 대체로 1982년 이후 좌파운동권이 主流를 형성하여 대학문화를 주도하고, 科(과)학생회 등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좌파운동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운동권 핵심들이 만들어서 뿌린 운동노선을 둘러싼 각종 팸플릿이나 또는 주요 공안사건의 공소장들을 읽어 보면 명확해진다.
전혀 논란이 필요없는 사실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의 公人들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졸렬한 행위이다.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갑자기 左派가 득세한 것은 쉽게 설명되기 어려운 현상이다. 우선 세계사적 조류와 동떨어진 매우 기이한 현상이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1980년대에 종말의 길로 가고 있었으며, 중국은 鄧小平(등소평)의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亡해 가는 사회주의 지향하다
1980년대 한국의 左派는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채택했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공식적으로 오류로 평가된 바로 그 시점에, 한국의 대학가에서는 문화혁명을 찬양하는 이영희의 저서가 필독서가 되는 심한 「문화지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의 左派운동을 그 이전 左派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있으나, 그 직접적인 연계가 증명되지는 않는다. 즉 해방정국에서의 左派운동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한에서는 거의 명맥이 끊겼다.
戰後의 「통혁당」, 「南民戰(남민전)」과 같은 좌파운동 또한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1980년대의 左派운동은 초기에 북한과 연계가 없는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하였다.
1980년대의 한국 사회는 이미 산업화의 결실이 맺어지면서 절대빈곤층이 대폭 줄어들고,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자라기 좋은 토양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左派로 기울어진 386세대는 한국 근대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였다. 386세대에게는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넓게 주어졌으며, 급속한 경제성장 덕분에 취업난을 겪지 않았다. 이 점에서는 그 위 세대는 물론이고,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현재의 20代에 비해서 참으로 수혜를 받은 세대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이 마르크스주의를 널리 받아들인 데는 1980년 新군부의 등장으로 인한 「민주화의 봄」의 좌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단순한 민주화운동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뚜렷한 이념에 바탕한 민주화운동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종속이론, 사회민주주의, 네오마르크스시즘 등 다양한 左派이론에 대한 모색 과정을 거쳐 결국 마르크스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매우 논리적이며, 세계와 사회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에게 큰 매력을 주었으며, 노동자·농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 편에 선다는 대의명분이 청년들을 격동시켰다. 수천 명의 지식 청년들이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노동현장이나 농민, 빈민 속으로 들어갔다.
金日成·金正日을 진심으로 추앙
1980년대의 左派는 속성 재배되었다. 이미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주의의 모순과 오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毛澤東의 대약진운동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것이나, 소련이 동구의 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실,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로 불리는 참혹한 민중학살 등에 대해서는 토론해 본 기억이 없다.
1980년대의 좌파운동은 19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PD(민중민주주의)계열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NL(민족해방)계열로 분화된다. 主思派(주사파)의 등장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져 있는 反美 ¡親北 조류의 원초적인 뿌리이다.
主思派는 대학가에서 초기에 격렬한 反美투쟁을 전개하다가, 1986년 개헌 국면을 맞아 야당과 연대하는 직선제 개헌 전술을 제기했고, 대중적 호응을 바탕으로 학생운동권의 主流로 등장한다.
반면 제헌의회 소집_정권을 타도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해 새로운 헌법을 만들자는 운동_을 주장한 PD계열은 그 급진성으로 인해 급격히 勢(세)가 약화됐다.
主思派는 金正日이 썼다는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등 이른바 원전을 학습했고, 밤마다 단파 라디오를 끌어안고 북한의 對南 공작기구인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했다. 필자 역시 주체사상에 빠져들었다. 1986년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하고, 그 내용을 녹취하여 돌려보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主思派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정권의 선전을 액면 그대로 믿었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활동했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金正日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金日成과 金正日을 진심으로 추앙했다.
主思派는 金日成의 생일인 4월15일과 金正日의 생일인 2월15일을 기념했고, 金日成이 사망했을 때는 추도식을 가졌다.
