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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들을 매료시키는 왜가리의 장관
임실읍 성가부락 뒷산에 해마다 백로 천여마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이 백로들은 매년 경칩 때가 되면 떼지어 이곳에 날아들어 서식하다가 남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때 5천여평 되는 소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선경(仙境)을 방불케 하여 각양각지에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이곳에 백로들이 날아들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 이 지방의 거부 진재황이 여기에 별장을 짓고 백송 42주와 느티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면서부터이다. 지금은 별장은 없어지고 마을이 형성되어있으며 10여년 전만 해도 4천수에 달하던 백로가 해마다 그 수가 줄어 근래에는 5백여 마리에 이르는 철새의 도래지가 된 것이다.
이금철 씨과 이순임 부부의 정성이 담겨있는 곳
임실∼순창간 도로에서 5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이처럼 알뜰하게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은 30여년 전 이 마을에 이사와서 가족과 같이 새들을 돌보와 온 이금철씨와 고인이 된 이순임 부부의 지극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금철씨는 집 뒷산을 오르내리며 밀렵꾼들을 감시하고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들을 보살피는 등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진작가가 많이 찾는 명소
아침햇살을 받아 호수면으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치 신선이나 노닐 법한 풍경으로 물들여지는 아름다운 옥정호.
임실읍에서 16km 지점의 강진교를 거쳐 오른쪽으로 꺾어져 5km쯤 올라가면 섬진댐이 나온다. 한편 전주에서 완주군 구이면 쪽으로 28km가면 예전에는 낚시터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옥정호 상수원보호 구역 지정으로 인하여 낚시는 불가하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옥정호의 막은 댐이 나온다. 유역면적 763㎢, 만수면적 25.5㎢, 총 저수량 4억3,000만 톤에 달하는 옥정호는 노령산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물을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시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댐이다. 옥정호는 운암대교, 벼락바위, 댐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가을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경관이 장관이다.
물 맑기로 소문난 섬진강 상류에 자리잡은 옥정호는 일교차가 커서 물안개가 많이 발생하는 봄·가을에는 그야말로 풍경이 절정을 이룬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진작가들이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곤 한다.
다양한 볼거리와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옥정호의 매력 포인트
옥정호의 매력 포인트로 몇 군데가 있다. 옥정호에 피어오르는 아침 물안개 사이사이로 보이는 교각이 마치 천상교인듯 한 운암대교와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국사봉 전망대가 바로 그것이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보면 일명 ‘붕어섬’이라고 불리는 호수 속의 섬 ‘외앗날’을 중심으로 펼쳐진 옥정호의 모습이 볼수록 신비하고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취하게 만든다. 또한 옥정호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드라이브하며 즐길 수 있는 옥정호 순환도로도 빼놓을 수 없는 옥정호의 매력이다. 이 드라이브 코스는 건설교통부에서 지정하는 ‘전국 아름다운 길 100선’ 및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하는 ‘가볼만한 곳’ 등에 선정되는 등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옥정호반을 가로지르는 운암대교는 1989년 8월 31일 준공되었으며 총 공사비 72억원 총연장 350m 폭 높이 8m의 대교로 현대 특수공법으로 완공된 다리이다.
물이 좋고 빼어난 경관으로 신선과 선녀가 노닐던 곳
관촌 사선대는 물이 맑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하늘에서 신선과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매년 사선대에서 개최되는 소충·사선문화제전과 더불어 임실군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이다.
사선대는 시원하게 흐르는 섬진강 상류 오원천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자연환경이 빼어난 지역으로 호수에 비친 오색찬란한 단풍이 길 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뛰어난 조각가들이 인근 신덕면 오궁리 미술촌에서 직접 제작한 수준 높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사선대 조각공원에서 작품 감상을, 가족끼리 혹은 직장 동료와 함께 찾아와 맑은 공기와 수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가벼운 놀이를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또한 사선대를 둘러 싸고 있는 산자락에서 운서정(지방유형문화재153호)까지 이르는 길은 아름다운 수목과 그늘 밑 벤치등 휴식시설이 잘 갖춰져있어 산책코스로도 좋다.
축구장을 비롯해 강수영장, 분수대, 조각공원, 산책로, 테니스장, 족구장이 구성되어 있으며 가을에는 사선대의 전설에 등장하는 사선녀를 배경으로 하는 소충·사선문화제가 열려 주민들과 전국의 관광객들이 모여 한마당축제가 한바탕 신나게 벌어진다.
선남선녀가 노릴고, 까마귀가 놀던 강에 얽힌 전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 마이산의 두 신선과 운수산의 두 신선이 관촌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대에 오르기도 하고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즐겼다. 어느 날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을 때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신선을 호위하여 사라졌다. 그 후로 그 곳을 선남선녀들이 놀았다하여 사선대(四仙臺)라하고 까마귀가 놀던 강이라 하여 오원강(烏院江)이라 불렸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정조 때 관촌면 주천리의 상산 이씨 이달효(李達孝)는 아호를 호산(湖山)이라하고,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일책(浩山集一冊)을 퍼내기도 하였다. 그는 호남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었고 임실현감 이도재와도 막연한 사이었다. 이때 이도재 현감은 전주 판관과 남원부사 호산 이달효 등과 같이 넷이서 항상 오원강 위에 배를 띄워 놀았다. 이들 네 분들은 서로 나이가 비슷한 노년기에 이곳에 모일 때에는 언제나 관복을 벗고 평복을 하였으므로 마치 네 사람의 신선과도 같아 어느덧 그들이 놀던 곳를 사선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매화꽃과 섬진강, 아름다움이 있는 곳
구담마을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섬진강을 따라 구릉과 비탈에 자연적으로 이뤄진 매화꽃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형상은 이 마을이 자라하는 볼거리 중 하나이다. 특히 구담마을의 매화꽃은 광양의 매화마을과는 차원이 다른 신비한 세계로 인도한다.
구담마을의 원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그러나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거북구자 구담이라 했으며, 일설에는 이 강줄기 군데군데 큰 소가 아홉 개가 있다고 하여 구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680년경 조선조 숙종 때 해주 오씨가 처음 정착하여 촌락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매화를 감상하고, 섬진강에 마음을 빼앗기고...
