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대기업 총수 모여사는 '국내최대 갑부촌'
70년대 고성장기 재벌-부유층 대거이주 집단촌 형성
강변대로를 동쪽으로 달리다가 이촌동과 서빙고동을 지나면 왼편 남산끝자락 언덕배기에 저택들이 우거진 숲속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자애롭고 농익은 30, 40대 귀부인의 자태라고나 할까. 국내 최고급 그랜드하얏트호텔 바로 밑부터 시작해 한남대로 건너편단국대 오른켠 언덕으로 잇대어 있는 주택가.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부촌의 대명사 격인 한남동이다.
한남대로를 건너면 1동이다. 한강변 언덕에 있는 유엔빌리지 등에는 주한 외교관 및 외국 기업인들이 모여 산다. 국내 최대의 외국인 군락지다. 수도 서울의 젖줄, 한강은 어머니 치마폭처럼 한남동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남산1호터널을 빠져 나와 왼쪽 남산 중턱의 한남동 726번지 일대는 '능터골'이라고 불린다. 이 곳은 조선시대 때 능(陵)터로 미리 정해 놓은 자리라 해서 그렇게 불려졌다.
능터골 남동쪽 산아래에는 옛날 남산 밑에 살던 두 장사가 큰 바윗돌을들어다가 놓은 '마습다리' 또는 '말십다리'가 있었다. 일제 때 조계사 석공들이 비석을 만드는 바람에 없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다산로 고개는 '버티고개'라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길이 좁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어 도둑이 들끓었다고 한다. 얼굴이 험악하고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에게 '밤중에 버티고개에가서 앉을 놈'이라는 농담도 여기서 비롯됐다.
한국 개화기에 종교ㆍ정치ㆍ교육ㆍ문화 등 여러 분야에 많은 공적을 남긴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의 별장터가 있는 '세심대', 옛 왕가의별장으로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제천정' 등은 한남동이 오늘의 부촌이 될 것임을 예고한 듯하다.
▶한남동은 지난 1960년대 군사정권 시절 군 출신 엘리트들이 과거 육군본부가 있던 용산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권력 실세들이 터를 잡았다. 그 후 70년대 고성장시대에는 재벌과 부유층이 대거 이주하면서 큰 부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 부촌을 형성했다.
미디어에쿼터블에 따르면, 이 곳에 살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의 보유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2001년 8월 말 현재 2조4000억원을 넘었다.
명실상부한 한국의 최고 부자 마을임에 틀림없다.
▶한남동 부촌가는 재벌들이 이웃해 모여 산다. '삼성 타운'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삼성가(家) 오너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왕년의 톱스타 고현정 씨도 시어머니인 이 신세계 회장과 함께 산다.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신격호 롯데 회장, 박삼구 금호 회장,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 등이 남산 아래 2동에 군집해 있다.
김준기 동부 회장, 최원석 동아 전 회장 등은 한남로 건너 유엔빌리지식구들이다.
제프리 존스(Jeffrey D Jones)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전 회장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 화장품 역사의 산증인인 고 서성환 태평양 회장, 한국 반도체산업의 선구자인 옛 아남반도체(현 앰코코리아) 고 김향수 명예회장 등도 한남동에 거주했다.
요즘 상가 사기 분양 사건으로 세간에 물의를 빚고 있는 윤창열 굿모닝시티 대표도 한남동 맨이다.
▶이건희 회장의 저택인 승지원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미국 시애틀 자택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세계의 경영 및 금융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최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이 구축됐다고 한다.
한남동에서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열린 공간이 있다. 바로 박성용 금호명예회장의 자택이다.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인 박 회장의 자택에서는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고, 창문을 통해 남산 아래 풍경을 즐길 수 있고, 연주회가 끝난 뒤 부엌에서 내 온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콘서트로 유명하다.
▶한남동의 또 다른 특징은 외교 1번지라는 점이다. 외교 사절들이 파티에 초청받는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이 자리잡고 있다. 30여개국의 대사관 및 영사관이 즐비하다. 한남동이 '대사관동'이라 불리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한남2동에 쿠웨이트ㆍ아르헨티나ㆍ이집트 등, 한남1동 유엔빌리지 인근에는 말레이시아ㆍ인도 등의 대사관이있다. 북한남고가차도 근처엔 스페인ㆍ터키ㆍ이란ㆍ브라질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대사관저는 국력에 따라 작게는 150평에서, 크게는 600여평에 달한다.
외교 장관 공관과 인접해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있다. 80년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가 12ㆍ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던 역사적 비화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엔 M-16 총성과 화약 냄새,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현장이다.
▶한남동의 저택 안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풍부하겠지만, 밖에는 없는 게 많다. 잡화점이나 미용실 목욕탕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은 당연히 최고 부유층들에겐 전혀 쓸모 없는 시설들이다. 대신 경비 초소나방범 초소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길을 지나가는 차량은 세다가 잊어버릴 정도로 이따금 한 대씩이 지나간다. 행인이라곤 조깅 시간 외에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부촌의 특징은 고립성과 폐쇄성이다. 누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들은 소득 수준이 비슷한 집안끼리 군집을 이뤄 살면서 배타적 거주공동체를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한남2동 부촌 바로 아래 주민 최민수(65) 씨는 "한남동에서 30년 넘게살았지만 부잣집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궁금하다"고 말했다.
대지나 건평이 몇 평이나 되는지 주변 중개업소들조차 모른다. 가격은더더군다나 알 길이 없다. 매물이 없을뿐더러, 설령 거래를 하더라도 직거래로 이뤄진다.
양무용 남산공인중개 대표는 "부촌 거래는 아예 관심이 없다. 물건도나오지 않고 직거래됐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얼마에 거래가 이뤄졌는지전혀 모른다"고 일러 줬다. 그는 어림잡아 대지 400~500평이 많으며, 1000평이 넘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주택의 가격은 지난 4월 LG전자가 특수관계인인 구본무 회장에게한남동 토지를 41억원에 매도했다고 공시, 이 일대 집값을 가늠해볼 수있다.
허동기 영광공인중개 대표는 "대지는 평당 2000만원을 상회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사관저의 경우엔 대지 200평에 건평 120~150평짜리가 월세는 800만원선이다.
유엔빌리지는 재건축을 통해 임대 빌라들이 속속 국내 부자에서 외국인으로 '손바뀜'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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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하늘이 내린 명당 '전통 富者1번지'
구자경ㆍ이동찬 등 대기업 오너 70년代 둥지…터줏대감으로
부촌에 사는 것으로도 '대한민국 1%'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천민자본주의의 때를 완전히 벗지 못한 우리 경제의 특성상 부자들은 당당하지만은 않다. 70,80년대부터 전통적 부자동네인 서울 성북동과 한남동의 고급 주택단지부터 새천년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주>
삼청공원 옆의 가파른 2차선도로를 지나 삼청터널을 빠져나가면 '한국 부촌 1번지'로 통하는 성북동길에 이른다. 왼쪽편언덕빼기에 큼지막하게 둥지를 튼 주택가는 한가롭기만 하다.
성북초등학교 뒤편까지 넉넉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급 단독주택가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하늘이 낸다'는 부자들이 모여사는 전통 부촌 성북동(정확히 말하자면 성북2동).
성북동이 한국 부촌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은 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성북동은 60년대까지만 해도 부자동네라기 보다 권력 실세들의 집결지였다. 박정희정권시절 청와대에서 가까워 차지철 전대통령경호실장,양택식 전 서울시장 등 정ㆍ관계 인사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정치권력이 우세했던 개발독재 시절이라 권력 주변에는 자연스레 '돈'이모여들었다.청와대에서 가까운 성북동이부촌으로 탈바꿈한 이유다.지난 70년대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부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청와대에 서 가까운 성북동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구자경 LG명예회장,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 대기업 오너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영빈관은 정ㆍ재계 고위 인사들의 사교장이기도 했다.
