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김동욱 _ 백혈병의 최고 권위 --- 만성골수성백혈병 연구의 최고 권위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를 만났다.

[희망지기(이성훈)]

꼴찌를 다투다 삭발 공부한 것이 평생 연구의 밑거름

김동욱 교수는 본과에 들어가면서 이를 악물고 머리를 박박 밀고 탁구라켓 대신 책을 잡았다. 본과 2학년 때 탁구동아리의 선배들로부터 강제로 회장을 떠맡았지만 한 번도 탁구장에 나가지 않아 동아리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어도 삭발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러자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2학년 말 전체 차석으로 전액장학금을 받게 됐다. 김 교수는 자신이 나태해졌다고 느끼면 당시 받은 장학금 상패를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김 교수는 인턴 시절 수원의 성빈센트병원에서 근무하다 명동의 성모병원으로 옮기자마자 ‘사고’를 쳤다. 당시 김춘추 교수가 국내 최초로 골수이식에 성공한 뒤 백혈병 환자가 오면 골수이식 팀의 의사 전원이 환자를 에워싸고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도록 붙잡던 때였다. 김춘추 교수는 환자를 껴안고 “당신 이제 살았다”고 외치곤 했다. 인턴은 환자가 오면 즉시 선배에게 알리는 것이 최대임무였다. 사정을 모른 김 교수는 ‘FM’대로 2시간 꼼꼼히 진료를 보며 차트 3장을 빼곡히 채웠다. 이 사실을 안 전공의들이 함께 몰려와 고함을 질렀다. “환자가 왔는데 2시간이나 지체하다니….” 그러나 레지던트의 대장격인 홍대식 의국장(현 순천향대 의대 교수)은 그 와중에 ‘문제의 차트’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김 교수를 불렀다.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뜻밖의 말이 나왔다. “혹시 내과에 들어올 생각이 없나?” “내과에 가기에는 의대 성적이 안 좋습니다.” “성적표를 갖고 와라. 어느 정도인지 내가 봐야겠다.” 의국장은 인턴이 가져온 성적표를 보고 눈빛이 바뀌었다. “나 좀 따라와야겠다.” 의국장을 따라 간 곳은 김동집 성모병원장의 방. 의국장은 원장에게 간청했다. “얘가 전체 성적은 좋지 않지만 성적이 수직상승했습니다. 내과에서 뽑았으면 합니다.”

김 교수는 내과 전공의 과정의 절반을 혈액내과에서 근무했다. 당시 성모병원은 국내에서 골수이식 분야의 길라잡이였지만 혈액 검사를 하는 전문가가 없었다. 김 교수는 전공의 2년차 때 병원에서 의료진이 채취한 골수를 특수가방에 넣어 나가는 여성 2명을 잡고 물었다. “혹시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한양대 유전학교실에서요.” “혹시 염색체 분석하는 것, 배울 수가 있나요?” “교수님께 여쭤봐야….” 당시 염색체 검사는 하와이의대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백용균 교수가 담당. 김 교수는 ‘한 수 가르침’을 간청했고 백 교수는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당시는 전공의 2년차가 한시라도 병원을 떠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 김 교수는 ‘무엄하게도’ 보스인 김춘추 교수에게 “염색체 실험을 배우고 싶다”고 간청했다. 보스는 뜻밖에도 “오전에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오후에 가서 배워라”고 허락했다.

김 교수는 6개월 동안 한양대에서 염색체와 씨름했다. 그리고 성모병원에서 실험실 시스템을 만들면서 말뚝잠을 자며 염색체 연구에 매달렸다. 장모가 “둘이 사귄 지 8년이 됐는데 연애만 할거냐”고 결혼날짜를 잡았어도 밤낮없이 염색체와 씨름하다 결혼 1주일을 앞두고 스승과 주변 사람에게 결혼을 알렸을 정도였다. 동기들이 내과 전문의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김 교수는 자나 깨나 염색체뿐이었다. 선후배나 동기 대부분이 김 교수가 전문의 시험에서 떨어질까 걱정할 정도였다. 

국내 최초 비혈연간 골수이식 등 백혈병의 최고 권위자로

김 교수는 군의관 근무 뒤 김춘추 교수의 첫 제자가 됐지만 스승 밑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가 없었다. 연구에 성과를 올리는 만큼 환경은 거꾸로 갔다. 임상강사를 마칠 무렵이 됐지만 성모병원에는 그를 위한 교수 자리가 없었다. 그는 1994년 개원 준비 중인 삼성서울병원의 ‘러브콜’을 받고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승은 김 교수를 껴안으며 분가(分家)를 축하했다. 김 교수는 삼성의 지원을 받아 미국 LA, 어바인, 시애틀 등을 돌며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그곳 의사들의 환자치료계획서와 연구계획서 자료파일 100여 개를 복사해서 귀국, 밤을 새워 분석하며 임상 준비를 했다. 그러나 스승 김춘추 교수는 제자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스카우트 파동’에 휩쓸린 스포츠선수 이상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모병원에 복귀했다.

