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 학이사 독서아카데미에서 진주로 문학기행을 하던 중이었다. 아마 점심을 먹고 진주문고로 이동하던 어느 길가였을 것이다. 작은 꽃밭에 치자 꽃이 피어있었다. 익숙하여 반가운 향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과 만나 내 코끝을 스쳤다. 우리 집 꽃밭에도 피기 시작하는 치자 꽃이다.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생각보다 30분가량 집에 일찍 도착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기 바쁘게 내 친구 치자 꽃과 눈인사를 나누려 꽃밭으로 성큼 들어섰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여름의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치자 꽃향기는 계절이 주는 선물이다. 치자 꽃은 6-7월에 핀다. 꽃이 청초하게 아름다워서 문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하지만 향기 또한 일품이다. 그 꽃에 그 향기다. 꽃 향이 신선하게 머리를 맑게 해준다. 잠시나마 세상의 온갖 번뇌를 잊게 해준다. 여름에 딱 어울리는 향기이다. 치자 꽃은 꽃잎이 6개인 홀 꽃이다. 홀 꽃이어서 욕심이 없고 단정해 보인다. 금방 피었을 땐 눈이 부실 듯한 백색이지만 2-3일이 지니면 누렇게 색이 변하면서 시들어간다.
오늘은 오랜 가뭄에 단비가 고맙게도 대지를 적셔준다. 나는 비옷을 입고 방수 모자를 쓰고 치자 꽃 앞에 섰다. 그 향을 폐부 깊숙이 저장하듯 들이 마신다. 사람의 힘으로 이런 향기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는 참으로 놀랍다. 치자 꽃향기가 비에 젖는다. 내한성이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울 집 치자나무는 우리 집에 온지 벌써 4년 차다. 치자는 꽃의 모습과 향기 외에도 열매의 유용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치자는 열매의 약리 효과도 탁월하여 혈관 건강에도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피부 미용과 불면증에도 효능이 좋으며 옛날 잔칫날이면 차자 열매를 우려낸 물로 황금빛 부침개도 나누어 먹었다.
이런 날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박규리의 <치자 꽃 설화>이다. 박규리 시인은 잠깐, 절간에서 공양주로 봉사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시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픈 이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시로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독자의 마음을 애잔하고 숙연하게 만드는 이 시는 마치 한 편의 슬픈 영화를 보는 듯하다.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검색 창에 검색해 봤다. 작품 전문이다.
<치자 꽃 설화>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 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 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 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가랑비 엷게 듣는 소리와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어느 산사에서 목격한 이별의 장면이 이 시의 시작점이다. 시인은 관찰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연민 때문이다. 남자(스님)의 마음은 떠나보낸 여자 때문에 울적하고 마냥 흔들린다. 기도도 목탁 소리도 뿔뿔이 흩어진다. 적어도 시적 화자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화자의 시선은 여자에게 향한다. 하얗게 피어 순결한 치자 꽃 아래에서 마음을 달래던 여자는 체념한 듯 산길을 휘청이며 내려간다. 타자에 대한 시인의 연민,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백날글쓰기 운동에 끝가지 참여한 여러 회원 님들 수고 하셨습니다. 제 글방을 찾아주셔서 읽어주시고 댓글로 응원해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꾸이김민정 민정 선생님의 진정성 있는 응원으로 그 힘빨 많이 받았답니다. 아이구나 !꽃다발 고마운 마음으로 받겠나이당~^^
이 시ᆢ너무 좋습니다. 마음을 이렇게 잘표현할수 있군요ᆢ 백일글쓰기 공간에서 늘 감사했습니다.♡
마음은 마음으로 이어지는 가교를 놓습니다. <치자 꽃 설화>는 저를 많이 울린 詩입니다. 슬프면서도 아름답지요. 어찌보면 신파같기도 하지만 어쨌건 제 눈물보를 건드린 시입니다. 공감하셨다니 저도 덩달아 좋으네요.^^
아, 선생님.
맞습니다. 촉석루 앞에 옛 사진들 근처에 피어있던 꽃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어떤 분이 일일초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꽃과 닮았는데 그 꽃이
치자꽃이었습니다.
치자꽃 설화도 생각이 안나서 스님 이야기도 꺼냈었는데...
고맙습니다 ㅎㅎ
그리고 완주 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ㅎㅎ
우리 서로 자축합시다.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분이 최곱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응원 진실로 진실로 고마웠슴니데이~^^
행님, 완주 축하드립니다. 치자꽃, 이름도 이쁘네요
단풍 아우님 덕분에 함께 뛰었습니다. 功은 아우님에게 드리고 저는 다리에 힘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옵나이당~ 고맙습니다.
선생님. 백날 글쓰기 완료하셨군요. 글이 낱낱이 다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최 선생님의 응원의 힘이 정말 컸습니다. 백날글쓰기는 일단 막은 내렸지만 다시 지원자를 뽑으면 슬그머니 응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함께 축하합시다.^^
늦게 나마 완주 축하드립니다^^
서로서로 축하하고 힘을 돋우는 마음 자세가 책을 읽고 쓰는 사람들의 바탕 마음이겠지요. 김창희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