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날 에워싸고

[수명산]

낙동정맥 종주 17구간(산줄기 178일째)

일 자 : 2003년 8월 26일

구 간 : 추령∼ 한티재 ∼ 길등재 ∼ 650봉(능선분기점)

날 씨 : 흐림

도상거리 : 11.7km

추령(임도) - 6.5 - 한티재(88번국도) - 2.7 - 길등재 - 1 - 612.1봉 - 1.5 - 650봉(능선분기점)

산행시간 : 4시간 30분(접속:40분, 휴식시간 포함)

산이 날 에워싸고

영양군은 예로부터 충의열사와 문인들이 배출된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며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한 청정지역이다. 특산물로는 고추, 사과, 담배, 더덕, 천궁, 천마, 어수리와 곰취나물 등이 유명한데, 특히 영양고추는 산간고랭지 기후와 토양의 특성으로 매운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져 전국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박목월님은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12시 30분 추령이다. 고갯마루엔 초막의 쉼터가 정겹다. 이정표에는 북동 방향으로 6.6km의 한티재를 가리킨다. 우측으로 수비면 오기리에 자리잡고 있는 오기저수지가 1km 지점에 있다. 통나무계단을 잠시 오르니 완만한 정맥길이 마중 나온다.

파헤쳐져 있는 평해황씨묘지를 통과한다. 영양군 구간으로 들어서면서 잘 정비되어 있는 정맥길을 만날 수 있었는데 오직 한군데뿐인 영양군만이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우리의 산줄기를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고마울 다름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담당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다.

오름길에는 여름을 보내기 아쉬워 울부짖는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요란하다. 억새풀이 가득한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능선마루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간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식물들의 이름표가 눈길을 끈다.

12시 41분 헬기장이다. 완만한 정맥길은 참나무숲길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트기가 굉음을 지르며 나르고 있다. 다시 완만한 오름길은 밋밋한 봉에 오르면서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팍 꺾으며 간다. 선답자들의 흔적도 많이 있고 정맥길은 너무나 선명하다. 북동방향이다.

군데군데 식물들의 이름표가 눈길을 끄는데 글이 잘 보이지가 않아 조금은 아쉽다. 능선마루에 올라 왼쪽으로 간다. 물박달나무다. 물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며 산지의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높이는 20m에 달하고, 나무 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 또는 회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벗겨진다. 다시 작은 오름 뒤에 만나는 능선마루에서 왼쪽이다. 완만한 내림길,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는 안부(12:50)...

12시 53분 청주한씨 묘지를 만나면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참나무숲길로 들어선다. 한차례 정맥에서 소란을 피우는 매미 떼들, 나무들의 이름표가 연이어 나타난다. 1분 뒤 만나는 이정표(한티재: 5.1km), 통나무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완만하게 이어가면서 우측으로 장송숲이 펼쳐진다. 소나무는 솔·솔나무·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 송(松)·적송(赤松)·송목·송수·청송이라 한다. 특히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의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에서 나는 중곰솔(춘양목)은 재질이 우수하여 가구재, 생활용품, 농기구재 등으로 이용되었다. 서서히 내리막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뀌고, 푸른 이끼로 가득한 바위지대의 봉(13:01)을 통과한다.

13시 03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며 이어가는 정맥길에 나타나는 낙엽송군락,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지났으니 서늘한 바람도 불어주련만 능선에는 바람 한 점 찾아볼 수가 없다. 안부에서 이어지는 정맥길은 능선길이 뚫리지 않아 우회길을 따라야 한다. 능선마루에 올라 우회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잣나무 숲을 뚫고 내려선다.

13시 10분 우천재(496m)에 내려선다. 우측으로 평화롭게 내려다보이는 우천마을, 고추밭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영양군의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색을 지니고 있어 타지역에 비해 강우량이 적고 무상기간(늦봄의 마지막 늦서리가 온 때부터, 초가을의 첫서리 내릴 때까지)이 비교적 길어 고추재배 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또 고추개화 결실기에 주야 온도교차가 11.3℃로 크고 일조시간이 길며, 강우량도 적당하여 재배지 여건으로서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주위를 둘러보니 밭마다 누렇게 시들어 가는 고추농사가 흉년이라 마음이 아프다. 따가운 햇볕이 필요한데 하루건너 비라니...

