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곳도 없다,
물러설 곳도 없이 고립된 그곳,
그들의 목숨이 강화도에 갇혔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목숨을 바쳤지만
조국은 그들의 시체를 길바닥에 버리고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다.
현충일 날 다시 소환해 보는 죽음의 현장
몇 길 얼음 속에 갇힌 불꽃처럼
역사 속에 박제된 그들의 죽음은 참말로 스산하다
https://youtu.be/FcxEI4v8ASY
1871년 오늘, 6월 9일에
강화 황산도에 머물던 미군의 군함에서, 미 해병대가 초지진을 공격하면서
조. 미전쟁, 조선과 미국의 1차 전쟁이라는 전투가 발발했는데,
신미양요라고 부른다.
전투기록에서 숫자를 찾아보다 보면 증말로 알다가도 모를 전쟁이다.
전쟁의 결과는 조선의 전략적 승리( 미국의 개항이 실패했으므로),
미군은 전술적 승리라고 표현하는데, 승리한 조선군이 최후 격전지 광성보에서
350명 전원이 몰살당했다. 미군은 3명 사망, 그중에 한 명은 자기들끼리 오인사살로
또 한명은 바위를 기어오르다 추락사
조선군은 남북전쟁을 거치며 정예화된 미 해병을 상대로 장렬하게 싸웠으며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단 한 명도 도망가지 않고 장렬하고 의연한 전투를 치렀다.
미군의 기록에는
조선군 사망자 350명 중 250명은 전사자, 100명은 염하강에 투신자살을 했다.
조선군 350명을 몰살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고 기록했다.
미 해병은 초지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로 접근해서 인근 야산인 대모산에
대포를 설치하고 광성보의 유일한 퇴로를 막았다.
이 상황에선 3면이 절벽인 광성보에서 몰살할 때까지 단 한 명도 도망갈 수가
없게끄름 지형이 돼있다.
조선군은 12겹 솜으로 된 갑옷을 입었는데, 포탄의 불길로 면제 배갑에
불이 붙어 생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염하강에 투신해 자살한 인원이
100명이었다고 한다.
조선군의 화기는 머스켓, 일명 화승총으로 1분에 한발 쏘고 사정거리 50여 미터,
미군의 화기는 레밍턴 소총 1분에 10발 사격가능, 사정거리 400미터.
미군의 60파운드 포는 내장 폭발형이고 조선군의 포는 임진왜란 때 쓴 총통류로
쇠구슬을 발사했다. 대략 전력 차이는 1대 50 정도라고 한다.
조선정부의 기록은 다르다
전사자는 50명이다. 거짓이거나 급조한 전투자 명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에는 병인양요 때처럼 강계포수 등 전국의 호랑이 사냥꾼이 전투에 동원 됐다지만
실제 그들은 한양에 훈련도감에 있었고 광성보에 가지 못했다.
조선군의 주력 무기는 화승총이 아니고 편전 - 화살일 가능성이 높고, 애기살
편전의 화살 공급만이 확인된다.
올킬, 광성보의 조선군은 350명이 흙과 돌을 던지며 미군에 항전하고 항복이란 단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그들 모두가 전사했다. 그냥 패닉상태에 빠진 조선군을 집단 학살 했다는
표현이 더 사실적이지 않으까?
위 사진이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인데, 양요 때 죽은 조선군 중 이름을 알 수 없는
100여 명의 무덤을 10여 명씩 모아서 봉분을 만들고 묘지를 조성했다.
미군이 전사자를 끌어 모아 화장을 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고, 유교전통의 조선에서
시체를 불태운 미군의 만행에 유가족들은 절규했다. 광성보 이 잔혹스런 망각의 현장을
직접가 보면 가슴이 싸아 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조선이란 나라가 이때 증말로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병자호란의 두 남자, 김상헌과 김상용
김상헌이란 사람,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판 최명길이 작성해 온 항복문서를 박박 찢으며
길길이 날뛰었던 그 사람이다. 결사항전과 같이 죽자를 외치던 직진파.
영화 남한산성에서,
그는 단식을 하며 농성하고, 인조가 삼전도로 나가 항복하자
왕이 머리를 박고 삼궤구고두의 예를 할 때
할복 자결을 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자살하는 요대목이 이 영화에서는 크럭스 구간이다,
실제로는 그이가 죽지 않았다.
