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티비 라이브 제14회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제게 목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많은 일이 있고 그래서 제일 바쁜날입니다. 강의와 라디오 방송 그리고 해시티비 라이브까지. 동선도 무척 길고 복잡하죠. 필요한 걸 챙기다 보면 어느덧 해가 기울고, 이렇게 해시민들께 소식을 알리는 시간이 참으로 금방 찾아옵니다. 비록 아주 작은 공동체이지만 서로 돕고 협력하는 여러 일손들 덕분에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 싶습니다.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하는 이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적은 지난 열 세 번의 목요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개국 3개월을 맞이하면서 구독자와 회원수 증가 그래프는 이제 고원 형태를 그리고 있네요. 정점에서 (다행히 꺾이지는 않고) 평탄해진 이 그래프가 함의하는 바는 뭘까 잠시 생각해보긴 했습니다. 사실 시청자의 의견을 더 많이 듣고 더 많은 참여의 공간을 열려고 하는 건, 역설적으로 '대중적'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댓글도 아무렇게나 쓸 수 없고, 손가락 질하며 깔깔대지도 못하게 하고, 오히려 '정제된 참여'의 부담과 무게를 지우려 한다는 걸 여기 오시는 분들은 알기 때문이 죠. 아마 흔한 소비의 방식처럼, 박장대소하며 환호하다가, 일 순간 조롱하고 침을 뱉는, 그리고 대다수가 '지나가듯 냉소하 며 말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은 이곳 해시티비의 분위기가 자신 들을 튕겨내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거라고 짐작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소통할 수 있고, 자신의 행동과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관계를 관리하려면 그에 적당한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커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크기에 스스로 적응해가며' 성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은 국가에 적은 백성'을 의미하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사상을 저는 공화적 현실주의로 해석합니다. 우리가 우리 구성원들 하나하나 마음과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순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서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무언가는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수시로 체크하는 운영자 보드에는 '탈퇴한 회원' 현황이 뜨는데요 (그 수는 비록 많지 않고, 대개는 그 이유를 밝혀놓으 시지는 않지만) 개중에는 '한시적 지원을 원했다'를 선택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지속할 순 없는 사연이 있지만, 호의를 품고 응원하고 있음을 보여주신 거라고 여깁니다. 또 '경제적 이유'를 선택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선 제 마음이 무척 아파지더군요. 얄팍한 지갑에도 불구하고, 해시티비의 성공을 위해 아주 잠시라도 나눔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에 더 송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진 만큼 기여하고, 능력만큼 노동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 너무 이상적이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또한 믿습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 이 자리에 마음의 둥지를 틀려고 하시는 분들이 더 안심하며 함께 하실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자신의 '시민됨'에 자부심을 갖게 하려고 부단히 애써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환경의 안정성' 확보에 주력한 만큼, 앞으로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위해 더 머리를 굴려,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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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거장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북아일랜드 유혈사태를 다룬 영화 <블러디 선데이>를 준비했는데요, 아직 못 보신 분이 있다면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에는 없으나, 유튜브 등으로 무료 공개된 내용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상업적인 면을 고려했다면 만들지 못했을 영화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역사적 사실에도 충실하고, 편집과 연출 등 미학적인 면모도 뛰어나며, 상당한 흡인력이 있는 영화입 니다. 상업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북아일랜드 유혈사 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잉글랜드에 기반을 둔 영국 영화계가, 상업적 성공 이전에 스스로의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저희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해시민 여러분들도 충분히 짐작하실 겁니다. 불법 폭력 시위를 '근절'하기 위해 일선 경찰관에게 '특진' 기회를 주며 독려하고, '면책' 조건까지 넓히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침. 그게 무얼 의미 하는지도 해시민들은 명확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 < 소담소담>을 통해 여러분들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더 넓게 받아보려 합니다. 댓글로 화답해주시길. <봉박싱>은 집시법 개 정 움직임에 대해 다루면서, '과잉' 진압과 '과잉' 수사에 대해 논의해 봅니다. 사실 '진압'이란 말 자체가 이미 과잉하고, 기존 의 우리 검경 수사가 이미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은 까닭에, 이 조차도 매우 방어적인 프레임이란 점 역시 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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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 근처에는 개화기에서 근대 초입에 지어진 건물이 꽤 있습니다. 이것도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영국에서 유학할 때는 일상적으로 접하던 장면이 지금 이곳에서는 제법 신선하고 반가운 대상이 되곤 하네요. 비내리는 주말 저녁에 고즈넉한 길을 걷다가, 벽돌과 창살로 틔우고 나눠놓은 두 개의 창을 마주쳤습니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에 제법 큰 관상수가 서서 마치 지나가는 저를 구경하고 있는 듯했죠. '안녕! 하며 손을 흔 들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각국의 말로 인사를 나누는 형형색색 의 조형물이, 바닥에 고인 빗물에 비쳐 만들어진, 작은 빛의 기둥들을 지나쳐온 터이기도 했기에.
가끔 경험하는, 말하자면 뭔가 '이세계물'과 '타임슬립물'이 묘하게 얽혀드는 듯한 이 장면. 매우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어떤 '시간의 조각'과 '공간의 틈'을 거쳐가며, '과거의 내가 봤던 것들' 속에 '지금의 나'가 섞여드는 몽환적인 경험. 며칠 전 비온 후의 하늘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에 사로잡혔죠. 르네 마그리뜨의 구름들 속으로, 어울리지 않는 중절모를 쓴 내가 날아들어, 점점이 로고 무늬가 박힌 폴로 셔츠처럼 되어버린 듯한 느낌. 나름 상쾌한 기분이었고, 금세 현실로 돌아와 오늘을 굳건히 살아낼 힘을 얻기도 했으니, 옛날 비속어로 표현하자면 이 '거지 발싸개 같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심리는 아니었으니, 너무 염려들 마시기를.
그렇게 기분 좋은 섞여듬을 위해, 오늘 밤 9시에 다시 만나지요.
https://youtube.com/@j.hash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