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무의식을 미라클 수업을 통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정 박사님의 내적치유때와 이번 무의식 과제를 하면서 "나"를 집중하여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과제를 들여다보며 내 삶이 조각조각 찢어진 조각보같이 보여졌고, 그 조각보들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삐뚤빼뚤 구멍이 뚫린 천으로 연결되어있는것 처럼 보여 혼란스러웠고, 편하지 않은 한주간이었습니다.
내 삶의 깊은 상처의 부분을 들여다 보는것과 수면위로 떠올려보는것은 쉽지않았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에 대해 얘기할때 "뒷통수도 웃고있는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쾌활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속사람은 소속감을 갖기가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범한 관계들과는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며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지만, 친밀함을 유지해야하는 가까운 사이에선 늘 한발 뺀 소극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공통점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그부분이 제게 단절감과 외로움을 갖게합니다.
남편과 나, 가족과 나. 오랜 동료들과 나, 절친들과 나.
이들사이에서 저는 "언제가는 멀어질수도 있다"는 부정적 감정으로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런 밀당이 존재할수가 없는데, 왜그런감정으로 방어기재가 작동이 되는지..참 이해할수가 없을때가 많아요. 남편과도 건강한 관계로 안정감을 가질수가 없어서, 사소한 싸움에도 날이서고, "언젠가 날 떠나겠지"하는 생각도 하며 남편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티를 안내고, 늘 쿨한 사람처럼 굴기도 해요.
"당신없어도 난 슬프거나 외롭지 않아. 난 혼자서도 잘 살수있지. 당신 인생즐길시간을 내지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주지는 않는 아빠라니....아이들에게 친밀하게 굴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나중에 어떤 결말이 오든 당신이 받아들여야할꺼야" 실제 이런생각도하고, 남편에게 이런 말도 쏘아붙이게 되었어요. 소속되고 싶고, 위로받고싶고, 의지하고 싶은데..그렇게 말하지못하고, 오히려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일어나지도 않은 현실을 대비(?)하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며 살아왔어요.
결혼하면서 특히 불안정한 관계에 대한 혼란이 자주왔고, 그부분이 너무 힘들었어요. 남하고는 잘 지내지만 남편한테 사랑받지 못하는사람이라는 제 생각의 꼬리표가 절 주저앉히고, 미움으로, 절망으로, 때론 갈망으로 좌절할때가 많았답니다.
이번 무의식과제를 하면서 지금의 삶에서부터 뒤로뒤로 거슬러 올라가며 더듬어 기억을 해보는데,
어린시절 가족들과 분리된 제 모습이 보여요. 2살터울의 동생(16개월정도 차이)이 태어나는데 제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손에 맡겨 길러졌다고 시장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실제 저희 가족들은 그부분을 대놓고 이야기해본적은 없던것 같고, 초등학교시절에 할머니랑 시장에 가면 시장 할머니들께서 제게 하신 말씀들이 기억이 나요. "성격 참 드세서 애들 여럿 때리고 울렸어"라고 이야기 해주시고, 가끔 엄마가 손가락만 올라가면 애들 코피를 터트렸다던지, 손님 신발에만 그렇게 오줌을 싸더라던지, 그런 이야기를 하셨던 생각이 나는데, 그때 식구들에 둘러싸여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상황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저는 그런 어린시절이 생각나지 않아 듣고만 있는 모습이 생각났어요. 그때 그 어린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성격이 고약하니까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구나. 그러니 나는 분리가 되야지 라며 그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것 같아요.
이것이 제 첫번째 단절의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단절이 되니 나를 보호해줄 보호막은 없고, 내가 그리워하고 갈망하고 돌아가야할 집은 있지만 그곳에 갈수는 없는 내 집. 분명 내것인데 내것이 아닌 집. 내 부모님인데 나를 안아주지 않는 부모님.
누구도 내가 무엇을 먹고싶은지, 입고싶은지, 가고싶은지, 하고싶은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무엇을 먹고싶다고 먹을수 있었는지, 입고싶지만 입을수 있었는지, 가고싶지만 갈수는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싶지만 할수는 있었는지..그중 어떤것이 내가 누릴수 있고, 할수있었던 것인지 조금은 궁금해지는 어린시절이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우리는 늘 돈이 없이 궁핍했습니다. 밥을 굶고 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밥을 먹는것이 눈치가 보이는 삶을 살았어요.
빚이 많았거든요. 하는일마다 안풀리는 아빠는 늘 술을 드셨고, 술을 드시면 동네분들과 싸우셨고, 길거리에서 주무셔서 찾으러 가야할 날이 많았어요. 술드시고 오시면 저희들을 다 모이게 하셨고, 담배를 피우시면서 술주정을 아빠가 잠이 들때까지 하셨죠.
"너네 아빠한테 바라는게 뭐냐?"이 질문을 도돌이표 돌리듯 몇시간이고 하셨어요. 술을 안드시는날엔 꿀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는데 술만 드시면 폭군이 되셨죠. 저는 늘 "술"탓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질문을 하실때마다 술좀 그만드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수긍하실리 없으시죠. 한번도 "알았다"하신적이 없으셨고, 늘 "이건 아빠 기호식품이니까 너희들이 할말이 아니다"하시며 무얼 바라냐고 물어보시고는 바라는걸 알아주신적은 한번도 없으셨어요. 매번 술 드실때마다 새벽 2-3시까지 무릎꿇고 끝나지도 않을 청문회를 계속하고, 아침 첫차(6:30)를 타고 학교를 가야하는 일이 거의 매일이었어요.
