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중앙공원에 가면 제일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수령(樹齡)이 900년을 훌쩍 넘긴 압각수(鴨脚樹)라는 나무다.
밑 둘레가 무려 8미터에 달하는 이 나무는 장구한 세월동안 이고장의 지킴이처럼 수많은 변천사를 겪으며 지금도 무성하게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내가 이 나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약 600여 년 전 이 나무에 얽힌 역사적 일화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고려의 무신 이초(李初)와 윤이(尹彛)라는 사람이 명나라 태조(太祖)를 찾아가 고려 공양왕과 이성계(李成桂)가 군사를 일으켜 명나라를 치려고 하여, 이를 반대한 이색(李穡)파 등을 살해하려 하고 있으며, 우현보(禹玄寶)일파는 감금 유배되었다고 거짓을 고했다.
그 들은 고려의 왕권이 위태로운 것을 감지한 나머지 명 태조를 자극하여 당시 실세인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무능한 공양왕을 제거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실이 명나라에 머물던 고려 사신 조반(趙胖)에 의해 조정에 알려지자, 정도전을 명나라에 급파하여 사실이 아님을 해명하였고, 차제에 이성계의 반대파들을 숙청하기에 이른다.
왕권이 서서히 이성계 쪽으로 기울던 어느 날 반대파로 지목된 목은(牧隱) 이색(李穡), 도은(陶隱) 이승인(李崇仁), 양촌(陽村) 권근(權近), 인재(麟齋) 이종학(李種學) 선생 등 고려 충신 여러 명을 이초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씌워 청주 옥에 가두고 국문을 시작하였다.
이때 양촌(陽村) 권근(權近) 선생은 이미 이림(李琳)의 일파로 몰려 억울한 유배 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영문도 모르고 또다시 청주 옥으로 후송되어 국문을 받게 되었다.
국문이 얼마나 혹독하게 진행되었던지 몇 명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옥에서 숨을 거두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한 국문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도 이성계와 정도전의 수하들이 청주 옥을 습격하여 그들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숙청 사건으로 인하여 변안렬(邊安烈)과 김종연(金宗衍)은 처형 되었고, 왕족인 남평군(南平君)과 수연군(壽延君), 영원군(寧原君)까지 투옥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며 우레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 사상 유례없는 대홍수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온 세상은 물바다가 되고 많은 민가가 침수되었으며 관아가 물에 잠기는가 하면 옥사가 유실되어 떠내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문을 받던 충신들은 근처 객사 앞 압각수(鴨脚樹)에 올라 가까스로 화를 면하였다.
중국 주나라의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을 섭정할 때 근거 없는 소문으로 모함을 받고 물러나니
별안간 큰 바람이 일어 온 나라의 벼(곡식)를 모두 쓰러뜨렸다는 고사가 있다.
진정 무고한 충신들의 회생에 하늘이 진노한 것일까.
이 사태를 지켜본 청주 민들이 봉기하여 이 홍수가 하늘이 감응(感應)한 것이라고 외쳤고, 이 외침이 온 나라에 퍼져나갔다.
급기야 이 소식을 접한 공양왕은 이들의 무죄함을 하늘이 증명하는 것이라 하여 모두 석방하였다.
이때 석방된 권근(權近) 선생께서 당시의 심정을 읊은 시(詩)이다
流言不幸及周公(유언불행급주공) 근거 없는 소문으로 주공에게 불행이 미치니
忽有嘉禾偃大風(홀유가화언대풍) 갑자기 큰 바람 일어 벼를 모두 쓰러뜨렸네.
聞道西原洪水漲(문도서원홍수창) 왕이 청주가 큰 홍수에 잠겼음을 전해 듣고 깨우치니
是知天意古今同(시지천의고금동) 하늘의 뜻이 예나 이제나 같음을 알았도다.
이 시문은 청주시에서 시비(詩碑)를 만들어 압각수(鴨脚樹) 앞에 세웠다
여말(麗末)의 충신들을 위험에서 구한 압각수(鴨脚樹)는 지금도 청주중앙공원에 우뚝 서서 그날의 일화를 말해주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후세인들이 압각수(鴨脚樹)와 관련된 많은 시를 읊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청주중앙공원 압각수(鴨脚樹) / 차승열
누가 알았으랴
청주성 맑디맑은 하늘에
갑작스레 천둥이 치고 큰비가 내린 뜻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여말(麗末)의 충신들
가까스로 압각수 가지에 의지해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니
이내 구름과 바람이 걷히고 밝은 해로 화답했더라
물난리에 살아난 무지렁이 백성들도
기뻐 춤추며 소리 높여 노래하기를
哲人臨死 天降雷雨(철인임사 천강뢰우) 철인이 죽게 되자 하늘이 천둥과 비를 내리더니
哲人及生 天日光明(철인급생 천일광명) 철인이 살게 되자 하늘과 해가 밝아지네. 하니
노랫소리 온 강토로 퍼져 나가
마침내 우매한 공양왕이 깨우치고
이는 죄가 없음을 하늘이 아는 것이라
벌을 거두었더라.
그 누가 알았으랴
의로운 선비의 손을 잡아주던 압각수 가지 끝에도
하늘의 뜻이 닿아있음을
2017년 5월 22일 청주 중앙공원에서 열운(洌雲)이 쓰다.
첫댓글 탄생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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