구담마을은 섬진강변에 위치해 산과 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특히 정자나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은 매화의 아름다움과 함께 경탄을 자아낸다. 매화향이 가득할 즈음에는 관광객은 물론 미술애호가, 사진전문가 등이 많이 찾는다.
산과 강이 한 폭의 수채화를 담아낸 듯한 분위기를 풍겨 이곳을 한 번 찾은 방문객은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다.
보물 267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석등
진구사지석등은 우리나라의 석등으로는 가장 큰 것의 하나이며, 아깝게도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보물 267호로 지정되었다.
8각의 지대석 위에 놓인 하대는 2매석으로 되었으며 8각 하대의 각 측면에는 가늘고 길쭉한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하에는 굽을 둘렀다. 이 위에 올려진 연화대석 위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으며 8판씩 조각하였는데 그 끝에는 큼직한 귀꽃을 달아 장식하였다. 간주석은 원주형으로 중앙에는 북모양으로 배가 부른 양각대가 있고 상, 하단의 주위에는 복엽8판의 양, 복면을 대칭이 되도록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낮고 높은 2단의 원형 괴임이 조출(彫出)되고 측면에는 단엽8판의 앙련이 새겨져있다. 화사석(火舍石)은 8면에 모두 장방형의 화창을 내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의 낮은 괴임을 조각하였고 추녀의 낙수홈도 각이 낮다. 전각 끝에는 삼선형의 큼직한 귀꽃을 세워 놓았고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을 모이고 있다. 낙수면의 각 합각은 뚜렷하며 상부에 복련을 놓아 상륜부를 받도록 하였다. 옥개석 정상에는 현재 8각의 노반과 암화석만이 남아 있으나 원래는 보개(寶蓋)와 보주(寶珠)등 여러 가지 상륜부재가 있었을 것이다.
조각된 문양이 섬세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어...
진구사지석등은 조각된 문양이 섬세하고 다양하며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난 1992년도부터 실시한 5차례 발굴조사에서 “진구”라는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보덕화상의 제자가 세운 진구사지임이 밝혀졌다. 진구사가 번성했을 당시에는 수도승이 천여명을 헤아렸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석등의 규모로 미루어 보아도 이곳에 거대한 절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진구사가 폐허로 변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고도 하고,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절 앞에 흐르는 섬진강이 엄청난 홍수로 범람하는 바람에 사찰은 물론 승려 모두가 홍수에 휩쓸린 후 폐허로 변했다고도 한다. 폐허로 변한 진구사지에 1924년 당시 주지 박봉주씨가 중기사라는 절을 중건하였으나 발굴조사를 위해 지금은 철거되었다. 당시의 본당은 정면4칸, 측면2칸의 함석지붕으로 이루어져 요사(療舍)를 겸하고 있었다. 본당 우측 동현으로 정면 2칸, 측면칸도 역시 함석지붕으로 이루어져 산신각(山神閣)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는 철거된 중기사에서 모셔졌던 비로자나불을 인근 건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발굴조사를 통하여 용암리사지가 진구사지임이 밝혀지자 지금은 진구사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치즈의 자부심을 볼 수 있는 곳
임실치즈의 시작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실에는 특산품도 없고 특색도 없었다. 벨기에의 지정환 신부가 선교사로 왔다. 당시 임실 군수는 지정환 신부에게 임실의 신자들만을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임실군 전체를 위한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였고, 여러 가지 고심 끝에 치즈 제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치즈의 제조는 산양유로 만들었다.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한 임실치즈가 이제 임실치즈테마파크와 함께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치즈테마파크는 임실 치즈관광산업을 이끌어갈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는 치즈체험장, 홍보관, 유가공공장, 특산물 판매장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임실치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치즈과학연구소를 통해 명품 치즈 생산을 위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드넓은 초지와 유럽풍의 경관을 배경으로 치즈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어린이들의 체험 학습 명소는 물론 가족이나 연인들에게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농촌관광 명소가 될 것이다.
섬진강을 따라 걷기 여행을 떠나보자
전라북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천담마을. 봄에는 매화꽃이 상춘객들을 모이게 만들고, 여름이면 섬진강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가을이면 단풍과 더불어 어우러지는 가을강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천담마을이다.
내륙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지 섬진강과 어우러진 풍광이 너무도 좋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떠한 기교를 부린다고 해도 결코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듯이 천담마을의 풍경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 만든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경외롭다. 특히 천담마을의 명품인 물안개를 보기 좋은 계절은 일교차가 큰 이른 봄과 가을이다. 천담마을의 물안개를 만나게 된다면 자연에 경외감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을 거쳐 구담마을로 이르는 길은 섬진강 걷기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구간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천담마을의 물안개는 우리나라 최고로 꼽히는 풍경이다. 그 풍경으로 인해 영화 ‘아름다운 시절’. 드라마 ‘소나기’의 촬영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
임실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치즈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벨기에 출신 디디에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 신부와 심상봉목사, 이병오 이장의 선구자들과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치즈마을의 시작은 1966년 지정환 신부님이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만들기를 시작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느티나무로 마을가꾸기를 한 결과 느티마을로 불리다가 마을총회를 통해 치즈마을로 개창하게 되었다.
한국 치지의 원조 임실치즈의 어제와 오늘을 만날 수 있다
치즈마을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이라는 테마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마을이다. 또한 바른 먹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진행하는 치즈낙농체험과 흥겨운 농촌체험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하나되는 작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치즈마을은 전주시로부터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편이 편리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도심에서 조금만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치즈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과 교육이 될 것이다.
체험은 휴무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상시 운영되며,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자부심으로 만들어진 신토불이 와인
금화 와이너리는 삼계면에 자리 잡고 있다.
농산물 수입개방에 따라 국내 와인시장은 대부분 외국의 수입산 와인에 의존하고 있다.
금화 와이너리는 국내산 산머루와인을 생산해냄으로서 전량 수입 판매되고 있는 와인시장을 국내산 산머루와인으로 대체하고자 2003년부터 다양한 산머루와인을 개발ㆍ생산에 전념해 오고 있다.
