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사라졌다
권순학
새가 보이지 않는다
울음이 사라졌다
참새도 비둘기도 까치 까마귀까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아침은 자명종 몫이고
새 울음소리는 추억이 되었다
도시는 나무를 버렸다
나뭇잎과 가지 사이사이를 차지한
새를 버렸다
울음을 버렸다
들어선 것은
밤새 꺼지지 않는 붉은 태양들
새에겐 허용된 공간이 허공뿐
그곳을 찾아 새들은 떠났다
울음도 떠났다
가끔씩 화석 같은 메아리만 들린다
긴급회의가 이루어졌다
동물원에 새를 모시고 오고
박물관에 박제를 모셔 두었다
그리고 검은 스피커도 숨겨 두었다
사라진 새들은 그리고 울음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신문과 방송은 난리 법석이지만
떠난 새는 깜깜 무소식이다
빈 칸에는
정중동 로또 당첨번호만 남아 있다
---권순학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에서
지구의 역사상 다섯 번의 대멸종의 시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거대한 공룡과 맘모스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이 모조리 멸종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는 우리 인간들이고, 우리 인간들도 곧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고 말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은 우주의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존재이며, 근검절약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에 만족하지를 못하고 끊임없는 사치와 허영과 향락생활을 하면서 이 지구촌을 파괴시켜왔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 사유를 하고 그 사유를 실천할 수 있는 두 손을 사용하게 한 것과 수많은 동식물들과는 달리 옷을 입고 생활을 하게 한 것은 전지전능한 신의 최악의 실수라고 할 수가 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은 전지전능한 신의 목을 비틀어 버린 것이고, 그 결과, 지구촌의 열대 우림과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북미, 중남미와 오세아니아, 그리고 북극과 남극까지 다 파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졌고, 호랑이와 곰과 코뿔소 등마저도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물론, 이제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지구촌의 대폭발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차가운 공기는 더운 공기를 받아들이고, 더운 공기는 차가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건조한 공기는 습한 공기를 받아들이고, 습한 공기는 건조한 공기를 받아들인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불러들이고, 초식동물이 사라지면 육식동물도 사라진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찾아오고, 벌과 나비가 사라지면 그 어떤 꽃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선은 악과 함께 짝을 이루고, 정의는 불의와 함께 짝을 이룬다. 바다는 육지와 함께 짝을 이루고, 밤은 낮과 함께 짝을 이룬다. 모든 대립적인 것은 동일한 것이며, 어떤 사물과 어떤 사건도 제멋대로 태어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자연의 이치는 가장 정교하며, 어느 것 하나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는 선순환 구조로 짜여져 있다. 권순학 시인은 이러한 자연의 선순환 구조가 깨어진 것을 깨닫고, “새가 보이지 않는다/ 울음이 사라졌다”라고 탄식을 하고, “참새도 비둘기도 까치도 까마귀도” “모두 사라졌다”라고 그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제 아침을 알리는 것은 인위적인 자명종의 몫이 되었고, “새 울음소리는 추억이 되었다.” 왜냐하면 도시가 나무를 버렸고, “나뭇잎과 가지 사이사이를 차지한/ 새”들과 함께 “울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영원한 욕망의 포로이며, 영원한 소화불량증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생불사의 꿈이 오늘날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가져왔고, 대도시의 탄생이 수많은 천연자원과 함께 수많은 동식물들의 소멸을 연출해냈다. 새를 버렸다는 것은 새소리와 함께 대자연의 합창을 버렸다는 것이고, 울음이 사라졌다는 것은 모든 만물의 탄생과 죽음의 선순환 구조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대도시에 “들어선 것은/ 밤새 꺼지지 않는 붉은 태양들”이고, “새에겐 허용된 공간이 허공뿐”이었던 것이다.
허공은 텅 빈 무無이며, 새의 종말이고, 허공은 사라진 울음이며 화석같은 메아리뿐이다. 영원한 욕망의 포로인 채로, 아니 영원한 소화불량증 환자로 그 병을 치료하고자 “동물원에 새를 모시고 오고/ 박물관에 박제를 모셔 두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들과 함께, 새들의 울음 소리가 돌아올 리는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신문과 방송들이 난리법석이지만, 한번 떠난 새들은 깜깜 무소식이고, 그 새들과 새들의 울음 소리가 돌아온다는 것은 “정중동 로또 당첨번호”만큼이나 어렵고 힘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권순학 시인의 [울음이 사라졌다]는 종말론이며, 소위 가장 이성적이고 양심 있는 시인의 단말마의 비명 소리라고 할 수가 있다.
서정시도, 서사시도, 비극도 종말을 고하고, 영원한 구원의 빛도, 아니 지옥의 저승사자마저도 찾아올 리 없는 암흑천지----.
울음이 사라진 것은 노래가 사라진 것이고, 노래가 사라진 것은 모든 생명체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