主思派는 1987년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하여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이를 바탕으로 재야운동·노동운동에 활발하게 진출한다.
소련 붕괴와 북한 경제파탄 이후 쇠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소련 동구가 붕괴하면서, 한국의 左派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소련을 혁명모델로 삼은 PD계열은 거의 붕괴되고,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모색하는 길로 나가게 된다.
主思派가 주축인 NL계열은 일부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건재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일정한 역량을 유지한다. 이들은 통일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며 명맥을 이어 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민주혁명당」, 「중부지역당」, 「구국전위」 등 북한과 직접 연계를 맺는 主思派 지하조직들이 등장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탈북자들에 의해 북한의 참혹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主思派는 급격하게 약화된다. 특히 主思派의 代父(대부)로 불렸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을 비롯한 핵심세력들이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하고, 북한 민주화를 주창하고 나오면서 主思派는 결정적으로 약화된다.
결국 1980년대의 左派운동은 소련 동구의 붕괴와 북한의 경제파탄을 거치면서 큰 틀에서는 쇠퇴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守舊的 좌파로 전락
그렇다면 과거 親北·左派운동에 몸을 담았던 386세대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지금은 어떤 사고를 하고 있을까?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들의 사회주의적 지향은 크게 약화됐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정책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실험 결과들이 충분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盧武鉉 정부가 분배우선정책을 명분상 가끔 거론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시장경제주의자인 李憲宰(이헌재)의 등에 업혀 가는 盧武鉉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보면 그걸 짐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한국 정당들의 정강정책은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 강령을 채택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조차 국회 의석수가 많아지거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그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다.
하지만 386세대의 사회주의적 사고는 강하게 남아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 확대를 선호하고, 교육 평준화를 추구하며, 勞使관계에서 무조건적으로 親노동 편에 서려고 한다. 사회주의가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청년기에 심취했던 계급투쟁론이나 평등주의적 사고는 습관처럼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권의 386들은 통일·안보 분야에서 과거의 미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적대감을 갖고, 북한에 대해서는 무제한적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착오적 對北觀, 對美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시각은 과거의 「讚揚과 信奉」에서 「理解와 寬容」으로 바뀌었다. 열린당의 386들은 『主思派하던 시절은 이미 옛날 얘기』라며 미소를 짓지만, 북한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들은 「수구적 左派」로 전락했다.
反美·親北 사고가 386의 정신세계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金大中 정권의 책임이 크다. 1980년대 主思派들의 反美·親北 성향은 金大中 정권의 對北 포용정책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金大中 정부 출범이후 反美·親北은 한국 사회의 대세를 형성했다.
主思派 386들의 과거 反美·親北활동이 부끄러운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훈장이 돼 버렸다.
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하였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경제개발을 우선하였던 역대의 집권세력은 「불의와 기회주의의 집단」으로 공식 규정됐다.
이런 발상은 盧武鉉의 것만은 아니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집권 초 전국에 걸쳐 「제2건국위원회」를 구성했다. 1948년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건국에 심각한 도덕적 하자가 있었다는 직설적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지금 과거사 청산을 외치는 사람들은 「한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私生兒(사생아)」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한 잡지 기고문에서 『과거사 청산은 대한민국이 親美派·親日派·政商輩(정상배)에 의해 건국됐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확인하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主思派를 뒤쫓는 「정신적 386」 盧武鉉
대한민국이 걸어온 지난 60년이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왕에 선진국이 아니었던 나라들 중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홍콩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한국은 서구의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 낸 민주화를 경제개발과 병행해서 이루어 냈다. 朴正熙 시대를 마치 중세의 암흑시대처럼 묘사하려고 하지만, 개발도상국 대부분이 겪었던 독재과정에 비하면, 한국은 기본적으로 法治(법치)가 작동했다.
대한민국이 지난 60년간 이룬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세계사의 모범 사례다. 이건 실증적으로 명백히 증명된 것이고, 국제적으로 일치된 평가이다. 그런데 무얼 근거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욕의 역사」로 단정하는 것일까?
