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류-면(利柳面)【면】충주시 13면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이안면(利安面)이라하여 천동(川東), 금곡(金谷), 당저(堂底), 거곡(巨谷), 상검단(上檢丹), 하검단(下檢丹)의 6개 리를
관할하다가, 그 후 천동리를 빼고, 영평(永平), 두산(斗山), 대소(大召), 마치(馬致), 장재동(長在洞), 성종(城宗), 부연(釜淵),
독동(篤洞), 본리(本里), 노옥(老玉), 흑평(黑坪), 불방(佛坊), 주정(酒井), 가정(佳亭)의 14개 리를 더하여 1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유등면(柳等面)의 만적(萬積), 독정(篤井), 두담(豆潭), 소용(所用), 궁동(弓洞),
탄동(炭洞), 산정(山井), 내포(內浦), 수현(修峴), 기동(基洞), 매산(梅山), 장승(長承), 월은(月隱), 수주(水周), 문박(文朴),
팔봉(八峰), 즉문(卽文), 하담(河潭)의 18개 리를 병합하여
이안면과 유등면의 이름을 합하여 이류면(利柳面)이라하여
검단(檢丹), 금곡(金谷,) 대소(大召), 두정(豆井), 만정(萬井), 매현(梅峴), 문주(文周), 본리(本里), 영평(永平), 완오(完五),
장성(長城), 탄용(炭用), 하문(河文)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 7월 1일에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
12공포(公布)〕로 하문리는 괴산군(槐山郡) 불정면(佛頂面)으로 편입되었다. 동쪽은 충주시 달천동, 살미면, 상모면, 괴산군 장연면, 남쪽은
괴산군 감물면과 불정면, 서쪽은 주덕읍, 북쪽은 가금면에 각각 닿음. 충주시와 중원군은 1956년에 분리되었다가 다시 1995년에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 충주시로 단일 행정구역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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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리(大召里)
⊙ 대소-리(大召里)[대초원, 대소원, 대춘,
대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조선조 때
대소원(大召院)이 있었으므로 대소원(大召院), 대촌, 대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치리(馬致里)를 병합하여 대소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대소 1구
●대소1-구【마을】장터, 웃말, 새마을 등으로 이루어짐.
●봉화-산(烽火山 馬山烽燧)【봉화】현 대소원 초등학교에서 남쪽 38번 국도 바로
옆으로 보이는 산. 봉화를 올리던 봉(峯)임. 이 봉수대는 동해안에서 전달되어 오는 충주의 심항산 봉수와 경상도 방면에서 오는 충주의 대림산
봉수를 전달받아 서쪽으로 음성의 가엽산(가섭산) 봉수로 연결되고, 이곳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0명이 주둔하였다.
●새-마을【마을】1972년 수해로 집단이주한
마을로 문화촌이라고도 함.
●소전-거리【길】대소리에 있는 길. 옛날에 쇠전거리(우시장)였음.
●은행소-들【들】대소원 북쪽에 있는 들. 전에 은행에
저당잡혔었다 함.
●장포-샘【못】장포샘거리에 있는 못. 창포가 많음.
* 대소 2구
●대소2-구【마을】새터, 진말, 웃대촌, 중지등으로 이루어짐.
●대소원-터(大召院-) [대조원터, 경제원터]【터】대소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원터.
●비랭이-들 [드랭이들]【들】대소리에 있는 들. 옛날에는 수리 시설이 불완전하여 들에 가뭄이 들면 수확이 전혀 없고, 비가 잘 오면 수확이
많았다 함.
●짓-말【마을】대소원 남쪽, 학교 앞에 있는 마을.
* 마치
●마-치【마을】멧촛골, 점촌으로 이루어짐.
●메추-골
[마치동]【마을】웃말 서쪽에 있는 마을. ●안메추-골【마을】메추골 안쪽에 있는
마을.
●웃대-춘【마을】대소원 위쪽에 있는 마을.
●점-촌(店村)【마을】메추골 북쪽에 있는 마을. 옹기점이
있었음.
●중정이-골【마을】대소원 서남쪽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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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리(金谷里)
⊙ 금곡-리(金谷里) [쇠실,
금곡]【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쇠가 많이
났으므로 쇠실 또는 금곡(金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곡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상금곡
●웃쇠-실[상금곡]【마을】서랫말 남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음달말, 묘막담, 분특골, 웃말, 건넛말 등으로 이루어짐.
