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전라매일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기혜영
이식
나무가 무심히 잎을 쏟아내고 있다. 몇 차례인가 신호가 바뀔 때까지 횡단보도는 정지된 모니터 화면의 커서같이 불빛만 깜빡이고, 마스크로 표정을 가린 사람들이 이따금 정지 화면을 풀고 공중의 이파리처럼 떠다닌다. 바람도 숨죽인 오후, 한 평 남짓 나무 둔치에 내려앉은 가을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다. 졸고 있던 햇빛이 슬몃 몸을 일으킨다.
자영업으로 살아온 햇수가 십수 년이 훌쩍 넘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때로 어렵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고, 그 과정은 삶에 대한 의욕이 되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막 정착하던 무렵에 시작한 가게는 제법 수입이 괜찮았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 당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카페를 선택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블루오션이라는 게 반짝하는 오로라 같은 것이어서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대기업의 편의점이 동네 골목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불 밝힌 위세는 구멍가게 앞의 평상을 거둬들이게 했다. 관절염을 끌고 나온 이웃의 주름진 이야기가 점점 사라지고, 비 오는 날 인력시장 노동자의 풀 죽은 외상술을 달아주던 인정도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경기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버리는 직군이 자영업이다. 나 역시 업종을 바꾸면서 그나마 작은 가게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위기가 몰아닥쳤다. 점차 줄어드는 매상 때문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쓸 수 없는 상황은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겪던 고통이다. 이번에는 매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하등 필요가 없는, 그저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막막한 희망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 틈에 나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노동량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입이면서도 근근이 생활을 이어오던 중 코로나 팬데믹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돌이켜보면 사스의 공포도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수입이 곤두박질쳤다.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거치며 나름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작금의 팬데믹도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만에 불과했다. 시행착오와 난관을 통해 습득한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급기야 불면증에 원형탈모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견뎌야 했다. 살아내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언제부턴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습관처럼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곤 걸었다. 빌딩들이 운집해 있는 중심상가 대로변마저 썰렁하게 변한 모습이 절망을 가중시켰다. 인파로 북적이던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가는 차량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 한 집 건너 한 집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는 점포들이 즐비하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도 멍해진 눈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나 역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어도 아침 일곱 시면 가게 문을 연다. 쓸고 닦고 정리를 해도 손님 한 사람 오지 않는 가게를 지키고 있노라면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있다. 폐업자금조차 없어서 폐업을 못 하는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예닐곱 평 가게 안은 한숨만 쌓일 뿐이다.
남편의 실직과 함께 시작된 자영업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새벽같이 부산을 떨고 심야시간까지 문을 열어 쥐어지는 대가가 적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세 들었던 건물이 팔리면서 권리금 한 푼 없이 가게를 정리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출까지 끼어가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작한 업종이 지금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이제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다리는 출렁거리지만 놓지 않는 끈이 있어 그 공포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현실은 잡을 끈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를 두르고 있는 하늘이 부싯돌처럼 차고 푸르다. 능선과 능선 사이 하늘 자락이 무너진 성터처럼 쓸쓸하게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 끄트머리 은행나무 군락지에 눈길이 간다. 팔도 다리도 뭉텅 잘린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무리 지어 있다. 지금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 이식을 준비하는지 포클레인과 인부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포클레인 삽날을 나무 옆구리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난다. 흙더미에서 들어올려진 어른 손가락 굵기의 흰 뿌리들이 내 머리카락처럼 한 움큼씩 쏟아져 나온다. 뽑힌 나무들이 또 한 번 전정톱날에 의해 사정없이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나무의 모습이 어찌 내 모습만일까. 저 잘린 나무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 이식된 저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럴 수 있으리라. 한 걸음 내딛는 내 걸음이 내 생의 뿌리가 되고 두 걸음에서 희망이 움트리라.
기혜영_군산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현재 솔바람소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수필부문 심사평 메타포적 시선, 마음 사로잡아
응모자는 작년보다 적은 88명 이었지만 작품 수준은 작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전체적으로 가족의 해체적인 고뇌, 역병의 사회적인 문제, 노년에 대한 진지한 고찰, 문명과 산업화 문제 등이 화두에 올라왔다.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김장배의 「문진을 놓다」 박덕은의 「톱상어와 멸치떼」 진서우의 「우도가기」 김현지의 「엣집, 좌천동, 915번지」 기혜영의 「이식」 이었다
김장배의 「문진을 놓다」는 문체가 안정감은 있지만 이야기 전개가 앞으로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었다. 박덕은의 「톱상어와 멸치떼」 는 과거의 추억을 현재형으로 불러내는 기법은 탁월하지만 재재의 참신성이 떨어졌다. 진서우의 「우도가기」는 현재형으로 긴장감을 끌고 가는 힘이 있지만 삶을 바라보는 성찰이 부족했다. 김현지의「옛집, 좌천동 915번지」는 체험에 근거한 장점이 돋보이지만 과거에 너무 치중되어 있어 긴장감이 떨어졌다.
기혜영의 「이식」은 처음 화두가 마치 한 컷, 한 컷, 영화의 근접 촬영 같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첫째, 전체 문장의 구성력이 뛰어났다. 처음 4행까지 현재형으로 표현되었다 그 이후 언술은 주로 과거형으로 진행하다가 끝 10여행은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와 은행나무 이야기로 환치되어 있다. 둘째, 문학적 형상화가 뛰어났다. 소상인의 폐업 위기를 은행나무 이식과 병치시킨 메타포적인 시선이 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연 수작이었다. 선자들은 이의 없이 쉽게 합의하게 되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구한 문학평론가, 박지연 시인
첫댓글 잘 봤습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요즘의 세태..
그렇지만 소상공인 지원등으로 노력하는 정부의 정책에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소상공인의 코로나로 인한 애환과 그걸 이겨낼 희망을 말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첫 느낌이 참 좋습니다
조용히 글에 빠져들게 되네요
끝맺음도 좋구요
탄탄한 글이 부럽습니다
힘내시구요! 화이팅하시길요
시같은 수필 멋집니다.
많이 배웁니다. 신춘문예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