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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추억의 낚시)
(어린 시절 낚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낚시를 무척 좋아했다
강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외삼춘을 따라다니면서 집 근처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서 자연스럽게 낚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철둑 길에 흔하게 자라는 싸리나무를 꺾어서 낚싯대를 만들고
낚시 바늘만 사다가 나이론 줄로 된 빨래 줄에서 한 꺼플만 벗겨내면 낚시줄이 된다
나이론 줄로 낚시 바늘을 묶고 수수깡 껍질을 벗겨서 우끼를 만들고
싸리나무에 묶으면 채비는 끝난다
낚시 미끼로는 식은 보리밥 알이나 두엄탕을 헤집어서 지렁이를 잡아서 사용한다
나는 어린 시절 혼자서도 큰 저수지에 가서
낚시 바늘에 보리밥 알이나 지렁이를 끼워서 저수지에 던지면
순식간에 붕어 떼가 몰려와 낚시 바늘을 물고 들어 간다
고기가 많지 않은 날은 된장 덩어리를 던져주면 고기가 많이 몰려든다
나는 이런 식으로 고기를 낚아서 세수 대야에 붕어를 많이 잡아오곤 했다
어떤 날은 스물두강다리 가기 전 길쭉한 둠벙에서 가물치를 잡을 때도 있다
가물치는 봄철 산란기 때 날씨가 따스해지면 물위로 떠오르는데
작은 개구리를 잡아서 죽지 않도록 낚시 바늘로 개구리 등 부위를 살짝 걸쳐서
가물치가 있는 곳으로 던지면 가물치가 와서 덥썩 물어버린다
가물치가 낚시 바늘을 물고 들어가 버리면 워낙 힘이 세서 손맛이 장난이 아니다
대형 가물치를 보고 큰 개구리를 미끼로 해서 낚시줄을 던져 버리면
대형 가물치가 쫓아와 개구리를 물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차고 들어가는데
낚시줄을 손으로 잡아 당길 때 얼굴에는 혈압이 올라가 핏기가 서리고
가슴은 콩당콩당 거릴 때도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방학 때가 되면 집 근처 여러 군데의 큰 저수지와
금강 물줄기가 흐르는 미호천 강가 버드나무 아래서 가늘고 긴 대나무를 꺾어다가
낚싯대를 만들어 낚시를 즐기곤 하였다
가을철 살이 오른 대형 잉어가 물려 한판 씨름을 할 때는 온갖 근심과 걱정거리는
한 순간에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어린시절에는 바느질하는 실에 낚시바늘을 묶고 수수깡 껍질을 까서 우끼를 만든 다음
반듯한 싸리나무를 꺾어서 낚싯대를 만들어
저수지에 가서 된장을 던져 물고기가 모이면 바늘에 식은 보리밥 알을 꿰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도 물고기를 많이 잡아 올리곤 했는데
지금은 물고기도 약아서 그렇게 하면 한 마리도 못 잡는다
낚시도구가 첨단화 지능화 될수록 물고기도 생존을 위해서 진화하는 모양이다
요즘은 아무리 낚시도구가 첨단화 되어도 예전만큼은 고기가 물지 않는다
(직장생활 시절 낚시)
그 이후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닐 때도 나는 차량 트렁크에 민물낚시 장비를
항상 싣고 다니면서 주말이면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즐기곤 했다
밤낚시를 하다 보면 물새 우는 소리 각종 벌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가 너무 좋고
조용하고 고요한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속삭이며 유리같은 물가로 내려앉는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 되면 호수가에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장관을 이룬다
시인이라면 멋진 시 한 수를 탄생시키고도 남을 것 같다
가끔씩 동이 틀 무렵이면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잉어나 월척붕어 같은 대물이 낚싯대를 끌고 들어가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긴 시간 고기가 물지 않다가 희한하게도 잠시 자리만 비우면 꼭 이럴 때 큰 물고기가 입질을 한다