主思派 386들의 편향적 역사인식이 그걸 가능케 하고 있다.
1980년대 主思派 운동권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철저히 잘못된 것으로 인식했다. 左派가 주도하지 못한 건국이었기 때문이다. 主思派들은 분단의 책임을 미국과 李承晩 정권에 일방적으로 묻는다. 「남한에 左派정권이 섰다면 분단이 되지 않았고, 한국전쟁도 없었다」는 주장을 한다.
한국전쟁에 관한 主思派의 인식도 간단한다.
「북한의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쳐내려가 통일의 好機(호기)가 왔는데, 미국의 부당한 개입으로 통일의 기회를 놓쳤다」
朴正熙 정권에 대해서는 단순히 「독재를 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사주下에 분단을 공고히 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한국을 편입시킨 이른바 매국세력」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을 절대빈곤 상태에서 탈출시킨 朴正熙의 功은 보지 않고, 「자본주의화는 종속의 길」이라는 좌파적 잣대만 들이댄다. 主思派는 파탄으로 결론 난 북한의 자립경제노선을 이상적인 모델로 본다. 반면 朴正熙 정부의 수출과 외자유치를 통한 산업화 전략을 「新식민지적 경제종속」으로 간주한다.
임종인 열린당 의원은 과거사 청산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親日, 분단, 反민주 세력을 규명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이다. 「왜 지금 와서 하느냐」는 사람이 있는데 金大中·盧武鉉 정권에서 세력 교체가 이뤄졌고, 17代 의회를 독립운동, 통일·민주·인권세력이 잡았기에 규명이 이뤄질 수 있다』
진보·개혁 장사꾼이 된 386
과거사 청산운동은 대한민국에 대한 혐오증과 부정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연령이나 경험이 386은 아닌데 정신적으로는 386인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盧武鉉 대통령이 그 전형이고, 인권변호사 출신이나 학자들 중에서 「정신적 386」들이 많이 발견된다. 386세대 가운데서 운동권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잠시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더 열정적으로 反美·親北的 언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 386의 사고방식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金正日 정권의 모든 惡行에 대한 침묵이다. 열린당 정봉주 의원 등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등 노골적으로 북한정권을 옹호하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람들이 눈앞의 惡을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좌파운동권은 내부에서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였고, 같은 진영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이른바 진보진영은 내부 비판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남은 것은 「편 가르기」뿐이다.
이념적 방향을 상실하고, 권력유지라는 이해관계만 남아 있는 집단의 타락은 필연적이다. 많은 386들은 과거 대학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던 때의 지식이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판에서 시장성이 있는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상품」을 팔고 사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이미 국민들의 자각이 시작됐고, 북한의 필연적인 변화를 고려할 때 이런 「장사」의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 主思派 출신 386들이 작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념적 대혼란의 아수라장을 정리하는 용기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고로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맡기면 만사 평안해질거란 소리 아니야.뭘 그리 길게 설명하나
수구들은 진보세대인 386때문에 정권에서 멀어지더니 은근슬쩍 386세대를 주사파로 몰아 부치네.. 피흘려 이룩한 민주화를 주사파들의 선동에 의한 난동으로 격하시키지 못해 안달이여..
최근의 이 모든 혼란은 놈현이라는 대통령이라 부를 가치도 없는 인간 때문이외다. 놈현이가 입만 함부로 놀리지만 않았어도 세상이 이렇게 나라꼴이 엉망진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외다.
남해국대장... <= 나도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님의 언사는 많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군요! [대통령이라 부를 가치도 없는 인간 때문이외다]라는 이 대목은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도 우리 나라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임에는 분명하니까요^^ 절대로 누워서 침밷지 맙시다!!!
