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서 가사歌辭를
만나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상권
전주에서 출발하여 1시간이 좀
지나 담양 한국가사문학관에 도착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정자, 연못, 물레방아 그리고 소 등에 올라타 피리를 부는 목동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소 등에 앉아 피리 부는 목동’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성산별곡에 나오는 피리 부는 목동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본관에 들어서니 현관에 걸어 놓은
대형 액자가 우리를 압도했다. 송순宋純이 쓴 면앙정가俛仰亭歌 전문이었다. 해설자는 전문을 줄줄 외우며 노래까지 곁들여 해설해주었는데, 그의
해박한 지식과 능란한 말솜씨에 다들 놀랐다. 이 작품은 일명 무등곡無等曲이라고도 하는데, 송순이 담양의 기촌에 머물 때, 그곳 제월봉 아래에
면앙정이란 정자를 짓고, 주변의 산수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즐긴 풍류 생활을 노래한 서정 가사로서 가사문학의 백미라고
한다.
“인간 세상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없다 /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고 / 바람도 쏘이려고 달도 맞으려 하니 / 밤이랑 언제 줍고 고기일랑 언제 낚을꼬 /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낙화는 누가 쓸 것인가 / 아침시간 부족하다고 저녁이라 싫을쏘냐 / 오늘이 부족한데 내일이랴 넉넉하랴 /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보니 / 번거로운 마음에도 버릴 일이 전혀 없다.”
라는 대목은 외워둘만한 어구다.
옆 전시실로 갔다. 열세 점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그 옆에 시구가 붙어 있었다. 서석산의 한가한 구름, 창개리 흰 물결, 양지녘에 오이를 심으며, 벽오동에 떠오르는 가을 달,
조대의 두 그루의 소나무 등의 시구 내용을 형상화한 그림들이란다. 이 밖에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박인로의 조홍시가 등
여러 가지 가사문학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듯 좋은 자료들을 샅샅이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가사문학관을 나왔다.
담양을 일컬어 으레 사림의 고장,
누정문학의 고장이라고 한다. 이는 담양지역이 국문학에서 가사 문학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송순의 면앙정가의 주 무대가 면앙정이며, 정철의
성산별곡의 주 무대는 성산 즉 별뫼이다. 이서의 낙지가를 비롯해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 작품만도 17편이란다. 그러기에 가사문학에 관련 문화유산
전승, 보전,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해서 담양에 가사문학관을 설립한 것 같다.
나는 가사 문학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이번 담양의 한국가사문학관 탐방을 통해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가사는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 잡은 문학의 한 갈래로 4음보 율격의 장편연속체로 된 시가이다. 경기체가의 붕괴과정에서 나왔으며, 시조창이 나오면서 가사가
발전했다.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이며 흔히 운문의 형식에 산문의 내용을 입힌 것이다.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한글을 사용하여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발휘한 주체적 문학 활동이다. 조선 전기 시기의 주 담당층은 양반 사대부 계층이며, 그들은 생활의 체험과 풍류 및 신념을
노래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강호(江湖)가사이다. 조선 후기 가사는 서민 및 부녀자, 승려 등으로 폭이 넓어졌다. 가사의 내용도 기행, 전쟁,
유배, 규방, 종교, 애국 등 다양하게 지어졌다.
가사를 모르는 나의 무식을
탓했다. 위의 내용도 인터넷 덕분이다. 면앙정가의 원문과 해석을 읽었다. 우리글인데도 해석을 읽지 않고는 이해가 안 되었다.
동다하로(동쪽으로), 무득무득 (우뚝우뚝), 울울히(끊임없이), 하도 할사(많기도 많구나), 나명성 들명성(나며 들며 : 들락날락하며) 등
정감이 가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했다. 송순 선생의 뛰어난 문장력에 감탄했다. 그러면서 수필을 쓰기
전에 가사 문학을 공부하면서 좋은 가사를 많이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수필 쓰기의 밑거름이 됐지 싶기 때문이다.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다. 다시 분발하자는 생각으로 정극인의 상춘곡을 비롯해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사미인곡, 관동별곡을 읽었다. 사가를
읽으면서 마치 내가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듯한 착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들처럼
유유자적하면서 수필을 빚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보았다.
(2017.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