김 교수는 성모병원에서 국내 최초의 행진을 이어갔다. 운도 따랐다. 1995년 8월 서울대병원에서 비혈연간 골수이식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기증자가 기부를 거부하는 바람에, 10월 국내 처음으로 비혈연간 골수이식에 성공했다. 96년엔 면역계가 피아를 구분하는 표식인 사람백혈구항원(HLA) 6쌍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 간의 골수이식, 97년에는 탯줄조혈모세포 이식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20여 명의 환자에게 비혈연간 골수이식에 성공했지만 상당수는 얼마 넘기지 못하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더구나 부검을 기피하는 문화가 있는 국내에서는 원인조차 알 수 없어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김 교수는 1997년 ‘골수이식의 산실’인 미국 프레드허킨슨 병원에서 밤낮없이 분자생물학에 파고들며 그 원인을 찾았다. 또 골수이식을 받고 숨진 사람 100여명의 의무기록을 복사, 유형별로 정리해서 나중의 임상에 대비했다. 미국의 연구진은 김 교수에게 최고의 연구 환경에서 근무하며 최고의 성과를 내보자고 권했지만 스승이 미국까지 와서 김 교수의 미국 정착을 막았다.

김 교수는 ‘돌아온 집’에서 유전자 분석 환경을 만들었고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국내 최고 연구자로 자리잡았다. 2001년 ‘기적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국내에 들어오자 ‘글리벡 공급 심의위원장’을 맡아 2년 동안 300여명에게 이 약을 무상공급하며 이 분야 연구를 주도했다. 2002년에는 외과 김동구 교수와 함께 간경변증이 있는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이식과 간이식을 동시에 시행하는 치료에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의 글리벡 처방 기준을 세웠다. 이 두 가지는 세계 처음의 성과였다. 글리벡 치료에 대한 연구결과가 쌓이면서 ‘김동욱’이라는 이름은 세계 학계에 널리 퍼졌다. 2004년부터 매년 세계백혈병전문가회의에 초청연사로 초대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거의 매달 외국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2005년에는 아시아만성백혈병네트워크를 설립, 치료지침을 세우는 일과 아시아의 유전자 분석기법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주관하고 있다. 또 2006년 아시아백혈병학교를 만들어 이곳을 찾는 각국 의사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 초에는 아시아만성백혈병등록소를 설립, 중국과 인도 등 13개국 주요병원의 치료 데이터들을 관리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만성골수성백혈병연구회 위원장, 세계만성골수성백혈병재단의 이사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표적항암제 임상시험의 ‘VIP’

김 교수는 특히 ‘표적항암제’를 만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로부터 VIP 대접을 받고 있다. 2005년 미국 MD앤더슨암센터와 함께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등의 항암제를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현재 노바티스, BMS, 와이어스 등 제약회사의 백혈병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와이어스의 보스티닙에 대한 임상시험은 세계 최대 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7월부터 국내 첫 표적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는 일양약품의 ‘IY-5511’의 임상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이 약은 1차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 국내 7개 병원과 중국, 인도, 태국의 7개 병원에서 2차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김 교수는 “이 약의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막대한 외화를 벌면서 건강보험 재정부담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바이오회사와 백혈병진단키트의 상품화에 성공해 곧 선보일 예정이며 나노기술을 이용한 백혈병 유전자 진단, 백혈병 세포가 1000만개 이하인 환자를 찾아내는 새 진단법 등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김 교수의 매력은 환자에 대한 사랑에 있다고 주변 사람은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진료시간 외에도 환자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 환자 보호자와 생맥주를 마시며 그들의 고충을 경청하기도 하고 산행을 함께 가기도 한다. 환자들과 워크숍을 갖기도 한다. 2005년에는 고(故) 최진실 등과 함께 백혈병 환자 7명을 이끌고 히말라야 등반을 하기도 했다. 그에게 의지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김 교수가 성모병원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2005년 느닷없이 의정부성모병원으로 발령이 나자 600여명의 환자가 그를 따라 병원을 옮겨 병원 측이 당황해 하기도 했다. 환자들의 등반 모임인 ‘루산악회’ 최종섭 회장은 “김 교수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환자의 작은 아픔까지 헤아리는 참의사”라고 말했다.

