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박미량의 시 세계 생(生)과 존재의 인식 그 지향성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다양한 행위를 사유(思惟)하면서 회상하거나 반추(反芻)하게 된다. 거기에는 생존과 직결된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이 동반하게 되는데 이 정한(情恨)의 문제가 바로 존재의 인식을 통해서 새로운 자아(自我)의 발견과 또 다른 성취(成就)를 위한 지향적인 사유로 변환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칠정 중에서 애(哀)와 애(愛)에 관한 문제가 우리의 생존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어 지나온 과거의 상상력 재생에서 창조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 작품에 이미지나 주제로 투영되는 경우가 현대시의 경향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삶의 궤적(軌跡)을 통해서 창출된 체험의 결과로서 그 시인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원류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양상(樣相)이 우리 문학의 이미지와 융합(融合)할 때 비로소 한 편의 작품으로 형상화하거나 정서의 확고한 중심축으로 승화하는 단계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찍이 안병욱 철학자는 그의 글「인생을 말한다」에서 ‘인생은 예술 이상의 예술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인생을 조각하는 생의 예술가다. 우리 앞에는 생의 대리석이 놓여 있다. 그것은 하나의 풍성한 가능성의 세계다. 이 가능성은 성실한 빛의 생애로 아로새겨질 수도 있고 치욕의 어두운 생애로 형성되는 수도 있다. 이 가능성에다가 어떠한 내용의 현실성을 부여하느냐, 그것은 각자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다.’라는 말로 인생을 논하고 있다. 여기 박미량 시집『그래도 생(生)이다』를 일별하면서 인생론이 좀 길어졌지만 박미량 시인이 탐색하는 인생 즉 존재의 의미나 인식된 지향점은 이러한 체험 속에서 정돈된 그의 철학이 시적인 진실로 형상화하는 노정(路程)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잎새들을 깨우는 바람에 나무의 시간을 들여다 보는 봄 밤 생에 이르지 못하고 한 둘 떨어져 힘 없이 나뒹구는게 있는가 하면 마른가지 끝에서도 부지런히 숨을 채우고 있다 별은 그저 깜박 깜박 수액을 뽑아 올리는 본능에 충실한 나무는 잠잠히 사계절을 묻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마음 닦달하지 않아도 어둠 그늘 걷어낸 새벽은 밝아 올 것이고 흙 향기 날리는 바람 길 들숨 날숨 고르며 뿌리 흔들리지 않으리 --「그래도 생(生)이다」전문 그렇다. 박미량 시인은 전술(前述)한 칠정 중에서도 노(怒)에 해당하는 갈등의 요소들을 화해하려는 심저(心底)가 깊이 침잠(沈潛)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생에 이르지 못하고 한 둘 떨어져 / 힘 없이 나뒹구는게 있는가 하면 / 마른가지 끝에서도 부지런히 숨을 채우고 있다’는 내면에서 분출한 진정한 의식의 발양이 곧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다시 ‘본능에 충실한 나무는 잠잠히 / 사계절을 묻지 않는다’는 어조(語調-tone)는 바로 그가 ‘그래도 생(生)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유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지향하는 인식의 범주(範疇)는 생과 상관하는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흙 향기 날리는 바람 길 / 들숨 날숨 고르며 / 뿌리 흔들지 않으리’라는 중대한 결론으로 작품의 주제를 유로(流路)하고 있다. 그는 작품「0시」에서도 ‘살아있는 / 시간의 허용 / 날카로운 오늘이 있다’라거나 ‘생이라는 / 고통에 서서히 무뎌질 즈음 / 더이상 버겁지 않은 / 끝과 시작’이라는 어조에 이해할 수 있듯이 ‘살아있는 / 시간’의 이미지는 바로 그가 존재의 인식이라는 대범(大凡)한 시적 정황(情況-situation)에서 궁극적으로 탐구해야 할 인생관의 정립임을 이해하게 된다. 2. 