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51580 민경주 : 김애란, 「큐티클」,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32152458 신혜수 : 정이현, 「트렁크」, 『낭만적사랑과사회』, 문학과 지성사, 2003
52132135 윤석빈 : 윤고은, 「프레디의 사생아」, 『알로하』, 창작과비평사, 2014
32150595 김보람 : 윤성희, 「감기」, 『감기』, 창작과비평사, 2007
32153457 이은지 : 김애란, 「서른」,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32141941 박주형 : 손홍규, 「정읍에서 울다」, 『그 길 끝에서 다시』, 바람, 2014
김애란 「큐티클」
32151580 민경주
32152458 신혜수
52132135 윤석빈
32150595 김보람
32153457 이은지
32141941 박주형
발을 디딘다. 구정물 위로 하얗게 뜬 벚꽃이 보인다. 깨진 아스팔트 곳곳 크고 작은 구멍에 빗물이 고여 있다. 치마폭을 벌려 물 위를 건넌다. 웅덩이에 고인 하늘이 파랗게 부서지며 출렁인다. 구두가 젖으면 안되는데……. 종아리에 자꾸 흙탕물이 튄다.
장마철도 아닌데 며칠째 비가 내렸다. 집을 비운 사이, 변기 물속엔 장구벌레가 꼬여 있었다. 화장실 창문으로 꽃가루며 나방가루 같은 게 실려 온 탓이었다. 물을 내리자 꼬물대던 벌레들이 소용돌이치며 사라졌다. 세계는 생각보다 썩기 쉬운 물질로 이뤄 있었다. 걸레질을 하고, 냉장고를 비우고, 욕실에 락스를 뿌린 후 방바닥에 누웠다. 뺨에 닿는 모노륨 장판이 서늘했다. 창밖에서 간헐적으로 소음이 들려왔다. 별들의 운행처럼 자동차가 긴 꼬리를 그으며 회전하는 소리였다. 피로가 풀리며 내 안의 피도 제 속도를 찾는 느낌이 났다. 죽은 듯 엎드려 있다 날바닥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따금 구급차 사이렌 소리와 오토바이 굉음이 들려왔다. 잠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고, 꿈 밖 이지러진 성운 사이를 찢고 지나가는 운석들. 몸을 작게 말며, 서울의 리듬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지방에 다녀왔다. 입사 후 처음 있는 출장이었다. 여행용 가방이 없어 부천 사는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렸다. 친구는 자기 몸뚱이만한 가방을 종로까지 끙끙대며 들고 왔고, 나는 또 그걸 수유까지 끌고 가느라 애를 먹었다. 없으면 아쉽고 사자니 아까워 빌린 건데, 가방을 돌려줄 때는 후회가 컸다. 택시를 타고 부천까지 갈 순 없었다. 그 요금이면 애초에 가방을 사는 편이 나았다. 택배로 부칠까 하다, 친구에게 줄 선물도 있어 지하철을 탔다. 마침 만나기로 한 선배도 근처에 살고 있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선배에게는 신약 마케팅 기획에 관한 조언을 구할 참이었다. 한낮의 국철은 한적했다. 나는 지하철 의자 위에 뚱뚱한 캐리어와 함께 초면인 양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열차가 덜컹일 때마다, 내 속에, 그리고 캐리어 속 텅 빈 어둠이 표 안 나게 흔들렸다. 부천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이상이 남아 있었다.
아침 내 신발장 앞에서 머뭇거렸다. 양손에는 4센티와 7센티미터 구두가 들려 있었다. 힐을 신고 지하철을 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소 버스노선이 익숙지 않아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었다. 땅속으로, 소라기둥처럼 끊임없이 이어진 계단을 타고, 환승을 세 번 정도 하는 날에는 하루 백 개도 넘는 층계를 오를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가끔 ‘나는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 대처에 온 게 아닐까’ 궁금해지곤 했다. 결국 4센티 굽이 달린 신발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금세 맘을 바꿔 7센티 하이힐로 바꿔 신었다. 비싸게 주고 샀지만 불편해서 잘 안 신는 가죽 수제화였다. 힐을 신고 빌라 5층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탕- 탕- 허공이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렸다. 발을 헛딛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굽이 주는 긴장감이 오랜만에 마음을 들뜨게 했다. 굽 끝에서부터 온몸이 싱싱하게 당겨지는 감각이 아찔했고, 불편도 특권이다 생각하니 더 그랬다. 팽팽한 걸음은 도시의 탄력과도 잘 어울렸다. 실제로 힐을 신은 내 모습은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다. 지적인 분위기를 주고 싶어 검은 스커트에 파란색 블라우스 입었다. 옆구리엔 손바닥만한 클러치 백을 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각오를 다지듯 걸음마다 종아리 금육이 불룩거렸다. 결혼식은 1시에 명동에서 열렸다.
신호등 위, 빨간불 주위로 풀씨들이 부유한다. 먼지 뭉치처럼 나른한 듯 민첩한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다. 씨앗으로 꽉 찬 계절. 마치 세상 모든 식물들이 ‘나는 살아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거예요!’라고 외치며 사방으로 뿌리는 점자 삐라 같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번식의 에너지를 들이마신다. 폐 깊숙이 들어오는 건 배기가스지만, 물컹하고 비린 기운에 가슴이 봄밭처럼 부푼다. 어쩌면 오늘 내 차림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안도할 만한 기준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던지. 상품 사이를 산책할 때 나는 엄격한 동시에 부드러운 사람이 됐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여유.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까다로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리자 쇼핑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원하는 게 많아졌다. 변화는 단순했다. 과거, 장식이나 색상 위주로 물건을 골랐다면 이제는 질감이나 선(線)을 본다. 그중에서도 선, 흔히 ‘잘 빠졌다’고 말하는 상품의 전체적인 맴시를. 좋은 옷을 입는 건, 그것의 가격이나 옷감이 아니라 좋은 실루엣을 소유하게 되는 거란 걸 깨달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명품은 아니어도 상품(上品)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달까. 횡단보도 앞, 스테인리스 기둥에 내 모습을 비춰본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정장. 백화점 할인매자에서 산,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핸드백. 담담한 질감의 소가죽 구두. 4월. 친하지 않은 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길. 책가방에 잘 나온 성적표를 담아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처럼 나는 자꾸 히죽히죽 웃는다.