충북 음성군과 괴산군 쪽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정말로 많이 있어서
낚시를 다니기가 너무 좋은 곳이다
월척 붕어 말고도 잉어 메기 가물치 장어 향어 등 대물급 물고기가 걸려들면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큰 물고기 못지 않게 힘이 좋아서 낚아올릴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짜릿해진다
특히 이른 봄철 산란기 때 호숫가 버드나무 아래서 밤낚시를 하다가 날이 새면
물가 수초 여기저기에서 대형 물고기들이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물위로 튀어오르는 모습도
수초 사이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힘차게 휘젓고 다니는 모습도 멋있다
산란기에는 낚시를 하면 안 되지만 물고기들이 워낙 식욕이 왕성해서
큰 물고기들 손맛을 보는데는 최고다
나는 오랜 세월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모두 해봤는데
나이 70이 넘은 지금 생각해보면
조용한 호수가에 혼자 앉아서 밤하늘에 반짝이며 속삭이는 수많은 별들을 벗삼아
밤낚시를 할 때가
가장 진정한 낚시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고기는 잡히지 않아도 꾹 참고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의 속 깊은 마음도 알 것만 같다
(은퇴 후 낚시)
IMF로 직장을 은퇴하고 부산에 내려와서는 주로 바다낚시를 즐겼다
나는 전문가들처럼 대물만 노리거나 고급 어종만 노리는 낚시가 아니라
어종에 관계없이 아무 고기라도 많이 잡히면 좋아하는 생활낚시를 즐겼다
친구들과 낚시를 가면 언제나 초장 상추 깻잎 도마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고기를 잡으면 즉석에서 회를 떠서 막걸리와 즐기는 편이다
바다낚시와 민물낚시의 차이점은 바다낚시는 선상이나 갯바위에서 동료들과 함께
바로 회를 떠서 즐겨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물낚시는 주로 조용하게 혼자 다녔는데 바다낚시는 주로 회원들과 여럿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시끄럽기도 하고 낚시가 끝나고 돌아올 때는 생선회와 술을 먹게 된다
예전에는 코펠과 버너를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즉석 매운탕도 많이 끓여먹었다
지금도 생선회를 먹고 싶을 때는 동백섬 이기대 오륙도 기장 진해 고성 사천
거제도 통영 등등 당일치기로 낚시를 다녀오기도 하며
가끔씩 흑산도 홍도 서해안이나 동해안 같이 아주 먼 거리 낚시를 하는 경우에는
숙박을 하면서 다녀 온 적도 있었다
나는 주로 생활 낚시를 즐기기 때문에 대부분 당일 치기 낚시를 하는 편이다
2007년도에는 바다 낚시가 너무 좋아서 혼자서 욕지도에 가서
빈 집을 얻어서 무려 3개월간을 혼자 살면서 낚시를 한 적이 있었다
빨간등대 근처에서 진짜로 하루에 감성돔을 40마리나 잡은 적도 있었고
목과에서는 66cm급 참돔을 잡은 적도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 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여러 군데 방파제를 다니다 보면
낚시 여행객이 취해서 빠뜨리고 간 고급 낚싯대와 릴을 비롯해서
일부러 버리고 간 싸구려 낚싯대를 여러 차례 회수한 적도 있었다
삼겹살 초장 고추장 낚시 잇감 등 거의 쓰지 못하고 남은 것들은 그 자리에 두고
그냥 떠난 낚싯꾼도 많아서 살림에 보탬이 된 적도 있었다
처음 욕지도에 배를 타고 들어오는 낚시 관광객들에게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현지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들이 돌아갈 때는 먹고 남은 고기를 비롯해서 식자재들이 남아돌자 모두 나에게 주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노후에 아름다운 욕지도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려고 욕지도 부지를 물색하던 중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과 텃새가 너무 심해서 땅 매입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시골에 빈 집이 많아져서 농촌으로 들어가 살고 싶어도