김동욱 교수가 말하는 백혈병

드라마 속 백혈병, 지금은 60~80% 치료 가능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유독 백혈병 환자가 많다. 영화 ‘러브스토리’ ‘라스트 콘서트’ ‘사랑의 스잔나’에서부터 드라마 ‘가을동화’ ‘비밀’ ‘너는 내 운명’까지 백혈병 환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백혈병은 흔한 병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1만5000~2만 명 정도의 환자가 있다. 옛날에는 아예 치료가 불가능해서 애틋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지만 지금은 60~80%가 치료된다. 백혈병은 혈액에 생기는 암인데 크게 진행상태에 따라 급성과 만성이 있으며 주로 타격을 입는 면역세포의 종류에 따라 림프구성과 골수성으로 나뉜다. 많은 사람이 백혈병이 만성화되는 것이 만성백혈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두 병은 원인이나 특징이 전혀 다르다. 급성백혈병은 초기부터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잇몸이 붓는 증세, 고열, 피로감, 빈혈, 멍, 복통, 구역질, 구토 등이 나타나고 이때부터 무균실에서 급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만성백혈병은 초기에는 별 증상이 없다가 병이 진행되면 급성과 비슷한 증세가 나타난다.

백혈병 치료의 줄기는 항암제 치료와 혈액줄기세포 이식이다. 어린이의 백혈병은 급성림프구성이 많으며 70%는 항암제로만 완치된다. 어른은 급성의 15~20%가 항암치료로 완치가 되며 65~70%는 혈액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 혈액줄기세포 이식은 이전에 골수이식으로 불렸던 것. 이것은 항암제를 집중 투여해서 피를 거의 말리다시피 하는 방법으로 암세포를 죽인 다음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공여 받은 혈액줄기세포나 자신의 혈액줄기세포를 깨끗하게 만든 뒤 이식하는 것. 옛날에는 주로 골수를 이식했지만 말초혈관이나 탯줄, 태반에서 뽑은 혈액줄기세포도 이식하므로 요즘은 조혈모(造血母)세포이식 또는 혈액줄기세포이식이라는 말을 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골수이식은 어느 정도 체력이 있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었다. 골수이식은 적전을 초토화한 뒤 아군을 투입하는 상륙작전에 비유할 수 있는데 융단폭격 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시행되고 있는 ‘미니 이식’은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이는 항암제를 기존 골수이식 때의 60∼70%만 쓰고 대신 골수제공자의 정맥에서 림프구를 뽑아 환자에게 투여해서 환자의 군대를 원군(援軍)하는 방법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
백혈병 중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혈액줄기세포에 필라델피아 염색체라는 이상 염색체가 생기고 이 때문에 백혈구가 갑자기 늘어나는 병이다.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는 방사능 노출, 중금속 오염 등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은 유전자에 상처가 생겨 발생하지만 유전되는 질병은 아니다. 이 병은 만성기→가속기→급성기로 악화된다.

1990년대만 해도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타인 골수이식과 인터페론요법, 항암제 요법 등으로 치유했지만 골수이식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었다. 기존의 항암제로 완치할 수 없는데다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수 없기 때문에 고약한 암으로 알려져 있었다. 골수이식도 10년 생존율이 60%를 넘지 않았다. 이 병은 글리벡을 비롯한 표적 항암제들이 등장하면서 치료율이 급격히 올라갔다. 이 약들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원인인 Bcr-Abl유전자나 Src-Abl이 만드는 단백질의 신호전달 시스템을 방해해서 백혈병세포를 줄이는 것. 표적 항암제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의 15~20%, 급성골수성백혈병의 1~5%에게도 쓸 수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치유할 때에는 대체로 글리벡을 먼저 쓰고 이 약에 내성이 생기면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보스티닙 등의 ‘2세대 치료제’로 치유한다. 일양약품의 신약도 2세대 치료제에 속하며 글리벡보다 효과는 크고 부작용은 적은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조만간 유전자의 이상 여부에 따라 여러 약들 중에 한 가지를 먼저 쓰고 이 약에 내성이 생기면 ‘다른 무기’로 치유하는 것이 표준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은 제약회사에서 약들을 개발하고 있으므로 만성골수성백혈병도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관리가 가능한 병’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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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교수에게 물어보다

•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은?

