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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德을 선포하는 해(前⇨❀) † 使徒바울 ☆ (獄中書信)
5월 *가정의 달* ☞가족과 친족 전도로 아름다운 가정의 달☜
☆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엡6:1-9절) 관계(關係)의 회복(回復)
Ⅱ.자식과의 관계(중)
모든 부모(父母)는 자식(子息)을 사랑하고, 자식(子息)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願)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모(父母)는 자신(自身)들의 문제에 빠져서 자식(子息)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거나, 아예 가정(家庭) 자체(自體)를 내 팽개쳐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주위에서 정말 남을 이해해 주고, 배려(配慮)해 주고, 사회(社會)에 필요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우리가 산(山)에 올라갔다가 아주 예쁜 호랑이 새끼 한 마리를 주워 집에서 키우게 되었다면, 그 호랑이 새끼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그 호랑이 새끼는 작지만, 그 안에는 무서운 맹수(猛獸)의 본성(本姓)이 있습니다.
호랑이를 길들인다고 자꾸만 때리면, 그 호랑이 새끼는 일찍부터 사나워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이나 주고,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나중에는 주인(主人)을 물어 죽일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호랑이에게 먹는 것을 주면서 애정(愛情)을 표현(表現)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주인(主人)의 의사(意思)를 알아듣도록 반복적(反復的)으로 훈련(訓鍊)시켜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基督敎)의 신앙(信仰) 교육(敎育)은 무엇보다 인간론(人間論)에서부터 시작(始作)됩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패(腐敗)한 본성(本姓)을 가진 죄인(罪人)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한편으로는 귀엽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부패(腐敗)한 죄인(罪人)의 본성(本姓)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정도(正道)를 넘어 악(惡)을 쓰면서 우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잘못된 영향(影響)을 받으면, 죄성(罪性)에 많이 자극(刺戟)을 받아 아주 악(惡)한 사람으로 성장(成長)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교육(敎育)이 어떤 부분(部分)에 치중(置重)되어 있습니까? 주로 기능(技能) 교육(敎育)에 치중(置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나 수학. 아니면, 피아노나, 태권도를 배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능(技能) 교육(敎育)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성(人性) 교육(敎育)입니다. 크리스천이 결혼(結婚)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이것은 엄청난 축복(祝福)입니다. 즉 믿음의 가정(家庭)에서 믿음으로 태어난 아이는 아마 왕궁(王宮)에서 왕자(王子)로 태어난 것보다 더욱 복된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아이 안에도 죄의 본성(本姓)이 오염(汚染)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이를 키우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3: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식물(植物)은 자랄 때, 누군가가 씨를 뿌리고, 또 누군가가 물을 줍니다. 그러나 그 식물(植物)이 자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자랍니다. 그럼 누가 그 나무를 자라게 할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부모(父母)는 어디까지나 보조(補助)하는 사람들일 뿐, 아이가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즉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먹는 것을 마련해서 먹입니다. 그리고 좋은 책들을 구입해서 아이에게 읽어줍니다.
그러나 사실 부모(父母)는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지 잘 모릅니다. 이것은 부모(父母)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부모(父母)가 하는 것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사실 아이들의 알고자 하는 욕망(欲望)은 많습니다. 즉 무엇이든지 다 알려고 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때로는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慾心)이 아이들의 배우려는 의욕(意欲)을 꺾을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父母)가 일일이 모든 것들을 다 신경써야만 잘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경우, 부모(父母)의 지나친 염려와 걱정이 오히려 아이들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냥 내버려두면, 잘 자랄 아이를 부모(父母)가 쓸데없이 간섭(干涉)하고, 개입(介入)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이상한 방향으로 자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自然)스럽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부모(父母)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自身)의 욕망(欲望)을 무조건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착한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부패(腐敗)한 본성(本姓)에 있기 때문에 무조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父母)는 자기의 귀여운 아이가 결코 천사(天使)가 아니라, 그 안에 타락(墮落)한 본성(本姓)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무한(無限)한 자유(自由)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자녀(子女)에게 어떤 제안(提案)안에 놀아야 하고, 규칙(規則)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즉 무한정(無限定)으로 놀게 한다든지, 혹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게 한다든지, 혹은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타락(墮落)한 본성(本姓)에서 나온 욕심(慾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父母)로부터 전혀 통제(統制)받지 않은 아이들이 행동(行動)하는 것은 별로 귀엽지 않고, 심술궂고, 예의(禮義)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부모(父母)는 아이들로 하여금 남의 물건(物件)을 탐(貪)내지 못하게 하거나, 식사(食事)를 할 때, 돌아다니지 말고,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또 잠이 올 때는 자고, 장난감도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것들을 다 가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 아이들이 알면서 잘못된 일을 할 경우는 야단도 쳐야 하고, 때려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때는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욕망(欲望)에 제한(制限)당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이런 훈련(訓鍊)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쓸데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課程)에서 6:4절)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의 욕망(欲望)은 어느 선(線)에서 저지(沮止)를 당해야 하는데, 그때 마음속에 분노(忿怒)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때 부모(父母)는 친절(親切)한 설명(說明)과 애정(愛情)어린 설득(說得)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분노(忿怒)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 아이들의 마음속에 분노(忿怒)가 있게 될까? 부모(父母)의 가르침과 징계(懲戒)가 어린 나이에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형평성(衡平性)을 잃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 자신(自身)이 생각해도 분명히 잘못을 했는데, 그 잘못에 합당한 야단과 매를 맞는다면, 분노(忿怒)하지 않고 꾹 참습니다.
