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명이나 되는 회원들이 다시 제주 올레 트레킹에 나섰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제주 바당은 제법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제주 바당은 잔잔할 때보다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드넓은 들에서 보는 지평선은 아스라하고, 깊은 바다는 옥빛으로 가득하다.
제주시로 올라가는 첫 올레인 12코스는 무릉2리에서 용수포구까지 17.5km를 걷는 길이다
무릉2리
애월읍 베니키아호텔에서 무릉2리까지 버스로 이동하였다
무릉2리는 제주도 서남쪽에 있는 중산간마을이다.
마을 입구는 절정을 맞이한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4.3위령비
제주 사람들의 마음 속에 4.3 사태는 큰 상처로 남아있다.
하루빨리 좋은 대책이 나와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무릉외갓집(1)
2009년 설립된 무릉외갓집은 농산물을 회원들에게 판매하는 마을기업이다
마을 농민들이 생산한 감귤, 메밀, 보리쌀, 감자, 마늘, 양파, 고사리 등을 판매한다.
참여 농가는 마을 전체 194농가 중 42농가라고 한다
무릉외갓집(2)
무릉외갓집의 사무실은 폐교를 활용하였다.
옛 운동장에 대형 간세 모형이 세워져 있었는데...오색찬란하다
제주어교실
제주 토속어는 우리가 보존해야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육지에서 고립되었던 지역의 특성상 독특한 언어가 전해 내려온다
느영 나영 두리둥실 소랑호게 마씸...너하고 나하고 두리둥실 사랑하자
평지교회
마을이 평평해서 평지라고 한다.
평지교회는 지난 1987년 6월 가정집을 임대해 ‘무릉2리교회’ 란 이름으로 창립됐다.
개척 당시 지역에 처음 들어서는 교회에 대한 반감으로 주민들의 불신과 핍박도 상당했다고 한다.
취나물 수확
밭에서는 제주 여인들이 취나물을 수확하고 있었다.
육지와는 달리 취나물의 키가 커서 낫으로 베고 있었다.
신도생태연못
철새들이 찾아와 추운 겨울을 지내는 자연습지라고 한다.
둑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습지 주변과 물길을 정비해 놓았다
물속에서는 계절을 망각한 철새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녹남봉(표고 100m)
산정에 원형 분화구가 있는 오름이다.
과거 이 오름에 녹나무가 많아서 녹남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4.3사태를 전후한 시기에 불에 탔거나 벌채가 되어 지금은 녹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녹남봉 정상
원형 분화구 안의 화구원에는 삼나무로 울타리를 둘러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농포제를 지냈다고 한다.
일본군 진지
녹남봉 아래에도 일본군 진지가 남아있다.
우리의 땅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그들의 만행에 화가 난다
산경도예(1)
폐교에서 도예관으로 변신한 '산경도예'가 나타났다.
생활 도자기를 전시, 판매하며 지역주민들을 위한 체험학습도 하는 곳이다
내부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지만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어 고마웠다
산경도예(2)
'산경도예'의 앞마당에는 다양한 설치작품들이 있었다.
멋진 여인들이 퇴색해가는 작품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점심식사를 오후 1시로 예약했기에 이곳에서 오래오래 쉬어 갔다.
고인옥할망집
'할망숙소’는 혼자 지내는 노인들의 집의 방 한두 칸을 내어주는 제주형 숙박업소다.
제주올레길 초창기인 지난 2009년에 ‘할망민박’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그러나 숙박업소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남에 따라 점차 여행객들의 방문이 줄어들었다.
올레길 할망숙소
할망숙소는 제주올레길 초창기에 8개를 지정하였다.