남해국..님은 아마 누군가가 당신부모한테 욕하면 아마 달려가서 죽이려들껄..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아~! 자기가족만이 잘사면 된다는 사람아~! 지금 그건 대통령한사람에 욕이 아닌 그사람을 뽑아준 과반수가 넘은 수많은 이에게 하는망말인지 진정모르겠노?? 에라이~ 이사람아!! 앉은나 서나 놈현생각하지말고
자신일이나 똑바로 하소~!!
입을 놀려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다고요? 어떻게 입을놀려서 나라꼴이 엉망친창이 되었는지 말씀해주시죠 남해국 대장님
386세대가 항일운동을 반대한 세력이였다? 소웃다 꾸레미터질 일이군... 그렇게 항일운동을 잘하는 정당이 왜 친일진상규명법을 입법자체를 반대하지? 입법후 그 처단이나 징계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서 의견차이도 아니고 입법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처단해야 할까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일.......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겠다는 생각인데.. 그것은 이미 열우당의 신기남 의원의 거짓말 사건으로 증명된 것으로 압니다.
한미남/처단이 아니라 진상규명입니다. 왜곡된 사실이 있거나 숨겨진 범죄가 있으면 밝혀야한다는 것이지요. 양자를 구분 못하시나요? 죽은 김일성을 처단할 순 없지만 훗날 통일이 되고나면 김일성 독재체제하에서 일어난 사건들 진상규명해야 할거 아닙니까? 그리고 열우당이나 한나라당 둘다 정략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신기남 아버지가 악질친일파건 아니건 친일청산법은 통과되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더 강화된 친일청산법을 상정하면 될거 아닙니까? 그걸 안하고 막으니까 욕먹는거구요.
반미=주사파=386이라는 선동글이군요. 반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중생 추모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 주사파사라서 반미를 외쳤나요? 설령 그 안에 소수의 찌질이주사파애들이 깃발들고 서 있었다 해서 반미운동이 주사파집회로 매도될 수 는 없지요. 주사파가 반미에 포함될 순 있겠지만 반미 전체가 주사파는
아니지요. 마치 히틀러랑 싸웠던 연합국에 소련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연합국이 전부 공산당이라는 주장처럼 멍청한 주장이라는 겁니다. 반미요? 외국에선 개나소나 다해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다해요. 인권때문이기도 하고 환경때문이기도 하고 침략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국
의 국익을 위해 반미를 외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그거하면 안되나요? 그럼 주사파가 되나요? 확실히 좀 합시다. 미국이 닭짓하니까 반미감정이 일어나지 주사파가 득실대서 반미감정이 생기는건 아니잖아요?
멍청한 반공주의자들이 기본적으로 착각하는것중 하나가 공산당이 사회를 혼란시킨다고 믿고 공산당만 없어지면 사회가 정화될거라고 믿는다는거지요. 사회가 혼란한건 그 사회가 가진 문제때문이고 자칭 그걸 해결해보겠다고 공산당이 나타날수도 있고 오옴진리교가 나타날수도 있고 나찌당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사회의 문제점 그거 공산당이 해결하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면 되요. 그럼 공산당 걱정 안해도 잘 살수 있어요. 파리가 나타난건 쓰레기가 있기 때문이지. 파리가 쓰레기를 만드는건 아니잖아요? 쓰레기 치우면 파리떼 없어집니다.
포르코씨... 나는 혼동한게 아닙니다. 내 글 바로 위의 김삿갓씨가 '처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길래 거기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친일청산법을 한나라당에서 상정하고 말고는 논외의 대상입니다. 그것은 제 살 깎아먹기이기 때문입니다. 열우당에서는 이미 그것을 경험하였고,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이미 처음
부터 내정된 수순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신기남의원 부친의 친일경력이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거짓말이 문제입니다. 친일청산 하자고 말해놓고 자신들의 부친 및 조부의 친일행적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정략적인 의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쥔 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노무현과 과반수 의석
을 차지한 열우당, 그리고 거기에는 못미치지만,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건 항상 정의의 편에 선 자가 아닙니다. 강자입니다. 순진한 국민들은 거기에 놀아나고 있을 뿐입니다.