●깃대-봉【산】놋초골에 있는 산의 봉우리로 측량기점에 깃대를 꽂아 놓아 깃대봉이라 함.
●놋초-골[놋점골]【골짜기】금곡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쇠
천근, 딱 천근, 구리 천근이 나왔다고하여 놋쇠 천근이라고 부르다가 '놋점골', '놋초골'이라 부름.
●사-실[사금]【마을】금곡리 마을로 한덕골,
진논머리의 자연부락이 있음.
●상금-곡【마을】→ 웃쇠실.
●한덕-골【마을】쇠실(사금)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
●황새-봉[황수봉]【산】윗쇠실 앞에 있는 산으로 황새목처럼 생겼음.
* 하금곡
●아랫쇠-실[하금]【마을】봉화산 남쪽으로 있는 마을로 봉화뚝, 음달말, 양달말, 서랫말로 이루어진
마을임.
●서랫-말[소랫말]【마을】아래 쇠실에 딸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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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리(長城里)
⊙ 장성-리(長城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종리(城宗里), 장재동(長在洞), 부연동(釜淵洞)을 병합하여 장재와 성종의 이름을 따서 장성리라하여 이류면에 편입됨.
* 부연
●가마-소[釜淵]【마을】성마루 동남쪽에 있는 마을. 앞에 솥처럼 둥글게 생긴 가마소가 있었음.
●장성리석불좌-상【불상】장성리 부연 마을에 있는 불상으로
높이 1m로 무릎까지 흙에 매몰되어 있고 불두는 없어졌으며 어깨는 50㎝, 양손은 파손되었고 불상에 배광을 하였음.
* 성종 1구
●성-마루[城宗]【마을】성마루는 주위에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깥성마루, 안성마루로 이루어진 마을.
●중간-마을【마을】성마루 동쪽에 있는 마을.
* 성종 2구
●성-마루[城宗]【마을】성마루는 주위에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능골, 장자터로 이루어진 마을.
●장자-터[장재동]【마을】가마소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큰 부자가 살았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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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정리(萬井里)
⊙ 만정-리(萬井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적리(萬積里), 독정리(篤井里)와 두담리(豆潭里) 일부를 병합하여 만적과 독정의 이름을 따서 만정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독정
●독-정(篤井)【마을】만적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남쪽에 위치한 산정 사나물 마을과 고개 하나로 이웃함. 뒷산에 독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것은
일제 시대부터 광산을 하여 인위적으로 파여진 것이라 함.
●지하-도【도로】38번 국도 아래에 있는 것으로 상중말의 충주 산업대와 독정 철도
건목을 이어주는 지하도.
* 만적
●만-적(萬積 만적골)【마을】만정리(萬井里)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 이 인근의 놀고리, 삼산내기(참샘내기), 왜골, 큰마을 등이 만적마을
행정구역에 속한다. 만적에 많은 화물들이 수송되는 중부권의 중요한 물류 기지가 들어올 것이라고하여 만적이라고 한다고도 함.
●꽃밭-머리【마을】만적(萬積)마을 서편 꽃이 많이 피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 만적에 딸린 마을임.
●버드-실【마을】만적 남쪽 산속. 전에 마을이
있었고 버드나무가 많았었다.
* 황대
●황-대(黃垈 은구비
황터골)【마을】만적(萬積) 서쪽에 있는 철도변의 마을. 황토흙이 많다 함. 이 인근의 벌턴,
윗담, 큰마을, 황텃골, 은구비 등의 군소마을이 이 행정구역에 들어감.
●만정리 고인돌-떼【고인돌】만정리에 있는 고인돌로 210㎝×120㎝ 정도의
크기임.
●삼밭-골【마을】은구비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삼을 많이 재배하였다 함.
●상사-바위【바위】만정리 황대 마을에 있는 바위로 신립을
사모하다가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하자 사모하던 처녀는 이 바위에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함.
●은-구비[황대, 황터골]【마을】만적 서북쪽에
있는 마을. 붉은 황토가 많음.
●황-대(黃垈)【마을】→ 은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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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리(豆井里)
⊙ 두정-리(豆井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정리(山井里), 내포리(內浦里), 두담리(豆潭里) 일부를 병합하여 두담과 산정의 이름을 따서 두정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두담
●두-담【마을】파소라고 하며, 두정리와 용소(용추골)를 따서 두담이라 하였음.
●도둑-골【골짜기】파소가는 길에 광역 쓰레기 매립장이 위치한
곳으로 옛날에 소둑이 많았고, 소도살까지 하여도 모를 정도 골짜기가 깊었음.