성북동에는 성락원마을,꿩의 바다마을, 대교단지 등 고급 주택단지가 잇따라 형성돼 있다.성락원 마을은 사적 제378호로 지정된 성락원(城樂園)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성락원은 거의 원형으로 보존된 전통적인 사저로 입구에 들어서면 계곡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 전통정자인송석정과 그 아래 연못이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연출한다.
성락원 마을 서쪽에는 '꿩의 바다마을'이란 독특한 이름의 고급주택가가 언덕위에 들어서있다.
성북구 문화체육홍보과 한재현 담당은 "이곳이 바로 유명한 시'성북동 비둘기'의 탄생지"라며 "당시 새들의 천국이었던 이곳이 고급주택가로 변해가자 시인 김광섭 씨가 안타까운 마음에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고 들려줬다.
꿩의 바다마을 서쪽 일대는 삼청주택단지 또는 대교단지라고 불린다. 고급 주택단지와 대사관저가 밀집한 곳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곳에는 다수의 재벌 총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성북동 부촌에 살고 있는 재벌1세대 및 중견기업인은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중 구두회 LG창업고문을 비롯한 71명은 지난 96년 10월 당시 10억원을 출연,성북문화원을 설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김상하 삼양그룹회장, 김영준 성신양회그룹 회장, 박용곤두산그룹 명예회장,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병무 아세아그룹 회장, 박용성상공회의소회장, 백성학 영안모자회장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인들도 성북동 주민이다.
성북동에는 전통 부자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대사관저 22곳 가운데 성북2동 330 일대에만 10곳이 몰려있다.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캐나다 칠레 호주 알제리 등 6대주를 망라한다.특히 독일관저는 땅만 1만2140평에 달하는 대저택이다. 일본(2000평), 호주(738평), 오스트리아(568평)등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전통 한옥으로는 지방민속자료로 지정된 이재준가(제10호)와 상허 이태준 고택(제11호)이 눈길을 끈다.1900 년께에 건립된 한옥인 이재준가는 조선 말기 상인들의 별장으로 당시 호상(毫商)들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집이다. 또만해 한용운 선생이 일본에 저항하며 말년을 보냈다는 심우장도 있다.
부자들이 모여사는 고급 단독주택 밀집지역이라 성북동 부동산시장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돈이 궁하지 않은 재벌 1세대및 중견 기업인들이 눌러 사는 곳이라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중개업소에서는 성북동 일대에들어선 고급 단독주택이 총 1000가구 정도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지 200여평에 건평 100평짜리가 많다. 정부광화문청사와 가깝기 때문에 대사관저 외에외국인들이 세들어 사는 집도 많다. 시세는 대략 평당 800만원 선이지만 조용하고 외진 곳일수록 비싸 평당 1000만원 이상하는 곳도 있다.
인근 성암부동산 이영열 사장은 "매수희망자는 있지만 매물이 없어 6개월에 고작 한 건 정도 거래된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부자들의 거래인 만큼 가격흥정이 거의 없다는 것.
성북동 부자들은 부동산 재테크와 절세에 특히 관심이 높다.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재테크팀장은 "100억원 이상 자산을가진 전통적인 큰 부자들은 여전히 강남보다는 성북ㆍ한남동 등 강북에 많다"며"연령은 평균 60대 중반으로 부동산을 통해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부동산을 중요한 투자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년층이 많아 절세에 관심이 높다.
성북동 부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6ㆍ25를 거치면서 '소비는 미덕'이 아닌 '아껴야 잘산다'를 몸소 실천해온 타입이 많다.부자지만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이들이 의외로 드물다는 것이 오랫동안 이들을 상대해온 동네 사람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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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ㆍ구기동/도심 속 산골마을…권력층들의 안식처
68년 '1ㆍ21 사태'후 주택단지 개발…문화예술촌 변신중
청와대 뒤편 북악스카이웨이 중간께에 있는 팔각정에 올랐다. 북쪽으로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창동(平倉洞)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산 줄기의 비봉 보현봉 그리고 형제봉, 인왕산 문장암, 남쪽으로는북악산 등이 첩첩이 잇대어 있다. 서울 도심 속에 이렇게 고립된 큰 부촌이 있다니…. 평창동은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의 평창(平倉)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곡물을 저장하던 창고와 군대의 훈련소가 있었던 산촌이었다.
지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상과 담을 쌓은 도인들이 칩거하고 있을 법하다. 자연을 노래하고 화폭에 담아내는 문화예술인, 세파에 찌든 정치인이 자연을 벗삼아 휴식을 취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 같다.
평창동 부촌에는 정치권 고위 인사와 학술ㆍ예술인, 그리고 일부 재계총수가 어울려 산다. 정치인들이 풍수지리를 믿고 사는 구기동(舊基洞)과 함께 강북 최고의 권력촌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구기동 부촌은 정치인이 선호하지만, 규모는 훨씬 작은 편이다. 구기동은 '구텃골'을 한자로 옮긴 지명으로, 예전에 큰 마을이 있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높은 산이 3면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남쪽만이 트인 형세의 구기동은 '택리지'에 사람이 살 만한 명당으로 묘사돼 있다.
평창동은 부촌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명 문화예술인이 모여 산다. 또, 보현봉과 형제봉 비봉 등을 오르는 일반 등산객을 자주 접할 있어서일까. 평창동은 여느 부촌과 달리,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도심 속 산촌에 불과했던 평창동이 부춘으로 바뀐 데는 그만한 사연이있다.
사람이 살기에는 기가 너무나 세다 해서 일대 바위마다 토속 종교의 제사에 쓰이는 촛불이 가득했던 평창동은 지난 1968년 '1ㆍ21 사태'로 불리는 무장간첩남파 사건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관계 기관'은 평창동 일대에 민가를 건립키로 하고, 부랴부랴 74년부터 주택단지로 개발하게 됐다.
처음에는 싼 택지값에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이주했고, 그 후 산수를 즐기려는 재벌 총수 일가와 학자들이 이주했다. 평창동이 강북 최고 권력촌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10년 전인 김영삼정권 시절이다.
최형우 전 국회의원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위해 평창동 일대에 터를틀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촌으로 자리 잡아 간다. 이후 서석재 전 의원과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평창동으로 이사했고, 마지막으로 김영삼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인근 구기동으로 이사오면서 권력촌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동교동계의 맞형 권노갑 전 의원, 문재인 청와대 정무수석도 평창동에 거주한다.
현재 평창동과 구기동에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몽준ㆍ현승일ㆍ김기춘ㆍ김일윤 의원, 금진호ㆍ박재홍ㆍ최재욱 전 의원 등 전ㆍ현직의원 20여명이 살고 있다. 최기문 경찰청장, 김덕중 교육부 장관, 김세옥 경호실장,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전ㆍ현직 관료들도 상당수가 평창동 주민이다.
그러나, 평창동과 권력, 양자의 인연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김윤환 전 의원이 "평창동은 기가 세서 정치인에 좋지 않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평창동에 자리 잡은 정치인이나 권력가 상당수가 불운을겪었다. 최형우 전 의원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서석재 전 의원은 설화로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적으로 좌절을 겪었다. 오랜 평창동 주민이던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도 옥고를 거치면서 이제는 동부이촌동으로 이사했다. 정몽준 의원이 지난해 대통령후보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문전박대했던 곳도 바로 평창동이다.
평창동에는 현재 유명한 문화예술인이 다수 살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를 비롯해 소설가 박범신ㆍ양귀자, 화가 김흥수, 세계적인 지휘가 정명훈, 연예인 고두심ㆍ윤여정ㆍ이혜숙ㆍ이용식 등이 평창동 주민이다.
미술가를 비롯해 작가와 음악인, 여기에 연예인까지 합하면 문화예술인이 줄잡아 400여명을 웃돈다고 한다.
윤방부 서울대 교수, 김덕룡 단국대 총장, 이리형 한양대 부총장 등 60명 안팎의 유명 교수들도 평창동에 둥지를 틀었다. 일부 문화예술인과교수들은 자체적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평창포럼'에서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하지만, 평창동에는 성북동이나 한남동처럼 내로라하는 재벌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평창동이 부촌 순위로는 항상 9위나 10위권에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 한진그룹 일가와 신준호 롯데햄 대표이사 부회장,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정도만이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다.