시골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외지인이 오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제도 해금강 낚시)
과거 바다낚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바로 이맘 때 있었던 일이다
매년 구정이 지나고 2월 초가 되면
낚시 동호회에서 거제도 해금강으로 낚시를 다녀오곤 했었다
시기적으로는 구정이 지난 직후라서 날씨가 엄청 추웠다
그 당시에는 거가대교가 없던 시절이라서 부산에서 거제도를 가려면
통영으로 가서 통영대교를 지나야 하므로 거의 3시간이나 걸리던 때였다
새벽 2시에 기상하여 낚시점포에 낚시 회원들이 모이면
각자 챙겨온 낚시 장비를 봉고차에 차곡차곡 싣는다
보통 10~12명 정도가 출발하는데 그 당시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추워서
방한복으로 완전 중무장을 하고 봉고차에 오르면 새벽2시 반경에 출발한다
새벽 5시 반쯤 되면 구조라항에 도착하여 선장 집으로 잠시 들어가
시락국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모든 짐들을 배에 싣고
오전 6시에 구조라항을 출항한다
해금강을 향해서 배가 출항하면 벌써부터 회원들은 낚시 채비를 서두른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해금강에서 잡히는 어종은 대형 우럭과 볼락과 열기라고 하는 고기가 대부분이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둠이 가시고 목적지인 해금강에 도착하면 날이 서서히 밝아온다
해금강에 도착하면 닻을 내리고 배를 정박 시킨 다음
물살이 세기 때문에 낚시꾼 일행 전원은 반드시 선장의 지시에 따라 똑같이 움직여야만
낚시 줄이 엉키지 않는다
낚시 바늘은 카드라고 하는데 카드 한 개를 풀면 보통 가짜 미끼가 달린 바늘이
10개 정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다
벌써 수십년 전 일이라 기억은 안 나는데 카드바늘은 15호쯤 되는 것 같았다
물살이 워낙 세기 때문에 낚시 바늘을 수직으로 내리려면 50호나 되는 무거운 봉돌을
낚시 바늘 밑에 매달아야 한다
고기가 물지 않은 상태에서도 낚시대가 무거운데 큰 고기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물면
일반 낚시대는 대부분 부러진다
그래서 낚시대는 굵고 짧은 콤비대를 사용한다
선장이 준비하시고^^ 라고 외치면
여러 개가 달린 낚시 바늘에 새우를 끼우고 대기한다
모든 사람이 새우를 바늘에 끼우고 나면
선장이 다시 외친다
낚시대 내리고^^ 라고 외치면
전원이 똑 같이 낚시대 릴을 내린다
그래야만 무거운 낚시 추가 빠르게 흐르는 조류 속에서 엉키지 않고 똑같이 내려간다
낚시 추가 바닥까지 내려가 멈추면 낚시줄이 팽팽해지도록 릴을 조금씩 감아준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툭하고 입질이 온다
그러나 입질이 온다고 해서 바로 릴을 감아올리면 안 된다
입질이 와도 선장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입질이 와서 각자 낚시대를 올리면 물살이 세서 서로가 낚시줄이 엉키기 때문에
동시에 올리고 동시에 내려야 한다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면 낚시꾼 마다 여기저기서 툭 투툭 하고 입질이 계속해서 온다
툭 하면 한 마리가 물린 것이고 또 다시 투툭하면 두 마리가 추가로 물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다라다 보면 낚시꾼 전원이 고기가 물었는지 확인하고
전원이 고기가 물었다고 판단되면
선장이 외친다
모두들 올리고^^라고 외치면
전원이 똑같은 속도로 천천히 올린다
10개 짜리 카드바늘에 어떤 사람은 3마리 어떤 사람은 7마리 등등
낚시꾼마다 다르게 올라온다
어떤 사람은 2마리가 올라와도 초대형 대물급 우럭이 잡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볼락이 8마리 올라오기고 하고
어떤 사람은 묵직한 열기가 5~6마리씩 올라오기도 한다
갑판에 올라온 물고기는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팔닥거리고 난리다
그냥 두면 여기저기서 여려 사람들이 동시에 올린 물고기가 엉켜서