●따파-산【산】파소 앞산에 닥나무가 많이 남. 동네에서는
따파산으로 파소의 발전이 느리다고 함.
●바같느티-나무【나무】마소 마을 동네 입구에 있는 수구막으로 임진 왜란 때
피난하여 들어와 심은 것으로, 충주 최씨, 동래 정씨 두집이 들어오고, 후에 임천 조씨가 세번째로 들어옴.
●양달-말【마을】파소 마을로 음달말을 마주보고
있음.
●용-추[용소]【소】용이 춤추고 올라감.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복원하였고, 용추에 명주실을 넣으면 한타레가 풀렸다고함. 동네에서는 용소가 메이면
벌미가 풍년이 들고, 용소가 파이면 파소 동네에 풍년이 든다고 함.
●음달-말【마을】파소 마을로 양달말을 마주보고 있으며, 양달말보다 햇볓이 덜
비침.
●작은앵-골【골짜기】웃파소 마을 위의 골짜기.
●점-말[점촌, 쇠구딩이, 가마구딩이]【밭】음달말 옆에 있는 밭으로 쇠구딩이,
가마구딩이라 부르고, 또 점촌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쇠똥이 현재도 나옴.
●큰-골【마을】파소 마을로 큰골로 들어가는 입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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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
●국사-봉【산】술사들이 와본 자리라 하여 부름. 정상에는 성터(망루)로 추정되는 기와편 성돌이 있었음. 용관동 관음사 쪽에서는 소댕이산이라
부르고, 산정쪽에서는 범처럼 생겨 범바위 산이라 칭함.
●꽃밭-댕이【땅】미락골에 있는 땅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만발하여 있다고
함.
●노루-골【골짜기】개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로 노루가 많았다고 함.
●미락-골【마을】산정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미륵이 있어 미락으로 변했다고 함.
광산 김씨의 묘 주변에는 장군석이 많이 있음.
●버드-실【마을】산정 남쪽을 일컫는 말로 유등면의 내포(물이 들어와 마을
에워쌈)에서 유래하였다고하며 이때에 마을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하며 개박골 들어가는 입구 주변임.
●산-우물[사나물]【마을】산 가운데 물이 많고
마을이 우물처럼 생겨 부르는 말로 지금은 광산의 영향으로 독정쪽으로 물이 흘러간다고 함.
●산-정(山井)【마을】산정을 산우물, 사나물이라
칭함.
●장터-거리(杖터거리)【놀이】궁양골 입구에서 나무꾼들이 장치기를하여 부르게 되었음. 장치기는 공을 새끼로 둥굴게 만들거나 나무로 둥굴게
깍아서 만들었고, 이 공을 하키 스틱처럼 하여 손잡이 부분을 가늘게하고 공을 치는 면을 굵게하여 공이 멀리가는 사람이 승리하였으며, 이 경기를
장치기라 불렀음.
●충주-철산【철광】일제시대에 산정쪽에서 개광하여 산정에 장비와 식당등이 있었으며, 계속 철광산을 확장하여 독정쪽으로 이동하였고
1985년 폐광하였음.
●황새-몰이【모퉁이】황새가 산정 입구의 산에 둥지를 틀고있다가 파소골로 들어가면
비가 온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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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용리(炭用里)
⊙ 탄용-리(炭用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탄동(炭洞),
소용리(所用里), 궁동(弓洞)을 병합하여 탄동과 소용의 이름을 따서 탄용리라하여 이류면에 편입됨. * 소용
●소-용(所用)【마을】소용골에 위치한 동네로
300여년 되는 동네.
●도장-골[소도둑골]【골짜기】박진골에서 조금 올라가서 있는 골짜기로 닭소리가
안들릴 정도로 골짜기가 깊음. 일명 '소도둑골'이라 부르고 있음.
●딴-봉【산】소용골 입구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를 둘러싸고 농경지가
많음.
●아름-말【골짜기】궁동 앞 골짜기중 아래쪽. 아름말에는 사람이 살았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의 머리를 아름말에서 바라보이는 바위에
올려놓아 아름말 사람들이 동네를 떠났다고 함. 지금도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있음.
●앞-산【산】궁동의 앞산으로 차돌산이라고도
함. 옛날에 유서방네가 이곳에 묘를 쓰고 이방행수까지 하였다. 유서방네는 벼슬을 믿고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려 지관이 묘를 조금 밑에다 쓰면 큰
벼슬을 할 수 있다고하여 묘를 이장하니 앞산의 차돌에서 피가 나왔다고 함. 그후 유서방네는 패가가 되었음.
