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신파극 외 1편
전 영 관
소중하다는 뜻으로 당신 없으면 못산다 했다
당신 덕분에 이만큼 살았다고 으쓱거렸다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 중요하다는 말이 족쇄가 되어 나 걱정할까봐 한 마디도 못 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 자신이 아픈 걸 감추면 어쩌나 그러다가 병만 키우다가 돌이킬 수 없으면 어쩌나 겁이 났다 꼼바리라서 혼자 남을 나부터 걱정했다 서로의 알약 개수를 헤아리며 살았다
아프면 내가 낙심할까봐 감추겠지
튼튼한 척하면 내가 마음껏 기댈 것을 알겠지
우리는 이렇게 주말연속극 같은 시소에 앉아 있다 시소는 기울게 마련이라며 실망하지 말고 세상의 그런 서늘함을 수긍하라는 뜻 아닐까 당신 소중하다 고맙다는 말을 해도 공치사하지 않을 사람이지만 속마음을 꺼내지 말아야겠지 그러다가 무심하다고 낙심할 테니까 속으로만 새기고 자주 웃어줘야겠다 운동해서 서로에게 튼튼한 간병인이 되자고 공원을 걷는다
우리가 웃어서 벚꽃이 피고 우리가 웃는데도
찬바람은 꽃잎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공원까지 비둘비둘
패배가 일상이라서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를 선망했는데
나방이나 잡아먹는 부엉이 다큐에 실망했다
개는 배를 드러내며 복종의 뜻을 보이고
비둘기들은 자신을 수긍하듯 발밑에서 주억거렸다
머리 높이 나는 새의 등을 내려다본다는 것은
그들 나름의 굴욕이겠지
신의 횡포를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처럼
먹이 주지 말라는 표지판 아래 모여 있다
신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새를 무용수로 고용했겠지만
지상에서의 걸음걸이는 알려주지 않은 것 같다
비둘비둘 돌아다니다가
어느 하나를 따라 전체가 날아오른다
비행이 아니라 도주하는 몸짓이다
가로등 위에 모여앉아 내 정수리를 보며
땅에 갇힌 두 발 짐승을 비웃었을 것이다
얼어 죽은 물들이
행인들을 넘어트려 함께 죽자고
어둑발 속에 엎드려있다
알려주지도 못할 일이라서 바라만 보았다
아이들은 영혼이 푹신해서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려는 녀석이 정상에 이르러
환호하며 내려오기를 기대했다
신도 고심 끝에 최후의 심판을 내리겠지만
우리는 자신에게만 가혹한 즉결심판이라며 불평한다
전영관충남 청양 출생. 2011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