  중학교 때부터 무엇이든 들고 다니면서 읽는 습관이 붙었다. 걸어 다닐 때나 회의에 참석할 때,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에도 항상 읽을 것을 찾아서 들고 가야 마음이 편안해 진다. 아주 간단한 이 메일이라도…. 이런 습관 덕분에 오래 생각할 수 있고 동시에 많은 일을 빨리 처리 할 수 있는 것 같다. 항상 최신 논문을 읽고 연구결과를 그 때 그 때 처리해야 하는 의대 교수로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매사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자.” 전방에서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인품이 존경스러운 연대장의 집무실 벽에 걸려 있던 글귀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중에도 환자의 말과 의무기록을 꼼꼼히 살펴 정확히 판단, 처방해야 하는 의사로서 진료 시마다 되새기는 글귀다. 환자의 보호자였던 ‘문중(文中)’ 선생님이 선물한 글귀로 지금 내 연구실 벽에 걸려 있는 ‘세수심존(世壽心存)’, 세상의 목숨이 마음에 달려있다는 글도 좋다. 이 글은 백혈병을 연구하는 나를 항상 담금질하는 좋은 말인 것 같다.
•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항상 생사를 넘나드는 백혈병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로서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장 힘들다. 그리고 연구논문이 반복적으로 게재 불가 판정을 받을 때, 연구비를 받기 위해 제출한 연구계획서가 채택되지 않았을 때에도 종종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이때 동료 교수나 연구원들과 함께 꼼꼼히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또 최근 성공한 여러 사례들을 다시 떠올리며 긍정적으로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것도 방법이다. 가끔 주말에 환자 또는 연구원들과 산행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의대생 시절에는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어서 내 의견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대외적인 활동도 많지 않았다. 본과 시절에는 수업을 들을 때마다 산부인과, 정형외과, 외과, 내과 등 한 번씩은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전공과를 선택해야 할 때인 인턴 시절에도 비슷했다. 지금은 혈액질환의 백혈병 분야 중에서도 ‘만성골수성백혈병’ 한 가지만 전념하게 되었는데 여러 과에 관심을 가졌던 젊은 시절의 호기심이 다른 질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전공의 시절 주 근무처였던 성모병원의 혈액내과는 훌륭한 선배 교수들이 국내 최초로 각종 이식에 성공했다.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선배 의사들의 도전 정신이 병원에 가득 차 ‘백혈병 치료에 불가능은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당시 교수님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항암요법에 실패하여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환자의 가족을 설득, 환자에게 고용량 항암제를 투여했다. 심각한 합병증과 혈구감소증에서 벗어나고 암세포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증가하는 백혈구가 모두 백혈병세포임을 확인했고 환자가 숨진 뒤 가족들이 엄청난 치료비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서야 현실과 이상을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더구나 가족들이 가능성이 낮은 치료를 중단하기를 원했는데도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에 가족이 환자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판단하고 화를 내기도 하였는데, 환자 사망 후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손실을 안겨줬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성공률이 낮은 상황에서 의사의 분별없는 이상주의적 행동이 남겨진 다른 가족들에게도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길 수 있어 환자뿐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배려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게 되었다.
•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백혈병이라는 질환을 평생 연구의 주제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여러 선배 교수님들을 존경한다. 가톨릭대 혈액내과를 세계적인 연구 그룹으로 도약시키신 선배 교수님들의 젊은 시절 열정을 생각할 때마다 ‘선배 교수들이 내 나이일 때는 어떻게 하셨을까? 과연 내가 그 이상으로 노력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특히 올해 정년퇴임하신 뒤 제주도 한라병원에게 환자를 진료하고 계신 김춘추 교수의 젊은 시절 학문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것 같다. 그 분의 뜨거운 열정이 오늘날 가톨릭대 혈액내과, 조혈모세포이식센터를 만들었다. 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나에게 분자생물학을 처음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한치화 교수, 카이스트의 유욱준 교수, 그리고 삼성서울병원 진단병리학과의 김대식 교수를 존경한다. 환자에 대한 따뜻한 진료와 열정적인 연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으로 서울대학교 유방암 센터의 노동영 교수와 가톨릭대 산부인과의 김진우 교수 역시 존경한다. 많은 선배, 동료 교수들처럼 환자에 대한 애정 있는 진료와 열정적인 연구 모두를 병행하고 싶다.
• 7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전공의 2년차 때 환자였던 정 모 씨와 그 가족들이다. 환자는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골수이식 후 급성이식편대숙주병과 폐렴이 아주 심하게 진행돼 인공호흡기까지 부착했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의료진을 격려했고 이후 합병증이 어느 정도 극복된 뒤 몇 개월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부인은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서 남겨진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일일이 알려주었고 가족들의 좋은 소식들을 전해왔다. 몇 년 후 성모병원 혈액내과 의료진이 ‘백혈병과 골수이식’ 이라는 책을 출판할 때 책의 서두에 ‘이 책을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환자 분들께 바칩니다’라는 글을 남기게 된 계기도 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환자 가족의 의료진에 대한 신뢰와 완치에의 열망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연구하여 극복하고 싶은 첫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이분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 8

  나의 라이벌은?

