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드는 것이다.
따사로운 볕이 시나브로 드는 것이다.
푸릇푸릇한 기운에 은근슬쩍 젖어드는 것이다.
문득 둘러보면 봄은 어느새 곁에 와 있어서다.
곁에 와있는 봄날이 넘 좋아서 남해안의 여자도로 떠났다.
여자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이다.
여자만(汝自灣)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여수 화양면의 섬달천에서 4.2㎞ 떨어져 있다.
대여자도와 송여자도가 다리로 여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주위에 몰려있는 도서의 배열이 공중에서 보면 ‘너 여(汝)’ 자형이고,
육지와 너무 멀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에서 여자도(汝自島)라 했다고 한다.
섬달천항에 도착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선착장 위에 있는 <섬 그리고 달>카페에서 오래오래 쉬었다.
실내 분위기가 세련되었고, 옥상에 인증샷을 위한 시설이 많이 있었다.
섬달천항에서 11시 40분에 출항하는 여자호에 탔다.
여자호는 25톤에 정원 45명인데 마을 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매표소가 따로 없고 배안에서 사무장이 왕복요금 만원을 한꺼번에 받았다.
배는 잔잔한 여자만을 가로질러 부드럽게 나아갔다.
여자만(汝自灣)은 전남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의 바다이다
등대가 있는 무인도 돈북섬을 지나면 바로 송여자도에 도착한다.
여자호는 약 20여분 만에 송여자도에 도착하였다.
모든 섬마을이 그렇듯이 고즈녁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송여자도 선착장 끝에 ‘여자도 유래와 둘레길’ 안내판이 있다.
둘레길 안내도의 오른쪽 방향으로 나아갔다.
근처에서 일하는 어르신께서 40분이면 한바퀴 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송여자도(松汝自島)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크기가 작아서 ‘소여자도’라 했는데 지금은 소나무가 많다 하여 송여자도로 불린다
섬의 이름답게 소나무가 울창하고,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커다란 의자와 안내도 있는 곳이 정상인 ‘큰등’이다.
산이라기보다 평범한 구릉 정도로 봐도 좋다(해발 48.3m)
소나무 사이로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조망된다.
목판화처럼 정지된 듯한 평화로운 풍경이 일품이다.
남부 해안지방에서만 자라는 비파나무 단지가 나타났다.
비파나무는 잎이 중국 악기인 비파와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서남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남해안에서 자란다는게 행운이다.
비파나무는 10~11월에 꽃이 피며, 열매는 다음 해 6월에 노란색으로 익는다.
비파는 주로 잎을 약으로 사용하고 열매를 먹기도 한다.
옛날부터 비파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집안에 병자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마을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대규모로 재배하는 매화보다 한두 그루씩 자라는 이런 모습이 좋다.
우측 해안가를 걷는 따라 걷는 풍광은 그야말로 봄날의 왈츠다.
옥빛 바다에 고즈넉하게 떠있는 납계도와 동굴섬이 보인다.
높이가 8m밖에 안되는 아주 납작한 섬이어서 ‘납닥섬’이라고 불리웠다
어느날부터 납은 납(納)으로 닥은 계(鷄)로 하여 한자로 납계도가 되었다.
왼쪽에 있는 작은 섬은 동굴섬인데...모양이 동글동글해서 동굴섬이 되었을까?
큰등에서 데크를 내려오면 바닷가에서 송여자분교터를 만난다.
폐교된 송여자분교는 지금은 민박집으로 개조되었다.
요정들이 달려나와서 반겨줄 것 같은 동화의 나라에 서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100m만 더 가면 붕장어다리 입구다
"변소 찾소"
투박한 전라도 말투가 느껴진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담겨있는 문장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여자도와 송여자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보인다.
붕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다리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인도교다.
그래서 사람들이 ‘붕장어다리’라는 애칭을 붙였다.
다리 입구에 있는 ‘夢(꿈)’이란 제목의 낚시를 하는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월척을 낚아올리는 낚싯꾼의 흥분한 표정이 정말 생생하다
월척을 낚는 모습의 조형물이 인도교에 있는 이유는 바로 7개의 교량 낚시터가 있기 때문이다.
붕장어다리의 양쪽에는 시를 새긴 나무판들이 걸려 있었다.
