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처님과 예수님
※ 어느 불자의 고민
어느 날 법당에서 기도를 끝내고 나오려는데 어느 보살님 한 분이 저에게
자신의 고민을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실에서 차를 한 잔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민인즉,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교회에 빠져서 가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교회에서 거의 산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며 크게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한 집에 종교가 둘이면 안 될 것 같고 해서 어떻게든
아들을 설득하려고 하는데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드렸습니다.
“보살님은 부처님이 더 소중합니까? 아니면 아드님이 더 소중합니까?”
“그야 물론 아들이 더 소중하지요.”
“당연합니다. 그러니 아드님 말을 들으십시오. 아드님을 따라가십시오.
아드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을
믿어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의 믿음이
아드님을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러고는 제가 그 절을 나올 때까지 다시 그 보살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정말 아들을 따라 교회를 다니고 계신지는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더 잘 살기 위해서 본래는 없던 것을 사람들이
만든 가치입니다. 옛날에는 종교라는 것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종교 없이도
잘 살았습니다. 지금도 종교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지만 잘살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이든, 목사님이든, 신부님이든, 기독교인이든, 불자이든,
그 어떤 종교인이든, 예배당에 가면 십자가에 절할 수 있고 법당에 오면
부처님께 삼배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를 부를 수도 있고, 염불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안 하면 또 어떻습니까? 서두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종교란 내 것, 네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 내 것이며
인류의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도 나의 스승이며, 부처님도 나의 스승일
뿐입니다. 옳은 것은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면 그만입니다.
그중에 부분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배우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신부님이든,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성직자 혹은 수행자로서
동등하게 존경하고 귀의해야 합니다. 다만 어떤 분이든 이타적이며,
사심 없는 마음의 그 정법正法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어떤 경우에라도 종교 때문에 갈등하고, 종교 때문에 불필요한 반목이
발생한다면 차라리 종교를 버리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종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이고, 함께 사는 사람과의 화합입니다. 절집에서 흔히 하는 말로
“대중이 원하면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불살생不殺生을
가장 중요한 계율로 여기는 불가에서 얼마만큼 함께 사는 대중들의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수행을 해서 부처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금 살아가는 현재의 삶 속에서
대중의 화합이며 그러한 화합도 못 이루고서 어찌 열반을 구하고, 믿음을 말하며,
예수와 부처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간혹 종교 간에 또는 가족 간에 종교가
종교로서의 역할을 벗어나서 전도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교회든 사찰이든 자신의
근기와 성장에 맞는 적합한 가르침과 수행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인류의 정신적 산물이며, 따라서 내 것 네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함께 배워야 할 높은 가르침입니다.
첫댓글 _()()()_
제가 _()_은 합니다만, 글쎄요....
그렇다면 전법은 누가 하며 왜 전법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어려운 대목입니다.
.......^^
_()_
종교는 인류의 정신적 산물이며, 따라서 내 것 네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함께 배워야 할 높은 가르침입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