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대한 한국의 통념 중 하나는 기업이 내는 세금이 왜소하다는 것이다. 이 통념은 사내유보금의 증가, 가계소득 VS 기업소득의 차이 확대 등 통계적 지원사격도 받는다. 사내유보금 등의 통계적 문제 제기가 얼마나 타당한지는 또 별도의 문제이나, 아무튼 한국에는 기업들이 세금을 조금만 내고 참으로 부도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기업이 세금을 얼마나 많이 내는지에 따라 기업의 행실을 판단하려 할 때,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기업들은 바로 덴마크에 꽉꽉 몰려 있다. 덴마크 기업세금의 규모는 GDP 대비로 2.7%인데, 이는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OECD 단연 꼴찌다.
하지만 덴마크는 총세금의 규모가 단연 OECD 1등이며, 최전방의 복지선진국이자 삶의 질 선진국이다. 지금부터는 덴마크의 이율배반과 높은 삶의 질에 대해 살펴보고 그로부터 한국에의 시사점을 짚어 본다.
덴마크의 ‘3F’
신생 벤처기업 PMG의 이강호 회장은 창업 전 덴마크의 세계적인 펌프 제조 회사 그런포스펌프의 한국 법인 CEO를 무려 25년이나 지냈다. 그런포스그룹은 세계 56개국에 80개의 자회사를 운영하며 연간 1600만 대의 제품을 생산하는 초우량 기업이다(송창섭 2013). 펌프 시장 점유율이 세계 최대이고 한국에서도 전국 30층 이상 고층빌딩의 90%에 그런포스의 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강호 회장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펌프 전문 기업에서 역대 최장수 CEO로 근무했다. 이 회장이 그런포스에서 근무한 지난 4반세기 동안 덴마크를 다니며 살펴본 바에 따르면 덴마크에서는 택시 기사도 웨이터도 행복하게 산다.
한번은 덴마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 중에 기사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았더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하며 코펜하겐 같은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 수 있기에 너무 행복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한국인으로서 전무후무한 성공의 이력을 가진 인물 중 한 명이지만 덴마크 택시 운전사의 삶에 대한 태도가 매우 부러웠다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또 한번은, 이 회장이 덴마크의 식당 서빙 종업원들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종업원들은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하다고 느끼며 그 즐거움을 계속 갖겠다는 생각을 보여서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이강호 2014.).
덴마크는 이른바 행복지수란 것이 1등이라며 종종 한국의 언론에도 등장하는 나라다. 그런 덴마크의 높은 삶의 질에 대해 이 회장이 내린 첫 번째 결론은 덴마크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자부심을 갖고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 여기기 때문에 덴마크의 행복도가 높다는 것이 이강호 회장이 덴마크를 관찰하며 느낀 바이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코펜하겐 한복판의 대형 레스토랑에서 서빙 업무를 맡고 있는 클라우스 피터슨 씨를 취재한 적이 있다(오연호 2013). 56세의 클라우스 씨는 17살 때부터 40년간 요리사와 종업원 일을 했다. 지금 직장에는 10년을 계속해서 다니고 있고 그 전에는 한 식당에서만 20년이나 근무했다.
클라우스 씨는 식당 종업원이지만 월급의 36%를 세금으로 내면서 코펜하겐 시내에 아파트도 한 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눈으로 보면 여러모로 희한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여하간에 이 중년의 덴마크 웨이터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며 실제로도 중산층에 걸맞은 삶을 산다.
클라우스 씨의 인터뷰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아들과 동창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쇠수리공인 아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해서 자랑스럽고, 아들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던 적이 없으며, 동창회에 나가서도 자신과 아들의 직업을 거리낌 없이 밝힌다고 한다.
56세의 웨이터 클라우스 씨는 한국에 각별히 중요한 이야기를 전했는데, 바로 그가 가입되어있는 산별노조 ‘3F’이다. ‘3F’는 덴마크 전국의 식당 종업원들이 속해 있는 서비스업 직종의 초기업적 노조로 30만 명의 노조원이 있으며, 클라우스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식당 일을 처음 할 때부터 40년간 ‘3F’의 노조원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 전국적인 산별노조 덕분에 클라우스 씨는 직장에서 부당대우를 받을 걱정이 없을뿐더러, 행여나 실직하더라도 1년 6개월간 매월 약 330만 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에 실직에 대한 걱정도 없다는 설명이다.