낚시 바늘까지 엉킬 수가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고기를 떼어내야 한다
떼어낸 물고기는 각자 가져온 쿨라에 담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낚시바늘에 새우를 끼우고 대기하고 기다린다
전원이 미끼 끼우기 작업이 끝나면 다시 선장의 지시에 따라
위와 같은 방법으로 낚시하기를 반복한다
고기가 잘 잡히는 날은 미끼를 거의 끼우지 않아도
가짜 미끼가 달린 카드 바늘에 잘 잡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날은 고기 떼를 만나면 2시간만에 20리터 쿨러에 가득찰 때도 있었다
반대로 어떤 날은 오후까지 낚시해도 거의 잡지 못할 때도 있다
고기를 많이 잡는 날은 시간에 관계없이 일찍 철수한다
어떤 날은 고기가 한참 신나게 잡히는데 쿨라도 채우기 전에
선장이 심술을 부리고 조기에 철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은 선장에게 10만원을 따로 봉투에 넣어 추가로 주면
선장이 낚시를 더 오래 하도록 배려를 해준다
고기를 거의 잡지 못하는 날은
선장집 수족관에 보관 중인 고기를 선장이 일부를 나누어 주기도 한다
고기를 많이 잡는 날은 해금강에서 구조라 항구로 돌아오는 시간에
배 위에서 큰 우럭과 열기를 여러 마리 꺼내어 회를 뜬다
깍두기처럼 큼직큼직하게 고기를 대충 썰어서 배 안에서 파도를 가르며 소주와 함께
생선회를 한 볼팅이씩 씹어 먹으면 단 맛이 난다
구조라 항구에 도착하면 모든 짐들을 봉고차에 싣고
선장 집에 잠시 들려서 뜨거운 메운탕에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봉고차에 지친 몸을 싣고 부산으로 돌아올 때는
아까 배 위에서 생선회와 함께 마신 소주로 취기가 올라서
모두들 차 안에서 골아떨어진다
이렇게 서너 시간을 봉고차 안에서 자고 나면 부산에 도착하여
각자 낚시 도구와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간다
어떤 경우에는 20리터 쿨러에 고기가 가득차서 묵직해서 들기도 힘들 정도였다
집에 도착하면 쿨러에서 우럭 볼락 열기 등 대형고기들을 꺼내서
내장과 비늘을 모두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어서 이쑤시개로 배를 벌리고
베란다 그늘에서 서서히 건조시킨다
날씨가 추워서 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3~4일을 그늘에서 말리고 나면 반건조 상태로 꾸들꾸들해진다
꾸들꾸들해진 물고기는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아서 차가운 베란다 또는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필요한 만큼 꺼내서 굵은 소금을 뿌리고 간을 해서 후라이펜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먹으면 가히 그 맛은 다른 어떤 생선맛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다
나의 입맛으로는 영광굴비나 제주옥돔 구이나 갈치구이보다도 훨씬 더 맜있다
거제도 해금강에 가서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가서 힘들게 잡아온 생선은
반건조 상태로 보관하면서 오랜 기간 두고두고 먹곤 하였다
밥 반찬도 되지만 술안주로도 최고다
예전에는 해금강으로 낚시를 가서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암벽에 자연산 자생 풍란이 지천에 붙어있고
하얀 풍란 꽃들이 피어나 그 향기가 낚시 배가 있는 곳까지 진동하였다
지금은 자생 풍란을 모두들 캐가서 거의 보이지 않아서 매우 아쉽다
지금은 거제도 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바다에 낚시를 가더라도
예전처럼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
예전엔 거제도 설진에 가면 책받침 크기의 도다리를 많이 잡았고
거제도 장목면 외포에 가면 대구도 잡고 감성돔도 많아 잡았는데
지금은 낚시가면 횟집에 가서 회를 사먹고 와야 될 만큼 고기가 안 잡힐 때도 많다
예전에는 외포 방파제에서 감성돔과 벵에돔을 잡았고 밤에는 볼락을 잡은 적이 있었다
몇 해전만 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해운대 주변에서 학꽁치와 전어가
