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름 최영의, 일본 이름 오오야마 마쓰다쓰(大山倍達 / 대산배달),
만화 바람의 파이터로 각색되기도 한 그의 무용담은 이제 전 세계 무술계의 전설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그가 한국 사람 최영의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하고 때때로 추앙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귀화한 일본인이다. 귀화를 했든 안했든 한국인은 한국인임에는 변함이 없고,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만 배재한다면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가 전세계 무술계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
그때까지 가라데가 뭔지도 몰랐던 서양인들이 그의 믿기 힘든 기술과 정신력에 감화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썼다고 하는 공수도 교본이 한국말로 번역되어 시중에 나와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새삼 그는 완전한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국적이 일본 사람일 뿐인 것이 아니라 사상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대목을 꼽자면 애매하긴 하지만, 시시 콜콜 '우리 일본인은...'으로 시작하는 문장들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공수의 기술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예 관련 책을 보면서 뜻하지 않게 많은 오류와 착오들을 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태권도와 가라데에 관한 것이다.
최영의의 가라데(극진공수)는 태권도가 아니다.
그러나 태권도의 뿌리는 가라데이다.
무슨 말이냐면 첫째 태권도는 한 이삼천년전 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국 전통 무예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함으로써 나를 바로 역적이며 매국노로 몰아 부치는 맹목적 세력이 현재도 존재한다.
소위 태권도의 1세대를 이룩하고 있는 사람들, 이원국(청도관), 황기(무덕관), 윤병인(?), 최홍희(오도관??) 등이 모두 일본에서 가라데를 배워 그 기술 그대로 한국에 도장을 낸 사람들임은
나로서는 전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가라데의 한국식 발음이 음독으로 읽느냐 훈독으로 읽느냐에 따라 '공수'도 되고 '당수'도 될 뿐이다.
최영의의 무도 정신의 배경은 추측컨데 아마 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영의는 일본으로 귀화하기전, 최홍희와의 어떤 교류를 통하여 한국으로 갈 생각을 하였다가 여러가지 여건이 맞질 않아 결국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한국 태권도 현대사)
이것은 최홍희 무술과 최영의의 그것이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일화이다.
최홍희는 다름 아닌 태권도라는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즉, 공수, 당수로 불리워 진것이 잠깐 태수도라고 불리다가 최종적으로 태권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태권도는 기존의 가라데와는 다른 경기 위주의 룰을 적용하면서 이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면모를 갖추에 되어 지금은 전혀 다른 빠른 발기술 위주의 무술로 변모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지금도 최영의의 모습을 담은 흑백 필름들이 있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무술가이다.
그의 명성을 이런 하찮은 글로 실추 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을 모르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공수도 교본을 읽고 난 지금, 과거 상상속에 있던 그런 최배달은 사라졌다.
제 목 : [ 가라테 ] 극진공수, 최영의 기사(88년)
"황소의 뿔을 꺽고 일격에 황소를 쓰러뜨리는 격투기의 백호, 최영의"
사람이 맨손으로 황소뿔을 꺾을 수 있을까? 또 사람이 맨손으로 일격에 황소 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있다. 실제로 맨손 만으로 황소의 뿔을 꺽고 한 대에 황소를 쓰러 뜨린 사람이 있다. 제일동포이며 현재 국제공수도연맹 총재이자 극진회관 관장인 최영의(일본이 름 大山倍達:오오야마 마쓰다쓰)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처음으로 열린 일본공수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영의는 상대방 몸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종래의 경기규칙에 의문을 품게된다. "격투기에서는 1/100초 사이에도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또 설사 상대방의 공 격을 먼저 받았다해도 보다 위력강한 공격으로 반격했을 경우 승패는 뒤집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상대방 몸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경기규칙으로 어떻게 강자를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려고 기요즈미 산에 들어가 맨손으로 차돌을 깨뜨리 는데 이른 최영의는 1950년 다테야마의 도살장의 협조를 얻어 황소의 뿔을 꺾고 일격에 쓰러뜨린다. 그러나 처음부터 황소뿔을 꺾는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手刀를 휘둘러도 황소뿔은 꺽이지 않았다.
"참, 최영의 씨. 당신은 앞으로부터 황소뿔을 치고 있는데 뒤로부터 쳐보시 오. 소뿔은 앞으로부터 덤비는 적을 무찌르도록 되어있으니 앞으로부터의 충격 에는 강하지만 뒤로부터의 충격에는 약할지도 모르겠소" 도살장 사무소장의 도움말이었다.
좌절감에 사로잡혀있던 최영의는 다시 용기 를 얻어 6살짜리의 큰 황소에 다가가서 이번에는 수도를 날려 뒤로부터 비스듬 히 뿔을 쳤다. '와아!' 구경하고 있던 도살장의 관계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뿔 은 날라갔다. 처음에는 정권으로 쳐서 황소를 쓰러뜨리는 것도 실패였다. 어떻게 하면 정권 만으로 황소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최영의에게 도움 말을 준 것은 도살장에 오래 근무했던 노인이었다.
"어때요. 황소의 급소를 쳐보면...?"
"급소가 어딥니까? 미간이 아닙니까?"
"아니오. 사람하고는 달라서 귀밑입니다"
"귀밑이라..."
최영의의 정권을 귀밑에 맞은 황소는 공중에 뜨듯 쓰러졌다. 물론 언제나 성 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7마리의 황소와 대결, 4마리를 즉사시킨 최영의는 1952년부터 세계를 돌며 중국의 쿵후, 프랑스의 사바테, 브라질의 카포에라, 발 리송 권법, 미국의 프로레슬러 등과 차례로 실전을 벌여 무패를 자랑, 온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요르단의 후세인 왕, 모나코의 핫산 왕 등 여러사람 의 국가원수들이 그에게 호신술을 배웠으며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이 름을 떨친 숀 코넬리, 한스 돌프 랑그렌도 최영의의 제자이다.
한국계 공수도인 극진공수에서는 다른 유파보다도 한국계 선수들의 활약이 두 드러진다. 1971년 제3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준우승자인 조태언(曺泰彦, 일본이름 大山 彦), 1973년 제5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우승자이자 1975년 제1회 세계선수권 대회 준우승자인 노초웅(盧初雄, 일본이름 盧山初雄)도 한국계 선수들이다. 또 요즘 [극진가라데의 별]로 눈부시케 떠오르고 있는 제일동포 문장규(文章 圭, 일본이름 松井章圭)는 1985년, 86년의 제17회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2연패 를 이룩한 뒤,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극진공수는 손으로 상대방의 안면공격 또 낭심공격 등 몇가지 만을 금지하고 자유롭게 공격을 허용하고 있어 선수들의 건강보호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영의 관장은 "거의 모든 무도가 지나치게 스포츠화 되어 가고 있는 지금, 극진공수처럼 격투기의 원점 가까이 머물러 있는 무도가 하나 쯤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