●호랑이-굴【동굴】소용골 입구에서 우측으로
있는 동굴로 사람이 서서 움직일 수 있다고 함.
* 탄동
●탄-동【마을】탄용리 동쪽에 있는 마을.
●상여-바위【바위】→ 행상바위.
●숯-골【마을】마을 주변이 남-무제, 북-매봉, 동-용문산,
고양봉, 서-팔승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로 숯을 구웠음.
●양짓-말【마을】탄용리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용문-산【산】숯골 뒤쪽에 있는 산으로 금자형국(金字形局)이다. 그래서 탄용리에는 주로 김씨가 살고
있다.
●탄동 새마을-회관【집】1996년에 개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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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현리(梅峴里)
⊙ 매현-리(梅峴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매산동(梅山洞), 수현리(修峴里), 기동(基洞), 장승리(長承里)를 병합하여 매산과 수현의 이름을 따서 매현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매산
●매-산【동네】매산에 매봉재가 있는데 매봉재에서 시작되는 매화낙지혈(형)이 있는데 처음에는 매화낙지혈이 동네의 맨끝집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매현 초등학교가 개교하고 많은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자 매화낙지혈이 매현 초등학교에 있다고 하였다함.
●마그-랭이【골짜기】매현 초등학교 뒤쪽
골짜기.
●매-봉【산】매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매현 사람들은 매봉재(해발 280m)라고 부름. 매산에서 매를 이용하여 사냥할 때 매을 띠운곳이라
함.
●문화류씨열녀-문【열녀문】매현리 장성백이에 정면 1칸 측면 1칸(1.15평)의 맛배지붕으로 건축한 것으로 송순의 부인 문화류씨가 병자호란때 순절한
절개와 덕을 기리기 위해 1701년에 건립되었다.
●온수-골【골짜기】매산 한터골 남쪽으로 온수골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뜨거운 물이
나왔다고 하나 지금은 쇠물처럼 붉은 물이 고여있고, 사람들은 온수골에서 개을 잡아먹는 부정한 짓을해서 온수가 수안보쪽으로 이동하여
갔다고함.
●이승소신도-비【비】이승소(1422∼1484)는 본관은 음성, 자는 윤보, 호는 삼탄, 혜호는 문간이고, 비는 이승소 사우에 있으며
4면비이다.
●장성-백이【장】장(場)이 섰던 곳으로 유등면의 소재지였으며 일제 시대 때는 일본 경찰이 주재하고, 병참부대가
주둔하였음.
●충렬-사【절】매산 새터말을 벗어나 매현교를 건너서 좌측으로 전봇대가 있는 곳이다. 충렬사라는 절터가 있던 곳으로 기왓장과 재가 지금도
나온다고 함. 일제 시대 절터에서 금부처가 출토되어 주민이 팔아먹다가 일본 결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고함.
●팔승-산【산】궁골에서 시작하여 여덟봉우리를 이루고 매산 탄동으로 이어지는 산.
* 수현
●계란-봉【산】논골에 위치하고 달걀봉이라고함.
●두루-봉【산】수현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임진왜란 때 피난터로 산정상에 땅을
둥굴게 판 흔적이 있음.
●아래-말【마을】수현의 웃말아래에 위치한 동네로 아래 낚은터. ●웃-말【마을】수현에서 동북쪽으로 위치한 동네로 웃
낚은터.
●큰안터-고개【고개】불정면 목도로 넘어가는 고개로 큰 안터고개로 상업 활동과 죄수도 이곳을 통하여 압송함. 일명 괴산통로로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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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리(文周里)
⊙ 문주-리(文周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주리(水周里)와 월은리(月隱里), 문박리(文朴里)와 팔봉리(八峰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문박과 수주의 이름을 따서 문주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수주
●귀뜰-바위[귀돌바위]【바위】수주와 팔봉사이 강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에 돌을 던져 올라 앉히면 득남한다고 하며 바위 밑에는 관을 쓴
쏘가리가 있다하여 가물면 기우제를 지낸다고 함.
●꺼먹-바위【바위】수주 성골의 동남쪽에 거대한 바위언덕이 있는데 바위 색깔이
검다하여 꺼먹바위라 부르며 바위 밑에는 북향으로 두 개의 굴이 있으며 서로 통한다고 한다.
