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세트
강헌 지음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세트』는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1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2권《자유만세》로 구성된 세트다. 역사와 문화는 한 몸이다. 어떤 문화든 그것의 태동과 발전의 과정은 그 터전이 되는 시대와 사회의 현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문화는 시대의 거울이며, 역사는 그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각인된다. 따라서 역사와 문화는 분리될 수 없다. 명실상부 ‘문화 전방의 르네상스인’ 강헌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여, 역사적 맥락의 바탕이 되는 근현대사의 축적된 시간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시도했고, 마침내 그 결실 중 우선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 : 강헌
저자 강헌은 음악평론가. 1962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졸업. 석사학위논문으로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기 음악비평연구」가 있음. 독립영화 집단 ‘장산곶매’ 대표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제작, 영화법 사전심의조항 위반으로 기소된 바 있음. 이후 위헌제청 끝에 헌법재판소에서 승소, 영화 및 음반에 대한 검열기관인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철폐에 앞장 섬. 영화 활동과 병행하여 SBS TV드라마 <제3극장>을 쓰기도 했고, 노찾사와 함께 <끝나지 않는 노래>와 <노래를 읽는 책 이야기> 같은 공연을 기획 연출했으며, 『상상』과 『리뷰』 같은 대중문화 계간지를 서영채, 주인석, 이윤호, 권성우, 정윤수, 김종엽 등 오랜 동료들과 같이 만든 바 있음. 김인수, 서우식과 함께 상업 영화사 ‘프리시네마’를 만들어 <정글스토리>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썼으나 흥행에 참패했고, 이를 기점으로 영화보다는 음악평론가이자 공연 및 음반기획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 거개의 중앙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에 기고하는 한편으로 검열철폐기념 콘서트 <자유> 총감독,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총감독, 들국화 헌정앨범 및 공연 총감독, <노동의 새벽> 헌정 앨범과 공연 총감독,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음반과 공연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 등을 무대에 올림. 이와 한편으로 뮤지컬 <천변살롱>과 <천변카바레>의 대본을 썼고, 충정로 벙커1에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의 와인야부리>, <강헌의 오빠사이드>, <올댓 클래식>, <강헌의 좌파명리학>, <다이내믹 코리아의 종횡무진 대중문화사>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한 바 있음. 펴낸 책으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 『명리-운명을 읽다』가 있다.
[1권]
책을 펴내며
0. 동학농민혁명, 만민공동회, 그리고 대중의 탄생
1894년, 거대한 역사의 분기점을 잉태하다 | 동학농민혁명, 이것은 혁명인가, 혁명이 아닌가 | 주체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획득한 역사적 의미 | 내가 명성황후를 ‘민비’ 혹은 ‘민자영’이라 칭하는 이유 | 조선 땅 최초로 해방구를 맛보다 | 일본의 진짜 우익 덴유쿄, 우익인 듯 우익 아닌 리버럴 집단 | 조선과 일본, ‘합방’인가 ‘합병’인가 | 동학을 바라보는 일본의 두 개의 시선 | 혁명의 실패,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다 | 동학에서 만민공동회로 | 드디어, 대중의 탄생
1. 근대의 여명에 노래가 울려퍼지다
한국대중문화사는 곧 이식과 독립의 역사 | 우리의 이야기를 100년 전에서 시작하는 까닭 | 대중, 그 너머의 서로 다른 대중 | 대중을 불러온 여러 이름과 그 의미의 변천 | 대중이 채택한 마스크, ‘민족’과 ‘계급’ | 혁명의 도구, 동학의 노래 | 민중의 염원을 노래에 담다 | 서구 문화 이식의 창구, 기독교의 노래 | ‘그들’의 노래에서 ‘우리’의 노래로 | 우리는 왜 그토록 기독교에 열광했을까 | 우리 근대의 대중문화를 이끈 두 개의 동력 | 아무도 모르는 그 노래, 대한제국의 <애국가> | 새로운 애국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 쏟아져나오는 ‘애국’과 ‘계몽’의 노래 | 창가와 민요의 공존, 두 개의 문화가 함께 있던 시대 | 우리 근대와 일본, 그리고 엔카와의 상관 관계 | 못다 부른 한 곡의 노래,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를 열다 | <이 풍진 세상>, 조선·일본·서구의 문화가 섞여 탄생한 노래 | 복잡하고도 미묘한 우리 근대의 특수성