금화 와이너리는 다년간의 축척된 기술로 한층 발전된 생산기술을 개발하여 국내 및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산머루 와인을 만들어 자부심을 있는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우수한 품질로 승부
1년에 170만 톤 정도를 제조하고 있으며 국세청기술연구소에서 품질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서울 등 대도시의 호텔이나 대형 마트에 납품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췄고 적은 규모이지만 미국과 일본시장에 진출하는 등 유통의 다변화를 위하여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당도와 향이 탁월한 와인
임실은 산머루 재배에 적당한 토질과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일교차가 큰 지리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산머루를 가공해 와인을 만드는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산머루로 만든 100%정통 신토불이 와인이다. 산머루와인은 발효과정을 거치는 동안 머루의 성분이 거의 다른 물질로 변하여 알코올과 수분, 비타민과 무기질 성분 등 어느 종류의 술보다도 영양적 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산머루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야산에서 자라는 넝쿨식물로 포도와 비슷하지만, 유기산, 칼슘, 인, 철분 등의 성분이 포도보다 10배가량 높아 불면증이나 변비, 피로회복, 수취, 피부미용 등에 탁월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산머루는 포도보다 항산화효과가 탁월하고, 최근 알레르기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또 포도보다 수확시기가 한 달 정도 늦어 당도도 높다.
특히 임실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당도가 높고 향도 탁월해 국내산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우리나라 치즈 생산의 원조 마을
전북 임실에 있는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치즈 산지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이란 테마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며 바른 먹을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1964년 임실성당에 부임한 지정환 (디디에세스테벤스 신부님) 신부님이 1966년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를 만들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목 관에 굴을 파가며 발효실험을 거듭한 끝에 한국 최초로 피자용 모차렐라치즈를 만들어 낸 지정환 신부님은 치즈비법을 주민들에게 알려 주었고, 1967년에는 임실읍 성가리에 임실치즈 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치즈가 조선호텔에 공급되면서 맛과 품질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가난한 마을 임실은 치즈 마을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신부님 사랑하는 신부님
지정환 신부가 1981년 임실치즈공장을 주민 협동조합으로 변경한 뒤 운영권과 소유권을 조합에 넘기면서 치즈는 임실의 대표적인 농가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임실치즈마을은 마을 입구부터 느티나무가 줄지어서 체험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시냇물이 흘러 농촌의 소박함과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원래는 '느티마을'이던 마을 이름을 2006년에‘치즈마을’로 이름을 바꾸면서 관광객을 본격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체험마을
이 마을이 치즈체험마을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녹색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다. 2005년에 처음으로 치즈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치즈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은 우유가 치즈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과정으로 특히 아이들의 호응도가 높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이색적인 데다 먹는 재미까지 더해져 입소문을 타면서 갈수록 방문객이 늘어갔다. 지금은 연간 6만 여명이 다녀가는 전국적인 체험마을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임실 치즈마을의 치즈와 우유 관련 체험 프로그램은 연중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다.
그 외에 계절 별로 다양한 체험프로 그램이 준비되어있다.
봄에는 논에 우렁이와 오리 방사, 시금치, 호박, 수확 등이 있다. 여름에는 음악회, 대나무 물총 쏘기가 인기 있고 가을에는 추수감사제, 농산물 수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겨울에는 민속놀이, 보름달축제 등이 있다.
치즈와 함께하는 문화 체험 프로그램
우리나라 치즈의 본고장인 임실의 임실치즈스쿨은 치즈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임실치즈스쿨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치즈 만들기, 피자 만들기, 송아지 우유주기, 물 썰매 타기, 뻥튀기, 투호던지기 등 우리의 전통 풍습과 농촌의 실태 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전통 놀이 등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체험과 교육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대략 3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치즈스쿨의 치즈체험 프로그램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치즈마을의 간단한 역사와 여러 낙농제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우유에서 치즈가 되는 전 과정을 눈으로 보고 체함 할 수 있다.
4인 1조로 자신이 직접 만든 피자와 함께 제공되는 스파게티로 점심식사로 먹을 수 있으며 만들어진 치즈는 집으로 가져 갈 수도 있다.
전국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
임실치즈 스쿨 뿐 만 아니라 전국 사람들에게도 가까운 곳에서 치즈체험을 할 수 있도록 권역 별로, 서울 경기지역에는 이천 치즈스쿨과 파주치즈스쿨이 있으며, 대전 충남지역에는 공주 치즈스쿨, 부산 경남지역에는 밀양치즈 스쿨이 있다.
각 지역의 치즈 스쿨에서는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 풍습과 농촌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지역정서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자랑거리
체험프로그램으로는 임실치즈 체험과 1박2일 체험프로그램 그리고 선택체험프로그램이 있으며 임실치즈 치즈 스쿨에서 약 10분 거리에 숙박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임실치즈스쿨 체험 비는 임실치즈만들기체험+피자 만들기+점심식사+야외체험 등을 포함해 개인은 2만 4천원, 단체(50명 이상)는 2만 2천원이다.
주변관광지로는 전주 한옥마을과 무주리조트, 옥정호, 사선대공원, 마이산, 성수산 휴양림 등이 있다.
호남농악 좌도 가락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강진면 필봉(筆鋒) 마을은 40여가구가 모여 사는 아담한 마을로서 호남농악 좌도(左道) 굿 7채 가락을 90여년전부터 꾸준히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들당산굿」을 비롯,「날당산굿」,「당산제굿」,「장원리굿」,「이사굿」, 「매굿」등이 전승되고 있다. 농악의 정신이 협동과 협화(協和:싸잽이) 그리고 형태의 근간이 되는 7채 가락의 보존과 토착화에 따른 전승에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판굿」은 음력정월에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집안의 무사태평을 축원해주는 「뜰볼비굿」을 마친 후에 하루 날을 잡아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노는 굿으로, 마을에서 가장 마당이 넓은 집을 골라 판을 만들고 밤이 새도록 풍물을 잡으며 논다. 이 「판굿」에는 「길굿」외에 13종의 굿놀이가 있다.
