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위쪽을 살피니, 이젠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라는 듯 베란다에는 화분이 가득하였다. 시선을 좀 더 위로 넓히니, 거기에는 속옷과 양말들이 모여서 골목을 오가는 무리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잠시 그것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복잡한 골목 그 위로 성당의 종탑이 곧바로 보였다. 옛날 황제의 영묘(靈廟-현재의 성당)와 주피터 신전은 마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황제의 영묘는 성당이 되었고, 주피터신전은 세례당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인간들이 비집고 들어가 있는 것이다.
걸음을 빨리하여 광장으로 나갔더니, 일행들의 뒷모습이 광장 남쪽의 옛 황제의 처소에서 보였다. 부지런히 움직여 계단을 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원형의 공간이 나왔다. 거기에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다섯 명의 신사와 그들을 바라보는 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공간은 황제의 거처로 들어가는 입구로, 황제를 알현할 사람들이 대기하던 장소였다. 옛날에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벽면이 장식되었고, 천장에는 돔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돌과 벽돌로 이루어진 벽면이 민낯으로 서 있었고, 천장의 돔은 무너져 저 높은 하늘 연못으로 통하는 입구가 되어있었다. 본래의 이름은 베스티비일(Vestibül)로 우리말로는 ‘현관’쯤 되겠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있는데 아름다운 음악이 들렸다. 악기 연주가 없는 다성부(多聲部) 가창(歌唱)이었다. 곧바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귀를 기울여 감상에 들어갔다. 완전히 열린 후두음(喉頭音), 소리를 낮추는 소토보체(sotto voce), 아주 높은 음역(音域)에서 내는 가성(假聲)인 팔세토(falsetto)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다. 물론 악보는 보지 않았다.
이들의 이름은 ‘클라파 베스티비일(Klapa Vestibül)’로, 황제 알현 대기실인 ‘베스티비일에서 공연하는 클라파’라는 뜻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2012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노래를 하는 이들도 예능보유자라고 했다.
클라파(Klapa)는 주로 크로아티아 달마티아의 전통 민속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룹은 제1테너, 제2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구성된다. 인원은 대개 4~10명이다. 지휘자는 없고 제1테너가 리더를 맡는다. 노래의 내용은 사랑, 인생사, 살고 있는 배경 등을 주제로 한다.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많은 전승자들이 선배들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으며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원형의 공간을 휘돌아 내 가슴을 울렸고, 때로는 저 높은 하늘 연못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나도 그 노래를 따라 하늘 연못으로 비상해 올랐는데, 거기 성당의 종탑이 와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곳을 떠날 때 내 손에는 그들이 2009년과 2012년에 녹음한 노래로 만든 CD가 들려 있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도 듣기 싫어하면 소음이 되고, 그저 평범한 노래도 마음을 열면 아름답게 들린다. 만약 열린 마음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한다면, 바로 그것이 천상의 음악이 아니겠는가. 행복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 - (1)주피터신전을 나서며 보니 관광객들이 골목 가득 밀려오고 있었다. 위의 구조물 때문에 공사판 같다. (2)이전에는 신의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인간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3)복잡한 골목 그 위로 성당의 종탑이 곧바로 보였다. (4)황제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던 '베스티비일'에 노래하는 이들과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5) ‘클라파 베스티비일(Klapa Vestibül)’의 멤버들이 영혼을 담은 노래를 하고 있다. (6)그들의 노래를 따라 나도 하늘 연못으로 올랐더니 성당의 종탑이 와서 손을 내밀었다. (7) ‘클라파 베스티비일(Klapa Vestibül)’의 2009년과 2012년 녹음을 담은 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