2. 근대의 출발선에 선 문학의 풍경 105
상상할 수 없는 탈문맹률, 이후 우리의 저력이 되다 | 높은 학구열의 이유와 그 배경 | 소설, 글자를 아는 이들에게 너무 가까운 예술 | 근대 이전과 이후, 공동체의 스토리에서 개인의 이야기로 | 왜 『무정』을 근대적 장편소설의 시작이라 부르는가 | 너의 소설은 순수예술이냐, 대중예술이냐 | 멜로드라마의 등장 | 예술의 새로운 지배 계층, 부르주아 계급 | 근대 이전, 우리에게는 이미 소설이 있었다 | 신소설은 안 되고, 근대 소설은 가능케 했던 그 무엇 | 추리소설과 연애소설, 대중소설 견인의 쌍두마차 | 역사소설의 인기를 활용하려던 신채호, 역사소설로 친일을 했던 이광수 | 계몽소설, 브나로드 운동,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전쟁 | 문제적 인간, 이광수를 생각하다 | 춘원을 지배한 손병희와 안창호 | 이름도 무정한 그 이름, 『무정』
3. 대중의 문화로 근대 시민의식의 자양분을 삼다
때는 바야흐로 1926년 | 죽은 이의 노래, <사의 찬미>가 불러온 바람 | 대중문화 흥행 돌풍의 신호탄, 영화 <아리랑> |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간의 등장 | 시간의 공존, 태양력의 선택 | 오포午砲와 시계, 그것이 상징하는 바 | 도시화로 인한 공간의 재구성 | 자동차가 들어오고, 전차가 다니고, 배도 다니고 | 식민지 조선, 근대의 상징 기차를 타다 | 조선에 상륙한 영화, 그 첫 만남의 풍경 | 근대 영화가 탄생시킨 최초의 스타, 변사辯士| 오늘날, 한국 영화의 희한한 성공 | 우리 영화계의 기린아, 춘사 나운규의 등장 | 우리 영화사의 사건,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 식민지 조선 땅에 울려퍼진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아리랑> | 제작부터 촬영까지, 검열부터 배급까지 <아리랑>을 둘러싼 풍경 | <아리랑> 그 후, 우리가 주목할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 대중음악은 이제 창가에서 유행가의 시대로 | 여전히 유효했던 우리의 전통가락, 판소리와 민요 | 신종 하이브리드, 신민요 그리고 만요漫謠| 음악 안에서 예술도 통속도 없던 시절 | 홍난파, 그리고 <봉선화>를 둘러싼 가짜 신화 |동요, 아이들을 위한 문화의 등장 | 대중문화, 우리의 민족주의를 반복 학습시키다
4. 국가 없는 민족에게 스포츠는 어떤 의미였는가
한국 영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갈림길에 서다 | 스포츠를 사랑한 일본 제국주의자들 | 우리 근대 스포츠의 첫 장면은 손기정으로부터 | 식민지 조선인의 목에 금메달을 걸게 할 수 없던 일본의 잔꾀 | 그 유명한,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 | 라디오의 등장, 전혀 다른 매스미디어의 출현 | 미디어의 시대를 주도한 라디오, 새로운 권력 구도의 형성 | 민족에서 계급으로의 이행 수칙, ‘분리해서 통
치하라’ | ‘분리해서 통치하라’의 첫 번째 선택, 신문과 지식인 | 활자 매체의 등장으로 지식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다 | 백정들의 집단, 형평사로 인해 촉발된 계급에 관한 문제 제기 | 운동회의 시작, 조선 근대에 시작된 스포츠의 일상화 | ‘쳐다보니 안창남, 굽어보니 엄복동’ | 식민지 조선, 스포츠를 통해 세계를 향한 꿈을 꾸다 | 식민지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경평축구대회 | 1930년대 경평축구대회가 낳은 전설적인 슈퍼스타, 그 희비의 쌍곡선 | 국가 없는 민족에게 스포츠는 어떤 의미였는가
5. 경성 모더니즘의 거리 위에 선 모던 걸의 뼈아픈 숙명
대중문화의 전면에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다 | 강연회에서 독서회로, 활자 매체의 확산으로 인한 변화 | 메타 지식화된 사회주의, 비판받는 계몽주의 | 어느덧 세계 첨단의 환락가가 된 경성의 거리 | 영화 한 편으로 보는 1936년 경성의 이모저모 | 일상 속으로 들어온 영화, 제국주의의 선전 도구가 되다 | 모던 걸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성의 대중문화 | 북촌과 남촌의 구분, 백화점과 카페의 등장 | 모던 걸 모던 보이, 유행을 좇고 좇아 백색 선호에 이르다 | 우리 문화를 다른 세상으로 끌고 가던 쌍두마차 | 급속도로 확산된 댄스 문화 | 광고, 걸음마를 떼다 | 외식문화의 치열한 각축장 경성, 그리고 설렁탕과 비빔밥이 상징하는 바 | 모래 위에 쌓은 성, 경성 모더니즘
6. 식민지 대중문화의 꽃, 트로트와 악극의 전성시대
<사의 찬미>, 그 이후 트로트의 등장 | 가요라는 말은 이제 그만! | 비로소, 대중음악의 시대가 열리다 | <황성 옛터>, 우리나라 작곡가가 만든 최초의 트로트 히트곡 | <목포의 눈물>, 본격적인 트로트 시대의 문을 열다 | 검열의 시대, 어쩌면 최초일지 모르는 노이즈 마케팅 | 1930년대 트로트를 중심으로 빛난 별들 | 트로트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경쟁의 세계로 돌입한 트로트, 음악 문화의 패권을 차지하다 | 가요의 유래, 국민가요의 등장, 그리고 재등장 | 권력의 시녀가 된 딴따라들,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 | 식민 시대 최후의 장르, 악극 | 악극단, 우리 미학의 유일한 대중문화 공간 | 주목해야 할 이름, 안기영 | 악극, 완벽히 사라지다