첫째, 외마치 7채 가락은 호남 좌도굿의 특징이며 7채 가락이란 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타음(打音)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둘째, 쌍방울진 굿은 덕석모리나 오방진 굿이라고도 하나 이 마을에서는 쌍방울진이라고하여 두번 진풀이를 한다. 셋째, 반 풍류 굿은 느린 풍류를 빨리 친다. 넷째, 호호굿은 가락에 맞추어 구령을 외치면서 단결을 나타낸다. 다섯째, 영산굿은 좌도가락 중에서 가장 흥겨운 가락으로 판굿의 절정을 이룬다. 이 영산굿에는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 「군영놀이영산」, 「제농기영산」, 「미치기영산」등이 있다.
흙과 함께 도예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
도화지(陶花地) 도예문화원은 “도자기 꽃이 피는 땅”으로 자연 속에서 흙과 함께 도예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접시, 다기 등 생활자기에서부터 도예조형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자기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문 갤러리와 단체 및 개인들이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관,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굽는 전통가마실과 현대 가스 가마실이 있으며 다실과 황토벽으로 꾸민 식당도 구비되어 있다.
2003년 5월 개원한 이래 유치원 및 초중고 단체는 물론 가족, 개인 약 2만여명이 도화지를 문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몸소 체험하고 도예문화와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꼈니다. 특히 도화지 도예문화원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전통가마축제』는 한국 도예문화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되살리며 나아가 현대도예 문화의 현주소를 재조명하기 위한 행사로 지역 작가전, 도예체험, 한지·황토 등의 공예체험, 전통가마소성, 락구소성 등 전시, 체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도화지 도예문화원의 체험프로그램
도화지 도예문화원에는 단체프로그램, 주말가족프로그램 등이 구비되어 있다. 단체프로그램은 유아체험반과 중고등부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유아의 경우 흙을 통한 감각체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창의적인 사고를 길러주며, 중고등학생에게는 여가활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개인의 숨겨진 소질과 끼를 길러준다.
주말 가족프로그램은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흙으로 빚기, 손바닥 찍기(아이들), 초벌위에 그림그리기(컵, 접시), 황토 염색하기, 들꽃 심어가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 웨딩도자프로그램과 직장인을 위한 프로그램 등이 있다.
사선대 인근의 종합 테마파크...체험과 놀이를 동시에...
사선대에 위치하고 있는 체험 중심의 복합 테마파크로 종합 체험장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신나게 놀면서 체험하는 공간’으로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 가족에게는 가족의 유대와 사랑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선대 해피랜드는 2007년 수상레저사업을 시작으로 이루어졌으며, 2008년 한국야생화전시관, 곤충체험장 등이 준공되면서 비로소 종합 체험 테마파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사선대 해피랜드에서는 곤충체험, 야생화체험, 치즈 만들기 체험, 전통놀이 체험, 뗏목체험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구비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체험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사계절 썰매타기, 바이킹, 범버카, 회전목마, 오리보트 타기 등 다양한 놀이 어트랙션을 구비하여 체헴과 동시에 즐거움도 선사한다. 즉, 즐기면서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매해 연꽃축제, 장미꽃축제, 코스모스축제, 눈꽃축제, 유채꽃 축제 등 다양한 축제를 운영함으로써 해피랜드를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임실치즈박사체험장
‘임실치즈박사체험장’에서는 도시화 속에서의 닫힌 생활과 사고를 자연과 더불어 “만들고” “즐기며” “배우자”라는 슬로건으로 임실의 명품인 “임실치즈만들기” 와 해피랜드에서의 마음껏 “즐기는 체험” 임실 곤충&야생화 학습관에서의 “배우는체험”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가족에게는 유대관계를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으로 고객 여러분을 모십니다.
멋진 추억을 만드는 곳! 임실치즈박사 체험학습장
우리나라 치즈의 자부심을 볼 수 있는 곳
임실치즈의 시작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실에는 특산품도 없고 특색도 없었다. 벨기에의 지정환 신부가 선교사로 왔다. 당시 임실 군수는 지정환 신부에게 임실의 신자들만을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임실군 전체를 위한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였고, 여러 가지 고심 끝에 치즈 제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치즈의 제조는 산양유로 만들었다.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한 임실치즈가 이제 임실치즈테마파크와 함께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치즈테마파크는 임실 치즈관광산업을 이끌어갈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는 치즈체험장, 홍보관, 유가공공장, 특산물 판매장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임실치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치즈과학연구소를 통해 명품 치즈 생산을 위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드넓은 초지와 유럽풍의 경관을 배경으로 치즈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어린이들의 체험 학습 명소는 물론 가족이나 연인들에게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농촌관광 명소가 될 것이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호남 좌도 필봉 농악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 온 호남 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 굿이다.
필봉 마을 굿의 역사는 300여년 정도로 추정되어 지는데 오늘날과 같이 수준높은 풍물 굿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 마을로 초대하면서 부터이고, 2대 송주호 상쇠를 거쳐 필봉 농악의 보유자였던 상쇠 양순용에 이르러 필봉 굿은 꽃을 피우게 된다. 양순용 선생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 농악을 체계적으로 정리 하였고, 필봉 굿을 전수하는데 일생을 바쳐 활동 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5년에 병환으로 별세한다. 현재는 상쇠 양진성이 뒤를 이어 수많은 공연 활동과, 전국의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필봉 굿을 전수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필봉 농악의 1대 상쇠로는 박학삼 선생을 들 수 있는데,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박학삼 선생은 청웅면에 사는 이화춘에게 풍물 굿을 배우고, 이화춘은 전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굿을 배웠다고 한다.
필봉 농악의 상쇠 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판이 - 이화춘 - (1대) 박학삼 - (2대) 송주호 - (3대) 양순용 - (4대) 양진성
필봉 농악의 특징으로는 앞 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뒷 굿, 또는 놀이 중심이 강하여 잡색, 고깔 소고가 많고 가락은 전체적으로 힘차고 꿋꿋하며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오수의견비가 있고, 의견문화제가 개최되는 시민들의 안식처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와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을 애완이 아닌 반려 동물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은 인간을 잘 따르고,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이러한 반려동물의 역사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먼 신리시대에도 그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로 오수면의 오수의견이야기이다.