많이 잡혔는데
요즘은 구경하기가 힘들다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이면 거제도에 가서 꼬시래기라는 고기를 잡아서
대가리 뼈 채 칼로 잘게 두드려서 먹으면 말 그대로 엄청나게 고소했다
밤에는 방파제 물가에서 후래쉬를 들고 다니면서 문어도 많이 잡았다
먼거리 낚시를 가서 고기가 안 잡힐 때는 바닷가 갯바위 아래서 홍합 배말 거북손 고동 같은 것들을
따서 코펠 위에 올려놓고 삶은 다음 술안주로 사용하기도 하고
물이 빠지면 돌미역을 뜯어서 술안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예전에 언젠가는 통영 곤리도로 낚시를 갔는데 태풍으로 참돔 가두리 양식장이 터져셔
우리 일행은 양식장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대형 참돔을 100여마리나 잡았는데
10마리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양식장 주인에게 모두 돌려준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거제도에 가려고 하면 언제나 통영까지 가서 통영대교를 지나서
들어가다 보니 거의 3시간이 걸리곤 했었다
그러다가 2010년 12월 13일 거가대교가 개통되었는데
개통 첫날은 통행료가 무료라서 나는 개통식날 지인들과 여러 명이 모여서
거가대교를 진입했는데
처음으로 보는 해저 터널이라서 너무너무 신기해서 천천히 느린 속도로 운전하며
이것저것들을 구경하면서 지난 적이 있었다
개통 첫날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해저터널에서는 속도를 거의 줄이고
구경하면서 드라이브하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길이 3.5km의 사장교도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평소에는 거제도 고현에 가려면 사상에서 통영을 거쳐서 3시간 정도 걸렸는데
거가대교와 해저터널을 거쳐서 직선으로 가다보니 승용차로 40~50분이 걸렸다
공사 시작 6년 만에 길이 3.7km 해저터널이 완공되면서
거제도와 부산은 1시간 이내거리로 단축되었다
지금은 부산 사상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불과 1시간 만에 고현에 도착한다
(버스요금 8,600원)
거제도에는 대우조선과 삼성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근로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포함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자
집값도 폭등하고 땅값도 껑충 뛰었고 모든 물가가 엄청 비싸다
내가 젊은 시절 현대조선소에 근무할 때도 울산시내는 물가가 전국에서 가장 비쌌었다
그 대신 현대그룹 직원들은 대기업들 중에서도 월급을 제일 많이 받았다
거제도 물가의 예를 들어보자
가령 거제도에서 4명이 저녁에 모여 횟집에서 회식을 할 경우
거제도에서 회식을 하지 말고 4명이 택시를 타고 거가대교를 건너와 부산에서 회식을 하면
왕복 택시비를 주더라도 거제도 보다 훨씬 싸게 회식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거제도는 그 만큼 모든 분야에서 물가가 매우 비싸다
참고로 나의 경우에는 딸 부부가 거제시 고현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라서
나는 지금도 거제도에 살고 있는 외손주들을 보기 위해서 거제도에 자주 가는 편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운전대를 잡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거제도는 섬지역이라고 해서 지방이 아니고 인구 24만 명이 사는 커다란 대도시이다
옛날 소박하고 순수했던 섬사람들 인심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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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까지 오기까지
전 과정을 디테일하게 잘 기록해 보관해셨구려
시간 공간이 생기면 꺼내서 보면 그 당시 함께 했던 친구들 생각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