참고문헌 332
[2권]
책을 펴내며
1. 해방의 환희와 분단의 신음, 정치적 대중문화의 폭발과 몰락
해방의 무렵에 울려퍼진 노래 | 1945년 8월 15일, 해방인가 해방이 아닌가 | 삼팔선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신경전 | “승리에 빛나는 나의 군대는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 1945년 8월 15일의 풍경 | 해방에 대한 우리의 착각, 미국에 대한 일본의 착각 | 한편 북한에서는 | 미군, 점령자로서의 정체를 드러내다 |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갈림길 | 좌우 갈등의 전면화, 이념도 나뉘고 문화도 나뉘고 | 좌파의 <인민항쟁가>와 일본 군가풍의 <독립행진곡>이 공존하다 | 해방공간에 등장한 첫 영화, <자유만세> | 작곡가 박시춘과 가수 현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변화의 서막 | 전쟁 전야, 한국전쟁을 둘러싼 복잡한 속사정 | 전쟁 이전의 비극,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 한국전쟁, 김일성의 어리석은 전략의 결과물 그리고 <전우여 잘 자라>
2. 미군의 GI문화, 전쟁의 폐허를 점령하다
한반도에 미국이 아닌 미군이 들어오다 | 미군 문화, 폭발적 유입의 시작 | 한국전쟁을 둘러싼 여러 당사자의 속사정 | 민간인 사망자 수가 유난히 많았던 전쟁 | ‘국민보도연맹’이 불러온 참혹한 비극의 역사 | 전쟁의 피비린내 속에도 불렸던 노래들 | 대중가요에 서서히 자리잡은 미국의 문법 | 즐길 것이라고는 노래밖에 없던, 이 시대는 노래의 시대 | 전쟁 전후, 여러 모로 불안정했던 출판 문화 | 트로트에서 팝으로, 대중음악의 주도권이 넘어가다 | TV는 아직 없던 시절, 대중을 사로잡은 라디오 시대 | 미군 문화의 첨병, 미군을 위한 방송 AFKN의 남한 착륙 | 폭발적으로 들어온 미국의 리듬 스타일 | 맘보, 1930년대 미국을 출발하여 미군을 통해 남한에 들어오다 | 소설, 영화 그리고 춤바람…,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맘보 열풍 | 소설과 영화의 상관 관계, 그리고 도래한 잡지의 시대 | 종신집권의 욕망을 드러낸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 부정선거 | 그리고 <비 내리는 호남선>
3. 쿠데타의 주역들, 매스미디어 시대를 열다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로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다 | 4·19혁명을 불러온, 그 이전의 맥락 |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고등학생의 시신, 혁명의 발화점이 되다 | 정치 폭력배, 혁명의 거센 불길에 기름을 붓다 | 4·19혁명,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 정권의 권좌에서 끌어내리다 | 미국이 선택한 새로운 파트너, 민주당 그리고 장면 | 우리 역사에서 4·19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혼란의 와중에도 피어난
영화 예술의 가능성 | 대중음악, 멀티태스크 엔터테이너 시대의 개막 | 달라도 너무 달랐던 북한과 남한 | 남한에 불기 시작한 반미의 기운, 그리고 미국의 또다른 선택 | 그의 집권기로부터 오늘날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그 무엇 | 다른 의미로서, 문화 대통령이었던 그분 | 연산, 왕권과 신권 쟁탈전에서 패배한 군왕 | 연산, 그는 어쩌면 |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한 편의 쇼, 5·16군사쿠데타 | 춘향이를 둘러싼 한판 승부, 영화 <성춘향>과 <춘향전> | 영화관에 최초로 등장한 티켓 파워, 고무신 관객의 출현 | 채찍과 당근을 들고 문화를 권력의 시녀처럼 다루다 | 영화 시장에서의 직접 배급과 간접 배급에 대한 이해 | 그분의 입맛에 맞출 것, 우수 영화 추천을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자 모든 것 | <오발탄>, 암흑 직전에 탄생한 걸작 | 권력자들이 벌인 문화 탄압과 검열의 역사 | 면면히 이어져온 정치 폭력배 활용사의 한 장면
4. 경제개발 시대, 극장가에 등장한 고무신 관객
매스미디어 시대, 스타는 탄생하지 않는다. 오직 만들어질 뿐 | 동서막론, 독재자들은 미디어를 사랑했다네 | 권력자와 방송국의 상관 관계 | 이 시절, 안방극장 TV가 있던 풍경 | 미8군 문화는 TV를 타고 | 새롭게 등장한 대중음악의 경향성 | 문화 소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20~30대 여성들의 속사정 | 1960년대의 뜨거운 이슈,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 | I’ll be back! 트로트의 왕정복고 | 최고의 흥행작 <맨발의 청춘>, 그러나 일본의 표절작 | 이미자가 불 붙인 트로트 열풍, 남성 트로트 가수들이 이어받다 | 나훈아냐, 남진이냐! 한국 최초의 오빠 부대 탄생 | 문화에도 계층이 있다, 그녀들이 트로트를 선택한 까닭은 | TV에는 패티김과 최희준이, 음반 시장에서는 이미자와 나훈아가 | 노라노 패션, 한국 패션사의 전환점이자 여성의 동반자 | 왜색가요 파동, 죽고 살기를 거듭한 트로트, 그 불멸의 역사 | 권력자들이 벌인 문화 탄압과 검열의 역사 | 신문사, 방송국은 통제당하고, 모든 표현물은 사전 심의를 거쳐야 했던 시절 | 5·16군사쿠데타 이후, 권력을 갖기 위해 대중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 한국 영화의 전성기, 그러나 그 어두운 나날의 역사 | “분리하여 통치하라!” 박정희 시대에 다시 소환된, 디바이드 앤드 룰 | 홍콩까지 건너간 1960년대 한국 액션영화 붐