한미남/김삿갓님은 처단하자고 주장하신게 아닙니다. 글을 잘 읽어보세요. 그걸 님은 죽은사람을 어떻게 처단하냐고 엉뚱하게 질문하신 것이지요. 애초 님이 잘못된 질문을 던진겁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집단이던 정책이나 주장은 정략적이기 마련입니다. 모르시나요? 그걸 놓고 한쪽 손을 들어주는게 시민의 마지막
처단을 주장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언급했다고 말했습니다. '단어의 사용'이라는 말이 언급이 아닌 주장으로 들렸다면 저의 불찰이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집단의 정책이 정략적인 걸 알고 있으니.. 정략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설마 모르면서 정략적이다라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안그렇습니까?
권리인거죠. 역사를 만들어나가는게 단지 강자들만의 권리라면 님은 애초부터 선거든 뭐든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 자체를 거부해야 맞습니다. 순진한 국민들이 놀아나는 시스템일 뿐이잖아요? 그럴라면 투표를 왜합니까? 님은 여기서 왜 '주장'을 하시나요? 님이 보기에 잘못된것을 지적하고 사람들에게 알려 바꾸고자 하기
때문 아닌가요? 님 역시 '순진'하고 힘 없는 국민이지만 나름대로 좋은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다른사람들도 행동하고 있습니다. 님과 다른 방식으로요. 요컨대 친일청산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열우당을 지지하는것이지요. 열우당을 지지하기 위해 친일청산법을 통과시키자고 하는게 아니라요.
정쟁은 정략적이기 마련입니다. 저넘들이 정략적이라서 반대한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그 반대편도 정략적이니까요. 열우당의 청산법이 잘못되었다면 제대로 바꿔서 상정하면 됩니다. 조사대상을 확장시켜 상정하면 됩니다. 문제는 당지지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친일청산입니다.
한미남/맞습니다. 김삿갓님은 단지 '언급'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님은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처단해야 할까요?' 라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는 것이지요. 님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제3자들은 김삿갓님이 '처단하자'고 주장했구나...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사소한 실수이겠지만 이것도 왜곡의 한 형태입니다.
신기남 의원의 거짓말, 노대통령 부친의 창씨개명, 이미경 의원 부친의 친일 행적 고백, 유시민 의원의 고백.... 김희선 의원의 '조작', 그리고 부친 친일행적 '의혹'.. 이 모두 최근에 일어난 일입니다만, 이 일 이후에 조사대상을 축소했고, 지금은 과거와 같은 열의가 없어 보입니다. 반대파제거를 위해 만든 법안이
양날의 검이 되어 자기에게 해를 입히니깐 이런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한나라당과는 관련없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한나라당의 주장을 비판하시는 듯 한데, 한나라당의 주장에는 일절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슷하다면 어디까나 우연~. 아무튼 김삿갓님의 그 '언급'을 계기로 '어떻게 처단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만, 전혀 엉뚱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즉- 입법후의 처단이나 징계의 의견차이의 조율에 관한 것.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므로, 입법안 통과가 의미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미남/신기남씨 부친은 친일행위자 맞습니다. 신기남씨의 거짓말은 비난받아 마땅하지요. 대통령 부친의 창씨개명은 당시 힘없는 일반인들의 창씨개명할수 밖에 없었으므로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단 창씨개명을 선동했다면 죄가 되겠지요. 이미경 부친역시 친일행위자겠지요. 이미경씨의 고백은 비난받을 이유 없습니
다. 김희선씨의 경우는 아직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조사대상을 축소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열우당의 상정안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부족하다면 더 강화시키라고 주장해야맞지요. 과거와 같은 열의가 없는것은 솔직히 반대파들의 방해때문 아닌가요?
게다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든 법이 집행단계에서의 조사범위에 대해 객관적 입장을 지닐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 정치가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 및 재력가라는 유명인의 가계를 중심을 한 집중적 연좌제는 비유명인 매국노에게 면제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기도 합니다.
