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제헌 의원 ( 민의원 )
1948.05.29.~1950.05.31 2년
( 甲 ) 해남면. 옥천면. 삼삼면. 화산면. 현산면. 송지면. 북평면.
( 乙) 계곡면. 마산면. 황산면. 산이면. 문내면. 화원면
갑 :송봉해 (대한독립촉성 국민회의 당선) 생각이 잘 안나면 박정희 대통령 제 2 인자 최지철 생각
그래도 생각이 안나면 해남극장 옆 고려병원 장
윤영선 (한국 민주당 낙선)
을: 이성학 (대동청년당 당선 ) P.M(이성기 백부님...큰아버지) 유명한분 입니다
민영동 (국민회의 낙선 ) ***** 李 聖 學 의원 에 대해서는 17代 하단에 자세한 것을
박기배 (한국민주당 낙선 ) 쓰겠습니다.*****
1950.05.31~1954.05.30 4년
2대 갑 : 윤영선 (읍 연동리 출신)
을 : 박기배
1954.05.31~1958.05.30.
3대 갑 : 김병순 (송지면)
을 : 민영남 (마산면)
1958.05.31~1960.07.28
4대 갑 :김병순
을 :김석진 (해남 종합병원 동국이 큰? 작은 아버지 ?
1960.07.29~1961.05.16
5대 갑 :홍광표
을 :김채용 (변호사 산이면) 5.16 나서.......
1963.12.17~1967.06.30
6대 민영남(해남군 일원)
1967.07.01~1971.06.30
7대 김병순
1971.07.01~1972.10.17 국회해산
8대 임충식(계곡면.육군대장.국방부장관 1968년 7월 취임)
1973.03.12~1979.03.11. (직접선출 6년. 통일주체국민회의는3년)
9대 임충식
1979.03.12~1980.10.27 (10.26사태 임기종료
10대 김봉호(해남읍 출신. 해남.진도 민주공화당. 당기 황소?)
임영득(계곡면. 무소속)
1981.04.11~1985.04.10
11대 민병초( 민한당 )
이성일( 한국국민당 )
정시채(진도출신. 5.18 때 전남 부지사)
1985.04.11~1988.05.29
12대 김봉호(해남.진도. 신한 민주당)
임영득( 전국구 민주정의당)
정시채(
1988.05.30~1992.05.29
13대 김봉호(해남.진도. 평화민주당)
1992.05.30~1996.05.29
14대 김봉호( 해난.진도. 평화민주당)
1996.05.30~2000.05.29
15대 김봉호 ( 국민회의 )
2000.05.30~2004.04.29
16대 이정일
2004.04.30~
17대 이정일 중도........
17대 채일병 보결선거 당선 현역 2006.10.25~08.04.07 현재
이성학 제헌의원 발자취
1906년10.14~1980.10.22
전주고등 보통학교 4년 수료
해남독립촉성국민회 해남군 지부 총무부장
국회외무국방위원회 위원
중앙신학교 졸업
목포 영흥중학교.정명여자중학교 교장 역임
1) 1949.05.26 이성학 등 1949년 8월말까지 완료를 내용으로하는
반민법(반민족행위 처벌법) 공소시효 단축 개정안 국회통과.
2) 1980.05.18 민주화운동
5.18 당시 시민 수습위원회가 처음 꾸려진 남동성당에 참석했던 인물은
홍남순(변호사) 조아라(장로) 이애신(YMCA 장로) 조비오(신부) 김성룡(신부)
이기홍(변호사) 장휴동 송기숙 (교수 ) 명노근 (교수)
추길안. 김천배 이성학(장로) 등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계염군 과 정부에 8가지의 요구 사항을 만는다
1. 사태수습전에 군 투입을 하지마라
2.. 연행자 전원을 석방
3. 군 의 과잉 진압을 인정하고
4. 사후 보복금지
5. 책임면제
6. 사망자 보상.
7.이상이 관철되면 무장 해제를 하겠다
3) 5월 그 빛나던 청년 이성학 ( 영결식장 에서 .......퍼옴)
가을 비가 마른 잎을 적신다
생락하고...