정치인 보좌관이나 사설보안업체 직원들은 빌라의 화려한 외관에 놀라고 소박한 실내에 다시 한 번 놀란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경우 검소한 성품 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집 내부를 화려하게 꾸밀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일까. 부자 동네인 만큼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배짱형 부자도 있다. 자유분방한 문화예술인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보안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김모 씨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평창동의 또 다른 삶을 들려줬다. 보안 상담을 위해 고급 빌라 내부를 자주 볼수 있는 김씨를 가장 놀라게 했던 집은 거실 바닥이 수족관으로 만들어졌던 빌라. 김씨는 발 밑에 팔뚝 크기의 금붕어들이 노니는 모습에 잠시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또 마당에 덩그라니 골프장 한 홀을 조성한 집, 방 하나를 아예 금고로 개조한 주택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지으며털어놨다.
평창동은 곳곳에서 빌라를 신축하거나 증ㆍ개축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다른 부촌에 비해 주택거래가 자주 이뤄지기 때문이다. 남이 살던 집에서 그냥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주인이 바뀐 빌라는 전혀 다른집으로 변한다.
평창동 일대는 부촌임에도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거래가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설립 연도나 평 수가 워낙 다양해평균 매매가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평당 500만~600만원 정도에 건축비를 따로 계산해야 한다.
평창동 협신공인 송해명 사장은 "주택 가격보다는 오히려 건축비가 평당 1000만원 이상 하는 집들도 많은 데다, 워낙 증ㆍ개축이 심해 평균적인 가격을 내는 것이 무리"라고 설명했다
화랑 넘치고 '빌' 레스토랑엔 유명인사 '북적'
주위를 에워싼 연봉들은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형상의 화산(火山)이다. 이처럼 산세가 유순하지 못한 채 수많은 바위와 암석으로 이뤄진 것을 풍수는 '문필봉'이라 부르며 문장가를 배출할 터로 여긴다. 또, 높은 산이 사방을 에워싼 가운데 그 중심부로 계류가 급히 흐른다. 따라서, 계류 가의 정자에 올라 음풍농월하거나 자연에 안긴 채 시ㆍ서ㆍ화에빠져 세상의 번잡함을 잊기에 좋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동은 일찍부터 작가와 예술가의 터로 주목받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평창동은 정치인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여러 명 좌절시켰다. 정치인에게 대길할 터는 주산이 목성(木星)이거나, 관운을 상징하는 사모사(紗帽砂ㆍ관리가 머리에 쓴 모양의 산)나인암(印岩ㆍ도장 모양의 바위)이 주위에 있어야 하는데, 평창동에는 그런 산이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구기동은 비봉에서 북한산성을 따라 남진한 두 용맥 사이에 펼쳐진 편편한 지형 위에 자리 잡았다. 구기동은 굳게 닫힌 수구(水口) 안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공간이 넓어 보이는데,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막은 북한산성의 형세가 마치 누에 머리와 같은 잠두형(蠶頭形)이다. 누에는고치를 짓고, 옥녀는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짤 것이다. 따라서, 구기동의 풍수적 형국은 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의 명당이다. 비단은 귀한 옷감이니 왕족이나 벼슬 높은 관리만이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곳의 소응은 직위가 높은 관리를 배출할 터로, 공직자나 정치인이 살면 대성할 명당이다.
땅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 성격에맞게 땅을 이용할 때만 지덕(地德)이 발동하며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구기동은 공직자나 정치인이, 평창동에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살아야 산천의 기를 상생으로 받아 대성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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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교육열이 만들어낸 선망의 '상류지대'
진학률 1위 '8학군' 따라 부촌 형성…재벌ㆍ졸부는 없어
"부자동네는 무슨…. 아파트 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이상한 동네죠." 30, 40대 주부들을 대상으로 '가장 살고 싶은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1위로 손꼽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국 최고의 교육 인프라를 갖춘 이곳은 젊은 부자들이 속속 모여들어어엿한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치동에 사는 주민들은 대치동을 '부자들이 사는 곳, 부촌'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시선을 살짝만 돌리면 '서울시 특별구'를 형성하고 있는 타워팰리스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길 하나 건너에 위치한 타워팰리스의 장대하고 위엄한 자태에 비하면 20년 이상된 대치동의 우성, 선경, 미도 등 소위 '빅3' 아파트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외형만으로 내용을 평가하지 말라 했던가. 한국아파트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대치동의 '저력'은 바로 이들 낡은 아파트에 숨어 있다.
대치동이 부촌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채 15년을 넘지 않는다. 대단지 아파트인 은마, 청실아파트에 이어 중대형 평형으로 구성된 우성, 미도, 선경아파트가 차례로 들어설 때까지도 '그저 그런 아파트촌'에 지나지 않았다.
이 평범한 아파트촌이 부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운동이정점에 달했던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부터다. 서울 소재 대학들과 가장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게 장점으로 부각됐던 것이다. 대치동은 학생들의거리투쟁도 없고, 그로 인한 소음과 교통체증도 없는, 그야말로 조용한삶을 유지할 수 있는 부자들의 낙원이었던 셈이다. 이 영향으로 대치동의 대표적인 아파트인 우성아파트는 가격 폭등을 주도하게 된다.
또 한 가지, 명문고와 유명 학원들이 대치동에 둥지를 틀면서 '자식을서울대에 보내려면 대치동으로 이사해야 한다'는 입소문이 퍼진 것도 아파트 가격을 치솟게 했다.
가격 폭등에 따라 대치동에서 작은 평수에 속하는 31평형 가격도 9억원에 이른다. 대치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부동산만으로도 이미 1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70~80% 이상이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고 연 3만~4만달러의 소득 수준을 자랑한다. 또 1가구2주택 이상자가 80%를 넘는다. 따라서 대치동은 '부동산 10억원 이상에 현금 약 5억~10억원'에 이르는 한국형 부자들의 집합공간이라 해도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우성아파트 1150가구 중 변호사만 300여명, 의사가 100여명에 달한다. 그 외에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 사업가를합치면 우성아파트의 모든 가구를 채우고도 남는다.
대치동 주민들이 '대치동=부촌'의 공식을 거부하는 것은 재벌도 졸부도 없기 때문이다. 다들 평범한 월급쟁이고 평범한 사업가일 뿐이라는 것이다. 부촌하면 떠오르는 '운동장 같은 거실'도 '외제 일색의 차'도 없다고 항변한다.
우성아파트 경비원 이모 씨는 "큰 부자는 없지만 중산층이 없는 곳이대치동"이라며 "빈부격차를 따져 보면 대치동만큼 편차가 나지 않는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자녀교육 때문에 무리해서 대치동에 들어온 극히 일부는 전세비용 이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듯한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건설교통부 최재덕 차관을 비롯해 도시국장, 건설경제심의관, 토지국 지가제도과장, 수송정책실 공학계획과장 등이 우연하게도 대치동 주민이다. 이환균, 오장섭 전 건교부 장관도 대치동 아파트에 산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안병엽 전 정보통신부 장관, 김홍래 전 행정자치부 차관,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 등 관료들도 상당수 살고 있다.
기업 임원도 상당수 눈에 띈다. 김용규 동원증권 사장, 구자흥 전 동양생명 사장, 신준상 LG칼텍스가스 사장, 윤종여 전 부광약품 사장, 김귀열 슈페리어 회장을 비롯해 김종성 전 은행연합회 부회장, 나재수 하나증권 부사장, 박성도 전 현대모비스 부사장, 이해진 삼성종합화학 부사장 등도 대치동 주민이다. 또 임권택 영화감독, 엄호성 오세훈 의원,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도 대치동에 산다.
대치동 집값이 떨어질 줄 모르는 또 다른 이유는 교육 인프라 때문. 우성아파트 단지 내에는 '특목고 진학률 전국 1위'를 자랑하는 대청중이있고 선경아파트에는 명문 대치초교가 있다.