전철역 입구, 도라지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맞은편 가판에는 하얗게 쌓인 좀약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봄. 걸음마다 스치는 허벅지 맨살이 보드랍다. 인조견으로 된 스커트 안감이 다리에 감기는 감촉의 외설. 날이 풀리고 몸이 풀리는 기분. 스물여덟. 이제 막 서른을 바라보는 내 몸이 알맞게 그리고 충분히 익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간 몇 번의 연애가, 구직이, 이사가 있었다. 그리고 예전보다 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갓 서울에 도착한, 스스로의 구매력을 어색해하던 스무 살 때보다 건강하다. 내가 나를 보살피는 느낌. 소비는 조심스럽고 수줍게 진행됐다. 일반 화장지대신 꽃그림이 찍힌 티슈를 사고, 탄산음료를 집었다 과일주스로 바꿔들었다. 몇백 원 더 비싸지만 부드러운 국산 콩 두부를 사고, 호기심에 일반 생리대보다 두 배는 비싼 친환경 소재의 패드를 써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좀 죄책감이 들었다. 생필품을 절약하지 않으면 돈 모으기가 힘든데. 씀씀이가 커 눈만 높아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변기에 앉아 화장지를 끊을 때마다, 부드러운 두부 조직이 식도를 건드릴 때마다, 전에 없던 설렘과 만족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돈 주고 사는 거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낭비’가 아니라 ‘경제적인 행복’이라 우기면서. 술값으로 몇십만 원씩 쓰는 남자들보다 낫지 않느냐 반문하면서. ‘이건 오래 쓸 거니까’ ‘이건 자주 사용하는 거니까’라는 식의 근거로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덥석 안고 올 때도 있었다. ‘아주 조금 나은’ 물건에 대한 욕구. 그냥 다리미가 아닌 스팀 다리미, 보통 드라이기가 아닌 음이온 드라이기, 일본 생맥주, 핸드 드립 커피, 고농축 에센스에 푹 절인 마스트 팩……. 한 번 높아진 눈을 다시 낮추기는 힘들었다. 주위 직장 동료들의 조언도 한몫했다. 그녀들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식의 고집과 풍습을 공유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가방은 비싼 걸 매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장품은 좋은 걸 써야 한다. 항상 입는 코트는 유명 브랜드로 걸쳐야 한다. 여자는 머릿결이 생명이다. 피부가 명함이다 등등. ‘무엇 무엇만은’의 목록은 계속 늘어갔다. 모든 게 중요하고 많은 게 필요했다. 나는 그 필요에 쫓기지 않았다. 필요에 의지했다. 소비는 내가 현재 대도시의 왕성한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나도 그 신진대사에 속해 있다는 느낌. 뭔가 지불할 때, 나는 좀 더 잘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몇 번 언론사 시험에 떨어졌다. 공중파 방송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는데. 오래 공부할 용기가 안 나 재빨리 외국계 제약회사 쪽으로 눈을 돌렸다. 회사에 다닌 지 3년. 많은 돈을 모으진 못했지만 얼굴은 예전보다 맑아졌다. 그건 단순히 깨끗한 피부가 아닌, 그 사람의 환경, 영양 실태, 심리적 안정감, 여가, 쾌적함, 자신감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드러나는 ‘총체적인 안색’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그런 낯빛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연예인들의 얼굴에서 그런 안색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그 빛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론 언짢아했다. 건강하다기보다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인상을 받아서였다. 그래도 나는 내 또래 여자들의 유행을 잘 따라가는 편이었다. 입사한 지 일 년이 지나자 은행에서 직장인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제일 먼저 집을 옮겼다. 변두리 집값은 상대적으로 쌌지만, 그간 세를 산 집 중 가장 넓고 그럴듯한 데였다. 처음에는 여유가 다음으로 욕심이 찾아왔다. 집을 꾸미고, 정착의 느낌을 재생 반복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월급날에 대한 확신과 기대는, 조금만 더 예쁜 것, 조금만 더 세련된 것, 조금만 더 질 좋은 것에 대한 욕구를 부추겼다. 그러니까 딱 한 뼘만……. 7센티 굽 높이만큼이라도 삶의 질이 향상되길 바랐다. 이상한 것은 그 많은 것 중 내게 딱 맞는 한 뼘은 없었다는 거다. 모든 건 늘 반 뼘씩 모자라거나 한 뼘 더 초과됐다. 본디 이 세계의 가격이 욕망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도록 매겨졌다. ‘아직 젊고, 벌 날이 많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나는 늘 한 뼘 더 초과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했다.
아슬아슬, 가파른 지하도 계단을 내려간다. 힐을 신은 경우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해야 한다. 생각보다 날이 덥다. 가슴과 겨드랑이에 땀이 찬다. 지하도에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시멘트 그늘 냄새가 확 풍긴다. 지하도의 서늘함은 늘 피신의 느낌을 준다. 휴대전화를 찾으려 클러치 백을 뒤지다 손가락 끝에 시선이 멈춘다. 뭔가 뻐근한 기분, 찌푸린 눈으로 손톱 주위를 살피며 손가락을 더듬는다. 이번에는 좀 가려운 느낌이다. ‘어떻게 할까?’ 고개를 돌려 지하도 입구를 바라본다. 네모난 구멍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시리다. 어쩌면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선 순간부터 줄곧 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좀 주저한다. 그러고는 곧 그 환한 빛을 향해 다시 걸어 나간다.
상점 외벽은 통유리로 돼 있다. 간첩처럼 기둥 뒤에 서서 안에 동정을 살핀다. 손, 발 베이직 만 원, 레귤러 만 오천 원, 스페셜, 제모, 눈썹문신....... 유리벽 위로, 메뉴와 가격이 붙어있다. ‘베이직이 뭐지? 레귤러는 또 무슨 말이람?’ 만 원이면 국산 콩 두부 열 개를 합친 금액과 비슷하다. 마음을 정하지 못해 어물대다 주인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초행자의 망설임을 잽싸게 알아차리며 방긋 웃는다. 그냥 갈까 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봄인데도 가게 안에 벌써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 한쪽 구석에서 바지를 걷은 채 족탕을 하는 아가씨와, 손톱을 말리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앳된 네일 아티스트 두 명이 부지런히 그들의 말상대를 해주고 있다. 오랜 소비 경험상, 이런 곳에 올수록 기죽은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단 걸 알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아울러 속물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겸손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교육받은 사람답게, 당신을 존중한다는, 나는 으스대는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태도, 물론 그때마다 주인들은 단번에 나를 하수로 알아보고 이리저리 다루려 별렀다. 무시와 격려를 번갈아 하며 매매를 부추겼다. 나는 ‘내가 왜 내 돈 쓰면서 야단을 맞아야 하나’ 울컥하다가, 자존심을 세우려 지갑을 열곤 했다. ‘이번에는 휘둘리지 않으리라’ 의자에 허리를 세우고 앉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학창시절 내내 경쟁심을 느껴왔던 친구의 결혼식이고, 대학동기들도 많이 올 테니까, 천천히 메뉴판을 훑어본다. 그러나 가격에 너무 신경 쓰는 인상을 줘선 안 된다. 발 관리를 제대로 받으려면 오만원이 든다. 손톱 매니큐어는 오천 원이니 해볼 만하다. 어차피 발은 구두코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주인 여자가 상냥하게 말한다.