할망숙소는 정이 넘치는 분위기가 좋아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젠 여행객들이 편하고 멋진 곳을 찾고 있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소리쳐 우는 바다
길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소리쳐 울고 있는 바다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두 친구를 데리고 온 바르바라의 예쁜 마음이 빛난다
도구리
신도포구의 도구리는 용암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도구리는 동그랗게 파놓은 형태의 말이나 소 또는 돼지의 먹이통을 말한다
도구리 안의 원형 바닷물은 장관을 이루며, 그 안에는 휩쓸려온 물고기들이 살기도 한다
그대와 나
등반대장과 리따가 거센 바람에 맞서고 있다
싫은 소리, 잔소리를 해도 묵묵히 걸어가는 대장이 존경스럽다
아랫단에 쌓은 크고 묵직한 돌이 대장의 듬직한 가슴을 닮아있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기쁨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인생이란 다 바람이라오..............................................................법정 <스스로 행복하라> 부분
신도리 어촌계식당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신도리어촌계식당에 도착하였다
예약한 시간보다 1시간을 빨리 왔는데 밥을 줘서 얼마나 고맙던지...
생선구이, 제육볶음, 오이무침, 어묵, 미역국....올레족들에게 강추하는 식당이다(백반 11,000원)
수월봉 가는 길
수월봉으로 오르는 길가엔 무우들이 제멋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상야릇한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무우가 눈에 띄었다
여자와 무우의 공통점....바람들면 아무짝에도 쓰지 못한다 ㅎㅎ
수월봉(표고 77m)
높이 77m의 수월봉은 작은 언덕 형태의 오름이다.
수월봉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육각정인 수월정이 있다.
수월정 옆으로는 고산기상대가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 남서해안 최서단에 있는 기상대로서 거의 모든 기상관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세계지질공원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다양한 화산 퇴적구조가 화산학 연구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서안 일대는 1.5 km의 절벽이 병풍을 두른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아름다워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녹고물
수월봉 절벽은 ‘녹고물’이라는 약수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먼 옛날 수월이와 녹고라는 남매가 아픈 홀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러 수월봉에 올랐다
그런데 여동생 수월이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다.
동생을 잃은 슬픔에 녹고는 17일 동안 울었는데, 이 녹고의 눈물이 바로 녹고물이라는 전설이다.
자구내포구
차귀도와 와도를 앞에 두고 움푹 들어간 만에 형성된 포구이다.
한적한 한경면의 작은 어촌마을이지만 아름다운 낙조가 유명하다.
특히 오징어 말리는 풍경은 해안 마을의 낭만을 더해준다.
당산봉(堂山峰 148m)
원래 이름은 당오름이다.
당(堂)’이란 신당(神堂)을 뜻하는 말이다.
정상에서 보는 차귀도의 정경이 가장 멋지다
차귀도가 보인다
차귀도는 제주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자구내 마을에서 배로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다.
죽도, 지실이섬, 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재작년 가을에 차귀도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아나온 기억이 새롭다
생이기정길
제주말로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을 뜻한다.
생이기정 바당길은 새가 살고 있는 절벽 바닷길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 철새의 낙원으로 가마우지, 재갈매기, 갈매기 등이 떼지어 산다.
용수성지(1)
우리나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귀국하던 길에 표류하다 도착한 곳이다
성지 내에 있는 기념성당은 해안 순례길을 향해 서 있다.
성당 정면은 김대건 신부의 서품식이 거행된 중국 상하이 진자샹(金家巷)성당 정면 모습과 같다
성당 옆에는 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과 복원된 라파엘호가 있었다.
용수성지(2)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일행 13명과 같은 달 31일 라파엘호에 올라 조선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센 폭풍우에 휩쓸려 용수리 해안에 표착, 이곳에서 고국 땅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이처럼 거룩한 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은총을 체험하였다.
용수성지(3)
제주교구는 2006년 표착 기념관을, 2008년 기념성당을 봉헌했다
성당의 좌우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 일행이 거센 파도와 싸우는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첫댓글 어쩜 이렇게 글도 잘쓰고 사진도 잘 찍고 항상 수고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