정맥은 밭 사이 길로 오름길이 가팔라진다. 묘지를 지나 가파름이 멈추면서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무명봉에 오르고 다시 완만한 정맥길에는 이름표를 얻은 미나리과의 궁궁이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궁궁이는 산골짜기 냇가에서 주로 자란다. 높이 80∼150cm 정도의 식물로 깃꼴겹잎으로 잎자루가 길고 삼각형 또는 세모진 넓은 달걀 모양이며, 3개씩 3∼4회 갈라진다. 흙무덤을 지나 이름표 덕에 살아남은 고사리도 만날 수 있다.

물푸레나무와 인사를 나누며 계속되는 가파른 오름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운동부족인가 보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는 종전처럼 열심히 수명산을 달려야 할 것 같다. 묘지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한차례 더 오름길이 이어진다. 아름드리 적송들이 능선을 메우고 있다.

13시 27분 한차례 가파르게 무명봉에 오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완만하게 이어간다. 춘천 부부팀의 리본은 언제나 정다워 보인다. 특히 다른 정맥에 비해 색이 바래지 않은 빨간색의 리본이 앞서간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1분 정도 내려서니 안부, 여기서 잠시 허기를 메운다.

낙엽송군락을 따라 능선분기점에 올라 정맥은 오른쪽(동북)으로 팍 꺾으며 간다. 이름모를 분홍색의 야생화군락이 마치 특공대를 위해 곱게 피어있는 듯하다. 다시 봉에 올라 왼쪽으로 간다. 굴참나무 이름표, 영양군에서 부착한 표지리본은 언제나 반갑다.

13시 44분 우측으로 독립가옥이 보이는 안부에서 오름길이 시작된다. 3분 뒤 만나는 이정표(추령:2.3km)와 박목월님의 시 '산이 날 에워싸고', 내림길이 가팔라지기 시작되지만 이내 완만한 능선길로 바뀐다. 오른쪽으로 팍 꺾이는 지점이다. 우측으로 물웅덩이가 정맥에 자리잡고 있다.

오름길이 가파르다. 아름드리 소나무마다 상처가 오늘따라 더욱 마음 아프다. 다시 쉼터를 만나면서 김소월님의 '삼수갑산'이란 시 한 구절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삽수갑산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崎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

능선분기점에 오르고 왼쪽으로 다시 팍 꺾으며 이어간다. 수직에 가까운 내림길에 이어 평탄한 좁은 날등의 능선길로 이다. 양주동님의 '산길'이란 시가 적혀있는 쉼터에는 또 하나의 상처를 입은 소나무가 서있다. "산길을 간다, 말 없이 호울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히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 없이 밤에 호올로 산길을 간다..."

13:59분 이정표를 확인하니 어느새 추령에서 5km를 달려왔음을 알 수가 있다. 다시 한차례 가파르게 떨어지는 정맥길에서 서둘러 내려서다가 땅 한 평을 사고나니 엉덩이가 얼얼하다. 조심해야지 꿈을 이룰 때까지 더욱 조심하자.

마을과 도로가 시야에 들어오고 완만한 오르내림 길에는 정맥의 꽃들이 여기저기 활짝 피어 특공대를 보내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길을 끄는 봉에서 내리막길에 만나는 작은 낙엽송지대, 밋밋한 묘지를 지날 무렵 또 하나의 멋진 소나무는 역시 줄기에 상처가 보인다. 2기의 흙무덤 중 안동김씨 묘지는 예전 한자리를 한뜻 하다.

흙무덤이 있는 봉에 올랐다가 다시 한차례 올라선 묘지가 있는 봉(14:14)에서 왼쪽으로 정맥은 이어간다. 한티재 07.km를 가리키는 이정표(14:17)를 뒤로 작은 오르내림으로 이어간다. 몇 개 오르내리다 보니 드디어 한티재가 보인다. 박원태님이 이끄는 종로구청 정맥팀의 리본하나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14시 27분 해발 430m의 한티재다. 영양군에서 제작한 낙동정맥 2구간 대형지도가 서있다. 88번 도로인 한티재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한다. 수비면 계리에 있는 큰 재인 한티재는 임란시 의병과 왜군이 이 골짜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바 있어, 지금도 비만 오면 핏물이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고 통로의 반석 위에는 많은 말발굽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고 한다.

