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보와 사신
집필자 조희웅(曺喜雄)
정의
무식한 떡보가 중국의 대학자와 수화로써 대결하여 물리친다는 형식담 성격의 설화.
역사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야기의 기원지는 오리엔트 지역이라 추정되는데,
아라비아어로 쓰여진 <40인의 대신>(버튼이 영역한 『천일야화(千一夜話)』에 포함)이란 이야기 속에
기독교 수도사와 회교 수도승이 국왕 옆에서 문답하는 내용으로 나타나고,
또 아라비아의 이븐ㆍ하씸의 작품 속에도 회교국 대사와 그리스의 왕자가 문답하는 내용으로 나타난다.
유럽 최초의 기록으로는 15세기 전반 이탈리아의 승정 앙ㆍ루이스의 <좋은 연서> 중에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이어 16세기에는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의 명저 <팡타그뤼엘 이야기> 중에도
영국인이 수화로 논쟁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7세기 중엽의 중국 문헌인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비롯하여,
이를 번역하여 수록한 11세기 일본의 『금석물어(今昔物語)』,
그리고 12세기 말 내지 13세기 초의 일본 문헌인 『우치습유물어(宇治拾遺物語)』 등에
수록되어 있는 자료들이 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자료가 늦게 채록된 탓이겠지만
시기적으로 훨씬 늦은 17세기 초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비로소 보인다.
그리고 19세기 이후의 문헌으로 보이는 『이언총림(俚諺叢林)』에도 수록되어 있고,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는 임꺽정의 처남 황천왕둥이가
이방의 사위 취재(取才)에 응하는 데에 이 설화가 차용되고 있다.
줄거리
이웃 나라에서 조선의 인재를 시험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우리 나라 조정에서는 사신을 맞이할 인물을 찾던 끝에 전국에서 인재를 모집했다.
합당한 인물이 없어 근심하는데, 떡을 매우 좋아하는 떡보가 떡이나 한번 실컷 먹어보려고 자원하였다.
떡보는 뱃사공이 되어 압록강을 건너려는 이웃 나라 사신을 만났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수화로 대화하였다.
먼저 이웃 나라 사신은 ‘하늘이 둥글다’는 뜻으로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내보였다.
떡보는 동그란 떡을 먹었느냐고 묻는 줄로 알고
자기는 네모난 떡을 먹었다는 뜻으로 손가락을 네모나게 하여 보였다.
이것을 사신은 ‘땅은 네모지다’고 대꾸한 줄로 알았다.
사신이 다시 ‘삼강(三綱)을 아느냐?’는 뜻으로 세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떡보는 세 개를 먹었느냐고 묻는 줄로 알고 다섯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다섯 개라고 하니,
사신은 떡보가 ‘오륜(五倫)까지 안다’고 답한 줄로 알았다.
사신이 이번엔 수염을 쓰다듬으며 ‘염제(炎帝[髥帝])를 아느냐?’라고 물어
떡보는 ‘배부르게 먹었다’란 뜻으로 배를 쓰다듬었는데,
사신은 ‘복희(腹羲[伏羲])까지 안다’라고 답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웃 나라 사신은 “이 나라에는 천한 사람까지도 학식이 저와 같으니,
다른 인물과는 겨룰 수가 없겠다.”라고 탄복하며 돌아갔다. 나라에서 떡보에게 큰상을 내렸다.
분석
이 유형은 이제까지 <떡보와 사신>을 비롯하여
<사신 간의 수화[手問答]>ㆍ<중국 사신을 이긴 떡보>ㆍ<중국 사신과의 문장 겨루기> 등의 이름으로
채록 보고된 바 있다.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떡보’와 ‘사신’이란 점에서 <떡보와 사신>이란 명칭이 좋겠다.
이 유형 설화의 이본들은 대체로 중국인이 조선인의 역량을 시험해 보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이에 맞서기 위한 인재 모집이 시도되고,
적격자로 양반 학자가 아닌 무식한 상민(常民)이 뽑힌다.
상민과 대결하게 된 대학자 사신은 언어불통한 탓에 수화로 대화하려 하나,
결과적으로는 양측 모두 엉뚱한 오해로 대결을 끝낸다.
특징
우리나라 이야기들의 특징으로는 우선 대화자가 중국인과 한국인으로 설정되어
각각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여 대결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질문자와 응답자가 주고받는 수화에서
질문자는 ‘천원지방(天圓地方)’ㆍ‘삼강오륜’ㆍ‘염제복희’로 말하지만,
응답자는 ‘네모진 떡’ㆍ‘다섯 개’ㆍ‘배가 부르다’로 대답하여 서로 오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양측의 오해는 다른 나라의 유형들에서도 똑같이 일어나지만,
질의응답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보인다.
가령 ‘염제’가 ‘수염[髥]’으로, ‘복희’가 ‘배[腹]’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한국어 사용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유형의 설화들에서 두 사람의 대결이 대체로 세 번으로 끝난다는 점은
국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의의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젖었던 과거 상층 지배 계급은 종종 중국을 대국시한 나머지
‘중국 땅’, ‘중국 천자’, ‘중국 사신’ 대신에 ‘대국 땅’, ‘대국 천자’, ‘대국 사신’으로 불러
스스로를 비하(卑下)하였다.
그러나 <떡보와 사신>의 창작자인 민중들은 중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식자층의 복종에 반발해,
이 설화를 통하여 ‘대국인’의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 놓는 ‘소국인’을 서술함으로써,
민족의 역량과 자긍심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다시 말하면, <떡보와 사신>은 민중들의 주체 의식의 발로이자 저항 정신의 표현이며,
이 설화를 통하여 우리는 지배층의 무력감을 뛰어넘는 민중의 승리를 엿볼 수가 있다.
출처
於于野譚, 조선동화대집(심의린, 한성도서주식회사, 1926), 조선민담집(손진태, 향토연구사, 1930),
조선전래동화집(박영만, 학예사, 1940),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1-1, 774; 1-4, 87; 1-4, 783.
참고문헌
떡보와 사신 설화(AT 921) 소고(조희웅, 한국고전산문연구, 동화문화사, 1981),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손진태, 을유문화사, 1947),
The Types of Folktale. FFC No. 184(S. Thompson, Helsinki: Suomalainen Tiedeakatemia, Academia Scientiarum Fennica, 1964).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