임실에서 남원으로 가는 춘향로로 10km쯤 가면 오수면이 나온다. 오수라는 지명은 이 고장에 구전되어온 전설과 관련되어 '보은의 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오수 시장 옆에 있는 원동산 공원에는 의견비와 동상을 세워, 주인에 대한 개의 충성과 의리를 기리고 있다. 최근에는 오수에서 임실쪽 1.2km지점 4차선 도로변 오암리에 새로운 의견상을 세워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여 휴식공간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주인을 살린 충견의 전설이 살아있는 곳
신라 때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개를 몹시 사랑한 그는 출타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주인이 장에 다녀오면서 술에 만취되어 귀가길에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다. 때마침 산불이나 번지던 불길이 주인근처로 오자, 다급해진 개는 주인을 깨우려고 온갖 방법을 다 했으나 소용이 없자, 물 속에 뛰어 들어가 온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을 적시는 일을 수백번 반복하여, 불길을 겨우 막았다.
그리고 나서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개의 의리에 감탄한 나머지 개를 묻어주고, 무덤에 지팡이를 꽂아 놓았다. 그런데 그 후 싹이 나서 큰 나무로 자랐다. 의리있는 '개나무' 고장이란 뜻으로 그 이후 오수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수면에서는 지역사회 개발과 지역민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희생과 충성이 담긴 의견의 넋을 위로하고 의로운 정신을 길이 보존 시키며, 명견명소로 인정을 받고 지역을 널리 알리고자 매년 4월에 다채로운 의견문화제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담뱃잎과 비슷한 형상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전북 임실군 지사면에서 발견된 고인돌군은 청동기 후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종호 교수팀은 지사면 계산리 광암. 옥산마을에 분포된 총 30여 점의 고인돌을 2008년 발견했다. 북방·남방. 개석식 고인돌이 혼재된 이 고인돌군은 농경문화로 발전하는 산촌 집단 주거지로 추정되며 고조선 사회에서 군장의 위상을 가늠케 할뿐 아니라 상당한 힘과 집단을 거느린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고인돌에서는 돌 모서리 상단에서 3-5곳의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바위구멍그림(성혈<星穴>)이 발견됐는데 큰 것은 지름이 12cm, 깊이 6cm이고 작은 것은 지름 7cm, 깊이 4cm 크기이다. 이 돌은 모양새가 담뱃잎과 비슷하다고 해서 주민들은 담뱃잎 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약 2천500-5천 년 전 청동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인돌군은 고조선 시대의 산촌마을 농경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섬진강 수계로 임실군 덕치면 물우리 세워진 월파정은 조선식 건축 양식으로 정교한 조각과 우아한 선, 화려한 단청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선경을 빚어놓고 있다. 특히 섬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급류로 흐르다가 바위 사이를 감돌아 월파정 아래에 이르면 소가 되어 유유자적하며 강 기슭의 기암괴석과 천년묵은 낙락장송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경관을 즐기기 위해 원근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들고 있으며 개발전망도 밝은 곳이다. 이 월파정은 1927년 덕치면 물우리에 거주하던 밀양 박씨 밀성부원군파의 후손들이 주축이 돼 선조들의 유덕을 경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월회정이라 했다. 그후 1966년 대종회에서 박씨의 중시조 계행공이 3백90년전 전남 창평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따 월파정으로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물우리에는 계형공의 15대손들이 30여가구 모여살고 있으며 그동안 성금 5백여만원을 들여 단청을 새로하고 주변을 정리하여 관광지로써 면모를 새롭게 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은 전주에서 52km 1시간 10분 소요, 임실에서 24km 35분 소요된다.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얽혀있는 명산, 성수산
성수면에 위치하고 있는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얽혀 있는 명산이다. 무주의 덕유산에서부터 회문산으로 뻗어내린 노령산맥에 자리잡고 있다. 산의 높이 876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하며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나다. 성수산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면서 야영시설과 취사시설, 산림욕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관광객들에게 역사체험과 더불어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어렵지 않은 산행과 자연휴양림 조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성수산 상이암에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
성수면 성수산 상이암에는 고려와 조선의 개국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말기 도참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선스님이 성수산의 산세가 비범하여 천자를 맞이할 성지인 것을 알고 왕건에게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 권하였다. 백일기도를 마쳤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자 왕건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다시 3일간 간절히 소망을 빈 끝에 마침내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았다. 크게 기뻐한 그는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왕건은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신라를 복속시킨 뒤 국호를 고려라고 고치고 태조가 되었다. 도선스님은 이를 기념하여 그 자리에 도선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왕건의 건국설화에 이어 조선건국의 태조 이성계도 이 성수산에 얽힌 건국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가 쇠퇴하던 말기,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하는 대공을 세우고 남원을 지나 전주로 가던 중 도참설의 대가이던 무학대사는 야심에 찬 그를 도선암에 안내한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한 끝에 용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세 번 씻어주는 길몽을 꿨다. 그는 크게 기뻐하여 붓을 들어 그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고 썼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이곳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여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자신이 삼청동이라고 쓴 바위를 어필각(御筆閣)을 지어 보존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상이암은 의병대장 이석용(李錫庸)에 의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경내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된 부도(浮屠)가 있다. 성수면에는 이석용 외 28의사를 모셔놓은 소충사(昭忠祠)가 있다.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
덕재산은 해발 484m 밖에 되지 않는 산이다. 하지만 덕재산은 소리소문없이 등산객 사이에서 유명해진 산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과 같이 웅장한 맛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옥녀봉과 매봉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는 덕주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인기가 많은 코스이다.
덕주산의 가장 큰 장점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모습은 여느 산과는 견주기 어려울 정도의 장관을 보여준다.
덕주산의 산행은 남악리에서 시작한다. 남악리를 거쳐 소류지를 지나 걷다보면 등산로와 만날 수 있다. 동쪽으로 조망이트인 덕재단 중턱을 지나면 잘 정비된 이정표와 완만한 등산로로 이어진다. 덕재단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덕재산 정상에 다다른다.