“다음부터는 예약하고 오셔야 해요.”
네일숍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태 전 동네에 처음으로 네일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전철역과 가까워, 오고가는 길에 자주 봤는데, 그때 만해도 내가 고객이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었다. 사실 그때 나는 통유리 사이로 비치는 여자들을 은근 경멸했었다. 네일숍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고 옷이나 피부에 돈을 쓰는 여자들보다 훨씬 게으로고 사치스러워 보여 서였다. 고가 핸드백보다 수십 배는 싸고, 조촐한 낭비인데도 유독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시골서 자란 내겐,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금욕주의 같은 게 있었다. 내게 네일아트는 사치의 궁극처럼 느껴졌다. 손톱만큼 자기를 숨기기 힘든 것도 없으니까. 명품 가방으로도, 보석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게 손이니까. 그래서일까. 내 발로 들어온 가게인데도, 앉은 내내 죄지은 것 마냥 가슴이 콩닥거린다. 하지만 그건 설렘과 호기심의 박동이기도 하다.
“어떤 거 하실 거예요?”
나는 매니큐어를 하겠다고 한다. 여자는 내 손을 잡고 살피더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케어를 먼저 받으라고 한다.
“케어요?”
여자가 판에 박힌 말투로 대사를 외듯 설명한다. 케어란 손톱 주위에 큐티클과 각질을 정리하고, 영양제를 바르는 과정을 말했다. 여자의 얘길 들어보니, 케어 없이 매니큐어를 하는 건, 샴푸도 안 하고 린스를 바르겠다는 말과 같다.
“그럼 케어도 해주세요.”
내심 잘됐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부터 손톱 주위에 보푸라기처럼 일어난 살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케어에 매니큐어를 합치면 만 오천 원이다. 생각보다 지출이 커 좀 울적해진다. 내가 또 졌다는 기분.
“처음이신가 봐요?”
나는 솔직하게 “그렇다”고 한다. 여자는 반색하며 회원권을 끊으라고 한다. 그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케어만 하는 베이직은 10회 10만 원, 거기에 매니큐어가 더해지는 레귤러는 15만 원, 프렌치와 그라데이션, 파라핀 팩 등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스페셜은 25만 원 이다. 회원권을 끊을 경우, 팩이나 매니큐어 등을 몇 회씩 추가해준다고 한다. 나는 “아 그렇게 놀라운 가격은 아니군요‘라는 식의 표정을 지으려 애쓴다. 여자는 개인 적용 영양제도 사라고 한다. 여기 회원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고. 여자 등 뒤에 일렬로 쭉 세워진 이백여 개의 영양제가 보인다. 15밀리리터 용기에 각 회원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잇다. 나는 ’오늘 하루만 받고 앞으론 오지 말자‘ 다짐하며, 일단 한번 받아보고 결정하겠다고 시치미를 뗀다.
“케어는 며칠에 한 번씩 해줘야 하나요?”
“영양제는 이삼 일 주기로 바르고, 오일은 틈나는 대로 발라주는 게 좋아요. 케어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하셔야 되고, 언니는 처음이니까 규칙적으로 와요.”
이렇게 조그마한 신체 부위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단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리고 그런 시간과 노력이 기껍고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크릴 판 위에, 수십 개의 손톱 모형이 붙어있다. 손님들이 색깔과 무늬를 고를 수 있도록 만든 샘플인 듯하다. 기다란 인공 손톱 위로는 앙증맞은 꽃잎, 점박이, 사선, 물결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주인여자는 대뜸 내게 손톱이란 말이 어디서 온 건지 아냐고 묻는다.
“뿔에서 왔대요. 뿔.”
“어, 정말요?”
“그럼요, 제가 이거 공부할 때 인터넷에서 다 찾아본 거예요.”
여자가 손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늘어놓는 얘기들 중 하나일 테지만, 물가에 선 사슴인 양 서로의 뿔을 정성스레 핥아주는 여자들의 모습이 어렴풋 그려진다. 손끝에서 한없이 뻗어 나간, 길고 아름다운 열 개의 뿔.
“영양제, 하실 거죠?:
“아, 네, 음, 얼만데요?
“4만 원이요.”
여자가 덧붙인다.
“오일도 같이 하세요. 여기 이렇게 하얗게 일어나고 각질 생기는 거 다 건조해서 그런 거예요.”
여자는 스포이트가 달린 조그만 초록색 병을 꺼내 보인다. 나는 애매하게 웃는다. 눈치 빠른 여자가 화제를 돌린다.
“참, 차 뭐 하실래요?”
여자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본다. 가게는 보라색 위주로 꾸며 잇다. 진보랏빛 쿠션과 의자, 연보라색 벽지, 가짜 크리스털 샹들리에, 곳곳서 풍기는 기분 좋은 화학약품 향기, 나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듯하다. 문득 ‘보라는 이쪽에서 상상하는 저쪽의 색이지, 진짜 저쪽 색은 흰색이나 초록에 가깝지 않나’ 갸웃거려진다. 그러고는 그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는 자신이 못마땅해진다. 여자가 차를 내온다. 당연히 원두커피일거라 기대했는데, 커피크리머를 뺀 인스턴트커피다.
“여기 손 올리세요.”
키친타월이 깔린 탁자 위로 공손히 두 손을 내민다.
“언니 손이 너무 건조하다. 손톱도 종이처럼 얇고.”
여자가 펜치처럼 생긴 금속 도구에 칙칙- 세정제를 뿌린다.
“아프면 얘기하세요. 이것도 살이라서 아파요.”