●문-백이【마을】성골, 음달말, 양달말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마을.
●문주리-산성【성】수주 문박이 옆에 있는 산성으로 길이는 400∼500M, 높이 1.5∼2M 정도로 자연석으로 내축
외탁하였다.
●성-골[성동]【마을】수주 산성 아래에 음달말, 양달말이 있음.
●음달-말【마을】수주
마을
●탑-말【마을】문백이에서 팔봉쪽으로 350m가면 탑이 있는데 이 마을을 가리킴.
* 월은
●월-은【마을】수주에서 서북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청풍 김씨 묘소가 달이 구름에
숨은 형국이라해서 월은이라함. 달은터 또는 다른터라고 함.
●쇠부리-밭【터】큰 음달 산아래 밭에 쇠통밭이 있음. 100여 전쯤에 낫, 도끼
등을 제조하였음. 쇠(연쇠)는 가금의 쇠꼬쟁이에서 가져와 가공하였고, 주변지역은 숲이 울창하였음.
●음지-말【마을】월은 북쪽에
위치함.
* 팔봉
●골-말【마을】팔봉에서 서쪽 마을.
●금진나루-터【나루터】팔봉에 70여 년전에는
소금배가 들어와 경상도 사람들이 소금을 가져갔다고 하며 지금은 나루터는 흔적 없고 여울만이 흐르고 있다.
●도로-고개【고개】영의정으로 있던 동생
유영경이 형 유영길에게 식량과 필목을 주었으나 형은 동생이 보낸 물건들을 돌려보냈고 짐꾼들이 물건을 도로 가져간 고개라하여 도로
고개라함.
●못-바위【바위】골말에 있는 바위로 바위 앞에 연못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지고 폐쇄된 우물만이 있다. 못바위에는 글씨가 쓰여진 바위가 일부
있었는데 충주 사람들이 글씨만 있는 바위를 가져갔다고 함.
●샘-말【마을】서원말의 동북쪽으로 샘이 있으며 현재도 사용중. 샘말은 웃말이라고도
함.
●서원-말【마을】팔봉서원 앞동네.
●지르-목【고개】팔봉에서 향산 노루목으로 질러가는 고갯길로 질른목이라고도
함.
●청살-매【집】팔봉 서원말에서 매사냥을 150여 년전에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참판을 지낸 류용희(柳龍熙)가 중국 사람한테 청살매를 구입하여 매
사냥을 하였다하며 지금은 흔적만 있음.
●팔-봉【산】팔봉의 유래는 1번째 봉우리인 문필봉에서 시작하여 9번째
되는 장산자리에 동네가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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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리(檢丹里)
⊙ 검단-리(檢丹里) [검단]【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검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검리(上檢里)와 하검리(下檢里)를 병합하여 검단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상검단
●상검단-이【마을】검단리에서 서쪽으로 있는 마을. 검을 클거(巨)로 해석하기도 함.
●바우-밖【마을】상검단리에 북서쪽에 있는
마을. ●바우-안【마을】상검단리에 북서쪽에 있는 마을.
●삼봉-산【산】상검단리와 하검단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이산에 묘를 쓰고난 다음에
아들이 태어나면 임금이 되고, 딸이 태어나면 역적이 된다함. 전설에 의하면 "삼봉산에 묘를 쓴 어느 집에 딸이 태어나자 곧 죽일려고 하다가 3일
있다가 죽이려고하여 3일이 되어 죽이고자 하였으나 딸이 태어난지 3일만에 말하기를 아들이나 딸이나 똑같은 목숨이라하여 부모는 차마 딸을 죽이지
못하였다." 그후 딸은 장성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함.
●주정-동【골짜기】주정동에 있는 샘. 양반이 가면 약주가 나오고, 상놈이 가면
탁주가 나옴. 이에 상놈이 샘을 메워버렸다는 전설이 있음.
* 하검단
●하검단-이【마을】충주 산업대학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요도천과 달천강 사이에 위치한 마을. 먹검단이라고도
부름.
●상중-말【마을】충주 산업대학교가 자리잡고 있음.
●황새-부리【산】충주 산업대교 기숙사 옆산으로 옛날에는 갈대
밭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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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오리(完五洞)
⊙ 완오-동(完五洞)【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흑평(黑坪),
불방(佛坊), 거리(巨里), 주정(酒井), 가정(佳亭)의 5개 동리와 노옥리(老玉里) 일부를 병합하여 완오동이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가정
●가-쟁이[가정]【마을】온수골 북쪽으로 옛날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다고함.