나는 매년 결심을 한다
이성학 장로 라 불리웠던 그분을 위하여 추모식도 결성하고 추모문집 이라도
해야하고 망월동에 풀 한포기라도 뽑아줘야 한다고....
생략
80년 이전 살았던 지식인 이라면 故 李聖學 장로가 얼마나 민주학생.청년들의 민주운동에 같이
동참 했는가를.
생략
80.5.28 일 계엄군이 농성동 으로 집입 할 때도 광주시민을 살려야 한다며 노구를 이끌고 달려가
몸 으로 막았던 분.
피 비린네 나는 도청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시민들을 격려 하셨던분..
고 이성학 장로님 영전에 (추모시 퍼옴)
고난의 가시발길 칠십노구 이끄시고
민주회복 일념으로 싸워온 한 평생
끝끝내 못다감은 눈 먼길 떠나 가시는가
죄인은 죄인되어 쫓기고 쫓기우다
만신찬의 민족의 넑 가슴에 부여안고
불러도 대답없은 민주의 할아버지여
평생에 소원했던 민주회복 아득하고
이땅은 아직도 서러운 통곡소리
어치다 바쁘신 걸음 총총히 가십니다.
제 살점 녹이여 타오르는 촛불속에
깊은주름 하얀머리 반석에선 사자후
돌베게 한평생이 길이길이 빛나리라
사랑했던 빛고을 죽어서도 못잊어
돌아보며 가신길에 젊은 넑을 만나거든
이땅의 슬씀 안부나 전하여 주소서
고단했던 몸둥이 헌옷처럼 벗어두고
주님께 의지하는 가난한 영혼이여
오늘은 고이 쉬소서. 하느님께 안기시소
1980.10.24 영결식장 추모시 문병란
첫댓글 매주야, 제헌의원 해남을구 성자 학자가 우리 큰아버지시다.지금은 천국에 계시지만 유해는 망월동에 모셨다. 우리 아버지는 대전 현충원에 어머니와 함께 계시고.. 이런 자료를 다 어떻게 찾았고 올리냐? 참 대단한 내 친구... 고맙다
알제. 느그 큰아부지........ 그라고 혹시 오류나 오기 가 있으면 등록 해주라....자료 구 하려고 쌩..............
과연 해남군의 호적계는 호적계다. 왼손꾸락 욕 밨다. 그라고 민영남씨는 옴박지하고 뭐 안되냐?
이 성학(聖學) 장로 슬하에 5남4녀를 두셨고 제헌의원 후 목포 문태고 교장. 광주로 옮긴 후 양림동 웃양림교회(위,아래 교회가 두 개 있었음)장로. 박정희대통령 시절 인권운동가로 알려짐. 내가 광주 큰집에 놀러가 있을 때 제헌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대통령이 제헌의원에게 양복감과 한복감을 선물로 보내는데 “독재자의 선물은 받지 않는다”고 호통쳐 돌려 보내시더라. 광주민주화운동때 수습위원이셨다고, 계엄군의 진주때 피신, 그때 형사가 우리 집에도 와서 큰아버님 계신 곳을 묻기도.. 1980년10월 피신중 뇌일혈로 쓰러지셔서 광주로 이송, 바로 숨을 거두시다. 장례는 광주 웃양림교회장으로 엄수,
pm 문태 고 교장이 ? 영흥중학교. 정명여중.교장....역임
삥호! 민씨는 단일본. 여흥민씨 하나뿐 인께 당연히 민씨끼리는 기차철도 인연은 아니제 .........
성자학님의 존함은 들었지만 그렇게 훌륭한 분인 줄 몰랐다. 우리 까페의 존재 이유가 더욱 확실해 지는 것 같다. 그 춘추에 그런 경력과 지위에 계시면서도 인권운동을 하시고 독재자선물을 거절하시는 양심과 기개가 있으셨다니 숙연해지는 감명이 느껴진다. 더우기 우리 친구 성기의 백부님이시라니 더욱 친밀감도 느껴지고.....매주선생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