네일숍에 들러보고 싶단 마음은 사실 부천에서부터 생겼다. 그전가지는 남의 손에도, 내 손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평소 누군가의 배꼽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손톱 때문에 누군가를 질투하지도, 무시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 선배 언니를 만난 후, 나도 모르게 자꾸 손톱을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기 성기를 최초로 의식하고 수치심을 갖게 된 이브처럼, 일단 뭔가 알게 되자, 그 앎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는 것을 보지 않기가 어려웠다. 나는 다른 이들의 손톱을 표 안 나게 흘깃거리고 있었다.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도, 회사 여직원들과 커피 자판기 앞에서 잡담을 나눌 때도, 버스 손잡이를 쥔 여대생을 볼 때도 그랬다. 세상에는 손톱 관리를 잘 하는 여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숍에서 받은 게 틀림없어 보이는 손도 있었고, 스스로 꾸준히 다듬는 느낌의 손도 여럿 보았다. 그녀들에게 손톱 관리는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인 듯했다. 그걸 지나치게 정색을 하고 바라본 자신이 좀 겸연쩍어졌다. 처음에는 스스로 손톱 정리를 해볼까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손이 설어 뭘 꼼꼼하게 못 하는 편이라 겁이 났다. 그렇다고 선뜻 네일숍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진 않았다. 내겐 전에 해보지 않은 시도하는 용기나 재능이 별로 없었다. 며칠 지나면 곧 없어질 허영이려니 싶어 기다렸다. 하지만 이미 나는 손톱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손톱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천에 간 날, 선배를 보기 전 먼저 친구를 만났다. 밥을 시키면 후식이 따라 나오는 식당에서였다. 동네서 나름 인기 있지만, 식탁보며 소파가 낡고 촌스러워 보이는 스파게티 집이었다. 밥을 사고, 지방에서 산 나무 공예품을 선물로 주며 답례를 했다. 친구는 앞으로도 여행 가방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 쳤다. 미안하기도 하고, 다시 캐리어 끌고 종로에서 수유로, 수유에서 부천까지 오가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친구의 얼굴은 푸석해보였다. 친구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여행사에서 일하다가 최근 그만둔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산타워’였다가 최근 ‘N서울타워’로 바뀐 건물 안에서였다. 벌써 1년이 넘어 준매니저급 대우를 받는 모양이었지만, 월급은 여전히 박한 듯했다. 친구는 돈을 모아 그래픽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 다른 대학에 가면서 좀 소원해졌지만, 그녀는 나와 여고 때 단짝이었다. 한참 수다를 떨다, 친구는 뜬금없이 올 여름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태국이나 일본에 가 바람을 쐬고 오자는 거였다. 그녀는 항공권을 미리 예약하면 싸게 다녀올 수 있다며, 자기가 아는 온갖 여행 상식과 노하우를 늘어놨다. 친구는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할인 사이트를 뒤져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계획은 갑자기 터지는 부채와 재난과 사고에 무산되지 일쑤였지만. 대학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밥 먹듯 하던 친구에게 여행은 유일한 사치였다. 반대로 나는 여행이라면 일단 귀찮아하고 보는 성격이었다. 나는 떠나서 노는 것보다 앉아서 쉬는 것을 좋아했다. 관광보다 정착의 느낌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날, 친구가 태국 얘기를 꺼냈을 때, 웬일인지 탁 트인 해변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이참에 나도 휴가라는 걸 한번 떠나볼까’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더구나 태국이라니. 모두가 한두 번씩은 해외여행이란 걸 다녀오는 판에,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만 한 추억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와 헤어진 뒤, 오후에 선배 언니를 만났다. 졸업 후 통 연락을 안 하다가 내 쪽에서 먼저 아쉬워 연락을 한 선배였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과실에서 눈인사를 하고, 몇 마디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던 관계였다. 그녀는 광고회사 쪽에서 꽤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선배는 만나자는 말에, 처음에 당황하다가 곧 약속을 잡자고 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성공한 사람으로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자기 위치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입사 3년 만에 처음 내 이름으로 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며칠 후, 신약 마케팅의 전반적인 과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프레젠테이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진급은 물론이고 연봉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중요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요령과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선배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몰라보게 예뻐져 있었다. 평범한 기성복 차림으로 나왔는데도 분위기가 다르고 선(線)이 달랐다. 긴장을 먹고 사는, 그러나 그만큼의 인정과 보상을 섭취하는 사람이 내뿜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 냉커피에 담긴 얼음을 휘저으며, 광고사의 뒷얘기와, 여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의 어려움, 사내 알력 관계 등에 대해 얘기했다. 약간 과시적인 태도가 거슬렸지만, 그녀 말을 열심히 경청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데도, 선배는 별로 어색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수줍음은 사회생활의 적’이라는 사실을 벌써부터 깨닫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선배는 얘기 도중 내 입술이 부르튼 걸 보고 대뜸 나무라기 시작했다.
“너 마케팅부라며.”
“예.”
“그런데 입술이 그게 뭐야.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생기 있게 자신을 가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경쟁력이야. 그런 것도 다 자기 관리라고.”
나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리고 기억할 만한 몇 가지를 메모하다, 우연히 그녀의 손톱을 보게 되었다. 이슬 맺힌 유리컵을 쥔 채 조용히 꼼지락거리고 있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열 개의 손톱을. 손톱마다 알알이 박힌 깨끗하고 균등한 크기의 반들은 또 얼마나 어여쁘던지. 선배의 손에는 굳은 살 따위는 전혀 없었다. 손톱 위엔 투명한 살구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그녀의 손은 스스로 과시하고 있지 않아 훨씬 과시적으로 보였다. 눈을 맞추고, 그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내내 선배의 손톱을 흘끔거렸다. 화려함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손에 자꾸 눈이 갔던 건, 그것이 무척 ‘깨끗해’ 보인다는 데 있었다.
“이제 저기서 말리세요.”
긴 탁자 위에 둥근 기계 세 대가 나란히 놓여 있다. 센서식 기계 안에 손을 넣자, 웅- 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새어나온다. 손을 내밀고 멍하니 앉아 그렇게 20분 정도를 기다린다.
베이직 코스는 생각보다 섬세하고 복잡했다. 레귤러나 스페셜은 그보다 더 세분화된 모양이었다. 여자가 처음으로 한 일은 기다란 줄로 내 손톱 하나하나를 갈아준 거였다. 좌우로 줄이 움직일 때마다 하얀 손톱 가루가 먼지처럼 분분히 날렸다. 손톱 가루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몇 번 숨을 찾았다. 다음으로 손톱 주위에 큐티클이 잘 불게 하는 용액을 발랐다. 곧이어 오일을 발랐고, ‘니퍼’라 불리는 펜치 모양의 도구와 ‘푸셔’로 큐티클을 밀고 깎고 다듬었다. 큐티클 제거는 시간이 많이 들었다. 나는 전문가의 솜씨에 감탄하며 전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여자가 열 손가락에서 걷어낸 큐티클을 휴지에 묻혀 한꺼번에 보여줄 때는, 자기 똥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처럼 신기해하기도 했다. 여자는 손톱 관리에 무심한 나를 게으르다며 슬쩍 나무랐다. 정작 바깥에서 유리벽 속 여자들을 보고 게으르다고 생각한 건 나였는데, 숍 안에선 반대의 논리가 통하고 있었다. 여자는 면봉에 솜을 둥글게 말아 아세톤에 적신 후 손톱 주위의 이물질을 닦아냈다. 그런 뒤 스크럽 제품을 이용해 각질을 벗겨냈다. 곧 손등 위에 뜨거운 물수건이 얹어졌다. 여자는 물수건으로 손을 씻어준 뒤, 핸드크림을 바르고, 유분기를 이용해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를 고루 주물러줬다. 여자가 자기 손가락 사이에 내 손가락을 끼워 하나씩 튕겨줄 때는 찌릿찌릿 전류가 흘렀다. 손톱에 단백질 성분의 영양제를 바르고, 그 위에 매니큐어를 두 번 칠하고, 투명 매니큐어를 다시 덧발랐다. 매니큐어가 다 말랐을 땐, 손톱마다 오일을 한 번 더 발라줬다. 총 열 번이 넘는 ‘발림’의 과정이었다. 평소 얼굴이 바르는 화장품도 대여섯 개를 넘지 않는데. 세분화된 모든 과정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손’이 아니라 ‘손의 세부’를 만져주는 손길. 엷은 졸음이 몰려오며 언 순간, ‘나는 케어 받고 싶다. 나는 관리 받는 삶이고 싶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영원히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처럼-’ 하고 고해하고 싶어졌다. 누군가 나를 오랫동안 만져주고, 꾸며주고, 아껴주자, 나는 아주 조그마해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조그만 세계에서 바싹 오그라든 채 잠들고 싶어졌다. 여자가 어떤 칼라를 원하느냐 물었다. 나는 펄이 들어간 살구색 매니큐어를 골랐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불가사리 같은 손바닥을 쫙 펴 보이며 속으로 환하게 외쳤다.