그런데 자기(自己)생각에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심한 벌(罰)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분노(忿怒)하게 됩니다. 즉 지금은 힘이 없어서 당하지만, 나중에 복수(復讐)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거짓말을 한 번 했는데, 두 시간씩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들고 있게 한다든지, 아니면 밥을 먹다가 음식을 좀 흘렸는데, 화장실 안에 불을 끄고, 한 시간씩 있게 한다든지, 혹은 말대꾸를 했다고, 온 몸에 멍이 들 정도로 맞았다면, 이것은 이미 자녀를 노엽게 한 것이요, 자식은 복수심(復讐心)에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父母)에게 겸손(謙遜)해야 하겠지만, 부모(父母)도 아이들 앞에 겸손 (謙遜)해야 합니다. 5:21절)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은 어느 한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쌍방(雙方) 모두에게 해당(該當)되는 말씀입니다.
부모(父母)가 아이들에게 겸손(謙遜)한 것이 어떤 것일까? 아이들 앞에서 부모(父母)라고 언제나 절대적(絶對的)으로 옳은 것은 아니며, *이번 일은 엄마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잘못을 인정(認定)하고, 사과(謝過)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분노(忿怒)하는 상태에 빠져 있으면, 우울증(憂鬱症) 증세(症勢)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父母)가 만나기만 하면, 소리를 지르고 싸울 때, 그 집 아이들은 주의력(注意力)이 산만(散漫)하고, 어른이 뭐라고 말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아이에게 잘못한 것 이상으로 그 아이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맹수 한 마리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지금 고정(固定)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이의 성격(性格)에 문제(問題)가 있고, 불안(不安)해 보여도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6:4절)...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양육한다.'는 것은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아내의 경우, 남편(男便)이 아내의 영적(靈的)으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남편(男便)은 아내를 사랑해 주어야하고, 물질적(物質的)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어야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도 부모(父母)로부터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들에게 영양가(營養價)있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이 이 세상(世上)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信賴)받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自己)를 믿어 줄 때, 안심(安心)하게 되고, 무슨 일을 해도 덜 불안(不安)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世上)을 사는데, 있어서 예측(豫測)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고, 자기(自己)가 책임(責任)질 수 없는 우연(偶然)한 사고(事故)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들에 다 신경(神經)을 쓰면서 자라야 한다면, 우리는 불안(不安)해서 살지 못합니다. 부모(父母)는 아이를 자기(自己)의 분신(分身)으로 생각하여 자기(自己)가 하지 못했던 것을 아이에게 강요(强要)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自己)가 의사(醫師)가 되려고 했다가 못했기 때문에 의사(醫師)가 될 것을 강요(强要)한다거나, 법관(法官)이 되려고 했다가 실패(失敗)했는데, 아이를 법대(法大)에 억지로 넣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自己)가 하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요구(要求)하는 것 자체가 억지요, 욕심(慾心)입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살아가야 할 인생(人生)이 있습니다. 부모(父母)는 일정 기간 동안 맡아서 잘 돌보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내 보낼 준비(準備)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청소년(靑少年) 시기(時期)가 되면, 부모(父母)를 떠날 준비(準備)를 합니다. 그래서 부모(父母)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친구(親舊)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이것은 이미 부모(父母)를 떠날 준비(準備)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父母)는 그렇게 하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번 기회(機會)에 좋은 친구(親舊)를 사귀게 하고, 기왕 놀려면, 떳떳하게 놀 수 있게 해 주여야 합니다.아-멘 찬송가 556장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는*
매일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5월(그물의 비유를 정회원과 비회원 chart로 구별하여 정리하는 달)
아-멘, 댓글은 은혜 받은 성도의 기본, ⟺ 감사와 仲保祈禱는 정회원 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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