대치동 주민들에게는 '대치초등-대청중'으로 이어지는 학군은 명문고,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된다. 자녀들이 일류대에 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대치동 주민들은 자녀를 일찌감치 외국으로 보낸다. 조기유학, 기러기아빠 등도 대치동에선 낯설지 않은 유행어다.
대치초교에 입학하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전세를 얻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아파트에 살아야 대치초교에 입학할수 있느냐"고 묻는다. 청실아파트 1~6동에 살면 대도초교, 7~19동에 살면 대치초교에 입학한다는 정설이 전해진다. 인근 타워팰리스에서도 대치초교에 입학하기 위해 대치1동 우성아파트나 선경아파트로 위장 전입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유명 학원들도 대치동의 교육 수준을 말해 준다. EBS를 통해 유명세를탄 학원 강사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스타 강사가 즐비하다. 최근 대치동학원은 날로 세분화되는 추세다. 국영수 전문학원을 넘어서 수학학원조차도 미적분 전문학원, 방정식 전문학원이 생겨났다. 국어도 쓰기, 듣기, 읽기 등으로 세분화됐다. 영어는 단어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단어학원까지 등장했다. 이 학원들의 평균 학원비는 월 40만원. 그것도 대부분3개월 선납이다.
자녀교육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 부모들이 만들어낸 '제3의부촌'. 2003년 대치동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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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동
편안한 휴식 공간 巨富들의 전원마을
서울 잠실에서 헬기를 탔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프로펠러는 순식간에 폭풍을 만들고, 주변은 온통 태풍에 휩싸였다. 한강상공을 한바퀴 돌며 고도를 확보한 헬기는 강남 도곡동을 향했다. 지상에서는 마천루 같았던 타워팰리스도 하늘에서 보니 자태는 미끈하지만 야트막할 따름이다. 서쪽을 향했다. 넓은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면산자락이다. 푸르름을 잃은 겨울의 산풍경이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 붉은지붕을 이고 있는 마을이 가슴을 파고든다. 양재동의 부촌, 방아다리마을이다.
양재동(良才洞)은 어질고 재주있는 사람이 많이 산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동쪽으론 구룡산(九龍山), 서쪽으론 우면산(牛眠山)이 둘러싸고있다.
구룡산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열마리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한 마리는 떨어져 죽고 아홉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우면산은 산세가 소가 졸고 있는 형상이어서 붙여졌다. 양재동은 동명보다는 '말죽거리'로 더 유명하다. 왜 말죽거리인가. 설이 분분하다.
제주도에서 올려보낸 말을 서울로 보내기 전에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손질하고 말죽을 쑤어 먹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얼마 전까지도 양재동헌릉로변 거여리(巨餘里)에는 많은 마방(馬房)이 있었다.
또 다른 설로는 '이괄의 난'때 인조가 피란가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말 위에서 팥죽을 먹어 말죽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청나라 군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자 청군의 기마병들이 이곳 병참기지로 물러나 말의 피로를 풀 겸 말죽을 쑤어먹여 이름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흔히 '방아다리마을'이라고 불리는 양재동 빌라 부촌은 1980년대초전두환 정권 들어 택지로 조성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요량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유명한 지관을 동원해 명당을 찾아 택지지구 모양도 거북이 등 형태로 조성했다.
한 주민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양재동 빌라촌행을 시도했지만 주민들이 반발해 무산됐다"고 일러줬다. 방아다리라는 이름은 우면산의 산자락이 마치 방아다리처럼 갈라진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법조계에서는 윤승영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비롯해 여상규 변호사 등이소유 또는 임대해 빌라촌을 지키고 있다.
오성식생활영어로 유명한 오성식 씨도 빌라를 소유하고 있으며 가수 김세환 씨 또한 양재동 멤버다. 나훈아 씨는 전직 멤버. 언론계에서는 동아일보, 한국일보 전직 고위 관계자들이 양재동 빌라를 거쳐갔다.
지난 2000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사건의 연정희 씨(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로부터 옷값 대납요구를 받았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이형자(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씨 소유의 횃불선교회관은 이 빌라촌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 방아다리마을에는 250여 가구의 고급 빌라가 모여 부촌을 이루고 있다. 대지는 보통 100여평에서 넓게는 150평에 이른다. 평형별로는 80평형에서 100평형이 있다. 평형과 관련해 양재동 부촌은 특이한 점이 있다. 분양 당시 평형보다 전용면적이 20% 이상 넓다. 준공검사를 받은 뒤 서비스 면적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80평형의 경우 전용면적이100평에 달한다.
양재동 부촌은 대부분 경비초소가 딸린 단독빌라다. 초소도 모자라 무인경비업체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양재동 부촌 가운데서도 최고급으로분류되는 빌라는 신동아빌라 B, C동. 우면산 자락과 접해 전원풍이 강하고 면적도 넓다. 대지 143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에 옥탑까지 겸비, 전용 면적이 120평이 넘는다. 거실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운동장이다. 거실이 웬만한 중형 아파트 한채와 맞먹는다. 국민 주택 규모 아파트와 비슷한 넓이의 방도 2개나 있다. 한달 난방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한 주민은 50만원이 넘는다고 답했다. 이 빌라는 현재 35억원에 매물 1건이 나와 있다.
양재동 부촌의 시세는 대지를 기준으로 형성돼 있다. 평당 2000만?2500만원 수준이다.
이효만 녹원공인중개 대표는 "(양재동 부촌은) 가격탄력성이 '제로'에 가깝다"며 "IMF 외환위기 때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지 842평에 9가구가 들어선 현대빌라 1차는 대상그룹이 4가구를 매입해 리모델링을 추진하려 했으나 주변의 반대에 부딪쳐 사실상 포기하고최근 도시와사람들에게 2가구를 매도했다.
김태민 G공인중개 대표는 "3억5000만?4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하면 가치가 15% 이상 올라가지만 주변의 반대가 많아 실제로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근년에 한 건설업체가 양재동 부촌 전체를 재개발하려 했다가 '쓴맛'만 톡톡히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재동 부촌은 여느 부촌과는 달리 유동적이다. 세입자가 많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주로 변호사나 외국인이다. 전세가는 7억?8억원 수준. 매매는 가뭄에 콩나듯 이뤄진다. 양재동 부촌 소유자 중에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급 아파트를 따로 소유한 사람도 적지 않다고 중개업자들은전했다.
양재동은 탄천(炭川)으로 유입되는 양재천 연안의 농경지로 주로 벼농사가 행해졌다. 그런데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성남시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기면서 농경지가 사라져갔다.
하지만 양재동은 급속히 진행된 도시화 속에서도 농심(農心)은 버리지않고 있다. 서울의 관문인 양재동은 도농이 어우러져 도심 속에서 농촌풍을 물씬 풍긴다. 말죽거리공원, 근린공원 등이 풍부한 녹지를 간직하고 있고 화훼공판장, 양곡도매시장, 농산물종합유통센터, 농협하나로마트 등 농업과 관련 깊은 시설들이 즐비하다.
물류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트럭터미널을 비롯해 진로물류센터, LG유통센터, 중고차ㆍ차용품백화점 등이 들어서 있다. 교육개발원, KOTRA, 소비자보호원 등 교육ㆍ무역ㆍ소비와 연관된 기관들도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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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예부터 부자의 땅 명성 '江南의 성북동'
교통 편하고 아늑한 환경에 몇대째 붙박이 예사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교대역 쪽으로 걷다 보면 대로변 건물사이로 몸을 숨긴 빨간색 집들이 보일락말락 숨바꼭질을 한다. 오른편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오르면 뜻밖에도 고급 단독주택 및 빌라촌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서초동 부촌의 중심지인 서초 1동.