  세계적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분자혈액학 연구를 주도하는 호주 아델라이드대의 팀 휴즈 교수, 독일 하이델베르그대의 안드레아스 호크하우스 교수,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센터의 제럴드 래디쉬 교수, 그리고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의 지세프 세그리오 교수다. 이들 모두는 5대 국제 중앙연구소의 대표들이며 우리 연구실과 함께 만성골수성백혈병 유전자 분석법의 세계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다. 협력을 하면서도 경쟁하는 관계다. 또 새로운 표적항암제의 국제임상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앰디앤더슨 암센터의 요기 콜디스 교수, 정년퇴임 뒤에도 학문적인 열정을 버리지 않는 영국 왕립의과대학 하머스미스 병원의 존 골드만 교수, 그리고 미국 오레곤주립대의 마이클 데닝거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닐 샤 교수 등은 임상 연구 분야와 유전자 연구 분야에서 내가 극복하여야 할 영원한 라이벌들이다. 이들처럼 평생을 만성골수성백혈병 한 분야의 연구에만 몰입하고 싶다.
• 9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어린 시절 나를 키우다시피 한 셋째 이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항상 교회 활동과 봉사활동에 열성적이었던 이모는 유치원생 때부터 나를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고 봉사에는 의사만한 직업이 없다고 강조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잠을 자고 있는 나에게 의사 가운을 상상으로 입혀 보았더니 영락없는 의사 스타일이라는 주장을 하시며 전자공학과를 지망하라는 아버지를 막무가내로 설득하여 결국 의대에 원서를 내도록 했다.
• 10

  백혈병을 연구하는 의사, 이것만은 갖추어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분자생물학에 대한 깊은 지식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애매모호하게 해석되었던 백혈병의 발생 원리가 특정 유전자의 이상에 의하여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백혈병 관련 유전자의 기능, 진단법, 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의 원리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 특히 실험실에서의 결과가 직접 진료에 적용되고 이를 토대로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 백혈병을 연구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분자생물학 지식은 필수다. 학문적인 지식 이외에 갖추어야 할 자질은 애정을 갖고 환자와 그 가족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백혈병을 치료할 때에는 많은 고비를 극복해야만 하고 가족들의 시간, 경제적인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치료 과정 내내 의사와 환자, 그리고 가족이 함께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하므로 환자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와 가족을 이해시키는 설득력도 필요하고 이들을 애정을 가지고 이해하는 자상함과 인내심도 필요하다. 백혈병 치료 분야의 저명한 학자가 강연 때 강조하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백혈병 치료는 단거리 스프린트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이다.”
• 11

  이 직업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어려운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도 환자들이나 가족들이 의료진을 격려하고 신뢰를 보여 줄 때가 가장 기쁘다. “선생님의 건강도 챙겨야지요. 그래야 저희가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백혈병 전공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은?

  함께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소중한 사람들이다. 표적항암제 내성 연구와 백혈병 유전자 진단법을 연구하는 김동호 연구교수, 고현경, 권일영, 이정, 김수현, 최수영 연구원 그리고 국제 연구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박사희, 김민선 연구원 등은 오랜 기간 만성골수성백혈병을 함께 연구하며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가장 믿음직한 동료들이다. 이들의 오차 없는 정확한 실험결과가 그대로 환자의 진료에 반영돼 치료율을 향상시켜왔다. 또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을 위해 하루 24시간 내내 365일간 휴대폰 전원을 끌 수 없는 연구 간호사들 모두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며 가장 믿음과 격려를 주는 동료들이다.
• 13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지금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될 기본이 되는 지식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 즉, 화학, 통계, 작문법, 영어 등 보충하고 싶은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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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현재 운영 중인 아시아백혈병학교와 아시아만성골수성백혈병등록소를 더욱 확대 발전시켜 아시아 각국의 중요 병원 대부분을 연결하는 ‘아시아만성골수성백혈병연구소’를 만들고 싶다. 이를 토대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유전자 분석 및 치료 지침의 아시아 표준화를 주도하는 실질적인 허브를 만들어 미국과 유럽 중심의 백혈병 연구 흐름을 아시아로 옮겨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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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김동욱 _ 백혈병의 최고 권위

만성골수성백혈병 연구의 최고 권위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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