박미량 시인에게서 다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도시와 농촌에서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서 생(生)과 연관하는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회색 도시’를 통해서 생성한 ‘이미 젖어버린 언어’가 적시(摘示)하는 메시지는 ‘허깃증’에 있으며 반대로 농촌의 이미지는 잔잔한 정서의 안정을 읽을 수가 있다. 허깃증에 가만히 들여다본 그에게 회색도시가 있다 안개가 걷힌 후 밝음의 햇빛도 꿈을 보여주지 못한다 햇빛을 만나기 전 이미 젖어버린 언어의 끝을 잡고 세상 문 밖으로 떠밀려간 사람의 약한 심지를 뒤흔들어 놓는다 자기 불화와 연민을 떨쳐버리고 바장이는 세상 안으로 다시 들어와야만 한다 꿈이 거기 있다 --「회색도시」전문 보라. 박미량 시인은 ‘자기 불화와 연민’을 ‘회색도시’에서 고뇌하고 있다. 이러한 고뇌와 갈등은 현대 문명의 다원화의 영향으로 복합적으로 발전함으로써 야기된 이기주의의 병폐가 노출된 현실에 대한 그의 지적인 혜안(慧眼)에서 생성한 진실이다. 일찍이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시달리면서 현세적(現世的)인 목적을 위하여 살고 있는 자에게는 편안함이 없다. 또 혼자서 고독하게 정신적 목적만을 위하여 사는 자에게도 편안함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안개가 걷힌 후 밝음의 햇빛도 / 꿈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세상 문 밖으로 / 떠밀려간 사람의 / 약한 심지를 뒤흔들어 놓’치만 그는 ‘바장이는 세상 안으로 / 다시 들어와야만 한다 / 꿈이 거기 있다’고 절규하고 있다. 계절을 닮아 목소리 낮추고 오만을 줄여가는 삶의 들판과 짧은 이야기 나누던 가을 해 병충해를 끄덕없이 이겨낸 벼 포기를 바라보는 싱싱한 농부의 웃음 소박한 소망은 젖은 흙속에서 단단히 익어가고 있습니다 낙엽소리 물소리 흔들리는 밤 시인은 흔들리는 내면을 풀어 이야기를 합니다 --「물소리 맑아가는」전문 여기에 적시하는 농촌의 아늑하고 고즈넉한 정경에서는 무엇을 음미(吟味)할 수있는가. ‘오만을 줄여가는 삶의 들판’이며 ‘병충해를 끄덕없이 이겨낸 / 벼 포기를 바라보는 싱싱한 농부의 웃음’이다. 이 얼마나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시적 정황인가. 이 ‘소박한 소망은 젖은 흙 속에서 / 단단히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여기에서 결론적으로 제시한 주제가 바로 ‘낙엽소리 물소리 흔들리는 밤 / 시인은 흔들리는 내면을 풀어 / 이야기를 합니다’라는 어조로 ‘물소리 맑아가는’ 밤을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박미량 시인은 이처럼 도시와 농촌에서 양면성의 주제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황이나 이미지 혹은 주제의 투영은 그가 생(生)이라는 근원에서 실제로 체험했거나 체험에 의해서 유추(類推)하는 상상의 세계일지라도 시적 진실을 지향하는 그의 인생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시 이러한 작품「허수아비」에서도 ‘눈물을 머금어도 좋아 / 시름을 삼키는 때 있지만 / 농부의 쓴웃음과 땀방울도 거둬들인 / 나는 허수아비’라고 ‘농부의’ 애환을 이미지화해서 그가 전원적인 정서를 도시와 비추어서 진실을 구현하려는 시법(詩法)을 이해하게 한다. 3. 박미량 시인에게는 다시 현실적인 위기의식에 대응하는 그의 사유의 진폭을 엿볼 수 있는데 현실적인 갈등에 저항하는 메시지가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어서 이는 그가 지향하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관에서 상당한 괴리감(乖離感)이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여름날 미친 폭풍우처럼 위태롭게 뒤틀린 시간을 견뎌온 믿음이 흐려지고부터 손에 달린 운명은 차갑게 버려진다 긴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산 속 비의 노래로 함께여서 좋았던 날의 무심한 기억의 조각들 정지된 낭만은 곤하다 --「버려진 우산」중에서 그는 대체로 이 ‘버려진 우산’을 통해서 조망하거나 투영하려는 이미지는 갈등 요소들에 대한 융합이나 화해의 조화를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친 폭풍우’와 ‘위태롭게 뒤틀린 시간’ 등으로 ‘믿음이 흐려지고’ 있어서 불신의 시대, 혹은 불명(不明)의 혼돈과 대치하면서 생(生)에 대한 진실을 시적으로 호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비의 노래’와 ‘버려진 우산’의 상관성은 시적 정황으로 보아서 상당한 고뇌의 흔적을 읽을 수 있으며 그는 다시 ‘무심한 기억들’과 ‘정지된 낭만’을 결부시키면서 미확인의 현실들과의 진실을 탐색하려는 그의 정서의 중심축이 지향하는 존재의 인식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적시되고 있다. 