‘아, 손톱이 사탕 같아졌다!’
지갑을 찾자, 여자가 꺼내주겠다고 한다. 손톱이 긁히면 안 되기 때문이란다. 매니큐어가 충분히 마르기까지는 최소 한 시간 이상이 필요하다고, 오늘 하루 조심하라고 한다. 여자가 내 지갑에서 만 오천 원을 꺼내 갖는다. 선배 언니를 만난 후, 며칠간 자르지 않아 기다래진 손톱은 더 모양새가 난다. 구두나 가방, 목걸이뿐 아니라 몸 자체도 하나의 장신구가 될 수 있단 사실이 신기하다. 어쩌면 몸이야말로 가장 비싼 장신구일지도 모른다. 두 손을 높이 들어 조명에 비춰본다. 예쁘다. 그리고 깨끗하다. 나는 책가방에 좋은 성적표와 함께 상장까지 얹어 가게 된 아이처럼 연신 비실비실 웃는다. 여자가 말한다.
“다음에는 더 과감한 걸로 하고 싶어질 거예요.”
그러곤 클러치 백을 건네주며 능청스레 묻는다.
“어떻게, 회원권 끊어드릴까요?”
토요일, 명동 시내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웬만한 보도는 발 디딜 틈이 없어 지하철역 입구를 통과하는 데만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힐을 신고 뒤뚱거리며 명동성당을 향한다. 4월인데도, 후텁지근한 날씨가 여름 못지않다. 대형 쇼핑몰의 스피커에서 대중가요가 쏟아져 나온다. 작은 상점들도 질세라 내레이터 모델들을 앞세워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상인들은 서툰 일본어로 관광객을 붙잡고, 거리는 쇼윈도를 바라보는 수천 개의 눈들로 꽉 차 있다. 명동 지리에 익숙지 않아, 더듬더듬 약도를 보며 걷는다. 상점 밖, 에어컨디셔너의 실외기가 일제히 쏟아내는 열기에 숨이 막힌다. 한껏 꾸미고 왔는데, 겨드랑이에 벌써 땀이 찬다. ‘명동성당에서 결혼식 하기 쉽지 않다던데, 어떤 집안과 맺어진 걸까?’ 신랑이 교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대기업에 취직하고, 시집도 잘 가는 친구가 부러워진다. 한편으론 ‘친구가 잘돼서 좋지만, 지나치게 잘되지 않아 다행이다’란 생각을 한다. 교사라면 좀 평범하다 싶고, 신랑이 못생겼단 얘기를 들어서였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녀가 훨씬 괜찮은 남자와 결혼하리라 믿고 있었다. 그녀는 내 주위에 몇 안 되는 ‘성격도 좋고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질투심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그녀의 친절을 의심하고, 분석한 밤도 여러 날이었지만, 그녀는 단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좀체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함부로 어깨를 밀치며 지나간다. 손톱이 가방 지퍼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백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엄지와 검지를 뺀 나머지 손가락들은 예민하게 활짝 벌어진다. 식장에는 좀 늦을 것 같다. 한참 걷다 명동성당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발견한다. 한 손으로 햇빛 가리개를 만들어 오래도록 십자가를 바라본다.
결혼식은 다른 모든 결혼식이 그렇듯 금방 끝났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허망한 기분을 남겼다. 결혼식이 끝난 순간만큼 할 일이 없을 때도 없다는 걸 한 번 더 깨달았다. 사람들은 보통 식장에서 만난 친구와 술을 마시러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식으로 없는 일을 하나씩 만들었다. 집에 갈까 하다, 나도 약속을 만들고 싶어졌다. 심란하기도 했고, 마실 나온 김에 스커트를 휘날리며 좀 쏘다닐 요량이었다.
사실 친구의 결혼식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100년 넘은 고딕 양식의 건물, 기도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성당의 신성한 높이,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스미는 햇빛, 고상한 분위기의 현악 삼중주와 말쑥한 하객들, 아치형 천장에서 쏟아지는 조명과 종교적 분위기……. 많은 사람이 미소 지었고, 그 안은 온갖 종류의 부드러움으로 출렁거렸다. 신랑과 신부에게선 총체적인 안색이라 할 만한 건강함이 느껴졌다. 대학 동기 몇 명이 내게 알은체를 했다. 친구들의 옷은 무척 과감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났다. 색깔이나 디자인이 흔하지 않은 거였고, 그 천박하지 않은 화려함은 결혼식의 화사한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반면, 내 옷은 좀 무난하달까 답답할 정도로 평범해 보였다. 친구들을 보자, 내가 의기양양하게 걸치고 온 정장이 유행이 꽤 지난 것임이 드러나 조금 울적해졌다. 게다가 하늘색 블라우스의 양 날갯죽지는, 걸어오는 동안 땀으로 얼룩져 군청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겨드랑이라니. 웃기고 추잡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친구들과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며, 최대한 겨드랑이를 벌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내심 누군가 내 손톱을 봐줬으면 싶었지만,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러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머리카락을 자주 만져도 마찬가지였다. 매니큐어를 칠한 다른 여자애들도 신부화장이나 식장 인테리어 등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 손에 신경 쓰고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나는, 급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신부의 단짝을 대신해 부케까지 받아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었다. 나는 옆에 친구에게 “네가 받아. 네가 나보다 쟤랑 더 친하잖아”라고 속삭였다. 친구는 시큰둥한 말투로 “난 독신주의자잖아”라고 말하며 발을 뺐다. 나는 원하지 않는 장기자랑 무대에 끌려 나가듯 온갖 저항을 하며 몸부림치다, 결국 사람들의 성화에 밀려 신부 앞에 서게 됐다. 하객들은 내가 쑥스러워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촬영은 성당 앞, 볕 좋은 뜰에서 이뤄졌다. 신부는 부케를 받는 사람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상기돼 있었다. 언젠가 부케는 가장 싱싱하고 깨끗한 상품의 꽃으로 만들기 때문에 비싸다는 얘길 들었었다. 친구가 든 꽃도 20만 원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녀는 흰색과 민트색이 섞인 부케를 단아하게 들고 있었다. 신부와 멀찍이 떨어져 어색한 듯 몸을 배배 꼬고 있는데 사진사가 신호를 보냈다.
