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1,850㎡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1층 구조를 보면 몇 개의 방은 공간이 매우 협소해 1~2명이 사용하였거나 취조실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와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였다.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의 참상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철원 노동당사 [鐵原勞動黨舍] (두산백과)
코로나로 인해 민통선 안에 있는 백마고지는 가지 못하고 전망대에 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1952년 10월 6일 저녁 장융후이[江擁輝]가 지휘한 중국 인민지원군은 제38군단의 6개 연대에 지원부대병력을 합하여 총병력 4만 4,056명을 이끌고 철원 서북방 395고지를 공격했다. 국군은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 병력 2만 명에 국군 제51·52·53포병 대대, 국군 제53전차중대, 미군 제214자주포병대대, 미군 제955중포병대대, 미군 제73전차대대 등의 지원을 받아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9일 동안 12번의 공방전 끝에 중공군은 1만여 명, 국군은 약 3,500명의 사상자를 냈고 10월 15일 오전에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네이버 지식백과]백마고지전투 [白馬高地戰鬪] (두산백과)
백마고지 전망대에서 만난 인근 묘장초등학교 교장선생님 - 주변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학교까지 초대해 주셔서 차 한잔 대접받는 호사를 누렸다. 조만간 다시 가볼 예정이다.
첫댓글 이 아픈역사를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데.......
아픈 역사의 현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