서초동은 일제 때는 시흥군 신동면 서초리에 속했다. 그러다가 1963년정부의 서울특별시 구역확장 정책에 따라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서초동으로 명명됐다. 이후 88년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분리되면서 서초구에 편입됐고, 현재는 서초 1ㆍ2ㆍ3ㆍ4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우면산과 서리풀공원을 끼고 있는 서초동은 소가한가로이 풀을 뜯는 명당이다. 꾸벅꾸벅 졸던 소(牛眠)가 눈을 뜨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좋은 풀(서리풀)이 지천에 널렸다고 해 '서초(瑞草)'라고 불리웠다. 터가 좋다 보니 옛부터 부자도 많고 훌륭한 인재도 많이 나왔다. 특히 서울교대 남쪽 일대는 옛부터 부촌으로 통했다. 서초동에서 11대에 걸쳐 무려 339년째 살고 있다는 이건호(68) 씨는 "서울교대 남쪽은 마을 인근에서 고운 흙이 나온다고 해 옛부터 '분토골'이라 했는데 마을 전체가 부유했기 때문에 일명 부곡동(富谷洞)으로도 불리웠다"고 들려줬다.
서초동은 또한 조선시대의 유명인물이 많이 나고 묻힌 곳이기도 하다.
현 법원 단지와 그 남쪽 일대는 조선 태종 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정역과 그 후손들인 정씨가 모여 살아 정곡이라 불렸다. 삼풍아파트 단지남쪽은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의 후손이 대대로 살아왔다. 또 서초구청뒷산에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묘로 추정되는 자리가 있었으며, 강남역 사거리 일대에는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의 묘와 그 후손들의 묘역이 있었다.
현재 서초 1동의 대표적인 고급 단독주택으로는 교대 인근 '롯데빌리지'(36가구)가 단연 손꼽힌다. 인근 더샤+ㅍ공인의 문창수 사장은 "이곳은 대지만 150, 180, 200평으로 대표적인 부자동네"라며 "공개적으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200평짜리의경우 35억~40억원 선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부터미널역 인근 '서초 현대 단독주택 단지', '트라움하우스'와 '롯데캐슬84', '우성빌리지' 등도 잘 알려진 부자들의 쉼터다.
비록 지금은 강남구 유명 아파트들에 밀려 최고 자리를 내준 처지지만 그래도 서초구에서만큼은 최고로 인정받는다. 여기에 바로 옆 동네 옛 극동아파트 자리에 들어선 삼성래미안(34~50평형 1129가구)이 최근 입주를 거의 마무리하면서 신흥 부자아파트로 떠오르고 있다.
인근 로열공인 송영집 사장은 "시세는 50평형의경우 삼성이 9억2000만~10억6000만원으로 삼풍(8억5000만~10억5000만원)보다 다소 높지만 새 아파트임을 감안하면 그 격차가 적은 편"이라고설명했다.
그러면 서초동 부촌에는 과연 누가 살까. 이곳에는 기업인이 많이 몰려있는 성북동 등과는 달리 경제계, 관료,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 예술계, 체육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두루 둥지를 틀고 있다. 특히 풍수지리적으로 서초동이 선인이 책을 읽는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의 명당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일까. 이곳 부촌에는 유난히 학계 인사가 많이 살고 있다. 이천수 천안대 총장, 최종태ㆍ김인준 서울대 교수, 허경 연대 교수, 박상조 청주대 교수, 윤영오 국민대 교수, 박주순 경원대 교수등이 서초 1동 고급 단독 및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서초 2ㆍ4동 아파트단지에도 맹원재 건국대 총장, 염재선 세명대 부총장을 비롯해 김애실 한국외대 교수, 김인회 성균관대 교수 등 대학교수 15~20명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직 고위관료들이 많이 눌러 살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 이건춘전 건교부 장관, 한영석 전 법제처 장관, 황창평 전 국가보훈처장, 박부찬 전 부산시장, 한준호 전 중소기업청장, 이택천 전 서울경찰청장, 신광옥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김문탁 전 제주도지사, 이원택 전 서울부시장, 김영근 전 송파구청장 등이 그들이다. 이와 달리 현직 관료는 드물다.
법조타운이 들어서 있는 관계로 전ㆍ현직 법조계 인사들이 꽤 있다. 특이한 점은 현직은 주로 서초 2동에 살고, 전직은 서초 1ㆍ4동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 임채진 대전지검 부장검사, 이훈규 수원지검 차장검사, 한윤홍 춘천지청 부장검사, 성윤환 북부지청 부장검사와 최환ㆍ박태훈 변호사 등이 서초 2동 주민이다. 반면 김기수 전 검찰총장 등 7~10여명의 전직 법조계 인사들은 서초 1ㆍ4동에 주로 산다.
부자라면 기업인을 빼놓을 수 없지만 서초동은 의외로 경제계 인사가 적다. 이문칠 영진닷컴 대표와 안시환 SKC 고문, 최준규 서통회장, 오강현 강원랜드 사장, 이맹기 대한해운회장, 이영호 스타전자 대표, 박종도국제컨트롤 대표 등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대중 스타인 인기 연예인들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중후한 매력을 풍기는 중ㆍ장년층이다.
백홍규 서초 4동장은 "탤런트로는 한진희ㆍ사미자ㆍ장용ㆍ길용우ㆍ송경철ㆍ박용규ㆍ백윤식 씨 등이, 가수는 하춘화ㆍ윤형주ㆍ이재원 씨 등이 서초 2ㆍ4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들려줬다.
유명한 예술인으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와 지휘자 금난새 씨를 들 수 있다. 정치인은 함승희ㆍ정동채 의원과 하경근 전 의원 등 몇안 된다. '국보급 투수'로 불린 선동열 씨도 서초 1동 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언론계 인사로는 박권상 KBS 사장을 비롯해 10여명이 삼풍아파트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서초동은 다양한 부자가 모여 사는 부촌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도 간직하고 있다. 바로 지난 95년에 무려 501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사건. 한때 서울을 대표하던 삼풍아파트는 이 참사 이후 강남구 압구정 현대, 대치동 은마 등에 최고 자리를 내줬다.
현재 옛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아크로비스타'라는 고급 주상복합(3개동 39~94평형 757가구)이 들어서 마무리 외관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인근 태극공인 관계자는 "25억원에 분양된 94평형 분양권 시세가 26억~26억30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고 전한다. 아크로비스타는 내년 6월부터 주인을 맞이한다. 삼풍의 아픔을 씻어내고 또 하나의 부자 안식처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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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본동/고급빌라…빼어난 풍광…"마치 무릉도원"
16만평 공원 특급조망권 자랑 저명인사 많아 "강남의 평창동" 한국거주 프랑스인 절반 살아 옛 대우그룹 영빈관도 이곳에 서울 방배4동 함지박사거리에서 동광로를 따라 걷다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심하다 싶을 정도의 경사를 오르다보면 부촌이 아닌 '달동네를 찾아가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아득한 언덕에 이르면 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바로 그때쯤 꼭꼭 숨겨져 있던 마을이 나타난다. 이름도예쁜 '서래마을'.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주택과 인적이 드문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리 곳곳에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사용한간판이 즐비하다. 이국적인 느낌에 취할 때쯤 전형적인 시골의 상쾌한 공기와 풀냄새가 몸을 감싼다. '서울시내에 이런 곳이 있다니….' 서래마을의 첫 인상이다.
방배본동과 반포4동 경계에 위치한 서래마을. 서래마을이란 명칭은 마을 앞 개울이 서리서리 구비쳐 흐른다고 해서 붙여졌다. 서래마을의 일부를 점하고 있는 방배동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 하여 '방배(方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방배라는 이름 때문일까. 서래마을 곳곳에는 '우면산 지키기'에 앞장선 주민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한국판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이곳 주민들이 지역지키기에 앞장서게 된 배경에는 예로부터 이어져온경제적 여유도 한몫했다. '서래마을 주민이 없으면 한양은행은 모두 망한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이곳은 돈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서래마을에 20년 이상 살았다는 김인식 씨는 "해방을 맞았을 때도 서래마을 주민들은 고급 채소를 전국에 공급하면서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했다.
서래마을은 원래 반포에 살던 주민들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수해를 입고 이주해 오며 생겨났다. 장마철만 되면 한강이 범람하자 높은 지대를 찾아나선 이들의 삶터가 서래마을이었던 것. 원래 야산이었던 서래마을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될 때도 옛모습을 고집스레 지켰다. 서래마을옆구리에 위치한 16만평의 서리풀공원은 서래마을 주민들의 고집을 증거하는 자취다.
