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와 금자씨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제목을 따옴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두 작품은 복수와 살인이라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때의 불장난으로 임신한 19살의 금자와 주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복희는 비슷한 나이였다.
금자는 교생이었던 백선생에게 몸을 의탁하여 아기를 낳는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말았으니, 금자는 백선생이 저지른 유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13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자신의 아기를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였는데, 백선생이 아기를 외국으로 입양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금자는 복수를 결심한다.
복수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주위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친절을 베푼다.
금자의 빼어난 미모 때문에 친절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비전향 죄수를 자진해서 돌봐주고 그녀로부터 총을 제작할 수 있는 설계도를 손에 넣게 된다.
마침내 복역을 마치고 출옥하던 날, 환영 나온 전도사가 '앞으로 착하게 살아라'는 말과 함께 내민 두부를 엎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 던진다.
"너나 잘하세요."
금자씨는 계획 하에 친절을 베풀었던, 지금은 출옥하여 자리를 잡고 있는 여죄수들을 차례로 찾아가 백선생을 살해 할 총의 제작을 맡기고 쉴 곳을 제공받는다. 그리고 감옥에서 배운 제과기술을 이용해 제과점에 취직한 후 백선생의 뒤를 추적한다.
금자씨는 때때로 환상과 상상 속에서 복수하는 꿈을 꾼다.
한편 복희씨는 주인 아들의 생일 날, 닭의 목을 따다가 닭이 달아나는 바람에 놀라 비명을 지르다 주위 사람들에게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얼뜨기로 인식된다. 얼떨결에 얼뜨기가 된 복희씨는 그 점을 역이용하여 차례차례 군식구들을 내보내고 안방을 차지한다.
그리고 자신을 무참히 짓밟은 남편을 향해 복수를 시작한다. 남편이 성관계때 교성을 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교성의 강약을 조절하며 남편을 조정한다. 복희씨의 교성이 자지러질수록 그것은 큰돈이 되어 복희씨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했다. 그녀는 그 돈으로 친정을 돕는다.
비록 몸뚱이는 남편에게 더럽혀졌지만 복희씨의 마음만은 자신의 여성성을 싹트게 했던 전처의 먼 친척인 대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운다.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그때의 느낌과 대학생의 고귀한 표정을 기대한 것을 보면 남편에 대한 복수심이기도 했지만 복희씨를 살아가게 한 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가 삶의 막다른 길에서 다시 살게 한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마약을 담은 생철갑이었다. 생철갑을 만지며 복희씨는 자신을 죽이기도, 남편을 죽이기도 하는 환상 속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다.
금자씨의 복수가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라면 복희씨의 복수는 그야말로 소소한, 차라리 귀여운 복수였다. 며느리들을 편애하며 쾌감을 느끼는 복희씨. 변을 제대로 닦지 못해 항문을 씻겨주자 성적 흥분을 느끼는 남편이 보기 싫어 비데를 설치하여 남편을 약 올리는 복희씨.
그러나 중풍에 걸려 오른쪽 반신을 쓰지 못하면서도 물욕, 식욕, 성욕만 남은 남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왼손으로 글씨를 써 가며 의사소통을 하던 남편은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노발대발하며 돌아온다. 동네 약국으로 가 보라는 것이다. 복희씨는 단골 약사의 처사가 못내 서운해 따지는 기분으로 약국을 찾아간다. 젊은 약사는 남편이 쓴 '정력제 비아그라'라고 쓴 쪽지를 내 보이며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힘들겠지만 할머니가 참으라는 말을 던지면서 야릇한 웃음을 흘린다.
할 말을 잃은 복희씨는 황급히 약국을 빠져 나와 집으로 들어가 생철갑을 들고 다시 집을 나온다.
금자씨는 살해된 아이의 부모들을 부추겨 집단으로 백선생을 살해 한 뒤 시신을 땅에 묻을 때 시신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그리고 그 총을 시신 위에 내 던지며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복희씨 역시 오랫동안 간직해온 생철갑을 한강에 던지고는 한 쌍의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지는 환상을 보며 환희를 느낀다.
마지막 메시지에서 영화감독과 작가의 터치가 엇갈린다.
금자씨는 꿈꾸어온 복수를 하고 나면 잃어버렸던 영혼을 구제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의 그 순수했던 영혼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깨닫고 울음을 터트린다.
그렇다면 복희씨가 생철갑을 던질 때 느꼈던 환희의 의미는 무엇일까?
비아그라가 남편에겐 새로운 삶의 의유가 되었듯이 복희씨는 살의로 가득 채웠던 생철갑을 강물에 던져버림으로써 스스로를 가두었던 의식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 것으로 짐작된다. 복희씨는 그것을 '그와 나 사이의 착각은 바로 우리들의 운명이다'라고 했으며 더 이상 그 운명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것은 스스로 얽맸던 죄의식,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한 뜻은 아니었을까.
두 작품을 비교하다보니 문득 인생이란 선로에 선 기차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들어서면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기차. 원치 않은 임신으로 잘못된 인생의 선로 위에 선 금자씨와 복희씨.
그들은 가부장적인 남성들에 의해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고 오랜 세월 복수의 칼을 갈며 자신의 삶을 낭비하고 말았다.
복수의 끝에서 본 것은 허무뿐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두 여인. 그들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책을 덮고서야 깨닫는다.
나는 누구의 탓이 아닌 내 의지대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영화에서 얻은 모티브로 곰삭은 삶을 엮어 낸 노장의 작가 박완서.
팔순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생 연륜이 담긴 <친절한 복희씨>는 아들딸들이 부모 세대를 이해하는 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작가란 자신이 지나온 길에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박완서 작가를 통해 해 본다.
첫댓글 읽는 수고로움을 끼쳐 죄송해요. 노후를 생각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될 겁니다.
두작품다 보지를 못해서 잘이해를 못하겠네요. 그래도 잼있게 잘봤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두 작품의 주인공 처럼 다를바 없다는걸 느끼게 만드는 글인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