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나이가 들면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바로 자신의 건강문제다. 그토록 혈기왕성하여 온 산하를 누비던 기개는 사라지고 생활에 매달려 지내다보니 어느 덧 서산에 노을이 섧게 스며들고 있다. 이렇게 화살처럼 지나는 세월 앞에서 신의 섭리를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마냥 풀죽어 살기에는 그나마 한 자락 남은 희망이 꿈틀대고 있다.
무심코 살다보니 어느 순간에 찾아온 ‘불청객’이 조용히 속삭인다. 이제 그만 옛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손을 내민다. 후다닥 놀라서 아직은 할 일이 있다하니 훌훌 털어내고 떠날 준비를 하라고 재촉한다. 그동안 게으름을 부렸는데 더 이상은 그 누구도 붉게 번지는 낙조와 어둠을 막아낼 여유가 없다고 꾸짖는 듯하다.
지나고 보니 여러 가지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은 것 같다. 일찍부터 고혈압으로 툭하면 코피가 터져 매우 고생을 하였다. 일정 시기가 지나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운동으로 조절하여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신체의 매카니즘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코피로 긴장을 하면서 지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태생적인 유전의 영향이었다. 입학시험 기간에도 고혈압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어찌 인위적으로 극복이 가능한가 싶어 순리대로 살기로 작정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연례적인 정기검사를 한 어느 해 말에 병원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심장 부근에 있는 동맥의 핏줄이 막혀 매우 위험하다고 하였다. 가장 빠른 날짜로 「스턴트 시술」 일자를 잡았으니 그 이전이라도 조심하고 이상을 느끼면 바로 응급실을 찾으라고 하였다.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연말연시를 꼼짝도 못하고 긴장하며 지냈다. 하루 먼저 입원하여 다음날 잔뜩 긴장하여 시술대에 오르니 이리저리 살펴보던 의사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그냥 귀가하라고 하였다. 알고 보니 담당자가 사진 판독을 잘 못했다고 하였다. 일부 실핏줄이 막혔지만 생활에는 이상이 없고 시술을 해봤자 다시 막힌다는 것이다.
그런대로 탈 없이 지내오다가 어느 날, 이마와 콧날 위의 머리카락을 몇 차례 쓸어내려도 소용이 없었다. 세수도 해보고 부근 사람들에게 무엇이 묻어있는지를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아, 나이 들어 나타나는 「비문증」이었다. 그토록 뚜렷한 시력을 자랑했는데 역시 세월은 이길 수 없었다.
동시에 치아에도 이상이 찾아왔다. 자꾸만 음식이 끼다보니 이를 들쑤시게 되고 점점 치아의 사이가 넓어지고 충치로 번져 하나씩 씌우다보니 어느 덧 4개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임플란트’를 하지 않은 일이다.
개인의 부주의로 인해 병을 악화시켜 죽도록 고생을 한 일도 있다. 어느 날인가 발가락이 간지러워 심하게 긁어댄 일이 있다. 특히 양말을 신고 있으면 더욱 가려워 그대로 문질러댔다. 다음 날에 보니 상당히 부어있어 수소문 끝에 동네 병원에 며칠을 다녔으나 호전될 기미가 없어 시내에 있는 피부과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름대로 치료 및 처방을 받아 한 달이 훌쩍 넘었어도 점점 차도가 심해 고생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이 소문난 피부과를 소개해 주기에 곧바로 달려가 치료를 받았다. 병명도 「봉화직염」이라고 하였다. 강도 높은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으로 3 달 넘게 고생하였다.
주변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여름 딸집에 갔다가 여행 후 귀국하려는데 딸이 간청을 하였다. 청력에 다소 문제가 있으니 검사를 해보라는 것이다. 몇 차례나 잘 알아듣지 못하고 반복해서 무슨 말인가 하고 물으니 눈치를 챈 것이다. 여하튼 귀국 후 이비인후과에 들려 검사를 하니 현저하게 청력이 저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어 보청기 담당자와도 상의를 했는데 막상 마음이 내키지 않아 당분간 착용을 보류하였다.
기왕 병원에 갔으니 치매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았다. 만 2년 전에 머리의 뒷부분에 심한 통증이 와서 병원을 찾아 MRI 검사를 한 적이 있다. 전두엽 부분이 미세하게 작아졌다고 하면서 과음을 피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자칫 알콜성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만족스러워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점점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니 신체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마음만 있지 몸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언젠가는 무지의 탓으로 「대상포진」으로 고통을 받다가 병원에 늦게 감으로써 고생을 한 일로 있다. 그나마 젊은 혈기가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로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뿐이다.
지금은 가끔 친구들과 어울리는 운동을 하면서도 신체의 반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느낀다. 특히 술을 마시는 일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많은 지인들이 청춘시절의 폭음으로 고생하고 지낸다. 그러다보니 가능한 모임도 줄이고 지낸다. 최근에 모처럼 산행에 나섰다가 중간에 현기증을 느껴 한참을 쉬다가 조심해서 내려왔다. 그만큼 예전만 못하니 주의하라는 신호로 여기고 지낸다.
질병이외에도 자칫 순간 벌어지는 일로 황천길을 경험하였다. 고속도로에서의 대형트럭에 의한 사고로 180도를 회전하면서 전복하고도 큰 부상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교통경찰마저 극히 보기 드문 행운이라 하였다.
하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이 ‘불청객’을 물리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나그네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했다가 천사의 방문을 거절하는 우매한 과오는 피할 일이다. 세월과 더불어 어느 때고 찾아오는 이 ‘불청객’과 더불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상의할 일이다. 어차피 인생길은 한 점 구름이 떴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아닌가.
무엇보다 세밀하고 지속적이며 스스로에게 적합한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건강은 내 삶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조용히 도와주는 기본조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체적인 건강이 정신적인 건강을 위한 필수라고 말하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 들이다’라는 말은 신체의 건강이 정신적인 건강의 토대라는 말이다.
반면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정신력이 육체의 힘을 결정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육체적 건강에 관해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나 외모를 잘 가꾸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의사 혹은 의약품 등에 의존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는데 있었다고 하였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신체가 쇠약하면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니 건강한 신체의 유지가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일찍이 ‘생각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환경을 낳고, 그 환경이 운명을 낳는다’고 배웠다.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결정은 순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지금 어찌 지난 세월을 변화시킬 수 있으랴마는 남은 시간이나마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건강 유지에 신경을 쓸 일이다. 바른 생각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길 일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명상으로 열고, 무엇인가를 부단히 배우고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고 자성하며 살 일이다. 그나마 불쑥 ‘불청객’이 찾아오면 더불어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여유는 세월이 준 지혜와 행복의 증거인 셈이다.
(2023.10.25.작성/2024.7.3.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