특히 서래마을 인근의 반포4동은 '전국에서 가구당 연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동'으로 꼽히기도 했다. 마케팅 전문기업 타스테크가 지난 7월전국 4만명을 대상으로 소득수준을 조사한 결과, 반포4동은 평균 6080만원의 연소득을 자랑하며 1위에 꼽혔다. 또 방배본동 역시 소득수준 10위에 들었다.
최근에는 서리풀공원을 둘러싼 방배4동이 방배동을 대표하는 부촌으로급부상하고 있다. 서리풀공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특급 조망권'을 살린 고급 아파트가 공원을 에워싸며 건립되고 있다. 이들 아파트는 먼저 들어선 고급 빌라와 함께 서리풀공원 일대의 부동산가격을 올리는 주체가 되고 있다. 고급 빌라 시세가 평균 10억원 이상이다 보니 방배동 사람들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인사들이 많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윤세영 SBS 회장,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 김영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이 살고 있다.
장문영 이건산업 부회장, 정보근 전 한보그룹 회장도 이곳 주민이다. 장재구 한국일보 사장과 김경준 목동병원 원장은 빌라재건축 때문에 잠시떠나 있는 상태다.
방배동은 연예인들의 삶터이기도 하다. 가수 조용필 이미자 신승훈 임백천을 비롯해 영화배우 최민수 강석우 김정은 주진모 하지원, 탤런트 김수미 최수종 김영란이 살고 있다. 영화배우 이미연과 이미숙도 얼마 전까지 방배동 주민이었다.
지난 4월 법원경매를 통해 매각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집 역시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다. 48억원에 매각된 이 집은 대우그룹의 영빈관으로불렸다. 재계 총수들의 방배동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각국 원수와 장관을 접대하며 70~80년대 '수출드라이브'의 현대사를 장식한 곳이다.
김 전 회장은 큰 아들 묘가 있던 안산농장과 방배동자택에 대해 끝까지애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99년 대우그룹 자구책으로 전 재산을 금융권에 내놓겠다고 하면서도 그는 두 곳은 빼놓았다. 현재는 김 전 회장의 아들 선협 씨가 인근 빌라에 살고 있다.
방배동에는 저명인사들이 모여살고 있으나 교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방배동 3초소 방범반장인 최종학 씨는 "70년대에는 서울막걸리 대표였던 고(故) 유지택 사장, 태화고무 사위였던 김순종 씨로 구성된 로터리클럽이 명성을 떨쳤으나 현재는 대부분 흩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프랑스인들도 방배동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85년 프랑스대사관학교가 방배동에 들어서면서 '프랑스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반포4동 윤복영 동장은 "모국의 문화를 자녀에게 가르치려는 프랑스인이 속속 이사오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절반 정도가 이곳에 산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많이 살다보니 '부동산 렌트'가 이 지역의 재테크 수단으로각광받고 있다. 공실률이 높아 임대수익률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외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슈퍼빌 같은 곳은 수익률이 꽤 짭짤하다. 최고경영자(CEO)급은 월 1000만원 선, 일반 직원의 경우 300만~400만원의 월세를 지불하는 게 통례. 그러나 코아셋KS부동산 박성훈 과장은 "최근 까르푸가 인원을 40% 감원하면서 렌터사업이 예전만 못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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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젊은 부자들 최신유행 즐기는 '名品1번가'
이국적 풍광 고급빌라 즐비 남 의식않고 자기일에 전념 청담동(淸潭洞). '깊고 깨끗한 호수'를 가리키는 이름 그대로 서울 강남의 청담동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왠지 낯선 동네로 다가온다.
루이뷔통이며 구치, 프라다 등 보통사람들은 그저 입만 '딱' 벌어지는 초고가의 명품숍이 즐비한 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때깔'부터 달라 청담동은 주눅 들기 딱 알맞은 곳이다.옛날 청담동에는 맑은 못이 있었다. 105번지 일대가 바로 연못자리다.
또 134번지 일대의 한강변은 유난히 맑아 '청숫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청담동. 청담동 일대는 1973년 영동대교가 놓이기 전만 해도 전형적인 강촌마을이었다. 또 일제 시대까지 이 지역 주민들은 농업을 하는 틈틈이 한강에조각배를 띄워 쏘가리, 붕어 등을 잡아 강북으로 수송했다. 그러다 75년강남에 건축 붐이 일면서 전답과 초가집은 사라지고 상가와 아파트, 고급 주택들이 속속 들어섰다.
특히 '졸업만 하면 한자리한다'는 경기고가 청담동 바로 옆에 이전해 오고, 영동고 등이 신설되면서 소위 '있는사람'들이 몰려들자 자연스럽게 부촌 대열에 들어섰다.
특히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청담사거리의 명품숍 뒤켠으로는 이국적인 풍광의 고급 주택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거리의 공기마저 도도함을 뿜어내는 듯 이 지역 주택들은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물론 강북처럼오랫동안 '전통'을 지키기보다 유행에 민감해 수시로 다시 지어지곤 하지만 나름대로 분방한 멋을 갖춘 호화주택이 펼쳐진 이곳은 막는 사람은 없지만 평범한 사람은 들어오기 힘들다는 강남문화의 중심지다.
고급 빌라가 많지만 청담동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주거환경이 좋다지만 워낙 전통이 짧은 부촌인 데다 주변이 시끄러운 소비문화의 중심지니 '품격 있는' 부자의 체면과는 어울리지 않는 탓일까.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을 비롯해 이준영 대유통상 명예회장, 권문구 LG건설 부회장, 정선호 대흥제지 사장, 조상규 이지컴 사장, 김창부 전 한국신용정보 사장이 그나마 들어봤음직한 면면이다.
이처럼 명망가는 드물지만 개인사업가나 전문직 종사자 등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멋지게 살아가는 알짜부자가 많은 곳이 바로 청담동이다.
개인사업가ㆍ연예인들 주류 평균 30억~40억원대 자산가 청담동 부촌 주민의 한 축은 연예인이 맡고 있다. 청담동 주민들은 연예인이라고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편이어서 연예인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안식처인 셈.
청담동에 사는 연예인은 조영남, 강부자, 박상원, 이미숙 등 고참 연예인은 물론 김민종, 주영훈, 채시라, 손지창, 전지현까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청담동 소재 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청담동 부자들의 평균 자산을 30억~40억원대로 파악하고있다. PB들은 청담동의 전형적인 부자들은 '현금 15억원, 부동산 15억원, 증권이나 채권에 1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최근 청담동 부자들이 투자대상으로 관심을 갖는 분야는 역시 부동산. 강남 및 수도권 일대 상가나 토지가 주 공략 대상이다.
유학파들이 많은 탓인지 개인집에서 '파티' 같은 모임이 자주 치러진다. PB들보다 고급 투자정보를 더 빨리,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요즘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지면서 보석과 그림에 대한 투자가늘고 있다고 한다.
청담동에는 지난 4월 30일 기준으로 국내 기준 시가가 가장 비싼 주택10위권에 3곳이 포진해 있다. 청담동 로얄카운티 116평형이 21억원으로4위, 로얄카운티 3차 122평형이 19억6000만원으로 6위, 이니그마빌 2차142평형이 19억3000만원으로 7위에 랭크됐다. 지금도 곳곳에서 시가 20억원이 넘는 초호화 빌라가 하루가 멀다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청담동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원모(24) 씨가 들려주는 청담동 A빌라는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고급 주택. 대략 100여평 정도로 6가구가 모여 있는 4층 건물은 유럽의 별장을 연상케 한다. 빌라 건물 지하와 지상 1층은 모두 주차장으로 외제승용차가 자리잡고 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인테리어는 서구의 부잣집 그 자체다. 하지만 고급 빌라들은 인근 주상복합아파트에빼앗기면서 명성이 점차 퇴색되고 있다.