뉴욕 타임즈는 덴마크 버거킹 점원의 사례를 통해 산별노조 ‘3F’가 서비스 업계에서 질 나쁜 저임금 일자리를 방지하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한다(Alderman, LizㆍGreenhouse, Steven 2014).
한국의 웹진 노르딕후스(Nordikhus.com)는 스웨덴 맥도날드 점원의 임금과 삶에 대하여, 비즈니스 미디어 Fast Company에서 이를 다룬 기사를 소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서비스 직종의 산별노조 ‘HRF’가 스웨덴에서 서비스업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강력한 배경으로 작용한다(Lorenzo, George 2015).
먼저 덴마크의 사례를 다루는 뉴욕 타임즈의 2014년 10월 27일자 기사를 간추려 보면, 버거킹에서 일하는 햄퍼스 에로프슨 씨는 시급 20달러에 주당 40시간을 근무하며 괜찮은 삶을 살아간다.
시급 20달러는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의 노동자들이 받는 금액의 2.5배에 해당하며 덴마크의 물가가 미국보다 30%가량 높기는 하지만 인생을 살 만하게 해주는 임금 수준이다. (필자주: 미국의 기업세금 규모는 2013년 기준 GDP 대비 5.2%이고 통계가 작성되는 OECD 31개국 가운데 28등이며 각종 최저임금 지표도 대부분 하위권을 맴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의 나쁜 점을 닮아 있다.)
에로프슨 씨 같은 덴마크의 패스트푸드 점원들은 급여 외에도 미국에서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꿈만 꿀 수 있는 혜택을 덴마크에서 실제로 보장받는다. 예를 들면, 5주간의 유상 휴가라든지 여성과 남성 모두의 유급 출산 휴가, 퇴직 연금 등등이다.
덴마크는 법정 최저임금이 없다. 에로프슨 씨의 시간당 20달러는 ‘3F’가 ‘호레스타(Horesta)’와 맺은 노사교섭에 따라 정해지는 최저 시급이다. ‘호레스타’는 버거킹이나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의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를 말한다.
덴마크 법은 ‘3F’와 ‘호레스타’ 사이의 협약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를 준수한다. 이것은 노동조합이 파업이나 시위 또는 구매거부운동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노사교섭을 따르는 대신) 평화를 얻게 되었다고 ‘3F’의 수석 교섭관은 말한다. 이를테면 맥도날드는 과거 덴마크에서 비싼 교훈을 배웠다. 처음 덴마크에 진출했던 1980년대에 맥도날드는 고용주 단체에 합류하기도 거부하고 산별단체협약을 채택하는 것도 반대했다. 하지만 노조가 이끈 1년간의 시끌벅적한 시위 이후에 맥도날드는 노조의 요구에 결국 동의했다.
스웨덴의 ‘HRF’
스웨덴의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삶의 질도 덴마크와 흡사하다. Fast Company의 2014년 10월 28일자 기사에 따르면, 스웨덴 맥도날드의 점원들은 미국의 그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하는 일이 만족할 만한 직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37세의 Bassem Majid 씨는 오래 전에 레바논의 전쟁 난민 자격으로 스웨덴에 정착했다. 그는 15년간 맥도날드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조의 조장을 맡고 있다. 호텔과 식당 종사자들의 노동조합인 ‘HRF’의 노조원이며 자녀 둘의 아버지이자 맞벌이 아내의 남편이기도 하다. 산별노조를 통해 급여를 협상하고 그에 따라 시간당 16달러를 받는 Majid 씨는 자신이 적절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Majid 씨의 동료인 Mohammed Marifa Bah 씨는 아프리카의 시에라이온에서 2007년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7년간 맥도날드 매장에서 근무했고 역시 ‘HRF’의 노조원이며 (덴마크보다 낮은) 시간당 14.5달러를 받는다.
Marifa Bah 씨는 노동조합이 노조원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Majid 씨는 여기 스웨덴에서 혹시 자신이 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가족을 돌봐줄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Majid 씨와 Marifa Bah 씨 모두 패스트푸드 매장의 점원이지만 30%의 소득세를 낸다. 그러나 그들은 스웨덴의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들의 일과 삶에 만족한다.