일명 영취산(靈鷲山)으로 부르는 벽련산은 동쪽 강진면 백련리 국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얀 연꽃모양의 둥근 암릉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모습이 산꾼들을 유혹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하얀 눈 덮힌 연꽃봉우리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반면 서쪽의 칠백리고지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배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또한 백련산은 사시사철마다 색다른 풍경을 이루고 산세가 아름다워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또 다시 찾고 싶은 산이다.
백련산은 산세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상에서 산줄기가 남쪽으로 용트림을 치며, 강진면 갈담리까지 10km를 힘차게 뻗어 내려간 곳에, 조선 8대 명당중의 하나인 잉어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옛날 그곳에 묘를 쓰려고 땅을 파내려가자 널빤지 같은 암반 아래에서 놀던 잉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뛰어나오자, 들어 올리던 암반을 다시 내려놓고 그 위에 묘를 쓴 뒤, 명당바람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명당이 있는 곳의 우측은 그물 봉이며, 앞산은 작살 봉, 회진마을 맞은편에는 다래끼봉 등이 에워싸고 있는데, 주위에 형성된 산들의 지명과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여 대 명당으로 불린다.
그물 봉은 필봉리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인데, 그 형상이 마치 그물이 잉어를 포획하려는 모습이고, 작살(고기잡는 창)봉은 작살이 누어 있는 형태이며, 다래끼(고기망)봉은 어느곳에서 보아도 다래끼 모양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전설은 강진면 방현리 뒷산에 별골절의 터다. 옛날 그 절에서 수도하던 도승이 산세가 험악하여 식량조달이 어렵게 되자, 도술로 강진면 서창마을의 창고에서 쌀을 가져다가 별골절 뒤 암벽 구멍으로 2-3명분의 쌀을 나오게 하여 도승과 상좌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도들이 많이 찾아오자 도승에게 알리지 않고, 상좌가 쌀을 많이 나오도록 부지깽이로 구멍을 쑤셨더니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도승과 상좌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절도 소멸되어 지금은 절터와 전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상에는 섬진강홍수통제소와 무인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조망은 모악산, 만덕산, 회문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가 팔공산에 이르면 서쪽으로 지맥 하나를 나눈다. 이 지맥은 마령치 부근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산줄기 하나씩을 나누어 놓고, 임실 성수산을 지나 내동산 못미처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임실 고덕산, 응봉. 매봉. 무제봉에 이르면 두 갈래를 친다. 이곳에서 북쪽의 백이산을 거쳐 칠백리고지에서 남쪽으로 산줄기를 뻗다가 백련산을 솟구쳐 놓았다. 백련산의 물줄기는 갈담천을 통하여 섬진강 본류에 합수되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임실군 강진면과 청웅면에 경계해 있다.
근현대사의 아픔이 담겨있는 산
회문산은 임실군, 순창군, 정읍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산으로 회문봉, 장군봉, 깃대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지며 동서 8Km, 남북5Km에 걸쳐있다.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두 팔로 감싸듯 휘감아 사방으로 물길이 흐르고 있어 산 정상에서 바라봤을 때 전망이 장관을 이룬다. 계곡이 많아 물놀이에 제격이며 특히 산 아랫마을인 덕치·천담의 계곡이 아름다워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회문산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아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는데다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동학혁명, 빨치산, 천주교성지 등...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품고있어...
조선시대 말기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동학군은 이 산을 거점으로 투쟁을 하였으며 한말에 국운이 기울어 일제 침략의 마수가 뻗치던 무렵에는 회문산을 근거지로 하여 정읍의 최익현, 임실의 임병찬 의병장이 회문산을 거점으로 항일구국운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1950년 6·25전쟁이 벌어지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으로 고립된 인민군과 공산당들이 회문산으로 옮겨와 자리잡고 험한 산을 의지하여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자 국군은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토벌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이 산에는 다섯 선인이 바둑을 두는 형상인 오선위기(五仙圍基)의 명당터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옛날 백룡이라는 산적 두목이 무리들을 이끌고 이곳에 웅거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산봉우리에는 그들이 살았던 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홍문대사(홍성문)가 입산 도통하여 ‘회문산가 24혈’의 명당 책자를 만들면서 영산이라 이름나기 시작하였다. 책 내용 중 회문산 정상에 24명당과 다섯 신선이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인 오선위기(五仙圍基) 자리가 있는데, 이곳에 관을 보토하여 묘를 쓰고 나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처형을 당할 때 3족을 멸하는 화를 면하기 위해서 동생 란식과 조카 현채가 기거하였고 두 분의 묘소가 현존하고 있다.
이처럼 동학 혁명군의 투쟁장소로, 항일운동의 장소로, 6·25격전지, 천주교성지로서 민족의 아픔이 서린 회문산이 이제는 덕치마을을 중심으로 한 회문산 주변 관광자원 개발계획에 따라 앞으로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국민의 휴식처로 활용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회문산(837m) 등산코스
【제1코스】덕치면회문리 절골⇒깃대봉⇒장군봉⇒회문봉⇒장군봉 ⇒회문산휴양림 (5시간)
【제2코스】가리점(백운마을)⇒회문⇒김난식 묘(김대건신부 동생) ⇒장군봉(정상)⇒회문봉⇒안정리 휴양림 (4시간)
임실역에서 보면 고덕산은 암봉 8개로 연이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 산행에 들어가면 5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것을 알 수 있다.고덕산의 모산은 임실의 진산인 성수산이다.
고덕산의 산행 기점은 임실역에서 약 5.5km 떨어진 운수리 고덕마을이다.(도보로는 약 1시간거리). 고덕마을 입구에 이르면 남쪽 도로 오른쪽에 '태고종 고덕 덕봉사 1.3km' 라고 쓰여진 입간판이 있다. 입간판 앞에서 덕봉사 들어가는 길로 약 600m 정도 들어가면 동쪽 계곡안으로 자리한 고덕 마을이 있다. 고덕마을 입구에 이르면 왼쪽으로 대문없는 첫번째 농가가 있다. ( 이 농가 마당 수도에서 식수를 준비하여도 된다.) 북쪽 텃밭을 지나 100m 정도 거리에 이르면 송림안으로 산길이 뚜렷하게 이어진다. 50여m 거리에서 무조건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거나 송림아래 산길로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 감나무 뒤로 흐릿한 산길을 타고 곧바로 가파른 능선위로 올라선다. 능선길은 처음부터 바윗길이다.바윗길은 처음에는 서서갈 수 있으나 차츰차츰 두손 두발을 다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좌우 경사가 완만하고 바위벽도 경사,높이가 약 2m 정도 여서 위험한 곳은 없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 올라가면 고덕마을이 아찔하게 내려다 보이는 상여 바위에 닿는다.