유배된 적 없는 섬 그예 수수만년의 파도 휘어진 뒷다리로 땅을 버티고 도주마저 쉽지 않다 현기증이 가라앉을 만큼 알약을 삼켜야 하는 붉은 바다 울음기 배어 있는 섬 새들이 날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한사코 교신을 보낸다 --「섬을 쌓은 무게」전문 박미량 시인은 이 ‘유배된 적 없는 섬’에서도 ‘울음기 배어 있는 / 섬’이나 ‘붉은 바다’ 등에서 감지할 수 있는 시적 정황과 이미지는 그가 보편적으로 응시(凝視)하거나 조망(眺望)한 현실 생활(real life)에서 그가 추구하려는 이상 세계의 고차원적인 인생관에서 획득한 진실을 탐색하는 무명(無明)의 세계 ‘새들이 날지 않는 / 수평선 너머로 한사코 / 교신을 보낸다’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작품「회고」에서도 ‘폐부 깊숙이 저며든 후에야 / 또렷하게 안겨오는 의식 / 온기를 느끼지 못했던 옛적 어느 숨에 / 냉기가 이리도 차거울 줄이야’라는 인식을 절감(切感)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의식에는 생(生)과의 상생(相生)을 위한 하나의 심리적인 지향성으로서 그가 여망(輿望)하거나 희구(希求)하는 진실을 위한 내적인 발양(發揚)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의 결론에서 ‘되감기는 회로의 삐걱거림을 / 반질반질하게 닦아내는 일 / 냉기를 만나고서야 온기를 고마워하고 / 스스로 돌아가지 못하는 길일 줄이야’라는 어조에서 우리는 그의 진정한 성찰의 의미도 읽을 수 있게 한다. 박미량 시인에게서의 위기의식은 작품「아버지의 등」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성냄도 탐욕도 머물다 떠난 자리 과장된 몸짓이 멋쩍기만 하고 주름처럼 흘러간 강물 흐르기만 해도 지혜롭다 꺽인 길처럼 휘어진 등 여린 한숨소리 흘러내리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두 다리 고목의 뿌리처럼 위태롭다 그렇다. 그는 ‘아버지’라는 화자(話者-persona)를 통해서 자신의 시적 의지(意志)와 대입시킨 지혜(‘흐르기만 해도 지혜롭다’)가 어느 날 ‘고목의 뿌리처럼 위태롭다’는 인식 단정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바로 그가 구현하려는 생(生)에서 다양한 현실적인 외적 요인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융합하거나 화해하려는 조화의 의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과장된 몸짓이’나 ‘주름처럼 흘러간 강물’ 등은 지혜롭기만 하였으나 ‘꺾인 길처럼 휘어진 등’의 현실성에서 상기(想起)하는 그의 인식은 존재라는 거대한 방식에서 추출하는 위태로움이다. 이것들은 ‘셈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라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하는 순리(順理)가 ‘아버지의 등’에서 다시 재생하는 상상려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가게 된다. 그는 ‘존재라서 / 더 뜨겁게만 / 밀어 속으로 든다(「소리」중에서)’는 어조에서도 그가 우리가 미처 지각하지 못한 존재의 문제를 심도(深度) 있게 탐색하는 그의 진실을 알 수 있다. 4. 박미량 시인은 서정 시인이다. 그의 서정성은 우선 자연에서 출발한다. 자연 서정은 누구에게서나 발흥(發興)할 수 있지만, 시인의 시각적 이미지에서는 약간 특이한 점도 감지하게 되는데 이는 외적인 사물 이미지가 그 시인의 정감(情感)과 일치할 때 발상하는 시적으로 중요한 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보아라, 눈 오는 거리에서 신의 오묘한 조화가 저토록 바람에 안기는 것을 아득한 하늘 끝에서 쏟아지는 피날레 촉촉이 머리칼을 적시고 고갈된 심상 위에 통렬히 산화하는 것을 강가 나룻배 위로 산 짐승의 등 위로 하얗게 부서질 부드럽고 부드러운 눈꽃 송이를 한낱 먼지와 같을 뿐인데 어느 이름 모를 유랑자에게 가난한 꿈을 심어주는 꽃이 되리니 --「눈꽃」전문 박미량 시인의 시각에 펼쳐진 이 ‘눈꽃’은 바로 그가 정서적으로 잠재한 서정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자연 현상이다. 