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 님이 부른 바위고개]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 피는 꽃 진달래 꽃은
우리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 고개 원곡]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 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우리임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는 월북 극작가이자 연출가 이서향 작시 이흥렬 작곡의 가곡입니다.
이흥렬 작사 이흥렬 작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서향의 시입니다.
"바우고개"는 조영남, 문주란 등 여러 가수들이 부른 노래로, 두 노래는 가사가 똑같은데 "바위고개"와 "바우고개"만 다릅니다.
이서향의 원작에는 "바우고개"로 되어있습니다
"바위고개"는 한국 초기의 예술가곡입니다
이흥렬 선생이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듬해인 1932년 9월
고향인 원산에서 작곡해 1934년에 발간한 그의 첫 작곡집인 <이흥렬 작곡집>에 수록된 곡입니다.
그 당시에는 작사가 이름이 이흥렬 선생의 고향 6년 후배이자 제자인 극작가 이서향 (본명: 이영수, 1915 ~?)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서향이 1948년 가족을 버려둔 채 월북함으로써 월북자의 작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당시의 법규로 인해
작사자의 이름을 이흥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서향이 14살 때 습작한 시인데 그가 월북하면서 ‘곡을 살리기 위해’ 이흥렬 선생이 손보아 본인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서향은 인제대와 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 씨의 맏딸 백란영 (1915~2015)씨의 남편이었습니다.
1929년 재일본 노동자 연극단체인 조선어 극단에 참여함으로써 연극에 입문하였습니다.
193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제방을 넘은 곳」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였으며 희곡 「어머니」(1936), 「다리목」(1938),
「봄밤에 온 사나이」(1941)와 함께, 소설 「밤차」(1936), 「초연기」(1937)를 남겼습니다.
이서향은 1940년대 친일 연극 활동에도 깊이 관여한 채 광복을 맞게 됩니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 연극 운동에 가담하여 조선 문학가동맹 희곡부 위원장을 맡기도 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연출에 힘을 쏟아 월북하기까지 많은 연출 작품이 있습니다.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에 참가했다가 38선 이북에 그대로 남아 월북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흥렬 (1909~1980) 선생은 이서향과 같은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봄이 오면》 《바위고개》 《어머니의 마음》 《섬집 아기》
《자장가》 《고향 그리워》 등 400여 편의 가곡 작품과 군가인 《진짜 사나이》를 남겼으며, 아름다운 서정적 선율로 인해
‘한국의 슈베르트’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바우(위) 고개”란 명칭은 전국 각지에 무수히 많고 저마다 역사적 사연이나 근거도 다양합니다.
특히 “바우(위) 고개”란 명칭은 전국적으로 식당이나 펜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바우”란 “바위”를 가리키는 경상도나 강원도, 함경도 방언으로써 언덕바지나 얕은 산을 가리키거나
감자가 많이 나는 강원도 출신 사람들을 “감자바우”라 부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사내아이가 튼튼하게 오래 살라는 염원으로 집에서 애들을 그냥 “바우”라고 불르기도 했습니다.
높을 고(高) 자를 앞에 붙여서 융통성이나 센스가 둔하거나 우직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고바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흥렬 선생은 이 노래에 나오는 바위고개가 “상징적인 존재로서 일제에 빼앗겼던 삼천리 금수강산 모두”라고
얘기하였는데, 3절에 나오는 “십여 년간 머슴살이”란 우리 민족의 힘겨운 일제 치하 살이를 빗대어 가리킨 것이고,
진달래는 무궁화를 뜻하여 일제 식민지배 하에 있던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사의 뜻을 외견상 그대로 새겨보면, 바위고개를 함께 넘으면서 이쁜 진달래꽃을 꺾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 뒤에
숨어서 나를 기다려주던 님이 떠나버리고 없는 허전한 마음을 그린 우리나라 초창기의 예술가곡입니다.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 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짓는” 장면을 연상해보면
그 아픔과 외로움이 가슴으로 전해져서 뭉클한 감정이 찐하게 느껴집니다.
낭만적인 감성을 노래한 이 곡은 멜로디가 단순하고 정감이 느껴지며 중독성이 있는 우리의 대표적인 가곡입니다.
1950년에 심연옥이 부른 음반이 처음 출시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성악가들과 가수 조영남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으며,
1960년에 조정호 감독이 김승호/조미령을 주연으로 만든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3박자의 친숙한 왈츠 리듬으로 되어있고,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서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우리 가곡입니다.
일제의 탄압 하에서 신음하는 조국 산천을 바위고개로 묘사하고 무궁화 꽃을 진달래로 비유하면서 민족의 울분을 담아
아름다운 봄의 낭만으로 노래한 명곡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품은 뜻과 멜로디로 인해서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곡으로서, 가볍거나 명랑하게
불러서는 안 되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