상여바위는 넓어서 쉬기도 좋고 관촌 마을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 된다.
상여 바위를 뒤로하고 5-6분 정도 올라서면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전망바위를 지나면서 더울 가팔라지며 덕봉사 계곡이 보이는 제 1봉에 닿은다. 제 2봉으로 이어지는 비윗길은 거의 수직에 가깝다 그래서 산길은 남쪽 사면으로 횡단하며 이어진다.
사면을 횡단해 제 3봉 안부에 이르게 되고 이어지는 암릉을 타고 올라가면 제 3봉 직전 쇠뿔바위에 에 닿는다. 쇠뿔바위 오른쪽을 끼고 제 3봉에 오른 후 동쪽 아래 20m거리에 이르면 배낭을 벗지 않고는 지나지 못하는 산부인과 바위가 니타난다. 집채만한 바위가 비스듬이 갈라져서 생긴 틈으로 폭이 약 30cm정도로 배낭을 벗더라도 배가 나온사람은 곤역을 치르는 곳이다. 산부인과 바위를 빠져나오면 주민들이 정상으로 치는 제 4봉을 밟는다.
제 4봉에 오르면 막힘이 없이 조망은 매우 좋다. 영대산 너머로 지리산 연봉까지도 막힘없이 펼쳐진다. 제 4봉에서 30m 정도 거리인 제 5봉은 눈으로 보아도 약 4-5m 가 더 높지만 주민들이 4봉을 정상으로 치는 까닭은 수직 절벽을 내려간 다음 다시 단애를 이룬 제 5봉을 오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산은 북동릉을 타고 약 2km거리인 사거리 안부에 이른 다음 북쪽 계곡길로 접어들어 약 1.5km를 내려서서 구신리 의궁 초등학교 성신 분교 앞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많이 이용되며 또는 제 4봉 서쪽 50m 거리에서 남쪽 사면길로 40m쯤 내려선 다음 제 4봉 남쪽 절벽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일명 마당목으로 불리는 마당바위를 거쳐, 남서쪽 덕봉사를 경유해서 고덕마을로 내려서는 코스도 좋다.
전주시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순창방면으로 가다 전주시계를 벗어나 완주군 구이면으로 들어서면 구이저수지 동북쪽으로 솟아 있는 산이 경각산(660m)이다. 경각산의 유래는 한자로 고래 경(鯨), 뿔각(角)을 써서 고래등에 난 뿔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산 아래의 광곡마을에서 바라보면 모악산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고래의 모습이며,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고래의 등에 솟아난 뿔의 형상이다.
산행은 계속해서 부드럽고 편안한 능선을 30분 정도 따르는데 추운 겨울에도 빛을 잃지 않는 효관재의 전나무 조림지가 그 동안 산행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한 삼림욕을 제공한다. 이어지는 옥녀봉에서는 지나온 호남정맥의 줄기를 조망하기에 좋다. 동쪽으로 쑥재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쑥재부터 임도를 따라 30여분 걸으면 유황성분으로 유명한 죽림. 송산온천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어 권할 만하다. 경각산 주변이 최근 패러그라이딩의 점프장으로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창공으로 활공하는 패러그라이더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사암과 월추암의 싸움이야기」「상사암과 관련된 거북돌이야기」 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상사봉, 도지봉은 지역의 명소에서 대한민국의 명소로 발돋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덕면(면장 박병덕)에서는 지역주민들과 출향인사들이 모임을 갖고 보다 체계적으로 상사암과 도지봉을 등산명소로 가꾸고 있다.
상사봉 등산로는 지난해 신덕면 자율방범대 및 마을이장, 각 기관사회단체회원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상사봉 일대를 등산로로 개설했으며 주민들의 산책로로 활용됨은 물론 많은 등산객들이 찾아 산행을 즐기고 있다.
옥정호 국사봉
옥정호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국사봉전망대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하고 있는 국사봉은 해발 475m의 작은 산이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산을 오리다보면 하늘과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산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옥정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교차가 심한 날 새벽에 산에 오르면 옥정호를 감싸고 있는 운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이 장관을 이뤄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사선대관광지
전주쪽을 들머리로 임실 여행을 시작할 때 항시 첫 발자국을 딛게 되는 곳이 사선대다. 물이 좋고 빼어난 경관으로 신선과 선녀가 노닐었다는 곳. 사선대는 시원하게 흐르는 섬진강 상류 오원천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자연환경이 빼어난 지역으로 호수에 비친 오색찬란한 단풍이 길 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뛰어난 조각가들이 인근 신덕면 오궁리 미술촌에서 직접 제작한 수준 높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사선대 조각공원에서 작품 감상도 하고 가족끼리 혹은 직장 동료와 함께 찾아와 맑은 공기와 수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가벼운 놀이를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또한 사선대를 둘러 싸고 있는 산자락에서 운서정(지방유형문화재153호)까지 이르는 길은 아름다운 수목과 그늘 밑 벤치등 휴식시설이 잘 갖춰져있어 산책코스로도 좋다.
천담구담마을
섬진강 상류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풍경을 꼽자면 방금 지나온 진메에서 천담을 지나 구담에 이르는 구간이 으뜸이다.그 구간의 끝인 구담은 아홉 개의 물굽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답게 퍽이나 아름다운 강마을이다. 그렇다고 강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다. 강에서 한참 올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다. 때문에 마을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풍경이 실로 절경. 여기에 봄이면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뒤까지 심어놓은 매화가 만개해 강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하여 섬진강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소문나 있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구담마을은 영화에도 여러번 나왔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의 상당부분이 여기서 촬영되었고, 영화 소나기에서 징겅다리를 건더는 장면도 바로 구담마을 앞 섬진강에서 촬영되었다.
