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에는 절경의 계곡을 자랑하는 수승대란 곳이 있다.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 돌 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수송대(愁送臺)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1543년 퇴계 이황선생이 이곳에 유람을 왔다가 수송대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 다. 글쎄? 지금이라면 평범한 수승대라는 이름보다 무엇인가 말 못할 사연을 간직한 것 같은, 여운이 남은 원래의 수송대가 더 매력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무는 수송대와 멀지 않는 곳에 있다. 거창에서 함양으로 가는 3번 도로를 달리다 37번 도로로 바꿔 타면 금세 수송대 입구이다. 그냥 지나쳐 무주 쪽으로 2km쯤 더 올라간다. 오른쪽에 당산리란 자그마한 옛 마을 이 있고 나무는 동네 가운데에 자란다.
전형적인 토종 소나무로서 가슴높이 둘레가 4.1m, 높이가 14.3m, 가지 길이는 동서 13.6m, 남북이 15.7m에 이른다.? 나무의 원줄기는 적분 기호 ∫를 그대로 닮았다. 이 나무를 보고 필자처럼 얼핏 적분 기호를 떠 올 렸다면 비틀린 ∫의 모양새만큼이나 머리 아파하던 ‘미적분학’을 배운 이공계 출신일 터이다. 나무가 이렇게 곧 바로 자라지 못하는 데는 고등수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많은 아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원래 이 자리에는 비슷한 크기의 소나무가 3그루가 자라고 있었으나, 1960년 태풍 사라호 때 한 그루가 넘어져 죽고 또 한 그루도 그 후에 죽어버렸다고 한다. 살아있을 때 서로 다툼을 벌리느라 나무는 동쪽으로 심하 게 기울어져 있다. 굵은 가지가 거의 동쪽으로 나 있는 것은 죽은 나무가 넘어질 때 가지를 부러트린 탓이 라고 한다. 보름 달밤에 홀로 비춰지는 쓸쓸한 그림자는 먼저 보낸 형제소나무에 진한 그리움이 배어있는 것 같다.
마을은 진주 강씨 집성촌으로서 13대 선조부터 정착하였다고 한다. 강씨가 들어오기 이전, 조선 초기 변씨 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 부근에 산사나무가 많아 마을 이름을 당산리라 하였는데, 당송(棠松)이란 여기에 서 유래되었다. 또 이 일대는 다른 이름으로 송원단(松圓壇)이라고 하였으며 송원단비도 있다. 강씨의 선조 가 처음 나무를 심었다면 나이는 400년, 그보다 먼저 들어온 변씨가 심고 가꾼 것이라면 600년 정도로 짐작 된다. 하지만 나무의 굵기나 생장상태로 보아서는 보다 젊은 400년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동네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나라에 큰 일이 있거나 마을에 우환이 생길 때 마다 이 나무는 우우웅! 우우 웅! 하는 큰 소리를 내며 운다고 알려져 있다. 한일병탄, 광복, 한국동란 때에는 몇 달 전부터 밤마다 울었 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신령스런 나무라고 하여 당송이란 본래 이름 이외에 영송(靈松)이라고도 부른다.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라고 여겨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영송제를 지내고 있다. 제사 를 올린 후 동네 어른들이 거의 참석하는 대동회를 열고 1년간 당송을 따로 맡아서 보호할 사람을 선정할 만큼 정성을 들인다. 약 10여 년 전부터는 막걸리 한 섬을 나무에 뿌리는 행사를 벌린다고 한다.
한편 이 나무는 1960년경부터 땅 위 4m 높이의 죽은 줄기에서, 매년 백로를 중심으로 앞 뒤 열흘쯤에 흰 버 섯 1, 2개가 핀다. 먹을 수 있는 버섯으로서 마을에서는 ‘송이‘라고 한다. 당송에서 핀 송이는 진짜 송이와 모양이 비슷하나 보다 향이 진해 식용보다는 주민들의 약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송이는 만병통치의 영 약으로 알려져 있어서 마을 회의를 거쳐 지병이 있는 사람에게 특별히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