“자, 던지세요, 하나, 둘, 셋”
나는 팔을 벌리지 않으려 애쓰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달려가다, 땅바닥에 부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객들은 모두 관대하게 웃었다. 사진사도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명랑한 목소리로 격려했다.
“자, 다시 갈게요. 신부 친구 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보세요. 찍습니다. 하나, 둘, 셋”
나는 겨드랑이 얼룩을 들키지 않으려, 이번에도 소극적으로 달려갔다. 내가 부케를 몇 번이나 놓치자 신부는 좀 당황하는 미소를 지었다. 나 때문에 행사가 지연되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혹 부정이라도 타지 않을까 미안하기도 했다. 다시 사진을 찍을 땐, 온몸을 던져서라도 부케를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여기 보세요. 마지막입니다. 친구 분 준비하시고. 자, 던지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순간 사진기에 포착됐을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만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예쁜 손톱이었는데, 정작 하객들은 내 겨드랑이에 생긴, 커다랗고 우스꽝스러운 얼룩만 보고 말았다. 앞으로도 그들은 나를 영원히 그렇게 기억하게 될 터였다. 땀 흘리는 여자……. 땀을 ‘많이’ 흘리는 여자. 나는 부케를 안고 울상을 지은 채 활짝 웃었다.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꽤 오랫동안 들려왔다.
지하철역을 향한다. 한 손에는 아까 받은 부케가 들려 있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힐긋거린다. 힐을 신고 오래 걸었더니, 종아리가 슬슬 아파온다. 보도 곳곳 웅덩이에는 아직도 빗물이 고여 있다. ‘구두가 젖으면 안 되는데’ 종아리에 묻은 흙탕물을 닦아내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선다. 자신을 ‘독신주의자’라고 말했던 친구다. 그녀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태워줄까?’ 묻는다. 운전석 옆으로 그녀가 벗어둔 하이힐이 보인다. 친구는 무척 말랑말랑해 보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다. 내가 괜찮다고 사양하자 친구는 방긋 웃고 떠난다. 결혼식은 미소가 너무 많아 힘들다. 뭘 좀 마실까 하다, 남산에 갈 때까지 참기로 한다. 마침 명동에 왔으니, 남산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고 갈 생각이다. 친구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같이 밥을 먹고 공원 주위를 산책하면 좋을 것 같다. 거리는 여전히 덥고 복잡하다. 부케가 성가시지만, 버리기도 뭣해 가지고 있다. 지하도 앞에 다다르자, 웬 아주머니 한 분이 목청을 돋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은행 신용카드 만드세요. 사은품 드리고 있습니다!”
빤한 상술이려니 싶어 지나치려는데, 가판 한쪽에 수북이 쌓인 찜솥과 여행가방이 눈에 띈다. 아주머니는 흔들리는 내 눈빛을 금방 알아차리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용카드 만드세요. 빨래 삶는 솥이나 여행가방 드립니다.”
가판 옆에 서서, 여행가방을 살펴본다. 제법 크고 튼튼한 게 고급스런 천이 씌워져 있다. ‘어차피 필요한데, 하나 할까?’ 이번 여름에 친구와 태국에 가기로 한 약속이 떠오른다. ‘앞으로 출장도 잦을 텐데. 다른 사람에게 번번이 가방을 빌릴 순 없잖아?’ 카드 회사에서 갖가지 사은품을 주는 건 알고 있지만, 캐리어를 주는 건 드문 일이다. 이대로 지나치면, 언제 또 똑같은 조건의 카드사를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캐리어를 온종일 끌고 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해진다. ‘다음에 할까?’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급기야 우렁차진다.
“12만 원 상당 여행가방 공짜로 드립니다. S사 정품, 고급 캐리어 가져가세요.”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하나 하세요. 첫 회는 연회비 무료고, 영화관이나 패밀리레스토랑 가맹점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고, 콘도와 놀이동산 이용권 등 혜택이 많아요.”
입을 꾹 다물고 그 자리에 선 채, 오늘 하루 여행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수고와 12만 원의 가치를 저울질한다.
“우선 신청하시고, 나중에 불필요하다 싶으면 가위로 잘라내세요.”
아주머니가 꼼수를 알려주듯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미 신용카드가 있어 좀 망설인다. 무의식적으로 엄지손톱을 입에 물고 뜯는데, 아주머니가 환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유, 손이 참 예쁘시네요.”
나는 “아, 네” 하고 물고 있던 손을 놓는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여자는 손톱과 가방에서, 남자는 안경테와 시계에서 생활수준과 구매력이 드러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주머니의 칭찬을 들으니, 이 순간 지불 능력이 없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가방은 오늘 가져가야 하나요?”
“예, 빈 가방이라 아주 가벼워요.”
서류 작성은 신속하게 이뤄진다. 카드는 신용 등급 심사를 거쳐, 며칠 후 인편으로 배달해 준다고 한다. 동의서에 인적사항을 기입한다. 아주머니가 다정하게 상체를 기울이며 옆에서 조언을 해준다. 두꺼운 화장을 한 콧잔등 위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게 보인다. 가슴팍과 겨드랑이 근처도 축축하게 젖어 있다. 그녀의 땀 냄새를 맡으며 서둘러 서류에 사인을 한다.
가방을 끌고 시내로 나온다. 지하철을 탈까 하다 택시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부케에 클러치 백에 여행가방을 들고 그 먼 데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다. ‘한 오천 원쯤 나오려나?’ ‘12만 원짜리 캐리어를 11만 오천 원 주고 샀다 치면 되지 않을까?’ 캐리어의 경쾌한 바퀴 소리가 내 뒤를 따라온다. 나는 유럽에 해외 출장이라도 온 캐리어우먼이라도 된 양 당당하게 가방을 끌고 거리를 활보한다. 저기 ‘빈차’ 등을 켠 택시가 보인다. 나는 부케 든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카페 입구에서 나와 마주친 친구는 좀 당황한다. 유니폼을 입은 친구의 한 손에는 쟁반이, 다른 한 손에는 주둥이가 긴 스테인리스 주전자가 들려 있다.
