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가야산
2023년 11월 05일(일요일)
산행코스 : 상가리주차장(07:50) - 백제의미소길 - 퉁퉁고개(09:30) - 남연군묘(10:20) - 옥양폭포(10:45) - 석문봉(11:30) - 가야산(12:25) - 상가리주차장(13:35)
산행거리 : 18.8km
상가리주차장
석문봉 2.7km, 옥양봉 2.1km, 가야봉 3.0km
좌측은 가야봉, 우측은 옥양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남연군묘
상가저수지에서 바라본 가야봉
석문봉 1.93km, 가야봉 1.78km, 주차장 1.58km
상가저수지
백제의 미소길
백제의 미소길 분기점
남연군묘(가야사지) 1.93km, 보원사지 4.85km
대동문쉼터
보원사지 4.58km, 남연군묘(가야사지) 2.20km, 원평리(서산) 3.50km, 서원산 1.50km
서산과 예산의 경계에 있는 미소를 머금은 장승
으름재쉼터
백제의 미소공원
퉁퉁고개
백암사지 1.8km, 보원사지 3.0km, 수정봉 1.9km, 남연군묘(가야사지) 4.0km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갑니다.
대동문쉼터
좌측 상가리미륵불, 우측 석문봉 갈림길
상가리 미륵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2호)
미륵불의 높이는 2.5m이고 코부분과 하단을 보수한 흔적이 있습니다. 상가리 미륵불은 원래 가야사터(현재 남연군 묘 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절터를 남연군 묘터를 쓰면서 미륵불(彌勒佛)이 등을 대고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원래 상태로 돌려 놓았으나 곧 등지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륵불의 코를 떼어가면 아기를 못나는 아낙이 아기를 가질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아낙내들이 코를 베어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남연군묘
석문봉 2.36km, 옥양봉 1.83km, 상가리미륵불 0.25km, 백제의 미소길
석문봉 2.04km, 옥양폭포 0.82km, 옥양봉 1.51km, 주차장 1.16km
좌측 석문봉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농수산물 판매장
석문봉 1.86km, 옥양폭포 0.64km, 주차장 1.34km
주차장 1.98km, 석문봉 1.22km
옥양폭포
옥양폭포
뒤돌아본 옥양폭포
기도터
석문봉 0.64km, 주차장 2.56km
본격적인 경사가 심한 오르막 돌계단 등로입니다.
석문봉 0.28km, 주차장 2.92km
가파른 돌계단 동로를 뒤돌아봅니다.
눈앞에 능선이 보입니다.
석문봉 0.08km, 옥양봉 1.25km, 주차장 3.12km
석문봉 정상이 보입니다.
석문봉 정상
주차장 3.20km, 옥양봉 1.33km, 가야봉 1.48km, 일락사 2.74km
해미산악회 백두대간 종주기념탑
올라다본 사자바위
사자바위와 그 뒤로 석문봉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가야봉 1.07km, 석문봉 0.51km
소원바위 뒤면
소원바위
거북바위
가야할 가야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가야산 갈림길
가야봉 0.30km, 석문봉 1.18km, 주차장 3.06km
가야산 정상이 보입니다.
드디어 가야산 정상입니다.
가야산 정상
주차장 3.59km, 헬기장 0.98km, 석문봉 1.48km
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해미읍성 방향 파노라마
645봉
연암산, 한서대
산수저수지 방향
석문봉 방향
주차장 3.52km, 헬기장 0.91km, 가야봉 0.05km
나무사이로 보이는 원효봉
급경사 하산길이 시작됩니다.
가야봉 0.62km, 주차장 2.97km
헬기장 갈림길
가야산 1.13km, 헬기장 0.78km, 주차장 2.49km
가야봉 1.29km, 헬기장 0.94km, 주차장 2.30km
저멀리 서원산이 보입니다.
주차장 1.83km, 가야봉 1.76km, 헬기장 1.41km
상가저수지에서 바라본 가야산방향 파노라마
저멀리 중앙에 원효봉이
가야산
석문봉이 살짝보입니다.
옥양봉
남은들상여(국가민속문화재 제31호)
대원군이 부친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덕산면 광천리 마을에 하사했다고 전하는 궁중식 상여입니다. 장강 위에 구름 차일을 친 용봉 상여로 4귀에는 용모양의 금박이 있고, 중앙 부위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동자상이 있으며, 휘장은 검정, 노랑, 흰색 천으로 되어 근엄하면서도 호화롭습니다.
진풍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보관중에 있으며, 이곳 상여 보호각에 전시된 복제품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201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국립고궁박물관 진품 실측과 정밀 실측 보고서를 근거로 상여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전흥수 대목장이, 유소는 무형문화재 32호 배순화 매듭장이 제작하여 보호각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남연군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망주석과 석양이 보입니다.
남연군의 묘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무덤입니다. 원래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던 것을 1846년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이구(?~1822)는 인조의 셋째 왕자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에게 입양되어 남연군에 봉해졌습니다. 아버지 은신군이 모함을 받아 제주도에서 죽자 왕족이면서도 불우한 삶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입니다.
이하응이 아버지의 묫자리를 찾던 중 가야산에는 "2대에 걸쳐 왕이 나오는 자리"가 있고,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가야산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가야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어 대원군은 절을 없애고 남연군의 묘를 옮겼습니다. 훗날 대원군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고종입니다.
1868년 독을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파헤쳤지만 관은 건드리지 못한 채 돌아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흥선대원의군 쇄국정채고가 천주교탄압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예산 가야사지(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80호)
뒤돌아본 가야산
남연군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1호)
남연군 묘에서 약 700m 정도 떨어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107-1번지에 세워진 비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1788~1836)의 신도비로, 남연군의 가계와 생애, 행적을 기리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아들인 고종이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1865년(고종2)건립되었습니다.
높이320cm, 가로 73cm, 세로 185cm, 두께41cm의 남연군 신도비는 화강암으로 된 두개의 기단위에 사각형의 높은 대좌를 놓고 그 위에 오석으로 비신을 놓았습니다.
비신 위에는 지붕 모양의 옥개석(지붕돌)이 올려져 있습니다.
1864년(고종1) 영의정 조도순의 건의에 의해 남연군의 시호를 영희에서 충정으로 개시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비명은 좌의정 김병학이 짓고, 남연군의 셋째 아들 이최응이 썼으며, 손자 이재원이 새겼습니다.
비신에는 큰 글씨로 "남연군충정"이라고 쓰여 있고, 4면을 돌아가며 작은 글씨로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가리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