5. 제3의 물결, 청년문화의 봉기와 제4공화국
박정희, 삼선개헌을 통해 유신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다 | 1971년 대통령 선거,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부정선거 | 한편, 주겠다는 자유도 받지 않겠다던 언론사 | 박정희, 그야말로 박정희주의자였던 그 사람 | 국민교육헌장 배포, TV트로이카 체제의 완성 | 1970년대의 문을 열어젖힌 전태일의 분신,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 |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역 감정을 조장하다 | 한국 현대사의 두 번째 분수령, TV특별소비세 인하 방침 | 수출의 국가 종교화, 모든 길은 수출로 통하다 | 값싼 노동력을 위해 노동자는 군인화가 되고, 농촌은 공동화가 되었다 | 박정희 정권을 화나게 한 김지하의 <오적> | “죽은 정인숙이 낳은 아이의 아비는 과연 누구냐” | 영화에서 TV로, 문화의 권력이 이동하다 | TV시대의 새로운 총아, 스포츠 | 청년문화 세대, 낭만의 혁명에서 혁명의 낭만으로 | 트윈폴리오, 통기타의 시대 | 한대수라는 돌발변수의 등장 | 김민기, 양희은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 | 그리고 <아침 이슬> | 7·4남북공동성명, 남북한의 권력자들이 함께 짜고 친 한판 사기극 | 시대의 라이벌, 나훈아와 남진은 무엇이 달랐던가 | 청년문화 세대가 주류를 접수하다 | 박정희는 청년문화를 왜 싫어했을까 | 긴급조치와 대마초 파동, 청년문화를 향한 폭거 | 신중현이라는 과녁을 향한 전면전, 영웅의 슬픈 몰락 | 트로트의 왕정 복고와 한국 영화의 몰락 | 모든 것이 극으로 향하던 시대, 모든 것이 그로부터 시작되다 | 세대의 교체와 함께 어둠 속에 꽃핀 문학
참고문헌
문화 전방의 르네상스인, 강헌
그가 한국의 대중문화사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2015년 음악사를 매개로 동서양과 고금을 넘나드는 문화사를 종횡무진 설파한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뒤이어 생사의 경계에서 독학한 명리학을 한 권의 책 『명리』를 통해 단숨에 골방에서 광장으로 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그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거침없이 열어젖힌 저자 강헌이 이제 그가 온 생애에 걸쳐 섭렵한 온갖 경험과 학습의 총합을 장착한 책을 들고 나타났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처럼 그는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는 음악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영화를 만들었으며,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 그뿐인가. 그는 뮤지컬을 기획하고, 온갖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으며, 곁가지로 와인, 축구, 음식 등 관심의 촉수가 닿는 거의 전 분야에 걸친 왕성한 호기심을 마음껏 충족하며 살았다. 심지어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생사의 경계선에서조차 그는 ‘명리’라는, 이전의 그의 족적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대한 새로운 관심사의 지평을 넓혔고, 그로 인해 어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넓은 관심사’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얇은 전문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즉, 하나의 분야에 관한 충성심 높은 몰입 대신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이기는 하나, 하나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겠다는 어떤 다짐과 노력 없이, 취미인지 관심인지 모를 애매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다양한 분야의 섭렵의 뒤에는, 그런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아마추어리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어떤 분야에 꽂히는 순간 그에 관한 놀라울 정도의 지적 자산을 축적하고, 그것에 대한 통찰을 얹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뭔가를 작정하지 않고 살아온 이의 족적으로 치기에 그가 이룬 독보적인 관점은 그야말로 눈부시며 그야말로 총합적이고, 그것의 결정체를 담아 내놓은 것이 바로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전 4권 예정, 1~2권 우선 출간)이다.
