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흥행으로 덩달아 돼지국밥이 주목받고 있다.
돼지국밥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궁핍의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당분간 돼지국밥은 못 먹겠다.
정구지는 더 못 먹겠다.
정구지를 올린 돼지국밥은 더더욱 못 먹겠다.
아가리에 그것들을 쑤셔 넣을 염치가 내게는 없다.
([변호인] 단상, 박상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이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부산의 돼지국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라는 책을 낸 부산 출신의 음식 칼럼니스트 박상현(닉네임 ‘취생몽사’)은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돼지국밥은 음식 전문가들이나 평범한 부산 사람들이나 변호사처럼 공부 좀 한 사람들까지 누구나 좋아하는
부산의 음식이자 경상도의 보편적 외식이다.
다른 지역에 돼지국밥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와 질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돼지국밥이란 단어가 없는 것이지 돼지국물에 돼지 내장과 살코기를 넣어
밥을 말아 먹는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은 비슷한 음식이다.
아주 사소한 차이점을 빼고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의 차이는 엿보기 힘들다.
돼지의 머리뼈 살코기를 넣고 국물을 우려내고 돼지고기 꾸미들을 얹어서 내놓는 방식이 모두 동일하다.
이름이 다를 뿐이다.
막국수와 냉면이 같은 음식이면서 이름으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 것처럼 순대국밥과 돼지국밥의 운명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돼지가 한국인의 음식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은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전까지 돼지는 한국인이 그다지 즐겨 먹는 식재료가 아니었다.
거의 완전한 농경사회에서 돼지는 쓸모 있는 가축이 아니었다.
논을 갈고 물건을 운반하는 소가 육고기의 중심에 있었다.
집집마다 자명종 역할을 하면서 달걀과 살코기를 주는 닭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돼지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외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중국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다.
1910년대 일제는 농촌 부업으로 돼지 사육을 권장한다.
돼지는 이때부터 급속도로 보급된다.
1930년대 ‘평북돈’이란 개량 돼지는 돼지고기의 본고장인 중국에 수출될 정도였다.
육고기가 귀하던 한민족의 고기 먹기는 정교하고 세밀하고 풍성하다.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고 많은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탕 문화가 기본적인 음식문화가 되었다.
궁핍의 시대가 낳은 산물, 돼지국밥
돼지국밥 탄생설은 많다.
북한 실향민들의 돼지 음식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이북식 돼지국밥, 밀양의 무안면에서 시작된 밀양식 돼지국밥,
그리고 경상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경상도식 돼지국밥이 주를 이룬다.
나는 이 세 가지 설이 다 맞는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음식이 이름은 같지만 내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고, 순대국밥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말기에서
해방공간으로 이어지는 궁핍의 시대가 낳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상도 돼지국밥의 시작점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점차 연도가 낮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1930년대 말로 시작점이 내려갔다.
일제강점기 전부터 제주 사람들이 많이 정착한 부산의 영도에는 1938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문난국밥집’이 있다.
울산 출신의 할머니가 처음 시작했는데, 배로 실려온 제주 똥돼지를 집에서 직접 도축해서 썼다고 한다.
이 집의 맑은 국물은 제주식 돼지국밥 국물과 닮았다.
한반도에서 돼지 음식 문화가 가장 번성한 제주의 돼지 음식 문화가 돼지국밥과 일정한 연관성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단서다.
서면의 ‘포항할매국밥’도 1940년대 초반 창업을 이야기하고 ‘송정3대국밥’은 1948년 창업했다고 주장한다.
밀양의 밀양식 돼지국밥집의 기원도 1940년대로 추정한다.
돼지고기 문화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1960년대 일본으로의 돼지고기 수출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일제강점기에 돼지는 농가의 중요한 부업이었다.
인구 2000만 명의 조선에 1930년대 후반 돼지가 150만 마리 사육됐다.
1930년대 과잉 공급된 돼지 덕에 햄과 소시지 가공 공장이 전국에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1930년대와 40년대 돼지국밥에 대한 기록은 없다. 증언과 ‘그럴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현재 확인된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 기록은 1968년 6월 12일자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이다.
이북 기원설도 기록보다는 증언에 의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전쟁 통에 먹던 꿀꿀이죽과 이북식 순대국밥이 결합해 돼지국밥이 탄생했다는 설,
이북식 돼지 음식 문화가 부산에 정착하면서 돼지국밥이 본격적인 외식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은
거의 정설처럼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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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뼈를 우려낸 뽀얀 국물 맛이 진한 ‘송정3대국밥’. |
쇠고기 육수에 돼지고기를 넣어 만드는 독특한 돼지국밥을 내는 밀양의 ‘양산식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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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따로 내는 따로국밥은 대구에서 생겨난 국밥문화이다. |
이북식 돼지국밥의 원조집 중 하나인 부산 범일동의 ‘할매국밥’. 돼지 머리로 국물을 내며 맑은 국물이 기본이다. |
돼지국밥의 진화
이북식 돼지국밥의 원조집 중 하나인 범일동의 ‘할매국밥’은 1956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싼 부위인 돼지머리로 국을 끓여 돼지머리 살코기를 얹어낸 국밥을 팔았다.