14시 41분 한티재를 뒤로 잣나무 묘목단지를 끼고 정맥은 이어간다. 아직 영양군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듯 잘 정리된 정맥길은 마치 산책로를 걷는 것처럼 부드럽다. 오솔길을 따라 굴곡 없는 오르내림이 한동안 이어진다. 좌측으로 간벌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는 능선길엔 매미들의 합창소리를 요란하다.

십자로안부를 가로지른다. 커다란 흙무덤을 통과한다. 주고 받는 이야기로 무료함을 달래는 특공대원들, 잠시 봉에 올라서니 한티재로 오르는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연이어 올라선 능선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벌목지대를 끼고 간다. 벌목지대에는 어린 소나무묘목이 자라고 있다.

오름길에 만나는 하늘을 치솟은 낙엽송군락 그리고 장송숲, 우측은 벌목지대가 계속 따르고 있다. 날씨는 흐려 있지만 하늘은 군데군데 파란 물감을 칠해놓는다. 오르내림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능선분기점(15:09)에서 오른쪽을 팍 꺾으며 가파르게 떨어진다. 오름길은 땀방울로 얼굴을 적시고, 매미들은 힘을 내라 힘을 내라 마구 울러댄다.

무명봉에 올라 이어가는 완만한 능선길이 그런 대로 여유가 있다. 정맥은 다시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우측으로 여전히 벌목지대가 내려다보이고 능선날등에 올라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며 간다. 우회길을 따르다가 임도에 내려선다.

15시 31분 여기가 길등재다. 20분의 휴식시간, 오늘은 생각보다 조금은 여유가 있어 쉬는 시간이 길어진다. 길등재를 뒤로 오름길에는 야생화 군락이 아름답다. 오늘 내내 그림을 선사하는 야생화의 이름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며느리밥풀?...

밋밋한 묘지를 통과한다.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으로 선명한 능선길을 따른다. 안부를 가로지른다.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밋밋한 봉우리에 올랐다가 이어가는 정맥길엔 낙엽송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완만한 오름길에는 간벌한 나무들이 그대로 버려져 있고, 한차례 가파르게 봉에 올라 왼쪽으로 간다.

삼거리 능선분기점에서 직진하고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정맥은 이어간다. 한차례 가파르게 봉(16:23)에 오르니 조그만 공터에 베어낸 나무들이 어지럽다 여기가 612.1봉인가? 하산지점은 헬기장이 있는 621.1봉에서 오른쪽으로 탈출하기로 했는데...

헬기장, 좀 더 진행해 본다. 어딘가에 헬기장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나타나야 할 헬기장은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봉을 하나 약간 우회하며 이어가는 정맥길, 고목 한 그루가 눈길을 끄는 봉우리, 고도는 어느새 650m을 가리키고 있다. 전방에는 850.5봉의 산줄기가 높아만 보인다. 헬기장은 어디에 있을까? 지나 온 공터를 헬기장으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한동안 오르내림으로 이어가다가 되돌아서기도 그렇고 탈출로를 찾아본다. 걸음을 멈춘 지 어느새 20여분이 훌쩍 지나버린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 고도 650m를 가리키는 봉이다. 능선분기점이다. 오른쪽으로 한동안 비탈길을 내려서니 방죽이 보인다. 임도까지 내려서기가 만만치가 않다. 결국 탈출은 했지만 정상적인 탈출로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17시 40분 방죽을 끼고 임도에 내려선다. 화랑곡이다. 화랑곡은 수비면 발리에 있는 골짜기로 산세가 아름답고 물이 좋은 곳이어서 신라 시대 화랑들이 수련하던 곳으로 알려져 '화랑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다음구간 어프로치를 걱정하며 차에 오른다.

[소그미]

남자분도 그렇지만, 여자분도 참 대단하십니다. 비실이 부부의 여자분도 그렇고요. 그래도 남자보다 구력이 조금 딸릴 터인데, 같이 이동, 기동하시기에 조금 불편함은 없으신지요? 화장실 문제도 있고. 물론 잘 걷는 분도 많습니다만….. 산을 타고 있는 여자분들. 지난 토요일에 전철에서 만난 분도 그렇고. 참 대단한 분들 많습니다 즐감하고 있습니다.

[수명산]

정맥을 같이한 여자분은 부부 팀인데 남편보다도 더 잘 걸었지요. 빠지지도 않고 정맥을 하다보면 모두 같은 방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아쩔수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단지 코쟁이와 안코쟁이를 구분해서 많이 방을 배정했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