영화의 원작인 김훈의 동명 소설 남한산성에서도
그이는 죽지 않고 폭약으로 자폭한 형의 시체를 수습하러 강화도로 떠난다.
황동혁 감독이 영화에서 김상헌을 죽인 이유는 뭘까?
실제에서는 김상헌이 일가친척을 마당에 다 불러놓고 대들보에 목을 매달았다.
주화파의 핵심인물 최명길이 김상헌의 자살소동에 대해 일갈을 한다.
자살을 하려면 혼자 죽으면 될 걸 일가친척을 마당에 다 불러놓고
대들보에 목을 매는 심사는 어인 쑈란 말이냐? 고
황동혁도 이에 동조하는 걸까?
병자호란이 낳은 영웅 김상헌은 여든이 넘도록 잘 살았다.
명, 청교체기 세계대전을 눈앞에 두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들, 역적 배신자로 찍힌 최명길도 충신이었고
김상헌 그도 동양에 둘도 없는 충신이었다.
단지 관객이 볼 때,
제정신으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영화에서 최명길 한 사람뿐이다.
죽어서 영원히 살자며 일전 불사를 주장하는 이들의
현실인식이 결여된 게 아니라. 현실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380만을 동원한 영화는 본전도 못 찾고 막을 내렸다.
현실과 주장하는 명분과의 거리, 현실인식이 문제였다.
김상용은 김상헌의 친형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 신주와 빈궁, 원손을 데리고 강화도로 피신했다.
청에 의해 강화도가 점령되자 온몸에 화약을 쌓아 올려 이를 터트리며 장렬하게
순국했다. 고 전해진다.
이상하게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장열 하게 순국한 김상용이,
전후 1등 공신의 논공에서 항상 제외됐다.
전국의 척화파들이 상소가 빗발쳤다. 그 이유인즉 강화도가 함락되자
강화 남문에서 김상용이 자폭할 때 그의 어린 손자가 옆에서 함께 죽었다.
김상헌이 일가친척 앞에서 목을 매는 거도 이상하지만
김상용이 자폭하면서 손자와 함께 죽었다는 거도 이상하다.
담뱃불을 붙이다 실화로 화약이 터졌다는 주장이 연이어 나왔지만
인조는 김상용의 장렬한 전공을 인정했다.
이를 기점으로 인조반정의 공신들이 밀리고 사림파들이 득세했다.
반정 1등 공신 영의정 김류의 아들은 강화도 방어 실패의 책임을 지고 교수됐다.
그가 강화도 전투 사령관, 검찰사 김경징이다.
후금이 강화도에 들어오자 몰래 야반도주를 해 전후 잡혀 교형에 처해졌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그러니깐 그해 겨울에 김상헌의 척화파들은
청과 단교를 선언하는 사신을 보내고 홍타이지의 대관식에 간 사신은 절하는 걸
거부했다. 인조는 전국에 선전교서를 날리고 청에 대한 실제적인 선전포고를 했다.
압록강이 얼어붙고 전쟁이 시작되서는 일주일도 안 돼서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청의 선발대에 의해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과연, 호언장담하던 인조의 앞길을 막은 청나라 군대는 몇 명이었을까?
마부대의 철기병 300명이었다,
청의 8기군 철기병이 압록강을 넘은 지 6일 만에 하루 90킬로 속도로 달려와
강화도로 가는 인조의 발목을 잡았는데 그 인원이 고작 300명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기본 군 편재는 철기군이었다. 겹 갑옷으로 무장한 8로
철갑기병으로 이 철기들이 1억 5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명나라를 격파하고
대륙을 장악했다. 당시 청나라(후금)의 인구는 150만 명.
명청 교체기의 후금과 명나라의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5천만 명으로
추산한다. 사실상 이 전쟁은 기록되지 않은 1차 세계대전인 셈이다.
병자호란 당시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는 최명길의 서신에는
조선의 백성 5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팔리고 있다고 했다.
강화도로 피신한 여인들은 서로를 핍박하며 다투어 염하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다.
당시 한양의 인구가 10만 명인데 이 무슨 되지도 않는 숫자인지.
