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
[경제 광장] 신용불량자와 ‘햇볕정책 ’
[경제, 사설/칼럼] 2002년 12월 05일 (목) 11:48
길 가는 사람 열 명 중에 한두 사람쯤은 어떤 방법으로든 남의 돈을 떼어먹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신용불량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금융환경이 이렇게 열악해서야 금융산업이 낙후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작 돈을 빌려야 할 기업이나 신용상태가 양호한 사람들은돈 빌리기가 쉽지 않다. 돈 떼어먹는 사람이나 불량기업들이 많으니 금융경색이나 금융시장 불안이 그치지 않는다.
한동안 과도한 기업부채 및 농가부채 등의 연체, 차환, 탕감이 반복되더니 마침내 IMF 외환위기를 겪게 됐다. 외환위기나 금융대란이 별것인가. 남의 돈 떼어먹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생기는 빚잔치일 뿐이다.
우리나라에 신용불량자들이 이렇게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의 능력이상으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거나 당초부터 빚 갚을 의사가 없는 경우이거나 신용불량자가 많아지면 금융불안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일차적 책임은 신용불량자에게 있다. 그러나 차입자의 신용도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확대해 온 금융기관이나 카드사들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급증하는 신용카드 연체율은 그 동안 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해 온 것이 원인이다.
그 밖에도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또 있다. 상환능력에 관계없이 항상 우량기업보다 부실기업을, 그리고 신용우량자보다 신용불량자들을 감싸면서 그들에게 선심 쓰고 금융 시스템을 결딴내 온 정치인들과 정책당국도 비판을 면치 못한다. 웬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빌린 돈을 제때 갚는 사람에 대한 보상은 없고 신용불량자들만 보호를 받는다. 신용 좋은 사람들은 봉이다. 이렇게 떼인 돈이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157조원이다.
최근에는 가계부채 및 신용카드 사용이 크게 늘면서 또다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다. 근래에 정부가 매년 신용불량자들을 사면해 주는데도불구하고 그 수는 계속 늘어난다. 2000년에는 ‘밀레니엄 대사면’이라고 해서 32만명의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했고 작년에도 고리사채로 피해를보는 신용불량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08만명의 신용불량 기록을 일괄 말소해 줬다.
그러나 신용사면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정부가 신용불량자의 전과기록을 말소한다고 해서 그들의 신용상태가 개선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잦은 사면은 차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만연케 하고 빚 갚으려는 의지를 약화시켜서 신용질서를 무너뜨린다.
최근에 신용불량자는 더욱 늘어나서 252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오죽했으면 정책당국이 관련통계 발표를 대선 이후로 연기하도록 종용했겠는가.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의 가계부채 및 신용카드 연체율의 급등이 또다시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지거나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개인들이 은행 대출이나 신용카드 대금을 갚지 못하고 무더기 파산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카드회사나 금융기관도 동반 부실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젊은층의 신용불량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우려감을 더해 준다. 신용불량자들의 모럴 해저드도 심해지고 있다. 상당수의 채무자들이 개인워크아웃 신청을 해서 빚 탕감을 받겠다고 떼를 쓴다. 차기정부가 들어서면 또다시 신용사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씀씀이를 줄여서 빚을 갚겠다는 의지는 아예 희박하다.
근본적으로 신용정보의 훼손은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린다. 금융기관의 건전경영도 어렵게 한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하는 정부가 신용기록 말소를 종용함으로써 금융 부실화를 촉진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신용불량자가 계속 늘어나고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재발하는 것도 신용정보의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기때문이다. 정부는 신용불량자들에게 선심 쓸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및 신용우량자도 보호해야 마땅하다. clee@yurim.skku.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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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