그는 그 자연 현상에서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그가 천착(穿鑿)하는 대자연관에서 창출된 ‘오묘한 조화’에 매료(魅了)되어 ‘고갈된 심상’과 융합하면서 한 장면의 ‘부드러운’ 미적 시법을 연출하고 있다. 이 서정시(lyric)의 원류는 서사시, 극시와 더불어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는 정적인 운율을 중시했으나 그 후에 시인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정서와 체험을 노래하는 잔잔한 시적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현대의 서정시는 사회의 복잡화, 비합리성 등에 대한 시인의 각성과 시인의 자의식의 과학적인 분석 등으로 비평을 내포(內包)한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는 데 우리가 지금 노래하는 자연 서정시와는 약간 그 패턴이나 표현 시법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서정시가 갖는 비평의식보다는 박미량 시인 등이 현재 적시하면서 미적 주제를 탐색하는 아름다움이 그 시간과 공간의 조회에 의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시키는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구사하는 ‘아득한 하늘 끝에서 쏟아지는 피날레’는 ‘부드러운 눈꽃송이’이며 그것은 ‘어느 이름 모를 유랑자에게 / 가난한 꿈을 심어주는 꽃이 되리니’라는 심중의 일단이 그의 진실로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푸르름으로 출렁이는 기적같은 생명의 축제 새의 숨결에도 움터오는 연초록 나뭇잎새들 잔잔한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미소를 삼킨 햇살 마음껏 5월을 흔들어대는 자연의 향연 보라. 이 작품「5월 아침고요수목원」전문에서도 그가 자연 현장에서 감지하는 ‘생명의 축제’가 ‘자연의 향연’으로 승화하고 있다. 그는 ‘연초록 나뭇잎새들’과 ‘잔잔한 개울물’ 그리고 ‘미소를 삼킨 햇살’이 그의 시야에서 ‘5월을 흔들어대는 자연의 대향연’으로 장식하고 있다. 4월, 어느 날 파릇한 잎새를 닮은 봄비 명자꽃잎을 훔치고 있다 하루치의 젖은 마음 닦을 아침을 걷는 우산 속 사람들 뒷모습은 바쁘지만 나뭇잎보다 싱싱한 남자의 얼굴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온 보리 푸른 냄새가 파르르 끼친다 그는 작품「명자꽃」전문에서도 자연에서 만끽할 수 있는 ‘파릇한 잎새’, ‘봄비’, ‘바람’, ‘보리’, ‘푸른 냄새’ 등이 이 ‘명자꽃잎’과 풋풋한 교감으로 그의 시법에 자극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서정성은 현대시의 요체가 되는 귀중한 시법이다. 박미량 시인도 그가 생(生)의 정점에서 해법을 찾아보는 존재의 문제에서도 그러한 내적인 어떤 갈등과 고뇌의 요소 이외에의 그의 정서나 사유는 자연 현장으로 시각을 돌려서 안온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만유(萬有)의 자연 서정성에 몰입하는 특성이 있다. 일찍이 파스칼은 그의「팡세」에서 자연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神學)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삶들이야 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삶들이라는 교훈처럼 자연 속에서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바르게 지향할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우리 시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과 생명 그리고 그 존재의 인식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서정적 인식으로 삶의 다양한 지표들을 형상화하는 시법에 찬사를 보내게 한다. 박미량 시인의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