김상헌 류의 척화 주전론자들은 명나라가 망하고도 200년 동안 척화 숭명,
명나라를 섬겼다. 이게 그들의 현실인식이었을까?
청와대 옆뎅이 무궁화동산이 청음 김상헌이 태어난 곳이다.
이 자리는 김상헌이 태어난 곳이고, 정선이 이웃 유란동에 태어나서
인왕제색도를 그린 그 자리이고 영화 효자동 이발소가 있던 자리이고
바로 10,26의 총성이 울린 궁정동 안가 자리이다.
조선시대 서울엔 47방이 있었고
북부 10방 중 으뜸이 순화방이었다.
지금의 자하문터널에서 경복궁역으로 내려가는 자하문로 양쪽이 옛 순화방이다.
지금의 청운동, 경복고자리가 당시 순화방 유란동이고, 무궁화동산 자리는 장동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당인 이 장동에서
정선은 인왕제색도와 장동 팔경첩 등 국보급 진경산수를 수도 없이 그렸고
명문세족 안동김 씨 경향파인 장동김 씨가 이곳에서, 조선 중화사상을 시전하고
수백 년 세도정치를 구가했다.
정선의 장동 팔경첩에 청풍계라고 그려진 위 사진은 지금의 자하문 터널 왼쪽
윤동주 언덕 가기 전에 있다. 인왕산 자락길을 가다가 구름다리가 있는 곳으로
언급한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살던 곳이다. 이 조선 최고의 명당은 현재 현대그룹의
정 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
이곳이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침대 축구를 하며 세도정치를 한 곳.
통치 이념인 성리학은 이데올로기로 되고 현실적인 탄력성을 상실하고 국제정세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들에게 성리학은 탐욕스런 정신 승리의 명분이었다.
첫댓글 김상헌과 최명길이 대비되는 남한산성이었지요.
둘다 충신이었지만 현실을 보는 눈이 달랐기에...
김훈님의 소설을 읽고 나중 영화로도 보고, 극중 인물에 나를 넣어놓고 난 어느 인물과 같은 판단을 했을까?
역사의 결과를 아는 입장에서는 최명길이지만 제 성향으로 봐서는 답답한 김상헌이었을 걸로...
최명길이 언 강길을 인도한 노인에게 함께 가자 권했지만 노인이 거절하자 그를 죽이지요. 그 장면에서 '정치'라는 것에 비정함이 따를수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스터션샤인.
강포수가 고종에 대한 원망을 키운 싸움이 신미양요였나요?
두 주인공의 러브라인도 절절했지만, 의병활동을 하는 아무개들에 대한 이야기도 맘 저리게 했지요.
덕분에 ost를 다시 들으며 그와, 그녀에 대한 애잔한 맘이 들었습니다.
오늘 월차 내셨어요?
평소에는 댓글 못쓰는 일하는 시간인데...
우리의 한이 서린 염하강에
우리 식구들 손잡고 한 번 같이가요.
복잡스런 세상사,아마도 맘이 차분하게 정화될 수 있지않으까요
@아까 선배님이 차분한 설명과 함께 리딩해 주신다면
저야 열심히 식구들 손잡고 따라가죠^^
@눈솔 ㅎㅎㅎ
갑자기 감고들어오시네요.
근데 회사 짤렸어요?
점심 때 아니면 댓글 못다는 분인데.
하여
쭝국,
일본과는
차원이 틀린 우리조국 대한민국입니다.
뚱국은 거대한 영토, 인구,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강 열강 사개국에 이미
조계지를 내 주었고,,
영국 사부작 사부작 차를 팔다가 “아편”으로 몰락하였고 전쟁에서도 폭망!
일본 청일전쟁당시 이홍장이 혼수 자금을 직접 일본 본토까지 들고 가서 무려 일본 3년치 국고를 드리며 국욕적 항복
에도막부 패리제독 같은 영광도 못누렸던
우리나라 상륙작전(일본은 바로 항복!)
민주주의 역시 민주주의가 아닌
막부 체제 이후 메이지 유신. 천황중심의 알다가도 모를 민주주의? 사회. 일본 사회
반면
저희
조국
대한민국은..
https://youtu.be/3JsuCo5eMk0?si=FKINfI8CqWTmr1z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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