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 아담스는 의사들의 파업을 어떻게 생각할까? | ||||||||||||
충청논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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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파업의 찬바람이 잦아들기도 전에 의료 파업이 예고돼 국민들의 가슴은 에이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이 문제를 따지고 분명한 의견을 내는 매체나 단체가 많지 않다. 비교적 의견 개진이 자유로운 SNS 상에도 의료 파업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글이 많지 않다. 생명이 달려 있는 전문분야라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직역 중 의약분야의 단합이 강해 자칫 공격의 대상이 되면 쉽게 헤어나기 어려운 점도 한 몫 거들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중차대한 문제를 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쟁점이 정리된 정보에 충분히 접촉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최근 미국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와 의료제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런 마당에 우리 제도가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보여준 미국의 비정한 의료제도를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의심할만한 정책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국민들은 14년 전 의약분업사태 당시의 의료파업을 기억하고 있다. 솔직하게 두렵다.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떠나서 의료분야의 파업은 그만큼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정부와 의사협회가 대화창구를 마련했다는 소식에 다소 마음이 놓이기는 한다. 하지만 전공의협의회와 보건의료노조의 의료계 총파업동참선언은 해결의 길은 멀고 험난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왕 문제가 불거진 김에 환자와 병원과 정부가 상설논의기구를 만들자는 주장을 받아들여 적극 논의를 시작해 보면 좋겠다. 자칫 정부와 의사협회의 힘겨루기로 수가인상과 기형적인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병의원은 안정된 운영이 보장되고 의료전달체계는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제도로 발전될 수 있도록 만들어 보자. 의약분업은 훌륭한 명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동네약국을 사라지게 하고 자본력이 없는 약사는 개업하기조차 힘든 현실을 만든 쓰라린 해결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충분한 협의를 하자. 연초에 도서관 회원들과 환자를 웃기고 환자들의 마음까지 치료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패치 아담스』를 보고 토론을 했다. 우울증과 자살미수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동료 환자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그들의 변화와 치유를 보며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한 아담스는 상처를 싸매주는 패치라는 별명을 얻는다. 이후 의대에 진학해서 환자들의 마음까지도 치료하는 의사가 되려고 한다. 의료보험이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동료 의대생들과 무료병원을 세워 의사와 환자, 환자와 환자가 서로 도우며 웃음으로 치료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해 광대코를 하고 춤을 추는 아담스를 보고 다른 의사들은 지나치게 감성적이며 의사들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비난한다. 환자들은 패치 아담스와 함께 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치료에 도움이 되고 약물의 사용도 줄이게 되었다. 결국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그를 따라 함께 웃기 시작했다. 패치 아담스의 실험은 계속되고 지금도 수천 명의 의사들이 그의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자막이 흐를 때 감동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기존 의사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패치 아담스를 제적하려는 의과대학의 처분에 이의하면서 패치 아담스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시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원격진료가 의료기 업체의 영업에 의한 것인지, 진정 환자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패치 아담스의 눈으로 생각해 보자. 의료 영리화가 병원 경영의 합리화를 위한 것인지, 의료인들을 수익의 극대화로 내모든 일인지 마음까지도 치료하는 의사의 심정으로 논의해 보자. 적정한 의료비의 부담과 적정한 수가는 어느 정도인지 환자와 의사와 당국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보자. 세계는 우리의 건강보험과 의료제도를 부러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