이상과 같이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근무하는 점원들은 급여에 뚜렷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강력한 초기업적 노조와 높은 세금 그리고 많은 복지에 힘입어 충분히 살 만한 삶을 영위한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의 삶보다 확연히 월등하다. 한국은 미국과 비슷하게 노조, 세금, 복지가 모두 부실한 가운데, 서비스 직종에는 질 낮은 일자리가 넘쳐나고 근무여건과 삶의 질이 형편없는 상황이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바람직한 반비례 관계
스웨덴과 덴마크의 1인당 GDP는 시장 환율(명목 환율) 기준이든 아니면 물가 수준을 고려한 구매력 평가 환율(PPP) 기준이든 별 차이가 없다.
2014년 스웨덴의 1인당 GDP는 시장 환율로 58,538달러이고 덴마크는 60,947달러이다(IMF 2015). 덴마크가 4.1% 더 많아 대동소이하다. 구매력 평가 환율로는 스웨덴의 1인당 GDP가 46,219달러, 덴마크가 44,625달러이고 덴마크가 3.4% 더 적어 역시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스웨덴과 덴마크의 1인당 GDP는 어느 기준으로 보든 거의 차이가 없지만, 조금 전 뉴욕 타임즈와 Fast Company의 기사에서 본 것처럼 햄버거 체인점에 근무하는 점원들의 시급은 덴마크가 38% 더 많아, 덴마크의 맥도날드 점원들은 스웨덴의 그들보다 꽤나 더 인상된 급여를 받는다.
얼핏 단순히 생각하면, 국가별 1인당 GDP와 급여 수준은 어느 정도 비례하는 것이고, 또 그래야 경제성장에 따라 물가가 오르더라도 임금과 생활 수준이 그 이상으로 향상될 수 있는 것이므로, 스웨덴의 패스트푸드 종업원들은 덴마크의 그들보다 상당히 열악한 처지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사에도 나왔듯이 실제는 그렇지 않다. 스웨덴과 덴마크 간에는 기업이 내는 세금의 양, 바꿔 말해 생활 수준을 높여주는 기업의 복지 기여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기업세금 규모는 GDP 대비 14.4%로 OECD 2위에 올라있지만(1위는 노르웨이 14.5%), 덴마크의 기업세금은 2.7%로 OECD 꼴찌이며 스웨덴보다 말도 못하게 작은 규모이다.
이것은 ‘적절한 생활수준을 담보한다’는 전제하에, 임금이 올라가면 기업의 세금이 내려가고 기업의 세금이 많아지면 임금이 작아지는 ‘바람직한 반비례 관계’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의 <표 01>에서 한국의 경우까지 포함하여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스웨덴과 덴마크의 비교 & 한국에의 시사점
스웨덴의 기업이 내는 세금은 스웨덴 복지의 절반을 구성한다. 반면에 덴마크의 기업들은 세금을 통해 복지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형편없다. 한국 기업비판자들의 통념대로라면 덴마크의 기업들은 세금을 아주 쥐꼬리만큼만 내기에 천하의 나쁜 놈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어리석다.
1인당 GDP에 대비한 평균임금의 증감률을 보았을 때, 덴마크는 (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는) 스웨덴보다 급여수준이 한결 높다. 그리고 덴마크 국민들은 (스웨덴 국민보다) 풍성한 급여를 받아 [소득세+소비세+직원 사회보험료]를 압도적으로 많이 납부하며 유명한 덴마크의 복지를 일구어낸다.
한국 기업비판자들의 반대편에 있는 주장도 한쪽만 바라보는 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기업이 내는 세금, 이를테면 법인세가 참 작으므로 한국에서 기업세금의 인상을 주장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기업세금은 급여 수준과 연동되어 있어 무작정 기업세금의 규모만 가지고 무언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논점으로 기업세금의 증액에 찬성하는 이들이건 반대하는 이들이건, 기업세금은 법인세만 가지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고용주 사회보험료와 나라에 따라 급여세도 동시에 봐야 한다는 것이다(급여세란 쉽게 말해 사회보험료처럼 급여의 일정 비율로 징수하되 사회보험료와는 달리 용처를 정해놓지 않고 보통의 세금처럼 쓰는 세목이다).