●사리-실[사래실]【마을】흑평 윗쪽에 있는 마을로 절터의 탑에서 사리가 나왔다고
함. 지금도 탑자리가 남아있음. 사리실 절터에서 승려의 사리가 나왔다고하여 사리실이라고 불렀다고함. 이안초등학교가 개교하자 사람들은 사(舍)를
스승사(師)로 인식하여 스승이 온다는 사래실이라 부름.
* 거리실
●온수-고을【마을】거리실 윗쪽 솜실 고개 아래에
있음.
●원당-골【골짜기】사리실안에 고을 원님이 살았다고함.
●일곱실-고개【고개】한터말에서 가금면 일곱실로 넘어가는
고개.
●탑-골【골짜기】사리실에 있으며 새마을 사업때 탑골의 탑재를 이용하여 동네 입구에 마을 이름을 써 붙이기도 하였음. 지금도 탑 흔적이
있다고 함.
●한씨-사당【사당】거리실에 있는 사당.
* 신촌
●신-촌【마을】불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음달말, 양달말, 주정골, 밤골 등이
있다.
* 흑평
●흑-평【마을】흑평은 풍수지리상으로는 거미혈로 닭이 거미를 잡아먹는다고 닭도
사육하지 않았다고 함.
●사지-봉【산】흑평 마을 뒷산으로 삿갓처럼 생겼다고하며 거미의 둔부처럼 생겼다고 함. 마을 사람들은 최근 까지도 마을이
거미혈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닭이 거미를 잡아먹을까바 닭을 사육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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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리(本里)
⊙ 본-리(本里)【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 이안면 소재지였으므로 본리(本里)라 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독동(篤洞)과 당저리(堂底里), 노옥리(老玉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본리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노계
●노-계(老溪)【마을】본리에 있는 마을로 옛날 노승이 다리를 개울에 담그고 닭을 기르지 못하도록 하여 거미혈의 정기를 보전하여 마을이 번창하도록
하였다하여 시내를 노계라 하였음. 노계는 30호 되는데 경로 우대증 소지자가 38명이 되는 장수촌으로 소문나 있음. 자연 부락으로는 노계,
이안, 샘둥치가 있음.
●샘-둥치【샘】노계 옆 마을에 샘이 있는데 샘두껑을 닫고나서 할머니들의 허리가 많이 구부려져다
함.
●이-안【마을】노계 뒤로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이안면의 소재지였음.
* 당저
●당-저(堂底)【마을】옛날에 큰 창고가 있어 홍창골이라고하며 또 산제당 밑에
있다고하여 당테미라고 부른다. 새터말, 당밑터, 홍창골, 성종, 장고개의 자연 부락이 있다.
●이-안(利安)【마을】노계 동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이안면의 소재지였음.
●장-고개【고개】대소원에서 가젱이 가는 고개로 장사를 많이 치름 공동묘지가 많이 있음.
●활-당이【골짜기】홍창골 서북쪽에 있느
골짜기로 활같이 굽었다고 함.
* 독동
●독-동【마을】이안 동북쪽에 위치하며 지형이 오목하여 독골, 옛날 기와집이 많아서 기와집말이라고도 부르며 뽕나무골, 기와집말, 양달말,
사당골, 깃대부리 등이 있음.
●깃대-뿔【마을】독골 앞에 있는 마을. 앞산이 뿔처럼
뾰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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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리(永平里)
⊙ 영평-리(永平洞) [영평골]【리】이류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영평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두산리(斗山里)와 당저리(堂底里) 일부, 덕면(德面) 삼주리(三洲里)를 병합하여 영평동이라 해서 이류면에
편입됨.
* 영평 1구
●두-산(斗山)【마을】말무덤이.
●영평-들【들】삼주리 남쪽의 들.
* 영평 2구
●영평-(永平)[영평골]【마을】대소원(大召院)에서 서북쪽 개울건너로 들여다 보이는
마을을 말하며 특히 삼주리(三洲里) 북쪽으로 있는 마을을 원영평이라고 함.
●이반넘어-골【골짜기】골짜기 이름인데 이보안이란 벼슬아치의
묘가 있다는 곳으로 "이보안내묘골"이란 말이 이반넘어골로 와전됨.
●피접-골【골짜기】영평리에 위치하고 있는 골짜기로 피란하기 알맞은 곳이어서
피난하던
골짜기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