청담동 부동산뉴스 관계자는 "주상복합아파트로 빠져 나가려는 주민이늘면서 빌라의 경우 평당 가격을 1500만원에서 1300만원까지 낮춘 매물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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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江南개발 발원지…패션ㆍ문화 1번지 우뚝
이주 1세대 대거 떠나…최근 연예인들 잇따라 '둥지'
도공의 손놀림으로 빚은 조선백자의 매끄러운 곡선처럼 한강에 에워싸인 압구정동. 한강을 향해 볼록하게 돌출된 모습이 마치 돈자루가 팽창해 물을 밀어낸 듯하다. 한강에 척척 걸쳐 놓은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는 '내 팔자가 상팔자'임을 과시한다. 압구정동은 강남ㆍ북을 잇는 대교와 여기에서 연결되는 언주로 선릉로가 씨줄, 올림픽대로 압구정로 도산대로가 날줄이 돼 촘촘한 자수처럼 길이 얽혀 있다. 지하철 3호선도 압구정동을 비켜가지 않는다.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다.
동호대교 남단을 지나 압구정동으로 접어들면 이른바 로데오거리(정확히는 압구정2동)다.
부자 동네답게 성형외과, 고급 레스토랑, 애완견 센터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곁눈으로 아파트 단지를 훔쳐 보면 창문 밖으로 튀어 나온 에어컨 실외기가 가구당 보통 2~3대, 위성방송수신기도 집집마다 설치돼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면 좋을 것 같다. 왜일까? 압구정동 사람들의 '끼'와 특유의 패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왕 약속이 있다면 압구정동 찻집을 들르는 것은 어떨까. 약속시간 30분전에 도착해 지나다니는 행인의 몸짓과 표정을 눈여겨보는 것도 괜찬은재밋거리다.
압구는 한명회의 호. '속된 세상일에서 벗어나 한적한 강가에 머물며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한명회가 과연 갈매기를 벗 삼아 자연을 제대로 즐겼을까. 예부터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새로통하는 갈매기는 알고 있었을 게다.
유래부터 권력지향적인 탓인지는 모르지만 80년대 이후 권력층과 상류층의 상당수가 이곳에 거주했다.
그 뒤 압구정은 저자도(楮子島)와 함께 철종의 딸인 영혜 공주와 결혼해 금릉위(錦陵尉)가 된 박영효에게 하사됐다. 그러나 박영효는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려 압구정을 몰수당했다가 고종 말년에 다시 찾았다.
압구정동 465번지(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세워졌던 정자는 사라지고 없으나 그 자리에 압구정터임을 알리는 바위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때 압구정동에는 '뒤주니' '먼오금' '옥골' '장자말' 등 자연부락이 있었다.
뒤주니는 압구정 밑에 있던 마을로 압구정을 뒤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먼오금은 압구정 내에 있었으며 옥골은 한강이 마을 앞을 흐른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장자말은 옛날 큰 부자가 살았다 하여 붙여졌으며 넓고 큰 기와집이 많았다고 한다.
압구정은 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업 위주의 마을로 배밭 등 과수원이 많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압구정동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의 부촌 한남동과 서로 마주보며진정한 부자마을의 자웅을 겨루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현대그룹 계열 임원들이 보금자리를 틀어 부자동네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두세 차례 손바뀜이 일어나 압구정동 1세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 꿋꿋이 터를 잡고 있는 가운데 오상수 전 새롬기술 사장 등 벤처업계 신흥 부호들이 자리잡고 있다.
정계 인사로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같은 당 서상목 의원이 압구정동을 지키고 있고 변웅전 자민련 의원은 얼마 전 압구정동을 떠났다.
97년 대한항공 여객기의 괌추락 사고 때 숨진 신기하 전 의원의 압구정동 아파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국민회의 총재)이 찾아 유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패션의 거리, 문화의 거리답게 문화ㆍ연예계 인사가 많다. 원로 언론인고 류건호 씨가 압구정동에서 임종했으며 유인촌 김창숙 나한일 씨 등이압구정동 사람들이었다.
서승현 임성훈 정윤희 g.o.d의 김태우 김보현 씨 등은 바통을 받아 압구정동을 지키고 있는 신세대. 지난 20여년간 자신의 신상과 관련해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려 온 김보연 씨도 두 딸과 함께 자매처럼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행복과 풍요로움에 대한 시샘 때문일까? 최근 학생을 해치겠다는 협박편지가 모 초등학교에 전달되고 노부부 피살사건, 재벌가 며느리이자 왕년의 톱 탤런트 K씨 외제차 도난 소동, 정치자금 수뢰 공방 등이 압구정동 주변을 배경으로 발생하는 등 얘깃거리가 심심찮게 많다.
▶강남의 지존을 자임하던 압구정동은 대치동이 뜨면서 수위자리를 내준 뒤 뒤따라가는 추세다.
90년만 해도 압구정동 아파트 값은 평당 900여만원으로 논현(820여만원), 일원동(810여만원), 대치동(780여만원)을 훨씬 앞섰다. 그러다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대치동의 추격은 시작됐고 2001년께 압구정동은 제압당했다.
이상기 21세기공인중개 대표는 "아직도 예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대치동 아파트 값이 오르면 뒤이어 오른다"며 "시차는 불과 2, 3일"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시장안정화대책으로 아파트 매매나 전세시장은 '파리 날릴' 정도로 썰렁하다. 지난달부터 매매계약서를 써본 중개업소가 손으로 꼽을 정도란다.
현대ㆍ한양 아파트 등의 매매가는 중소형의 경우 평당 2100만~2200만원, 대형 평형은 2400만~2500만원 수준이다. 전세가는 중형이 평당 600만원대, 대형은 1000만원 선이다.
지난달 경매시장에서 한양아파트 69평형의 경우 응찰자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 감정가(10억원)보다 무려 3억5550만원 높게 낙찰돼 압구정동의명성이 빛바래지 않았음을 보여 줬다.
압구정동 아파트는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 보면 색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77년 입주 이래 25년 이상 근저당, 가압류 등이 전혀 없이 깨끗한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금융권 대출이 '목'을 죄었다 풀었다를반복한 아파트도 많다.
주변 중개업소들은 "이제 압구정동이라고 해서 모두가 부자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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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이촌동/돈이 감싸안은 듯... 江北 알부자 아파트村
"江南 안 부럽다" 20~30년 붙박이 거주 예사
한강을 따라 흐르는 거대한 '돈(물)'줄기를 날마다 바라보기 때문일까. 이곳에는 유난히 각양각색의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기업인에서부터 고급 관료, 학자, 변호사ㆍ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유명 연예인, 일본 대기업의 고위 직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강대교 북쪽, 한강변 좌우로 펼쳐진 이촌동은 원래 광활한 모래벌판이었다. 1956년 5월 자유당 정권시절 정ㆍ부통령 선거 때 30만명의 청중을 수용한 바로 그 유명한 백사장이다. 60년대 후반 이 모래벌판을 매립해 대규모 주택지가 조성되면서 공무원아파트, 외국인아파트, 한강맨션등이 연이어 들어섰다. 이때의 이촌동 아파트가 바로 서울시내 아파트촌의 효시다. 그것이 70년대에 여의도, 강남, 잠실 쪽으로 번져갔다.
이촌동은 1970년 한강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이촌1동(동부이촌동), 서쪽은 이촌2동(서부이촌동)으로 나뉘어졌다. 이후 동부이촌동은 풍수적 명당요건에다 교통과 환경까지 겸비한 강북 최고의 주택단지로 부상하게 된다.
동부이촌동이 아파트 부촌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67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한강개발계획을 세우고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시작했는데 이는 엄청난 이권사업이었다. 사실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건설업체가 이 사업을 통해서 크게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동부이촌동 매립면적은 총 12만1827평이었다. 가장 먼저 68~69년 공무원 아파트가 지어지고 이어 70년에 한강맨션, 외국인아파트가 들어섰다. 한강맨션은 가구당 27~55평형이었으나 당시로 봐서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것이어서 국영기업체에서 사치를 조장한다는 사회적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한강맨션은 70년대 이후의 아파트 대형화를 주도했다. 동부이촌동은 90년대 들어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낡은 모습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강변 부촌으로 변모한다. LG한강자이는 현재 동부이촌동의 대표 아파트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이 아파트 54평형의 경우 분양가는 4억1081만~6억8087만원에 불과했으나 현 시가는 배 이상인 11억~13억원에 이른다. 인근 삼성 리버스위트, 동부 센트레빌 등도 평당 매매가가 높게 형성돼 있다.