대중문화사를 통해
동학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근현대사를 함께 읽는,
문화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독법의 제시
역사와 문화는 한 몸이다. 어떤 문화든 그것의 태동과 발전의 과정은 그 터전이 되는 시대와 사회의 현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문화는 시대의 거울이며, 역사는 그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각인된다. 따라서 역사와 문화는 분리될 수 없다.
명실상부 ‘문화 전방의 르네상스인’ 강헌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여, 역사적 맥락의 바탕이 되는 근현대사의 축적된 시간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시도했고, 마침내 그 결실 중 우선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학자도 아니요, 자신의 말대로 어떤 예술 장르에 대한 충성심도 없이 여기저기 다양한 ‘문화판’을 온몸으로 겪어온 그의 경험과 오로지 개인의 관심사로부터 출발한 박학다식한 지적 배경, 그리고 천부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서술의 방식, 그리고 서로 다른 사실을 통해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맥락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는 그의 통찰을 통해 이제 독자들은 우리의 문화사에 대한 총합적인 이해는 물론이요, 그 배경과 근간이 되는 우리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새롭고 유용한 도구를 획득하게 되었다.
전체 네 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온,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 년 전인 ‘동학농민혁명’으로 그 첫 권의 첫 장을 시작한다. 그는 1894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양민 300여 명이 일으킨 봉기의 현장이야말로 우리의 역사가 봉건의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로 전이되는 첫 순간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대장정의 포문을 열어젖힌다. 이렇게 시리즈의 시작이자 책의 시작을 접한 독자는 곧장 저자가 펼치는 현기증이 일 정도의 속도전에 몰입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1권과 2권에서 동학농민혁명부터 박정희의 시대까지를 다루되, 대상이 되는 주제를 하나의 사건이나 분류로 구별하지 않고, 일정한 시대로 구획을 나누지도 않는다. 하나를 말하되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상황과 그것이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종적, 횡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 받고 있는지, 다른 문화적 현상과 어떤 접점을 만들어내는지, 나아가 그 순간을 통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까지를 단숨에 설파한다. 책 전반에 유장하게 흐르는 이러한 서술의 기법은 다시 말해 익숙한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인물, 하나의 개념을 매개로 그 뒤에 흐르는 역사와 맥락의 거대한 물결 속으로 독자의 시선을 순식간에 잡아당기며, 그로 인해 독자가 독서를 통해 경험하는 흡입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독보적인 흡입력을 통해, 그는 대중문화사를 말하되 개별적인 역사적 사실, 문화적 현상을 나열하지 않으며,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종과 횡으로 엮어 지나간 시간을 통찰함으로써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확하게 꿰뚫어보는 시선의 방식, 즉 역사를 읽는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이후 1976년부터 1995년까지를 다룰 제3권과 1996년부터 2016년까지를 다룰 제4권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군 점령기, 그리고 독재의 시절을 거쳐 온
한국 대중문화사의 상징 키워드, 이식과 독립
저자 강헌은 “한국의 대중문화는 사대성과 독자성의 대치, 도취와 각성의 이종교배이자 파란만장한 에너지를 탑재한 몸부림의 연대기”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는 바로 우리의 대중의 출발로 그가 바라본 동학농민혁명 이후 우리 역사의 족적과 무관치 않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우리의 역사는 곧 일제강점기로 접어들었고, 근대의 문화는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유입되었다. 이후의 역사 역시 다르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는 즉각 미군-미국이 아니다.-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독재자의 서슬 퍼런 권력 아래 살아야 했다. 여기에 분단과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현실과도 마주해야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나날 속에서 대중은, 대중의 문화는 일본과 서구라는 일방적인 생산자의 것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문화적 융단폭격 속에 실질적인 대중의 문화는 탄생했다. 그러나 또 이름하여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우리는 일상 속으로 쏟아지는 외부의 문화의 세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우리만의 방식으로 선별, 변형 수용하는 과정 역시 독자적으로 구축해나갔다. 이것은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특징이 아니었으며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으며 그것은 나아가 우리만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획득하는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우리 대중문화의 특성은 단지 외세의 폭력적 유입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이제 외세가 아닌 우리의 정부라는 이름의 옷을 입은 독재의 세력에 의해 규정되었다. 대중의 문화는 대중의 것이어야 하나, 그것은 때로 독재자의 도구이자 무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의 힘은 독재자의 어떤 도구화의 시도에 그저 휘둘리고 있지 않았다. 대중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와 미군의 폭압에 저항했으며, 독재자들에게도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럼으로 당연히 문화와 역사는 한몸이다. 그렇다면 이 치열하고 처절한 근현대사에서 우리의 대중문화는 어떤 투쟁과 몸부림을 펼쳐 왔는가.