치즈체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 임실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치즈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벨기에 출신 디디에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 신부와 심상봉목사, 이병오 이장의 선구자들과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치즈마을의 시작은 1966년 지정환 신부님이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만들기를 시작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느티나무로 마을가꾸기를 한 결과 느티마을로 불리다가 마을총회를 통해 치즈마을로 개창하게 되었다. 임실향교 조선시대의 향교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옥정호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진작가가 많이 찾는 명소 아침햇살을 받아 호수 면으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치 신선이나 노닐 법한 풍경으로 물들여지는 아름다운 옥정호. 임실읍에서 16km 지점의 강진교를 거쳐 오른쪽으로 꺾어져 5km쯤 올라가면 섬진댐이 나온다. 한편 전주에서 완주군 구이면 쪽으로 28km가면 예전에는 낚시터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옥정호 상수원보호 구역 지정으로 인하여 낚시는 불가하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옥정호의 막은 댐이 나온다. 서도 최고의 백미는 붕어섬.국사봉에서 내려다 보는 붕어섬 풍광이 최고다. 유역면적 763㎢, 만수면적 25.5㎢, 총 저수량 4억3,000만 톤에 달하는 옥정호는 금남정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물을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시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댐이다. 옥정호는 운암대교, 벼락바위, 댐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가을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경관이 장관이다. 옥정호에서도 최고의 백미는 붕어섬.국사봉에서 내려다 보는 붕어섬 풍광이 최고다.
국사봉
옥정호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국사봉전망대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하고 있는 국사봉은 해발 475m의 작은 산이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산을 오리다보면 하늘과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산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옥정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교차가 심한 날 새벽에 산에 오르면 옥정호를 감싸고 있는 운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이 장관을 이뤄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필봉농악전수관(풍물체험)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두가지를 꼽자면 옥정호와 필봉농악이다. 필봉농악의 중심 전승지는 상필봉마을. 옥정호를 만든 섬진강댐 물막이 방조제 바로 아래에 있다.이 마을은 약 300여년 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필봉농악은 마을의 신앙인 당산제에서 불리던 당산 굿을 모태로 한다. 일제 강점기때 민족신앙 말살 정책에 의해 잠시 주춤하였으나 1970년대 다시 시작되어 공동체 사회에서의 생활 문화와 공동체를 결속 시키는 구실을 하였다. 당산제는 현재까지 이어져 필봉농악의 전신인 당산굿의 하나로 남아있다. 필봉농악중 판굿은 국내에서도 내로라 하는 전승 굿판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필봉농악의 특징은 농악수들 모두가 상모를 쓰지 않고 쇠잡이만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는 점이다. 필봉농악 전수관에서는 요새도 매년 수천명의 학생과 전승자들이 농악을 배우고 있다. 뿐만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체험학교를 열기도 한다. 풍물과 사물놀이,염색체험등을 수시로 배워볼 수 있다.
천담구담마을
섬진강 상류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풍경을 꼽자면 방금 지나온 진메에서 천담을 지나 구담에 이르는 구간이 으뜸이다.그 구간의 끝인 구담은 아홉 개의 물굽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답게 퍽이나 아름다운 강마을이다. 그렇다고 강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다. 강에서 한참 올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다. 때문에 마을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풍경이 실로 절경. 여기에 봄이면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뒤까지 심어놓은 매화가 만개해 강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하여 섬진강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소문나 있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구담마을은 영화에도 여러번 나왔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의 상당부분이 여기서 촬영되었고, 영화 소나기에서 징겅다리를 건더는 장면도 바로 구담마을 앞 섬진강에서 촬영되었다.
치즈체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 임실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치즈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벨기에 출신 디디에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 신부와 심상봉목사, 이병오 이장의 선구자들과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치즈마을의 시작은 1966년 지정환 신부님이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만들기를 시작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느티나무로 마을가꾸기를 한 결과 느티마을로 불리다가 마을총회를 통해 치즈마을로 개창하게 되었다. 임실향교 조선시대의 향교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옥정호 국사봉
옥정호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국사봉전망대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하고 있는 국사봉은 해발 475m의 작은 산이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산을 오리다보면 하늘과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산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옥정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교차가 심한 날 새벽에 산에 오르면 옥정호를 감싸고 있는 운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이 장관을 이뤄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임실진구사지석등
진구사지석등은 우리나라의 석등으로는 가장 큰 것의 하나이며, 아깝게도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보물 267호로 지정되었다. 8각의 지대석 위에 놓인 하대는 2매석으로 되었으며 8각 하대의 각 측면에는 가늘고 길쭉한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하에는 굽을 둘렀다. 이 위에 올려진 연화대석 위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으며 8판씩 조각하였는데 그 끝에는 큼직한 귀꽃을 달아 장식하였다. 간주석은 원주형으로 중앙에는 북모양으로 배가 부른 양각대가 있고 상, 하단의 주위에는 복엽8판의 양, 복면을 대칭이 되도록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낮고 높은 2단의 원형 괴임이 조출(彫出)되고 측면에는 단엽8판의 앙련이 새겨져있다. 화사석(火舍石)은 8면에 모두 장방형의 화창을 내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의 낮은 괴임을 조각하였고 추녀의 낙수홈도 각이 낮다. 전각 끝에는 삼선형의 큼직한 귀꽃을 세워 놓았고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을 모이고 있다.
사선대
물이 좋고 빼어난 경관으로 신선과 선녀가 노닐던 곳 관촌 사선대는 물이 맑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하늘에서 신선과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매년 사선대에서 개최되는 소충·사선문화제전과 더불어 임실군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이다. 사선대는 시원하게 흐르는 섬진강 상류 오원천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자연환경이 빼어난 지역으로 호수에 비친 오색찬란한 단풍이 길 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뛰어난 조각가들이 인근 신덕면 오궁리 미술촌에서 직접 제작한 수준 높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사선대 조각공원에서 작품 감상을, 가족끼리 혹은 직장 동료와 함께 찾아와 맑은 공기와 수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가벼운 놀이를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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