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타고 갈 관광버스 앞에 차를 세우고, 강공수 승용차 트렁크에서 오늘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물건 박스들을 관광차에 옮겨다 실었다. 강공수는 승용차를 근처 공터에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승용차에 타고 주변 지역으로 갔다.
관광차에는 도착한 순서대로 친구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8시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박남용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를 하였다. 방금 광주역 뒤로 택시를 타고 와서 내리고 있는데 조금 있으면 광주역 육교를 건너와서 도착할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인원 점검을 하고 있는 총무인 윤상윤에게 박남용이 10분 쯤 후에 도착할 것이라 알려 주었다. 잠시 후에 박남용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승정형이 도착하였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을 실은 관광버스는 8시 10분이 지나서 광주역을 출발하였다. 출퇴근 시간이라 거리에는 차가 밀려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였다.
다음에 정차할 곳은 예술회관 후문이었다. 거기에서 김상문이 타기로 약속하여서 이다. 그렇게 하여 김상문을 태운 우리 일행은 광주를 벗어나서 태안반도를 목적지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집행부인 회장과 총무가 준비한 간식거리를 모든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내용물은 빵·치킨·바나나·요구르트·캬라멜·방울토마토·양갱 등이 들어 있었다. 어제 회장과 총무가 장을 보았고 회장부부가 어젯밤에 작은 종이가방에 내용물을 담는 작업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의 나들이에 고맙게도 회장 사모님이 애를 쓰신 흔적이 보였다.
윤상윤 총무가 마이크를 잡고 오늘의 일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오늘 참석인원은 33명이 신청하였지만 건강이 부자유한 4명이 불참하고, 총 29명이 출발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창회비 2만원을 입금해 주신 회원과 특별회비를 출연해 주신 회원과 출연금액을 소개하였다. 특별회비를 출연해 주신 회원에게 뜨거운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서 강공수회장이 인사말에 이어서 행사 진행에 협조해 준데 대한 감사의 말이 있었다. 그리고 여행안내 담당인 강종원 전회장이 목적지인 태안반도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개괄적 설명이 있었다.
강공수 회장이 준비한 레크레이션 시간이 되었다.
넌센스 퀴즈 풀이였다. 정답자에게는 상품으로 세면기 하수관 청소기구와 치약 없이 쓰는 칫솔을 주었다. 넌센스 퀴즈를 맞히려면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야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이 또 다음 문제를 맞히는 경우가 많았다.
기덕문 친구가 강공수 회장이 채보해 온 김성환의 ‘밥 한 번 먹자’의 악보를 나누어 주면서 다 같이 노래 부르기를 솔선하여 이끌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노래를 반복하여 들어보자고 하고 싶었지만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겨우 한두 번만 듣고 부르려고 하니 멜로디나 가사가 입에 익숙해지지 않아 쉽게 불러지지가 않았다.
다음에 우리 목요산우회가 매주 음악정자에 모여서 불렀던 노래 2곡을 나와 박남용이 대표로 불렀다. 최희준의 ‘하숙생’과 김소월 시의 ‘엄마야 누나야’였는데, 반주 소리가 너무 적게 들려서 노래를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니 노래가 꼬이기도 하였다. 목요산우회에서 우리들이 노래 부르기를 할 때에는 강공수의 불루투스 스피커 소리가 웅장하여 노래를 시작하기가 쉬었지만, 관광버스에서는 스마트폰에서 나온 소리가 마이크로 들어가서 나오는 반주소리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4시간이나 결려서 우리가 점심을 먹을 태안반도의 식당인 <호남횟집>에 도착하였다. 준비된 식탁에 4사람씩 앉았다. 메인 메뉴는 ‘우럭 탕’이었다. 냄비에 우럭과 미역을 넣고 끓인 맑은 탕이었다. 반찬은 봄나물로 5~6가지이고 우럭 구이가 먹을 만 하였다. 총무가 식당의 양해를 얻어 소주를 사가지고 와서 식탁에 한 병씩 나누어 주었다. 우리 식탁에서는 다 사양하였지만 나는 1잔을 받아 마셨다. 6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빠르게 밥을 먹었더니 박남용이 뭘 그렇게 허겁지겁 먹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오면서 커피머신에서 종이 컵 커피를 뽑아 마셨다.