친일청산법때문에 여당지도부들이 죄다 당한다 하더라도 법은 통과되어야 합니다. 열우당이 비록 반대파제거를 위해 법을 상정했다 하더라도 그 법이 친일청산의 기초가 된다면 통과되어야 마땅합니다. 청산법의 통과는 처단징계와는 상관없습니다. 진상규명과 과거사회복이 목적이니까요. 결코 의미없지 않습니다.
신기남 의원은 의장직을 사퇴하면서 거짓말해서 사퇴하는게 아니라, 부친이 친일파라서 사퇴한다더군요. 솔직히 어이가 없는 일. 그럴거면 왜 돈안되는 의장직을 사퇴하고, 돈 되는 의원직은 사퇴를 안하는지 의문입니다. 이미경 의원의 경우 신기남의원 거짓말이 들통나고 나서 고백한 것으로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는 막연
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김희선의원의 경우 부친의 친일의혹은 단순히 의혹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사실로 단정지을 수 없지만,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그러나 그녀의 조작은 사실로 판명났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며 선거운동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 친할아버
집행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국회에서 지적하고 바꿔야 하지요. 그것이 국회가 할 일이지요. 과거 반민특위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만든 법이고 집행과정에서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김구선생님이 살아와서 친일청산법을 상정한다 해도 그것은 정치적목적을 가진 법이 될것이며 주관적일 오류도 있습니다. 결국
지도 아닌 할아버지.. 그것도 본관이 다른 할아버지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런식으로 따지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닌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선거에 이용했고, 많은 이들을 그녀를 독립군 장군의 직계 손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확실한 조작이겠지요.
님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친일청산은 현실적으로 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연좌제는 법률적으로 금지되었고 지켜질 것입니다. 사회적 연좌제는 어쩔 수 없겠지요. 과거 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풀어야 할 문제니까요. 연좌제 걱정한다면 앞으로 평생 친일청산 하지 말자는 말이지요. 그 말은 곳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매국행위를 할 수 있고, 국가가 사후처벌하면 안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누가 목숨걸고 독립운동하겠습니까?
계속적으로 서로의 상반된 견해를 재확인하는 것 같아 논의의 실익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차분한' 분을 만나 뵙게 된 것은 잘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좋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신기남, 이미경, 김희선이 해댄 짓거리가 맘에 안들어서 욕을 하시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전 그건 관심없어요. 개내들 욕하는게 우선순위가 아니라 친일청산법 통과가 우선순위니까요. 님의 우선순위는 뭔가요?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정치인의 정쟁과 지금 해야할 역사의 숙제는 분리해서 판단하자는 것입니다. 열우당을 지지해서 법통과를 주장하는짓이나 한나라당을 지지해서 법통과를 막는 짓이나 본질적으로 똑같습니다. 그런 분들의 기준은 역사의식도 문제해결도 아닌 단지 '당'일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친일진상규명법 상정반대를 빌미로 한나라당의 대중적인 지지율은 떨어질것입니다. 물론 감춰놓은 비자금을 억수로 풀어서 아줌마와 할머니들한테 삼계탕을 돌리고 노인네 유권자들 한테 돈봉투를 돌리면 세 불리기가 가능할려나... 그러면 박근혜 대표를 2선으로 내놓고 새로운 모델을 내세우겟져..
요즘 이회창 띄우기를 하려는 것 같더군요....ㅎㅎㅎ
말이 필요없습니다. 정말 명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회창은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서 하루아침에 말바꾸기 수도 없이 한 노모씨하고 같을리가.. 쉽게 정계에 재기하지 않을것으로 봄
친일파의후예 이회창 아닌가 ~
김영삼 밑에서 총리해먹고 한나라당에서 총재먹고 대선후보까지 먹었다가 민심변하니까 바로 인형에 불질렀던게 원칙이라면 원칙이지요. 과연 대쪽이회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