제1권은 1894년부터 1945년까지, 대중문화시대의 막이 오르다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제1권은 일제강점기 종언의 직전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는 500년 조선 왕조의 끄트머리이자 근대의 시작이랄 수 있으며, 동시에 대중이 우리 역사에 그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는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연속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왕조의 몰락을 경험했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아야 했다. 부패한 왕조의 권력에 휘둘리던 대중은 외세의 폭압을 견디며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대중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중은 언제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고, 그것에 가장 절실한 그 무엇을 투영했다. 그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때로는 영화로,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문학으로 등장했으며 그때마다 대중은 그것에 환호하고, 소비하며 자신들의 욕망과 희원을 담아냈다. 그로써 대중의 문화는 어떤 환경에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고, 역사는 불행의 외피를 썼으나 언제나 앞으로 전진했다. 『강헌의 한국대중문화』는 이 시기 유입되기 시작한 서구의 문화, 일본의 정책적 전략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의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자생한 식민지 조선의 문화를 다루되, 어떤 장르로 구획을 나누지 않고 문학과 음악, 영화, 스포츠를 비롯한 문화 전반을 종횡으로 누빔으로써 개별적 사실과 정보의 나열 대신 시대를 통째로 맥락화한다. 그리하여 역사와 문화가 한몸이라는 것, 그리고 문화의 전방이 개별적 특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유기적 연결체임을 입증해보인다. 그의 서술과 시각으로 인해 우리는 식민지 조선의 대중들의 문화는 어떠했으며, 그것은 역사적 단계마다 어떤 반응과 결과물로 등장했는가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가능해졌다.
제2권은 1945년부터 1975년까지, 권력이 대중의 문화를 억압하다
일제강점기의 종언 이후 우리의 역사는 또다른 변곡점을 맞이한다. 지배자 일본은 물러갔으나 새로운 점령자 미국이 등장했고, 뒤이어 새로운 독재 권력이 등장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패망했으나 우리는 해방된 것이 맞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제2권은 해방 이후 한반도에 유입된 미군의 문화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독재의 나날을 대상으로 삼는다. 총독부에서 군정청, 그리고 분단국가의 우리 자신의 정부로 옷을 갈아입은 지배자의 억압 아래 대중과 대중의 문화는 역사의 순간마다 때로는 투항하고, 때로는 대항했으며 그 합종연횡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청년문화의 외피를 입기도 하고, 국책에 충실한 영화로 등장했으며, 검열과 탄압에 충실한 모양으로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로 시장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는 동시에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고 유지하기 위해 대중을 억압하고, 권력을 남용했으며 대중은 이에 격렬하게 대항함으로써 이전과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저자 강헌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두 사람의 독재자들이 지배한 30여 년의 시간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현실의 강력한 DNA를 만들어낸 시간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독재자들 특히 박정희주의가 기획한 파시즘 동원 문화에 대항한 자발적 대학가 청년 문화야 말로 한국 대중문화사의 드라마틱한 백미의 지점이라 평한다. 그의 이런 평은 돌이켜보는 것조차 참담한 이때의 역사를 대중문화를 매개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대중문화가 역사의 전진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에 관해 되돌아보게 한다.
제3권 ‘대중문화, 권력과 시장의 후원 아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다’
제4권 ‘한국 대중문화, 한류라는 이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곧 만나게 될 오늘의 대한민국
2016년 11월에 펴낸 제1권과 제2권에 이어 2017년 4월에 출간 예정인 제3권과 제4권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5년까지 시장과 권력의 이중주 아래 새롭게 분출한 대중문화의 양상을 다루고, 뒤이어 정치 지형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대중문화가 한반도를 뛰어넘어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 문화의 주류로 성큼 입성한 그 맥락과 현상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오늘의 직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내일의 나아갈 바에 관해 다룰 그의 통찰 역시 기대해볼 만하다.
우리는 왜, 지금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를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우리는 이전의 역사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무후무할 참담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국민이 위임한 최고 결정권자의 권위는 팽개쳐졌으며,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마주한 현실 앞에서 자존을 위협 받고 있다.
그러나 넘어진 곳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새로운 땅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폭압 속에서, 분단과 전쟁의 상처 속에서, 이어진 독재자들의 전횡 속에서도 우리는 노래하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읽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투쟁과 투항의 행보를 교차하면서도 끝없는 암흑을 끝내고 새로운 빛을 만들어냈다. 지난 역사 속에서 대중은 언제나 어찌해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으며, 혼란 속에 만들어진 문화의 착종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사의 동력이자 역사를 전진시켜나가는 힘이 되었다. 혼란과 혼돈의 극치인 지난 역사의 대중문화사를 돌아본 저자 강헌의 일갈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 대중들에게도 적절한 참조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일련의 자책골이 이어졌다고 해서 역사는 종료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구원의 기획을 시작했다. 역사적 순간의 혼란스러운 착종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사의 근원적인 동력일지도 모른다.”