“웬일이야?”
기대했던 것만큼 반겨주지 않아 좀 서운했지만, 영업 중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웬일은, 너 보려고 왔지.”
친구가 매니저 눈치를 보며 말한다.
“나 다섯 시에 끝나는데.”
“괜찮아. 저기서 책 보고 있을게. 이따 같이 저녁 먹자. 나 신경 쓰지 말고 일해.”
친구는 알았다고 말하며 미안한 듯 사라진다.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남자 종업원이 먼지 하나 없는 원목 테이블 위로 생수가 담긴 투명한 유리잔을 내려놓는다. 물 한 잔에 깃든 격식. 뭔가 대접 받는 기분이다. 아이스모카를 주문한 뒤 잡지 몇 권을 집어 온다. 통유리 너머로 스모그에 싸인 서울 시내 전경이 훤히 보인다. 잿빛 한강, 빽빽이 들어선 빌딩과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 녹지는 아주 조금밖에 보이지 않지만, 비싼 찻값을 지불하고 전망을 구매했단 생각이 든다.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턱을 괸 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꼬마 아이 하나가 유리벽에 코를 바짝 댄 채 뭐라 종알거리는 소리가 난다.
“엄마 저게 뭐에요?”
“잘 차려입은 여자가 상냥한 목소리로 답한다.
“케이블카야. 저기 안에 사람이 있어. 이렇게 줄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오는 거지.”
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정말요? 저렇게 높이 올라가다 갑자기 멈춰버리면 어떡해요?”
여자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누군가 구해주러 올 거야. 걱정하지 마.”
유리잔을 들어 물을 마신다. 깨끗한 유리컵 손잡이를 쥔 손톱을 보며 한 번 더 흡족해한다.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때우려 했는데, 생각보다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친구는 종종거리며 끊임없이 뭔가를 나르고, 닦고, 머리를 조아리며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따금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을 보내주려고 노력한다. 봉화대 근처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N서울타워까지 올라왔다. 땅에 빗물이 고여 있는 탓에 캐리어 바퀴 사이로 구정물이 튀었다. 백에, 캐리어에, 부케까지 들고 오는 길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오르막길과 계단을 오를 때는 더 했다. 온몸에 땀이 흘러 블라우스 전체가 축축하게 젖었다. 겨드랑이 얼룩이 함께 묻혀 한편으론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온종일 종종거린 탓에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나중에는 캐리어고 부케고 어디 갖다 버렸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다. 걷는 내내 옆구리에서 클러치 백에 흘러내렸다.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며 백을 옆구리에 바짝 올려야 했다. 가방 속 밴드에 부케를 단단히 고정하고 지퍼를 닫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타워 꼭대기 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종업원이 기다란 유리잔에 생크림이 얹어진 아이스모카 커피를 갖다 준다. 빨대로 한입 쪽 빨아 먹으니 머리가 쨍- 해지는 게 기분이 좋다. 오래전,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아이스모카라는 걸 마셨을 때, 깊고 그윽한 단맛에 반했던 기억이 난다. 커피 한 잔에 몇천 원이라니, 학생 때라 엄두가 안 났는데. 햇빛이 작열하는 어느 여름날, 용기 내어 들어간 가게에서 처음 마셔본 거였다. 그때 나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료가 있다니!’하고 감탄했었다. 그러고 보니, 부천에서 만난 선배 언니도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다.
“너 책은 좀 보니?”
“예, 시간 날 때 챙겨 보고 있어요.”
“그래, 우리 같이 광고나 마케팅 쪽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돼. 고전은 기본이고, 신간도 부지런히 살펴보고, 시대 흐름을 읽어야지.”
선배는 유리잔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왜,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이란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국화빵을 처음 먹어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오잖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갸웃거렸다.
“아, 그런가요?”
“그래, 그런 게 있어. 여하튼, 그때 걔가 엿이나 꿀과 다른 팥앙금의 맛을 머라고 표현하냐면, 그 맛은 서울의 감미고, 대처의 추파였다 이런 얘길 해.”
“……”
“근데 난 우리 세대 ‘도시의 감미’는, ‘대처의 추파’는 이 커피가 아닐까 싶어. 에스프레소나 아이스모카 같은 거. 카라멜마끼야또라든지 아이스 그린티 블렌디드 같은 거 말이야.”
선배는 광고 회사 직원답게 말을 감각적으로 했다.
“물론 요즘은 로스팅 방법과 원두 종류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커페의 향이, 그리고 단맛보다는 신맛이나 쓴맛에 더 끌리긴 하지만 말이야.”
나는 감탄하며 선배 얘길 경청했다. 그땐 그냥 지나친 말이었는데, N서울타워 꼭대기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보니, 선배 얘기가 새삼 실감이 난다. N서울타워.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 수십 년 전, 한국에 처음으로 세워진 전파탑. 그 꼭대기에서 5천 원 넘는 커피를 마시며, 신맛 혹은 쓴맛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미각을 상상해본다. 회사가 책 읽을 만한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나도 선배가 말한 책 같은 걸 읽고 응용하며 살고 싶다. 나른한 표정으로 잡지를 넘긴다. 그리고 볼우물을 힘을 주어 커피를 빨아 마신다. 민들레 씨앗처럼, 온몸에 카페인이 퍼져나가며 세포 하나 하나를 건드리는 느낌이 난다. 해가 지자. 바람이 꽤 선선해진다. 친구와 나는 맥주를 사서 팔각정 근처로 간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가방을 끌고 가느라 애를 먹는다. 발가락엔 이미 물집이 잡혀있다. 친구는 하얀 원피스에 오래 된 이스트팩을 매고 앞장선다. 언제봐도 친구의 패션 감각은 참 난감하지만, 온종일 캐리어를 천형처럼 이고 다니는 내 모습도 멋있진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목 좀 축이고, 밥 먹으러 가자.”
친구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응. 좋아.”
주위에는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와 팔각정 돌계단에 앉아 쉬는 사람들,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을 찾아 앉는다. 간만에 맡는 나무 냄새가 참 싱그럽고. 발밑에서 피둥피둥한 비둘기 몇 마리가 뭔가를 부지런히 쪼고 있다. 친구가 검은 봉지에서 캔 맥주 두 개를 꺼낸다. 냉장고에서 갓 꺼내 표면에 이슬이 맺혀 있다. 친구가 맥주 캔을 따 내게 권한다.
“자, 마셔.”
나도 얼른 캔을 하나 집어 들어 친구 것을 따주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아 오늘 손톱을 해서 안 되는데…… ’ 하고 망설인다. 캔을 오래 쥐고 있자 친구가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본다.