식당에서 나와 왼쪽을 바라보니 바다와 모래사장이었다. 해안 모래사장에 세워져 있는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에 김종국이 우리를 데리고 왔을 때는 어느 유조선이 이 바다에 원유를 쏟아 내는 사고가 발생하여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어 흡착포로 원유를 묻혀내는 작업을 하여 바다를 살려 내었다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 목적지 방문을 끝내고 광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촉박하여 다시 버스에 올랐다. 가까이 있는 다음 목적지인 <천리포 수목원>으로 갔다. 전에 김종국이 우리를 데리고 왔을 때에는 입장료가 없었다. 그런데 설립자가 죽은 후에는 운영이 어려워서 입장료 13,000원을 받고 있었다. 단체 입장에 대한 요금 인하는 없었고, 우리 같은 70세 이상에 대한 우대요금은 11,000원이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우대요금은 10,000원 이었다. 태안군민에 대한 특별 우대요금은 7,000원 이라고 하였다.
12시 15분에 버스에서 내려 수목원으로 들어가면서 오후 1시까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도록 고지하였다. 45분 동안 구경을 마쳐야 하였다.
<천리포수목원>은 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2002)박사에 의해, 1962년에 창립된 국내 최초의 사립 수목원이다. 그는 미군의 정보장교로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에 근무하면서 틈만 나면 여기에 와서 수목원을 조성하였다 한다. 전체 면적은 593,282㎡(19만여 평)이지만 <밀러가든>은 65,623㎡(21,657평) 즉 65 핵터의 넓은 부지에, 7개의 주요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구역은 <밀러가든>, <에코힐링센터>, <목련원>, <낭새 섬>, <침엽수원>, <종합원>, <큰골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수목원 입구로 들어갔다. 요즈음은 목련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맨 먼저 큰 연못과 습지원의 오른쪽 길을 지나 <민병갈 기념관> 앞을 지나서 <민병갈 추모공원>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민병갈을 수목장한 나무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지금은 민병갈 흉상을 세워 방문객들이 그를 추모하게 하고 있었다. 이 수목원은 작은 구릉에 산재해 심어져 있는 각종 수목들과 화초들은 봄을 맞아 시기에 따라 꽃으로 우리의 눈에 행복을 주고, 또 향기로 우리의 후각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요소에 한옥 <가든하우스>와 현대식 <힐링센터>를 조성하여 유료 숙박객들을 받아들여 쉬어 가게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곳곳을 다 돌아 볼 수 없어서 대충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돌아보고 수목원을 나왔다.
다음에는 가까이에 있는 <신두리 해안(海岸) 사구(砂丘)>(Sand Dune)로 갔다. 해안사구는 연안류와 조류에 의하여 연안의 해저에서 운반된 모래가 파랑(波浪)과 밀물에 밀려 올라와 사빈(沙濱)과 모래펄을 만들면서, 그 모래가 바람의 작용으로 운반·퇴적된 해안지형이다. 이 해안사구는 충청남도 태안반도 서북부 신두리 해안 만두부(bay head)에 형성된 모래펄의 배후를 따라 형성된 길이 약 3.4㎞, 폭 0.5∼1.3㎞의 모래언덕이다.이곳은 연안의 해저가 대체로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서 간조(干潮:조수가 빠져 바다의 수면이 가장 낮게 된 상태) 시에 넓은 모래펄이 노출되는데다가, 겨울철에 강력한 북서풍을 바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해당하여 대규모의 모래벌판이 형성될 수 있었다. 2001년 11월 30일에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구역은 1,702,165㎡이다.
충청남도 해안은 전면에 섬이 적고 바람을 바로 맞이하는 해안이 많아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사구가 잘 발달해 있다. 특히 신두리 해안사구는 섬 지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서해안에 형성된 사구지대 가운데 규모와 지형의 다양성과 자연 상태 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가장 전형적인 모델이기도 하다고 한다.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서울에서 내려 온 송고성과 김중식과 헤어져야 하였다. 신두리 해안 사구를 벗어나와 하행 길을 달렸다. 강공수 회장은 오후에도 버스 안에서 퀴즈를 풀어내고 우리들은 맞히고 하면서 내려왔다.
날이 어두운 저녁 6시가 넘어서 광주에 들어와 행선지에 따라 시내버스가 통과하는 곳에서 내리고, 마지막에는 광주역에 도착하였다. 강공수 회장과 윤상윤 총무가 특히 하루 종일 신경을 쓰고 일정을 진행하느라 고생하였는데, 강공수 회장이 점심을 먹지 않았는지 지쳐서 힘을 쓰지 못하였다. 그 타고 온 승용차를 집에 까지 운행하려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승용차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나도 집으로 가기 위해서 광주역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첫댓글 십오야밝은달 봄나들이 벗들과 함께 하루 보냈던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 오르게 자세히 천리포수목원의 예쁜 꽃들의 향기가물씬 풍기는듯 하게 좋은 추억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준 아석 수고 참 많았어요 수고 했어요. 동명
새글이 보여 들려 보았더니 역시 아석의 기행문이네요!!!
언제나 처럼 우리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않은 부분까지 보이고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15야의 보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