그런 아빠의 무능이 싫었습니다. 빚져서 동네 사람들이 수근거리고,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자장면 하나 사먹기도 어려웠어요. 어쩌다 자장면 한번 사먹으러 나가려면 해진 후 밤늦게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나가야했어요.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빚은 안갚으면서 자장면 사먹으러 간다고하면 사람들이 욕한다"라고 하셨어요.
자장면 한그릇 먹는것도 참 절망적이었죠..(그래서 그런가 저는 자장면을 참 좋아해요. 결핍음식이라 그런가....^^;;)
엄마는 옆집 뒷집 이웃집 아줌마들에게 돈을 꾸러다니셨어야했고, 어쩌다 돈이 생기면 아빠는 빚을 갚는게 아니라 아빠의 존재감을 보여줘야하기때문에 이사람 저사람 불러 밥사먹이시고, 파티(?)기분을 내시고, 제대로 생활비도 안주셨던것 같아요
아빠한테 한번도 용돈을 받아본 기억이 없어요. 소풍간다고하면 엄마가 몰래몰래 돈을 쥐어주셨던 생각이 나요.
물질적으로 아빠에게 기대하거나 도움을 받은 일이 없어 늘 혼자 해결하거나, 일상적으로 늘 포기를 해야했어요
대학입학도 할아버지께서 등록금을 보태주셨는데 다행스럽게 장학생이 되어 전액 면제를 받아 부모님께 다 드렸고, 수능시험이후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 및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하루벌이살이처럼 일은 쉴수가 없었고, 그것은 부당한것도 참는 인내력 만렙 수준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남편이 생활비를 안줘도 살수가 있었고, 없이 사는게 익숙했으니 빈곤도 참을수가 있었고, 독박육아에, 집안일에, 직장생활을 해도 버는돈을 제게 하나도 쓰지않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쓰는데 보람을 느끼는..자기희생끝판왕의 자애로움이 있음에 자랑스러웠네요ㅜㅜ)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묻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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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그렇게 하셨나요?
충남도청 공무원으로 계셨었다면서요? 삼성물산에서 직장생활하셨었다면서요?
아빠 친구들은 다들 어디 대기업 임원, 도청 무슨 공무원으로 다 잘나가신다면서요?
나한테 도움받던 애들이라며 그렇게 친구분들 자랑하셨잖아요..
아빠는 조직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하셨던것 같다고, 그래서 미련없이 나왔다고.. 그러셨는데,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하셨나요?
가정을 지키시는건요? 아빠가 책임져야할 가족들의 목소리는 왜 안들어주셨나요..
살면서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요구사항이 없었으니까요..
무엇을 해주실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서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었던것같아요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보호받지 못한 경험이 지금 제가 결혼하고나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짓는데 어려움이 되더라고요
집짓는 법을 모르겠어서요. 그냥 그렇게 각자 알아서 살아와서 남편과 연합하는것이 연합이 아니라 패배하는 생각이 들어 늘 방어하고 살아왔던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빠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그삶이 녹록하지 않았을테니까요. 제가 지금 엄마가 되어보니 상황이 여의치않아 아이에게 충분한 지원을 못해줄때 그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다는걸 알아요. 외로우셨을테고, 연이은 사업 실패로 자신감은 떨어지고, 재기할 힘도, 재기할 돈도, 함께 힘을 보탤 주변 친구들도 남아있지 않은 그 배신감도 있으셨을거에요. 힘드셨을 마음이 느껴져요.
따뜻한 말한마디 못한 저도 용서를 구해요.
그리고 아빠에게도 이말씀을 전해요.
빌4:6 -7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수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빠가 메고있는 멍에를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하나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롬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저는 미라클수업을 통해 많은것을 회복해가고있어요.
나의 무의식을 꺼내보지 않았다면 늘 관계안에서 무너지는 저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제 저는 제가 새로운피조물이라는것을 알아요. 저는 다시 일어섰고, 다시 넘어지지 않기위해 말씀으로 제 팔과 다리, 온 몸과 마음에 힘을 채우고있어요. 이 복음을 아빠에게도 알려드리고싶어요. 하나님은 아빠를 너무 사랑하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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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과제를 하면서 많은 장수를 빼곡히 채워가는 나의 편지를 보면서 내안에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되었습니다. 아브라함정 박사님께서 수업전 기도해주실때 긍정적인 면이 보이는 제가 굉장히 어두운 무의식의 상처가 많을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앞으로 또 어떤 무의식의 편지를 쓰게될지, 장편이 될지 단편이 될지 궁금한 마음이 듭니다.
별거아니야, 그럴수도 있지뭐~하며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꽤나 복잡하게 꼬인 무의식의 실타래를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가며
상처에서 회복되고 치유과정을 통해 또한번 미라클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에미꼬 선교사님과 아브라함정 박사님을 통해 매 수업때마다 이렇게 좋은것을 배우고 발견하게 하시며 멘토가 되어주심이 참 즐겁습니다. In Jesus name!!!!
첫댓글 자매님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늘 자매님 곁에 계셨고 지금도 옆에 계십니다. 나를 채우는것은 사람이 환경이 재정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의 나의 갈급함을 채워주시고 풍성하게 해주십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한발 한발 나아가는 자매님..!! 축복합니다.!!
자매님의 유쾌함을 하나님이 아셔서 어센션에서 하나님이 유쾌하게 재밌게 보여주신다고 생각해요. 본연의 유쾌함을 다시 발하고 그 빛을 발해서 자매님 가정에 온전한 복음이 전해지고, 자매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따뜻한 밥한끼의 온정, 사랑을 알게되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언제나 자매님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이번 아웃리치 같이 준비해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