기업은 법인세를 통해서도 고용주 사회보험료를 통해서도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기이하게도 오로지 법인세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떨 땐 한국은 복지를 확대하려는 이유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게 아니라, 법인세를 인상하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급여세의 규모가 유달리 큰 나라이다. 스웨덴 내부적으로는 급여세와 고용주 사회보험료를 한데 묶어 고용주세를 징수하지만, OECD는 두 개의 세목을 분리하여 집계한다(최연혁 2011 ; 김인춘ㆍ박지현 2013) 이러한 국가별 상황으로 인해 급여세를 빼놓고 기업세금을 논하다보면 엄밀성이 떨어지게 된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같으면서도 다른 ‘저녁이 있는 삶’
덴마크의 2014년 연 평균임금은 OECD Taxing Wages 기준, 약 40만 크로네이고 오늘자(17.3.19) 네이버 환율로 환산하면 약 6,500만 원이다. 스웨덴의 연 평균임금은 약 41만 크로나이고 한화로는 약 5,200만 원이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1인당 GDP가 거의 같음을 볼 때 덴마크의 급여 수준이 스웨덴보다 꽤나 높다. 하지만 덴마크는 기업세금이 스웨덴보다 한참 작다. 이처럼 스웨덴과 덴마크는 기업세금과 급여 수준에서 서로 대조적이지만 결국 국민을 위한 균형을 찾아낸다는 점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지난주에 [상향평준화에 이르는 길, 덴마크와 스웨덴의 전혀 다른 ‘저녁이 있는 삶’] 제1편 – 스웨덴을 올리면서 덴마크와 스웨덴은 독일 통계청에서 집계한 ‘시간당 노동비용’이 유럽 내 최고 수준에 있음을 설명했다.
여기서의 노동비용은 임금과 임금 외 부대비용(Ex. 고용주 부담 사회보장기여금)을 더한 것인데, 덴마크와 스웨덴은 기업세금의 총량 측면에서 상호 극과 극에 있고 임금 수준도 상이하지만 시간당 기준에서 기업이 직원들에 쓰는 돈은 결국 동일하게 최고 수준에 있다.
기업 입장에서 ‘시간당 노동비용’은 노동자 입장에서 ‘시간당 소득’과 일맥상통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높은 시간당 소득’은 ‘저녁이 있는 삶’의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다. 한국도 ‘저녁이 있는 삶’을 보편적으로 성취하려면 시간당 소득을 높여야 하는바, 그 방법으로서 여태까지처럼 기업이 세금도 더 내고 임금도 올려야 한다는 식의 막무가내는 곤란하다.
기업의 세금을 인상하거나 임금을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기업세금과 임금 수준 간의 균형점을 ㅡ 사회적 타협이든 학자들의 계산을 통해서든 ㅡ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균형점을 찾을 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전제는 노동자 간 격차를 노동자 스스로가 줄이는 데 협조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그들 내부적으로 격차를 축소하는 일에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높은 시간당 소득’도 ‘저녁이 있는 삶’도 고르게 확보할 수 없다.
과도한 격차로 말미암아 일그러진 한국의 기업세금과 급여 수준
이제 한국을 보면, 1인당 GDP에 대비한 평균임금의 증감률에서 (급여 수준이 틀림없이 높은) 덴마크보다도 한국의 그것이 상당히 높다. 자랑스럽게도 이렇게 뽑은 증감률에서 OECD 1등이 바로 한국이다. 이 증감률은 오차가 상당하여 한국의 평균임금 수준이 OECD 1등이라고 환호해서는 안되지만, 최소한 평균에 있는 한국의 임금 수준이 경제성장 단계에 비추어 볼 때 OECD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헌데 한국은 덴마크보다 기업세금이 배 이상 많은 나라이다. 급여 수준은 기업세금과 연동하므로 한국의 ‘1인당 GDP 대비 평균임금의 증감률’이 덴마크보다 저리 높은 것은 이상하다. 일면 기업의 부담이 과중해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한국의 극심한 임금격차와 매우 낮은 저임금 수준으로 설명이 된다.
‘상하위 10% 임금격차’에 나오듯 한국은 OECD에서 가장 크게 노동자 간 격차가 벌어진 나라에 속한다. 한국과 스웨덴, 덴마크의 평균임금 및 최저시급 수준을 상호 대비해보면 한국은 평균임금 측면에서 스웨덴은 물론 덴마크보다 더 양호한 임금 수준을 보이지만, 최저시급 측면에서는 스웨덴, 덴마크보다 매우 급여 수준이 낮은 상태이다.