<섬에게 배우는 사랑법>, <여수 1202>, <여자도> 등의 시가 정감 있었다.
붕장어다리를 건너 대여자도로 곧장 직진하면 싱겁다.
대여자도의 매력은 다리 끝에 있는 우측 해안 데크에서 시작된다.
곰보빵처럼 울퉁불퉁한 기반암은 마치 공룡 알집처럼 보인다.
박혀 있던 돌조각이 빠져나가고 염분은 주변 암석을 깎아 더 큰 구멍을 만들게 된다.
벌집처럼 보이는 지형을 타포니라고 한다
데크를 따라가면 여자도만의 숨은 비경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검은모래해변이다
경치 좋은 해수욕장이 3개나 연달아 있다
200m 길이의 데크 끝 부분부터 암반지대다.
수직 절벽에는 용틀임하듯 용암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다.
검은자갈해변 끝 큰 나무에 달린 표지기를 따라 시멘트길로 올라선다.
섬은 외롭지 않습니다
조용한 사랑을 하고 있어 외로워 보이는 것입니다
파도가 철썩철썩 그의 몸을 때려도
갈매기가 끼룩끼룩 그의 마음을 흔들어도
섬은 수면 아래에서 건너편 섬의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사람도 한 점 섬입니다
손이 둘씩이나 있는.............................................................................................정철 <섬에게 배우는 사랑법>
개미허리길을 지나 대동마을로 들어섰다.
경로당에 마을의 할머니들이 모여 계셨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계셨지만 평화로워 보였다.
경로당 앞에는 여러개의 공덕비와 효열비가 세워져 있었다.
약 400년 전 남원 방씨가 처음 이 섬에 들어와 살았다는데...역사가 느껴지는 유적이다.
대동마을의 선착장에는 십여 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었다.
마을 입구 봉우리 끝에 한국 전력공사가 보인다.
숙원이었던 내연발전소가 1994년 4월의 점화식을 계기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하루 다섯 시간의 제한 송전 시대가 24시간의 문화 시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마을 안쪽 바닷가를 바라보면 낮은 지대에 학교가 있다.
폐교된 소라초등학교 여자분교장이다.
여자분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풍광이 아름답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바다로 빠질 것 같은 아주 아담한 운동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바닷가 쪽에 쌓은 담장의 높이가 매우 높다.
학교 너머 해변에는 골짜기가 있는데 ‘샘북넘’이라고 한다.
‘샘 북쪽 너머’란 지명을 줄인 말로 여겨진다.
바닷가에서 장정 열 명이 들어도 들지 못하는 바위를 최 장군이 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파지마을로 가는데 저 멀리 매물섬이 보인다.
매물섬에 흑염소 몇 마리 풀어놓고 유유자적하는 꿈을 꾸며 걸었다.
여자도는 동남쪽으로 길게, 그러면서 폭이 좁다.
그래서 대동 마을에서 마파지로 가는 길목은 말 그대로 길목이다.
남풍 즉 마파람이 부는 마을이어서 ‘마파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도선을 타는 방파제 입구에 마파청년회에서 세운 마파지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작은 섬에 교회가 셋이나 있다
여자 대동교회, 여자 중앙교회, 송여자생명교회....
송여자도 둔덕에 세워진 송여자생명교회는 위치가 기막히다.
마파지마을에서 붕장어다리를 건너 다시 송여자도로 간다.
주민들은 지네 모양과 흡사하다 하여 ‘지네다리’라고도 부른다.
밋밋한 일자 형태가 아니다.
좌우로 위아래로 요동치는 커다란 붕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붕장어다리 입구에 <제주댁 쉼터>가 있다
제주에서 시집온 여인이 주인인가?
젊은 부부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활기차다.
예약하면 식사도 해준다니 기대가 된다(☎010-2231-9746)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송여자도로 돌아왔다
마을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였다.
땅바닥을 뒹구는 동백꽃잎만이 우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송여자도선착장에 있는 솔섬(동도)은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널 수 있다.
그러나 건너가 봐야 보잘 것 없을 것 같아서 눈으로만 보았다.
뱃시간이 많이 남아서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하였다.
산기슭에서 쑥을 캐기도 하였다.
송여자도에서 오후 5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