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숱한 언어 중에서 가장 힘센 언어를 꼽으라면 단연 영어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면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모국어도 모른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취학 전 아동, ‘나처럼은 되지 말라’며 자녀를 영어 학원으로 등 떠미는 엄마의 모습은 보기에 안쓰럽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오승연과 이윤진은 굳어버린 마음부터 고쳐먹으라 한다.
서점의 어학 코너에 가면 오만 종류의 영어교재가 있다. 어떤 사람은 끝도 없는 책무더기 속에서 헤매다 엉뚱한 교재를 골라 시간과 돈을 허비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신간 두 권이 눈에 띄었다. 오승연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영어 영재로 키우는 법’을 알려주고, 이윤진은 영어를 배우려하지만 방향성을 잃은 성인들에게 ‘16주 영어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뚜렷한 독자를 대상으로 적확한 방법을 제시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미모까지 뛰어난 두 사람과 영어에 대한 편견과 오해, 이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영어 가르치는 법, 그리고 배우는 법에 대하여.
아나운서 출신, 미모의 영어 달인들
TOSEL 홍보대사, 영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오승연은 고려대 국제어학원에서 객원 연구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어 영재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중이다. 어디서 보았다 했더니 그녀는 SBS 공채 8기 아나운서로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었다.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전문가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아나운서를 그만두었어요. 저만의 전문 영역을 개척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바람에서였죠. 영어 교수법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건 그 과정에 속한 일이었습니다.”
오승연은 교사 양성, 부모 교육을 통해 영어를 가르치는 자세를 변화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의 배움을 통해 ‘부모의 영재 마인드가 영어 영재를 기르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물은 최근 ‘내 아이 영어 영재로 키우는 법’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요즘 아이들은 저희랑 다른 세대에 속해 있어요. 2~3개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 절실하죠. 부모들이 자녀에게 맞춤한 방법을 선택해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무작정 외국으로 보내는 게 능사는 아니잖아요. 아이를 조금 더 면밀히 관찰하고 잠재력과 적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관건입니다.”
영어 교수법을 전문적으로 배웠지만 오승연은 아직도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망은 가득하지만 강요와 필요에 의해 처음 영어를 접했던 기억이 흉터처럼 남아 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아이가 영어와 첫 대면하는 계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아이 내면에 아무런 동기도 없는 상태에서 영어 학원만 다니라고 종용하는 건 효과가 없죠. 아이가 흥미로워할 매체로 접근하면서 영어에 대해 호감을 갖고 호기심을 느끼도록 조력해야 합니다. 영어는 낯설고 어려운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한국어를 쓰듯 다른 나라에서 쓰는 언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필요해요.”
고려대 영문과 졸업, 아나운서 출신, 영어 칼럼니스트, 영어 관련 서적 저자 등 이윤진은 선배 오승연과 닮은 꼴이다. 상사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 캐나다 등 외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했고, 가수 비, 배우 이범수 등에게 영어를 가르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춘천 MBC와 OBS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했는데,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나왔어요. JYP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이 닿아 가수 비에게 영어를 가르쳤고요. 이후로도 자꾸 영어 관련 일이 들어오더라고요. 영어 칼럼을 쓰고 동시통역, 번역도 하고, 여러 행사에서 영어 MC를 맡고 있어요. 매니저 없이 많은 일을 하자니 조금 힘들긴 해요.”
여덟 살 때 ABC도 모르는 채 외국 현지학교에 다니게 된 이윤진은 영어로 대화하는 반 친구들과 떨어져 독학하다시피 영어를 익혔다. 알파벳도 제대로 못 쓰는 한국에서 온 여자아이는 곧잘 놀림을 받았고, 밤새 울면서 영어를 공부했다. 그런 절박함이 있었기에 남들이 3년 동안 할 과정을 두 달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이미 한국어에 익숙한 상태라 힘들었죠. 사과를 보면 애플이 아니라 사과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절박함이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배워도 그러한데 한국에 사는 성인이 영어를 잘하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겠죠?”
수많은 개인 교습을 통해 쌓인 노하우를 이윤진은 ‘스타킹 잉글리쉬’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16주, 넉 달 만에 영어 말문이 트일 수 있다는데, 정말 가능한 일일까?
영어 영재, 그 의미를 바로잡아야 할 때
오승연 씨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꼭 영어 영재로 키워야 하는가?”였다. 영재라는 단어가 범재보다 흔하게 쓰이는 세상에 영어 영재까지 보태야 할 당위성을 듣고 싶었다. 오승연 씨는 우선 영어 영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교육은 평준화 교육이에요. 평균적인 수준에서 조화를 추구하죠. 우수한 아이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학부모들조차 영재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입니다. 영재는 최상위 1%, 천재가 아니에요. 미국은 영재의 범위를 상위 30%로 정해 놓고, 분류도 다섯 가지로 세분화했어요. 우리도 그런 점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지능 중에서도 특출하게 발달된 분야의 지능에 맞춰 교육하고 영재성을 발견해 그에 맞게 교육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죠.”
우리나라 영재교육은 언제나 그 문제점을 지적당하고 있다. 영재를 선발하는 분야도 협소하다. 오승연 씨는 수학과 과학에만 치중돼 있는 영재교육이 언어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어 영재는 기초 연구 자체가 부족해요.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어와 문학 분야의 영재교육은 극소수의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영재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영재성은 곧 잠재성을 뜻해요.영어 영재는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좀 더 잘하는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는 거죠.”