책속으로 추가
* 1945년 8월 15일, 해방인가 해방이 아닌가
“해방이 되었다고 만세를 부른 그날,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얻은 해방이 아니었던 탓에 미군과 소련의 점령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를 점령할 권리가 일본에서 미군과 소련군으로 이양된 것이다.” (2권, 25쪽)
* 미군, 점령자로서의 정체를 드러내다
“미군은 애초에 해방군으로 온 게 아니었으니, 우리 편을 들 이유가 없었다. 전쟁은 끝났고,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게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미군은 한반도에 남아 있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고, 그다음에 친일 세력과 손을 잡았다.”(2권, 42쪽)
* 대중가요에 서서히 자리잡은 미국의 문법
“전쟁의 와중이라 비록 군가풍의 노래가 주류이긴 했으나, 한쪽에서는 서서히 미국의 문법이 대중 사이에 점차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시춘의 <봄날은 간다>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노래다.(2권, 96쪽)
“한국전쟁 이후, 점차 미국 문화 요소를 담은 노래들이 큰 인기를 끌었고, 대중음악의 주도권은 이제 트로트에서 팝으로 넘어갔다. 이 문화의 시발점은 이른바 GI문화라 불리는, 미군 부대에서 비롯되었다.”(2권, 101쪽)
* 다른 의미로서, 문화 대통령이었던 그 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만큼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가 없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문화를 영리하게 도구로 삼았고, 문화 산업 전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2권, 156쪽)
* 영화관에 최초로 등장한 티켓 파워, 고무신 관객의 출현
“영화 시장을 포함한 대중문화 시장에서 여성 수요자들이 이 시장을 크게 키우고, 그 시장의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분기점이 바로 이 고무신 관객이었다.”(2권, 167쪽)
* 권력자와 방송국의 상관관계
“박정희는 권력을 손에 쥐자마자 언론과 미디어의 철저한 통제를 정책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우리의 TV방송 시대는 애초 정치적 왜곡의 가능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2권, 191쪽)
* 문화소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20~30대 여성들의 속사정
“‘고무신 관객’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여성 소비자들에 의해 근대적 의미의 한국 문화산업 시장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중졸 정도의 교육 수준, 고향을 떠나 사는 일상, 공장 노동자로서의 고단함이 바로 그 배경이었다.”(2권, 200쪽)
* 나훈아냐, 남진이냐! 한국 최초의 오빠 부대 탄생
“남성 트로트 가수들이 시장을 석권했던 건 다름아닌 여성 팬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 덕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다른 애들이 좋아하는 오빠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야 했다. 이들끼리의 살벌한 경쟁은 당연했다.”(2권, 217쪽)
“두 사람은 전설의 라이벌이었지만 나훈아의 노래에는 시대를 제대로 바라보는 핵심이 있었고, 남진의 노래에는 뜬구름 같은 환상만 명멸했다. 치열한 라이벌전을 거친 두 사람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나훈아였다.”(2권, 291쪽)
* 문화에도 계층이 있다, 그녀들이 트로트를 선택한 까닭은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룬 트로트의 팬들은 취향의 전선을 공유했다. 많이 배우지 못해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부모들이 즐긴 트로트는 익숙한 문법이었다. 같은 세대 안에서 배운 언니들과 노동자 언니들이 누리는 문화의 계층이 발생했다.”(2권, 220쪽)
* 왜색가요 파동, 죽고 살기를 거듭한 트로트, 그 불멸의 역사
“멀쩡하게 불리던 노래가 하루아침에 금지곡이 되었다. 그렇다고 트로트가 사라졌는가.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을 거쳐, 노태우를 거쳐 오늘날까지 트로트는 사라질 듯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하게 부활하기 일쑤였다.”(2권, 224쪽)
* 박정희, 그야말로 박정희주의자였던 그 사람
“박정희는 그야말로 박정희주의자다.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한국 현대사의 신화로 존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1위 정치인이다. 우리 사회의 깊은 내상이 아닐 수 없다.”(2권, 248쪽)
* 값싼 노동력을 위해 노동자는 군인화가 되고, 농촌은 공동화가 되었다
“수출 광풍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했다. 피폐한 농촌 젊은이들이 도시의 값싼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젊은이들은 내무반 같은 공장으로 몰리고, 그들이 떠난 농촌은 텅 빈 채로 방치되었다.”(2권, 262쪽)
* 청년문화세대, 낭만의 혁명에서 혁명의 낭만으로
“당시의 청년들에게는 전통문화에 대한 열광과 서구에 대한 동경이 동시에 있었다. 이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자로서 규제나 억압에 대해 본능적인 저항 의식이 있었고, 또한 처음으로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세대이기도 했다.”(2권, 275쪽)
* 신중현이라는 과녁을 향한 전면전, 영웅의 슬픈 몰락
“박정희의 폭압은 그가 꿈꾸는 일사불란한 국가 통제의 문화관과, 억압을 본능적으로 거역하려는 자유주의 대중예술가들의 예술적 태도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에너지가 충돌하며 빚어진 한국 대중문화사상 가장 폭력적인 종말이기도 했다.”(2권, 299쪽)
* 모든 것이 극으로 향하던 시대, 모든 것이 그로부터 시작되다
“권력이 집권 연장을 위해 짓밟은 한국의 대중문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1979년 10월 26일까지, 한국은 정치사적으로나 대중문화사적으로나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모두 한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은 비극이었다.”(2권, 305쪽)
