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마카오 여행기
<2024년/ 4월/ 19~ 22일>
7년 만에 가는 해외여행이라서 기대가 더 크다.
일주일 전부터 케리어를 펼쳐놓고 들며 날며 준비물을 챙긴다.
홍콩에 비 예보가 있었지만 각지에 흩어져 살던 14명의 유별들은 여행의 기대만큼 큰 가방 가득 설렘을 안고 바쁘게 공항으로 모여든다.
15시40분 그레이터베이 항공편으로 출발, 첵락콕 공항에 18시 5분 도착하였다.
(홍콩과의 시차는 한 시간)
인상 좋으신 박윤기 가이드님의 안내로 함께 여행할 일행들을 만나 호텔로 가는 길에 중개 무역의 도시 홍콩과 첫 인사를 나눈다.
홍콩은 제주도의 3/5크기로 인구는 750만 명, 한 해 6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아주 복잡한 도시이다.
국토의 80%가 바위이므로 자체 생산물은 거의 없고 물도 100% 수입하는 소비지향의 도시라고 한다.
좁은 도로를 달려 한국레스토랑 이삭에서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고 시 외곽에 있는 코지 오아시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맞이하는 유별이 들의 황홀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숙자별 다현별이 생각지도 못할 푸짐한 음식을 준비해 왔다.
<닭발, 족발, 밑반찬, 쌈, 두룹, 오징어채, 음료(?) 등...>
역시 유별이들은 못말려!!!!!!
얌전하게 감추려 해도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행복한 첫째 날 밤이 깊어간다.
내일도 날씨가 좋기를 소망하며........
둘째 날
모두 예정시간보다 일찍 조식을 하고, 오늘 하루 어떤 일이 기다릴지 아무도 예측 할 수 없었지만....., 비가 오지 않음을 감사하며 시내 관광에 나선다.
홍콩의 토지는 모두 국가가 소유하고 개인들에게 50년간 임대를 해주고 연장도 가능하다고 한다. 빽빽히 들어선 빌딩들 사이에 똑같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는 친절한 가이드 박윤기 님의 설명을 듣는다.
광동어가 공식 언어이나 영어와 중국어가 상용어이다.
땅 모양은 뚱뚱한 느낌표 모양이고, 아파트들은 좁고 높았으며, 일명 관짝집이라 불리는 집도 있고, 당연히 일조권과 조망권은 없다고 한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서민들에게는 영어 교육을 시키지 않아 영어에 홍콩 성조가 많이 섞여 소통의 어렵다고도 하였다. (차사고, 무슬림, 소매치기를 조심)
쇼핑몰을 둘러보고 유명한 제니쿠키도 사고, 바쁜 상인들이 즐겨 먹었다는 딤섬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동과 서를 연결하는 홍콩의 명물 ‘트램’을 탔다.
이층으로 된 오래된 트램을 타고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를 지나 소호 거리에 내렸는데, 일행 중 자유로운 영혼 하나가 사라진 것을 나중에서야 알고 동행한 일행들과 혼비백산하며 작은 섬 한 가운데 잠시 멈춤!!!!!
동행한 분들이 있어 멈춰 있을 수만은 없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800m에 달한다는 세계 최장(기네스북에 등재)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12개의 에스컬레이터 중 200m만 타고(내려오는 길은 걸어와야 됨) 중간에 내려서 벽화도 보고 유명한 에그타르트 맛도 볼 수 있었지만, 모두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아직 찾지 못한 별이 걱정에 그 누구도 즐길 수 없었다.
만났다는 연락(3~4시간이 지난 후)을 받은 후에야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음 여행지로 향할 수 있었다.
남부해변(리펄스 베이)에는 갈매기, 바다 비린내가 없었다. (수온이 높아서 어종 부족으로 인함)
자유로운 영혼과 눈물의 해후를 하고 권력가들과 재력가들이 살았던 태평산(빅토리아 파크)로 가기위해 가파른 산길을 버스로 30분을 달렸다.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한 눈에 담기 어려울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야경을 보며 트램을 타고 내려오는 비경 또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배낭에 든 지갑이 없어진 것을 늦게 알아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여권을 잊어버리지 않아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스릴 넘치는 길고도 아찔한 하루를 보내고 내일의 여정을 위해 .......
삼일 째
홍콩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황대선 사원은 붉은 색으로 치장이 되어 있었다.
여의주(지구)를 밟고 있는 수컷 해태상과, 수컷 해태를 밟고 있는 암컷 해태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고.. ㅎ**
산통을 흔들며 운세를 보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올리는 향 내음으로 꽉 차 있었다.
우리도 각자의 십이지 상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가족의 건강도 빌며 잠시 후 카지노에서의 대박을 기원하였다.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마카오로 향한다.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간 마카오의 크기는 제주도의 1/6 정도이다.
인구는 70만 명 이며 1888년 포루투칼의 식민지였다가 1999년 12월 중국으로 반환되어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가 되었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세계문화유산인 ‘성 바울 성당’ 유적지로 향한다. 태풍과 화재를 겪으며 현제의 모습만 남았다.
건물의 일부 만 남아있지만 바로크 양식의 특징인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이 남아 역사와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나두 광장으로 가는 길가에 육포거리와 쿠키상점들이 즐비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굴하지 않고 맛 본 육포의 질감과 맛은 최고였다.
마카오 타워(세계 11번째 놀이) 61층 전망대에 오르니 비구름이 걷히고 도시의 화려함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슬아슬한 투명 전망대도 걸어보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번지 점프대(223m)와 무한도전에도 나왔던 익스트림 스포츠 장소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멋을 것만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원 팰리스 호텔앞에서 20분마다 진행되는 화려한 분수 쇼에 감탄하고,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하는 베네시안 카지노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해본 슬롯머신에서 짜릿한 승부를 맛보았다.
홍콩으로 가는 2층 버스는 세계최장 마카오 다리(해상대교)위를 달린다. 총 길이 55k 중에 해중터널도 지나며, 다리 위에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였다.
밤바다와 야경을 보며 왕복 6차선 도로를 40분 정도 달려 홍콩으로 돌아오며 아쉬운 마카오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샌드위치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사 중인 홍콩! 잊지 못할 홍콩!’
공항에서 외친 “따. 삐, 빠” 잊지 말고 다음 여행을 기약해 봅니다.
함께 하지 못한 은영별, 명희별 다음엔 꼭 같이 가자~~
2024년 4월 28일 여행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픈 마음으로 부족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첫댓글 장문의 글을 읽고 나니 홍콩. 마카오를 다시 여행 다니는 기분이 드네 감사히 잘 읽고 가네~^♡♡♡
역시 서예. 쌤은. 다르네요
여행기. 잘 쓰셨네요 훌륭한 글 감명깊게.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오랜 세월 지나면 잊어지는데 이 글을 보면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금방 다녀온 기분일거야 애 썼네
매번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