“왜 그래?”
“응? 아무것도 아니야.”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맘에 손끝으로 알루미늄 따개 부분을 들어 올린다. 치익 - 탄산이 시원하게 빠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엄지손톱이 살짝 찢어진다.
“아야.”
한 손으로 다른 손을 감싼다. 아프기보다, 아깝단 생각이 든다. 친구가 놀라 묻는다.
“다쳤어? 괜찮아?”
나는 팔뚝에 돋은 소름을 비비며 괜찮다고 한다. 친구가 걱정스런 눈으로 내 손을 바라본다. 그러곤 곧 뭔가 발견한 듯 말한다.
“어머, 너 손톱 했니?”
“나는 난처한 듯 손을 오므린다.
“어? 아니.”
친구가 덥석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 거 같은데?”
나는 손가락을 더욱 바싹 오므리며 딴청을 핀다.
“아, 이거, 내가 한거야.”
결혼식장에서는 누군가 알아봐주길 그토록 바랐는데, 이상하게 친구 앞에서는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친구가 나를 비난할 것도 같고, 내생활력이 부풀려져 보이는게 싫다. 우리는 건배한다. 친구가 ‘크으-’ 소리를 낸다.
“이사한 데는 좋아?”
“그럼, 예전에는 방 크기가 이불 크기랑 똑같았는데. 이사 와 처음 이불을 펴는데, 이불이 너무 쪼그매 보이는 거야. 그게 너무 좋았어.”
나는 응석을 부리듯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친구도 덩달아 ‘히힛’ 하고 웃는다. 친구는 내 얘기를 들으며 익숙한 솜씨로 종아리 부분을 계속 주무른다.
“아침에 일어날 때, 그때도 그래. 방 안으로 햇빛이 쫙 비치면 저 빛, 내가 산 빛, 몇천만 원짜리 햇빛, 그런 생각을 해. 집이 아니라 환경을 구매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너무 좋아하자 친구가 농담을 한다.
“그래 담엔 수영장 딸린 원룸 없나 한번 알아봐, 칵테일 바도 차려놓고.”
나는 신을 벗고 다리를 감싼 채 웅크려 앉는다.
“넌 어때?”
친구가 시선을 피하며 답한다.
“똑같지 뭐.”
우리는 잠시 남산 아래, 아득하게 펼쳐진 서울을 바라본다. 도심 바깥 이쪽의 비현실적인 고요 탓에, 저 아래 대처의 풍경도 이국에서 날아온 엽서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찢어진 손톱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자꾸 신경 쓰인다. 어서 집에 가서 손톱깎이로 잘라내고 싶은 마음이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하루의 긴장이 풀리며 몸이 노곤해진다. 친구는 다리를 주무르던 손으로 허리를 두드린다. 우리는 얕은 숨을 쉬며 할 일 없이 맥주만 홀짝인다.
“참, 너 그 가방 정말 태국 여행 때문에 한 거야?”
나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필요했기 때문에 한 거라고 변명한다.
“그랬구나.” 친구가 주저하다 말을 잇는다.
“나 사실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정색하는 얼굴을 보자 갑자기 불안해진다. ‘돈이 필요한 걸까?’ ‘얼마까지 가능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친구끼린 돈 거래 안하는 게 좋다는데,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러면서도 친구가 무안해지지 않도록 수 쳐 상냥한 표정을 짓는다. 친구가 조용하게 말한다.
“나 이번 여행 못 갈 거 같아.”
“뭐?”
“내가 먼저 가자고 한 건데 미안하다. 그렇게 됐어.”
‘무슨 일일까?’ 싶지만 묻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리라. 아마, 식구 중 누군가 또 친구에게 손을 벌렸을 거다. 누군가 아프거나, 누군가 또 사고를 쳤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얘기는 안 하지만, 친구에게 중요한 일이 닥칠 때마다 늘 그런 일이 생기곤 했다. 나는 더 캐묻지 않고 “알았다”고 한다. 친구는 내 여행가방을 빤히 쳐다본다. 나도 내 가방을 멀뚱 바라본다. 바퀴 부분은 빗물이 튀겨 몹시 더러워져 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화제를 궁리하다 한참 만에 덧붙인다.
“나 사실 여행 안 좋아해.”
친구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정말이라는 듯 능청을 떴다.
“진짜야. 내가 언제 너한테 여행 가자고 하는 거 봤니. 돈 굳었다. 야, 술이나 마시자.”
친구와 캔을 부딪친다. 스커트 위로 캔에 맺힌 이슬 몇 개가 또로록 떨어진다. 가방 얘기가 나오니,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부케 생각이 난다.
“참, 아까 말한 부케 보여줄까?”
“응, 그 수치의 부패? 히힛, 어딨는데?”
“여기”
한쪽 발로 여행가방을 툭 친다. 비둘기들이 깜짝 놀라 후드득 하늘 위로 날아간다. 친구가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나는 의자 밑에 쭈그리고 앉아 캐리어의 지퍼를 연다. 그리고는 가방을 활짝 열어젖힌다.
“짜잔-”
“……”
“어?”
친구와 나는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다. 가방 속의 부케는 심하게 망가져 있다. 꽃잎도 여기저기 흩어져, 시든 채 멍들어 있다.
“부서졌네.”
친구가 담담하게 대꾸한다.
“그러네.”
가방을 그대로 열어둔 채 다시 벤치에 앉는다. 주위는 서서히 어둑해지려 한다. 친구가 홀짝 맥주로 들이켠다. 나도 따라 들이마신다. 그렇게 오래, 여행가방 옆에 있자니, 어쩐지 우리가 떠나온 사람, 혹은 떠나갈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멀리 쫓겨나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퍽 오래 전부터 그렇게 커다란 가방을 이고 다녔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허리 숙여, 하얀 꽃잎 하나를 집어 든다. 끝부분이 갈색으로 먹져 있다. 한참 만지막거리다 손바닥에 꽃잎을 올려놓고 후,- 입으로 불어본다. 부드럽고 선선한 4월, 저녁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도심 속으로 꽃잎 한 점이 낙하한다. 큰 바람이 불어와, 꽃잎은 고꾸라졌다 비상하길 반복하며, 알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친구는 맥주를 마신다. 나도 맥주를 들이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마실 맥주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밥 때가 되었는지 배가 고프다. 친구가 묻는다.
“갈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래.”
친구가 내 대신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는다.
“가자.”
하얀 원피스에 우스꽝스런 이스트팩을 맨 친구가 휘적휘적 앞장을 선다. 7센티미터 구두를 신은 나는 절름발이처럼 뒤뚱뒤뚱 친구를 따라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우리 그림자를 따라 드르륵 드르륵- 캐리어 바퀴 소리가 꼬리처럼 길게, 쉬지 않고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