이북식 돼지국밥의 큰 특징은 돼지 살코기를 이용한 맑은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실향민에게서 돼지국밥 만들기를 배워 1952년 창업한 ‘하동집’이나,
국제시장 옆 케네디시장에서 돼지국밥을 팔던 실향민 할머니들에게서 돼지국밥 만드는 법을 배워
1968년 장사하게 된 ‘신창국밥’은 모두 맑은 국물의 돼지국밥을 낸다.
돼지머리를 이용한 돼지국밥이 최근 들어 부산에서 사라지고 있다.
대신 삼겹살이나 항정살 같은 비싼 부위를 이용한 새로운 돼지국밥이 생겨나고 있다.
할매국밥도 창업주가 돌아가신 뒤로는 돼지머리 대신에 삼겹살을 주로 사용한다.
대구의 봉덕시장에는 돼지머리를 이용한 돼지국밥 파는 집들이 몇 군데 몰려있다.
돼지국밥 거리가 형성된 것은 1970년대로 추정된다.
대구의 돼지국밥 문화는 봉덕시장식 돼지머리국밥과 명덕시장식 꾸미와 고명 없는 국밥에
대구의 독특한 음식문화인 밥을 따로 주는 따로국밥이 결합된 따로돼지국밥 등으로 진화•발전하고 있다.
경상도식 돼지국밥은 주로 뼈를 사용하는 탓에 국물이 탁하다.
경상도식 돼지국밥은 사상버스터미널과 옛날 부산 서부터미널이 있던 범일동 평화도매시장 주변에 많다.
서부터미널 주변에 1960년대부터 형성된 돼지국밥집은 1970년대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1985년 서부터미널이 사상으로 옮겨 가면서 지금의 세 집만 남았다.
만화책 [식객]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마산식당’은 1960년대 마산에서 온 할머니가 창업한 식당이다.
교통의 요충지에 몰려든 택시기사와 버스기사에게 국밥을 팔며 생계를 이어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의
생과 노동이 돼지국밥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산과 함께 돼지국밥의 발상지로 알려진 밀양의 무안면에는
쇠고기 육수에 돼지고기를 넣어 파는 독특한 돼지국밥이 있다.
1940년 ‘양산식당’에서 시작한 이 돼지국밥은 세 명의 후손이 ‘동부식육식당', ‘제일식육식당’,
‘무안식육식당’이란 간판을 달고 이어오고 있다.
돼지국밥의 탄생을 추적하다 보면 일제강점기 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한 음식임이 분명하다.
실향민들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외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는 것도 합리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기원 뒤로 하나의 사실이 보인다.
가진 것 없이 오직 노동으로 살아야 했던 고단한 육신을 위한 음식이라는 거다.
시대를 달리하며 장터에 가득했던 장돌뱅이와 고향을 잃은 실향민,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노동자와 운전기사 등으로 신분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시 공부를 할 때 울산에서 막노동을 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그는 돼지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없어 국밥을 먹고 도망을 친다.
[변호인]의 숨겨진 주인공인 돼지국밥은 노무현대통령의 변화의 순간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노동자에서 변호사로, 속물 세법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신하는 과정마다 돼지국밥은 그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
부산의 음식 전문가들은 돼지국밥을 먹먹해서 먹기 힘들다 하지만, 난 돼지국밥이 더 먹고 싶어졌다.
나도 [변호인]의 주인공처럼 돼지국밥을 먹을 때마다 몸이 아니라 영혼이 성장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 글·사진
- 박정배(음식 칼럼니스트, [음식강산] 저자)
- 최근 2년간의 식행(食行)을 통해 우리 음식 문화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는 남해 섬에서 태어났다. 방송 프로듀서, 출판사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 등 다양한 문화계 일을 거친 그는, 요즘 음식과 여행에 삶의 모든 구심점을 두며 살고 있다.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3년간 ‘우리땅 우리음식’을 진행했다. [낭만의 대한민국 기차여행] [일본 겨울여행]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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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주도에도 명품 돼지국밥집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사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론 밀양 '양산식당' 쇠고기 육수에 돼지고기...
고급화된 현재의 입맛에 맞는 컨셉 아닌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