PPP 기준 덴마크는 한국에 비해 1인당 GDP가 26.1% 더 높다. 하지만 최저시급은 덴마크가 한국보다 93.7% 더 높아 현격한 차이가 난다. 반면에 평균임금은 덴마크가 한국보다 11.8%만 더 높아 1인당 GDP의 격차보다 줄어든다. 한국의 평균임금 수준이 덴마크보다 같거나 높되, 최저시급 수준은 한참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경우에는 PPP 기준 1인당 GDP가 상호 거의 같은 상태에서, 덴마크는 스웨덴보다 평균임금은 12.5%가 높고 최저시급은 30.1%가 더 높다. 덴마크의 기업세금이 스웨덴보다 더 작은 가운데, 자연스럽게 덴마크의 평균임금과 최저시급 수준 양자가 모두 스웨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과 덴마크를 대비하였을 때와는 다르게 응당 그래야 할 모습이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과 스웨덴을 대비해 본다면, PPP 기준 1인당 GDP에서 스웨덴은 한국보다 30.6%가 더 높다. 하지만 평균임금 수준은 동일하고(0.6%의 차이), 최저시급은 스웨덴이 한국보다 48.9% 더 높다.
스웨덴의 기업세금이 한국보다 100조 원 이상 더 많으므로 양자 간에 평균임금의 수준 차이가 사라지는 건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렇다면 최저시급도 이와 같은 양태가 나와야 하지만 도리어 한국의 최저시급이 스웨덴보다 한참 모자라다. 한국의 평균임금 수준은 절대 나쁘지 않지만 최저시급은 매우 열악한 상태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평균 정도 임금 수준이라면 경제성장에 비추어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 평균의 두 배 이상도 받아가는 상층 노동자들은 OECD 고소득 국가에 갖다 놓아도 변함없이 상층 노동자일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수입을 챙긴다. 이들의 임금 수준에서는 한국 기업의 세금 부담이 과중하다. 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에서는 한국 기업의 세금 부담이 매우 과소하다.
정당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기대하며
<표 01>에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기업세금 꼴찌에서 두 번째는 뉴질랜드이고, 1등은 노르웨이다. 뉴질랜드와 노르웨이의 기업세금과 평균임금 및 최저시급 수준을 스웨덴, 덴마크와 대비해보면 기업세금이 감소할 때 평균임금과 최저시급의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뉴질랜드와 북유럽 3개국은 삶의 질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들이고, 기업세금과 급여 수준 그리고 임금 격차의 수치를 비교해볼 때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균형 잡힌 수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지는 나라이고 전혀 균형이 없는 수치가 나타난다.
한국의 고임금 상층 노동자들이 국가의 복지가 형편없다고 해도 전혀 무방할 만큼 ‘장시간 일을 해서’ 높은 소득에다 양질의 기업 복지까지 받아 챙긴다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을 해도’ 모자란 급여에 미미한 기업 복지 그리고 기업과 평균 이상 소득자들의 작은 세금에서 비롯되는 허약한 복지까지 삼중, 사중고의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인들의 살림살이와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기업이 임금을 너무 적게 주어서 또는 그저 기업이 세금을 조금 내서라고 접근한다면 백날이 지나도 헛손질을 할 뿐이다. 이른바 상위 1%라고 상징적으로 호명되는 소수의 부자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행태도 역시 해법이 될 수 없다.
기업과 소수의 부유층뿐만 아니라 고소득 계층으로부터도 저소득 계층에게 큰 폭의 소득 이전이 있어야 한다. 평균 언저리의 소득 계층 역시 그들보다 더 어려운 이들은 물론 그들 자신을 위해 복지의 밑천을 마련하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
상향평준화에 이르는 길…. 제1편에서는 격차를 줄이는 과제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을 간락하게나마 살펴보았었다. 그 역사적 경험이 한국에 전해주는 교훈은 노동자들 바꿔 말해 소수 상류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연대와 격차 완화 실천이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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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2015d). “Employment Outlook 2015”. OECD Publishing, Paris.
IMF(IFS). (www.imf.org)
첫댓글 탁월한 시각에서 이루어진 분석입니다. 끝 부분에 요약형식으로 핵심 내용을 반복해주면 이해가 더 쉬울 듯 합니다.
정소장님. 좋은 말씀과 조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