책속으로
* 우리 역사에서 대중의 탄생은 언제로 보아야 하는가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살핀다는 것은 아마도 근대 이후 우리 역사의 실질적인 주체인 이 땅의 대중의 욕망을 재구성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될 것이며, 이들의 삶의 의제를 검토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비극으로 끝난 동학농민혁명과 해프닝으로 끝난 만민공동회. 하지만 이 두 역사적 사건을 경과하며 한반도엔 대중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인간군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대중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1권, 42쪽)
* 계급과 민족이라는 두 개의 창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근현대사
“대중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민족과 계급이라는 마스크를 채택했다. 이 두 개의 마스크는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대립하며 대중이란 개념에 복잡하고 어려운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1권, 54쪽)
* 우리 근대의 대중문화를 이끈 두 개의 동력
“우리가 왕정의 역사와 결별하는 데는 두 개의 동력이 존재했다. 동학은 핵심적 동력이며, 기독교는 결정적 동력이었다. 이 두 개의 긴장된 힘이야말로 근대의 대중문화를 만든 핵심 축이었다.(1권, 76쪽)
* 복잡하고도 미묘한 우리 근대의 특수성
“착종의 식민지 시대에 근대를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에게 서구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구는 거대한 환상의 이념이었으며, 이러한 유전자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1권, 101쪽)
* 왜 『무정』을 근대적 장편소설의 효시라 부르는가
“이광수의 『무정』은 전통적인 봉건시대의 소설과 완벽하게 결별하고, 개인의 화법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특수성과 공통적 상황이 한 편의 소설 안에서 문체를 통해 하나로 완성되었다.“(1권 113쪽)
“탄생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 문학사에 두고두고 기록될 이름. 구한말 애국계몽주의의 마지막 불꽃. 근대 소설의 첫머리에 영원히 오를 그 이름, 『무정』”(1권, 145쪽)
* 조선에 상륙한 영화, 그 첫 만남의 풍경
“근대로 접어들면서 문화 수용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이 빨라졌다. 우리는 세계적인 문화 흐름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파리에서 세계 최초로 영화가 상영된 것은 1895년, 우리는 1897년이었다”(1권, 166쪽)
* 대중문화, 우리의 민족주의를 반복 학습 시키다
“식민지 조선의 민족주의적 열망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국가는 없었으나 민족주의는 끊임없이 대중적으로 반복 학습되었다. 당시 대중문화는 근대 시민의식의 자양분이었다.”(1권, 195쪽)
* 라디오의 등장, 전혀 다른 매스미디어의 출현
“1927년 경성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을 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매스미디어의 출현으로 이제 하나의 콘텐츠는 순식간에, 무한대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의 등장으로 정보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이제 어떤 정보를 주느냐가 중요해졌다. 정보의 내용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곳에 권력이 존재한다. 정보의 민주주의 이면에 새로운 권력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거기에 계급이 등장했다.”(1권, 211쪽)
* 어느덧 세계 첨단의 환락가가 된 경성의 거리
“1930년대 경성은 서구 퇴폐·향락 문화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는 인프라를 갖췄다. 1920년대 달아올랐던 민족과 계급이라는 긴장된 논의는 향락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 익사하고 말았다.”(1권, 245쪽)
* 모던 걸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성의 대중문화
“1930년대 등장한 모던 걸에게 작동한 것은 유행을 향한 열렬한 추종이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새로운 유행을 선점하겠다는 이들의 경쟁의식은 대중문화의 강력한 시장 동력이었다.”(1권, 254쪽)
* 가요라는 말은 이제 그만!
“가요. 국민가요의 준말. 1920년대 일본 음반 산업에서 쓰던 말.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억지 주장 덕분에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청산하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 아닌 건 아닌 것.(1권, 281쪽)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내선융화, 천황 숭상, 황군 찬양의 메시지를 담은 국민가요를 부르게 했다. 훗날 박정희 시대에 부활한 국민가요는 가요라는 이름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았다.”(1권, 304쪽)
* 경쟁의 세계로 돌입한 트로트, 음악문화의 패권을 차지하다
“트로트가 식민지 조선의 대중을 매료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3년. 스타 군단을 갖춘 오케레코드와 태평레코드의 살인적인 라이벌전으로 음악 문화 패권은 트로트에게 완벽히 이양되었다”(1권, 302쪽)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619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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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에 번진 춤바람,
미군 부대를 타고 들어온 미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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