동부이촌동 부촌 아파트를 얘기하자면 바로 옆동네인 서빙고동 신동아단지(1326가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 부자들은 강남으로 옮겨가기보다는 한강맨션에서 신동아단지를 거쳐 최근 들어 다시 LG한강자이로 U턴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동부이촌동은 60년대 말 70년대 초 당시 신진 정치세력과 부자들, 그리고 연예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곳이 다른 부촌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징은 정착성이다. 실제 당시 유력인사들 가운데 20~30년씩 그대로 눌러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동부이촌동에서 30년을 거주한 오세철 용산구의원은 "정치인이나 교수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부이촌동 한 아파트에서 20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며 "또 이주를 하더라도 이곳을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고 들려줬다.
원로급 정치인으로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LG한강자이로 이사해 거주하고 있으며,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신동아아파트에 살고 있다. 전ㆍ현직 국회의원으로는 이성재, 유흥수, 설송웅, 이학원, 양문회, 봉두완, 이도선, 양순직, 오유방, 강신성일 씨 등을 들 수있다. 최병렬 한나라당 총재도 동부이촌동을 거쳐갔다.
고위 관료들도 대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전 고위 공직자로는 노신영국무총리, 권이혁 문교부ㆍ보사부 장관, 이범준 교통부 장관, 김재춘 중앙정보부 부장, 윤동윤 체신부장관 등이 있다.
동부이촌동은 소위 방송ㆍ연예계 인사들의 안식처로 잘 알려져 있다.
거리를 걸어가거나 음식점에 들러보면 어김없이 연예인 한두 명은 만나게 된다. 한때 브라운관을 누볐던 가수 남진을 비롯해 태진아, 이선희 등 가수들과 탤런트 김창숙, 태현실, 김자옥, 선우용녀, 이훈, 탁재훈 등이 살고 있다. 최근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박원숙 씨도 여기에 살았었다. 이 외 개그우먼 이경실, 축구감독 차범근 등이 이곳 거주자들이다.
거물급 기업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허창수 LG건설 회장과 김상범 이수건설 회장이 LG한강자이 펜트하우스 등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중견 기업의 사장과 임원들은 대거 포진해 있어 LG한강자이의 경우 운전기사만 250명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상당수 학계 인사들도 명당의 기운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촌동 재력가로 통하는 유승빈 양지학원 이사장을 비롯해 장병규 중부대 전 총장, 남주홍 경기대 교수, 이용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동부이촌동의 이국적인 풍경도 볼거리다. 이태원이 미국인을 중심으로이뤄지는 외국인 거리라면 동부이촌동에는 '일본인 거리'가 있다. 강촌아파트, 한강맨션 상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일본인 거리'는 3000여명의 주한 일본인을 위한 만남의 장. 일본풍의 음식점과 주점이 늘어선이곳은 저녁이 되면 장을 보거나 술 한잔을 즐기려는 일본 대사관 직원이나 일본 기업들의 주재원들로 북적거린다. 일본인 거리를 중심으로 도요타, 소니, 전일본항공(ANA) 등과 일본대사관 주재원 등 1000여가구 이상의 일본인들이 집중 거주하고 있다. 진희용 이촌1동장은 "일본인 거리는 65년 한ㆍ일 국교정상 이후 형성됐는데 한강변의 쾌적한 환경에다시내 진입이 편리한 교통 여건 등이 일본인 유입을 촉진했다"며 "여기에 일본인 특유의 '뭉치기'특성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도심내 다른 쾌적한 주거단지도 많이 생겨났지만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은 이곳을 고집하고 있다. 주민 박모 씨는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말한다.
동부이촌동 아파트 가격은 급등락이 아니라 꾸준히 상승하는 편이다.
타 지역과는 달리 투자자보다는 실수요자가 많아 거품이 거의 없다. 하지만 추가 상승 여력은 크다는 게 현지 중개업자들의 분석이다. 한강변에 위치한 덕에 엄청난 조망권 프리미엄을 덤으로 누린다. 현지 중개업자들은 경부고속철과 미군기지 이전 후 공원조성 등의 대형 호재가 있기때문에 동부이촌동 아파트는 꾸준히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돈(물)이 넘쳐나는 동부이촌동은 또한 돈 때문에 '탈'도 많다. 정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돈웅 전 한나라당 재정운영위원장이 SK로부터 대선자금 100억원을 건내받은 곳이 바로 한강대우아파트 지하주차장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현대의 수백억원대 달하는 비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고문의 자택은 인근 신동아아파트다. 병역비리의 사건으로 세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박노항 원사는 현대아파트에 몸을 숨겼었다.
어쨌든 동부이촌동을 감싸안고 도는 한강물은 오늘도 세상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한강맨션 지하상가엔 외제 없는 게 없네
이곳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숙녀정장에서부터 이탈리아제 스타킹, 일제 복숭아홍차까지 없는 게 없다. 물론 최근에는 백화점 등에 밀려 그빛이 바랬지만 '짭짤한 구색'만은 여전해 상류층인사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부이촌동은 한때 '장미의 숲'같은 '멋쟁이 카페'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일본외교관과 일본상사 주재원들이 속속 둥지를 틀면서 일어간판을 단 스시집과 우동집이 더 성업 중이다. 소규모이긴 하나 '일본인 거리'도 생겨났다. 이들 음식점은 '강남 뺨치는 수준의 가격'인 데도 불구하고 맛이 각별해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실례로 장미맨션 인근의 '하나' 같은 스시집은 정ㆍ재계 유명인사, 연예인의 단골집으로 유명하다. 또 동부이촌동에는 이경실 현미 태진아 등 스타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 배우 황신혜도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에 거주했고, 개그맨 김형곤은이촌동에서 돈가스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이촌동 일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여의도방송국이 7~8분 거리에 위치한 데다 골프연습장, 공원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강북의 압구정동'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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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기업인 마을…70년대엔 '전경련'을 옮긴듯
남산 그림자 품은 '회장집'즐비…정주영ㆍ이병철씨도 한때 이웃
장충동(奬忠洞)은 이름 그대로 '옛 장군과 충신의 동네'다. 우리 근ㆍ현대사가 변화와 고난의 역사였던 만큼 전통부촌 장충동에는 선조들의숨결과 고락(苦樂)을 엿들을 수 있는 역사적 에피소드가 너무나 많다.
40대 중반을 넘은 장ㆍ노년층에게는 요절한 가수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공원'이란 유행가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부촌 중 가장 친근감과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동네다.
서울 남산 동북쪽 퇴계로에서 훈련원길을 거쳐 동호대교로 이어지는 동호로 초입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한 동네가 나타난다. 남산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고 있는 형국이랄까. 이곳이 바로 19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부촌 중 한 곳인 장충동(정확히 장충동1가)이다.
언뜻 보면 보통 동네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주변의빌라형ㆍ다세대형 주택을 마치 병졸처럼 거느린 고풍스러운 대저택이 드문드문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오랜 세월의 나이테 속에 빛은 바랬지만 위엄이 배어 나오는 대저택의 위용은 전통부촌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한다.
장충동은 장충단(奬忠壇)의 이름을 따서 생겨났다. 1900년 설치된 장충단은 임오군란ㆍ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등 풍전등화의 위기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ㆍ열사를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장충동은 지난 60~80년대 성북동 한남동 평창동 등과 함께 기업인, 정치인, 고급 관료 등이 대거 모여 살던 대표적 전통부촌이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신흥부촌 강남으로 하나 둘씩 떠나가면서 장충동은 부촌에서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금은 오래된 많은 대저택이 헐리고 그 자리엔 평당 3000만~4000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빌라와 상대적으로 값이 싼 연립, 다세대ㆍ다가구가 어우러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대저택은 어림잡아15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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