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구(成軀)-시신(屍身)대신의 몸체 육신(肉身)을 만듦.
1. 준비한 율목판에 필묵(筆墨)으로-품계(직위)-본관-생년-이름- 지구(之軀)를 쓴다.
가. 예1) 본관이 남양이고 정사년생 학생 홍길동의 경우
학생남양홍공정사생길동지구
學生南陽洪公丁巳生吉童之軀
나. 예2) 본관이 청송이고 갑오년생 관직 없는 심학규의 경우
학생청송심공갑오생학규지구
學生靑松沈公甲午生學奎之軀
다. 예3) 본관은 창녕 을미생 남편의 관직이 없는 성향단의 경우
유인창녕성씨을미생향단지구
孺人昌寧成氏乙未生香丹之軀
생년(生年)을 쓰지 않고, 학생청송심공학규지구 學生靑松沈公學奎之軀 또는 유인창녕성씨지구 孺人昌寧成氏之軀 라 쓰기도 한다.
◎ 몸 구(軀)를 널 구(柩)로 쓰는 것을 보고 정중히 연유를 물었더니, 널 구(柩)는 명정(銘旌)에 쓰는 글자라 시며 솔직히 실수를 인정하시고 정정(訂正) 하시던 어느 선배(先輩)의 넓은 도량(度量)을 체험한 바 있다. 선배님의 넓은 도량에 경의(敬意)를 표합니다.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전사하여 시신(屍身)을 수습하지 못한 위인(偉人)의 행록(行錄)에는 고인(故人)의 유품(遺品)인 의관(衣冠) 또는 의대(衣帶)로서 초혼 장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지에는 머리만 있고 몸체가 없는 관우(關羽)의 주검에 나무로 다듬은 몸체를 만들어 장사했다고 쓰여 있다.
◎ 구전(口傳)에 의하면 고려(高麗)를 개국(開國)한 왕건(王建)이 견훤 에게 팔공산전투(대구(大邱))에서 위기(危機)에 몰리자 신숭겸이 왕건 행세를 하고 적진(敵陣)으로 돌진(突進)하여 싸우다가 장열(壯 熱)히 전사(戰死) 하였고 몸은 찾았으나 머리를 찾지 못해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사(葬事)지내고 그 묘소를 공개(公開)하지 않았다 고 한다.
◎ 군입대(軍入隊)를 하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두발, 발톱, 손톱 을 조금씩 잘라 보관하던 시절도 있었다.
※ 학생김해김공신위(學生金海金公神位)나 유인수원백씨지령(孺人水原白氏之靈)이라 종이에 쓰서 어떤 의식(儀式)없이 조고(祖考)와 조비(祖妣)를 새긴 표석(表石)아래 집어넣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을 보노라니 우리의 예(禮)문화(文化)는 어디로 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숭조정신(崇祖精神)일까?
이는 정신문화(精神文化)의 말살(抹殺)이니 그 다음에 전개(展開)될 내일의 우리후손(後孫)은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하나, 하는 의구심 (疑懼心)이 들고 자괴지심(自愧之心)마저 생겼다.
혹시 그분은 매혼(埋魂)을 매장(埋葬)으로 곡해(曲解)한 것이 아닌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이 때 쓴 신위(神位)나 영(靈)은 영혼을 의미(意味)하는 글자이다.
묘(墓)는 매장(埋葬)할 때 육신(肉身)을 땅에 묻는 일이지 영혼(靈魂)을 땅에 묻는 일이 아니므로 이는 잘못된 예절(禮節)이다.
체백(體魄, 肉身)은 음(陰)이니 땅(地)으로 돌아가고 영혼(靈魂)은 양 (陽)이니 하늘(天)로 승천(昇天)한다는 것이 우리 선조(先祖)들의 전 통(傳統)사고(思考)이며 모든 예서(禮書)에는 이렇게 정리(整理)되어 있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78-15
E-mail : chungo0413@hanmail.net
청오가례문화연구소
H.P 010-4216-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