영어, 16주면 충분해요
본인은 물론 자신의 여러 제자를 보면서 이윤진은 영어 공부에는 목표의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작정 학원에 다닌다고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목표가 없다면 결국 방향을 잃게 될 겁니다. 팝송 한 곡이라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제대로 된 길을 빨리 찾을 수 있어요.”
가수 비는 그녀가 가르친 첫 번째 제자이자 수제자이다. 첫 미국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소속사에서는 4개월 후 열릴 콘서트에서 비가 영어로 말할 수 있고, 인터뷰 때 영어로 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처음 하는 일치고는 중책이었다. 부담감 속에서 이윤진은 여러 날 고민을 거듭했고, 그때의 고민들이 ‘16주 프로젝트’의 근간을 이루었다.
“해외 일정에 동행하면서 가르쳐야 할 만큼 촉박한 상황이었어요. 비는 궁금한 것도 많고, 숙제를 내주면 항상 그 이상을 해오는 적극적인 학생이었어요. 그것이 비를 성공하게 만든 비결인 것 같아요. 저는 비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비는 저에게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친 셈입니다.”
유명한 제자 덕분에 이윤진은 안 다녀본 데가 없다. 블룸버그, MTV, 메디슨 스퀘어 가든까지. 4개월이 지났을 때 비는 콘서트, 기자회견, 각종 인터뷰를 영어로 해냈다. 그 후 배우 이범수, 아나운서 이윤아 등을 가르치며 이윤진은 영어 교사로서의 이력을 공고히 해 나갔다.
“지금 가르치는 제자들은 초등학교 5학년생, 스튜어디스, 벤처기업 팀장 등 직업과 연령이 다양해요. 많은 제자들을 만나면서 가르치는 재미와 보람을 느꼈죠. 그러면서 동시에 뭔가 맥락을 발견하게 됐어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에 알맞은 교재를 구하면 단기간에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거죠. 그런 방법들을 모아서 책을 출간하게 된 겁니다.”
그 기간을 16주로 정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모자라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적당한 기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달은 자신이 세운 목표에 친숙해지는 기간이고, 그 다음 두 달 동안에는 본격적으로 내실을 다진다. 마지막 달은 지금까지의 학습 내용을 정리하는 기간.
“실제 이 방식으로 가르치니 학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어요. 비도 4개월 공부했죠. 장기적으로 1년 정도 공부할 계획을 세운 사람도 4개월 단위로 끊어서 목표를 정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단계별 목표를 성취하면서 느끼는 희열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니까요.”
오승연 씨가 알려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아이 지능별 영어교육 프로젝트
언어적 지능이 높은 아이 언어적 지능은 어휘의 소리, 리듬, 의미, 언어의 서로 다른 기능을 민감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단어의 뜻을 쉽게 이해하므로 영어 원서를 보다 일찍 접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낱말 게임, 영어 일기, 감상문 쓰기, 그림 사전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논리·수학적 지능이 높은 아이 수리와 논리 사고가 뛰어난 아이들은 수학적인 현상과 원리로 영어를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문답법이 적당하다. 수학 퀴즈, 숫자 게임, 그 밖의 게임이나 퍼즐, 수학 동화 등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음악적 지능이 높은 아이 음감과 박자감이 뛰어나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르고, 악기 연주를 하면서 단어를 익히고, 영어 음악을 만들고, 팝송 등 영어 노래를 받아쓰면서 영어에 친숙해질 수 있다.
공간적 지능이 높은 아이 도형, 그림, 지도, 입체 등을 구상하고 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나므로, 영어책을 읽은 후 도표나 도형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조각 그림 맞추기, 미로 찾기 게임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신체·운동 감각적 지능이 높은 아이 신체 동작을 통제하고 물체를 다루는 재능이 있으므로 실내보다 실외에서 신체 활동을 하며 영어를 접하게 하는 현장 체험 등이 도움이 된다. 몸으로 하는 게임과 놀이, 오감체험, 마임 등이 효과적이다.
자기 성찰적 지능이 높은 아이 감정을 잘 알고 다스리며 이를 표현하는 것이 뛰어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영어 일기 등을 쓰게 한다.
대인 관계 지능이 높은 아이 타인의 상태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므로 함께 어울려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화, 토론, 단체 경기 등이 좋은 예다.
자연친화 지능이 높은 아이 동식물과 주변 사물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기 때문에 동식물, 우주, 환경, 자원 등을 소재로 한 접근법이 좋다.
이윤진이 들려준 영어회화 잘하는 비법
1 정확한 목표를 세워라
새해가 되면 영어 공부를 결심하고 교재를 사고 학원도 다니면서 의욕을 보이지만 금세 시들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를 배우려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과 수준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4개월 동안 이룰 수 있는 목표치를 상정해야 한다. 외국 잡지의 독자 투고란에 자신의 이름으로 쓴 글을 게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식이다.
2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라
녹음기,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비디오카메라 등 다양한 매체에 본인의 목소리, 말할 때의 표정, 동작, 습관 등을 기록하면 영어로 말할 때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점검할 수 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방식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나아가 단점을 수정하게 만든다.
3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교재를 활용하라
모국어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회화를 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눈과 귀를 영어에 예리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영어 표현의 뉘앙스, 발음의 미세한 억양 등을 보고 듣고 따라하다 보면 영어회화에 자신감이 생긴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는 좋은 교재다. 1~2분 분량의 짧은 동영상을 집중해서 보면 영어에 대한 감을 익힐 수 있다.
/ 여성조선
취재 장세영 기자 | 사진 오수진,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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